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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21화 (21/91)

〈 21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8)

* * *

홀짝이던 커피가 다 떨어질 무렵이 되자, 발걸음을 멈추니 그새 집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다 마신 커피 페트병을 대충 구겨, 집 앞 쓰레기장에 던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더럽네..”

분명, 지금까지 내 집 상황에 대해 별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충 잠만 잘 수 있으면 상관없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고, 실제로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허나, 어젯밤 보았던 현수의 집과 내 집의 괴리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가구가 없는 건 둘째치고, 너무 지저분했다.

그의 집은 화려한데다가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는 가구들이 무질서하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당히 깔끔하고, 먼지 한 톨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예술가인 그의 머릿속에는 최적의 가구 배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깔끔히 청소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는 다 마신 술병들과 재떨이용 종이컵이 굴러다녔고, 먼지들이 층을 이뤄 쌓여가고 있었다.

옷들도 대충 옷장에 쑤셔 넣어져 있고, 화장대는 정갈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배치되어 있었다.

청소를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을 만큼 나는 청소를 게을리한 것이다.

가뜩이나 밤을 새우고 와서 피곤하고, 보통이라면 이런 것쯤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밖에서 구르고 구른다면, 최소한 내 집에서는 편안하게 쉬고 싶다.

허나 이런 것들이 눈에 띈 이상, 잠을 잔다고 해도 불편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나는, 오른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왼손에는 종량제 봉투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술병이 하나...둘...셋.....열 다섯 병...? 흠, 적게 먹었네, 이번 주는 스트레스가 별로 안 쌓였나?”

나뒹굴던 술병을 세며, 하나씩 한 곳에다가 모아두니, 열다섯 병 정도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에는 그다지 심하게 진상을 부리던 손님이 없어서 그런가, 보통 먹는 소주보다 양이 적었다.

“으윽...냄새....이건 진짜 어떻게든 해야겠네...”

그리고 재떨이로 사용하던 종이컵들.

이미 며칠이 지났는지 모를 내용물들은 고약한 냄새를 내뿜으며 질척하고 어두운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게 만약 실수로 쏟아져서 바닥에 다 엎어졌더라면....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종이컵들과 쓰레기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고, 개지도 않은 체 옷장에 박힌 옷들을 개어 정리한다.

바닥의 먼지들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상당히 사용해 낡은 수건을 물에 적셔 바닥을 닦아내었다.

얼마나 먼지가 가득한지 걸레질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수건이 새까매졌다.

그렇게 청소를 끝내고, 창문을 열어 고인 방 냄새를 환기시켰다.

“깔끔하네 뭐.”

그러자 처음보다 훨씬 깔끔해진 방이 나를 반겼다.

이렇게 말끔해진 방에서 휴식을 취할 때 할 것은 단 하나.

“크으....시원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냉장고에 넣어두어 차가워진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방을 치우는 것은, 너무나도 간편했다.

아무리 더러워도, 약간의 수고를 들이면 금세 깔끔해진다.

그런데, 방이 깨끗하면 뭐 해.

내 마음속 더러운 감정이 찌든 때는 벗겨지지를 않는데.

어차피 씻어낼 수 없다면, 눈을 돌리고 무시하자.

이러다가는 언젠가, 곪아버리고, 썩어버린다고 해도, 방을 청소하는 것처럼 마음도 청소를 할 방법이 없는걸.

그냥 쓰레기 더미를 눈에 띄지 않도록, 넓은 천으로 덮어 버리는 것처럼.

나는 그저, 술을 마시는 행위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지를 못하니까.

아무리 아프다고 아우성을 쳐도, 상처 안부터 곪아버리는 상처가 역한 냄새를 내도.

고칠 방법도, 마주 볼 용기도 없는 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지를 못하니까.

나는 소주병에 든 소주를 마저 벌컥거리며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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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타라.”

어느덧 해가 진 저녁.

나는 오늘도 검은 밴의 차 문을 열며 착석했다.

2일 연속으로 일을 나가는 일은 오랜만이었지만, 돈을 벌려면 나가야 했다.

“미영아~ 오랜만~”

“아...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자, 먼저 앉아있던 그녀가 빙긋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가 처음 이 일을 할 때, 나를 도와주었던 여성, 하린이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가끔씩 만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살갑게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 반해, 나는 아직도 그녀와 대화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대화라고 하기에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과 마찬가지로, 만날 때마다 늘 색다르고, 색기 넘치는 옷들을 입었는데, 항상 다른 옷들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목은, 처음에 만났을 때 반짝이던 은색 십자가 목걸이는 여전히 차고 있었다.

“오늘 일 나가는 거야?”

“....네.”

“그렇구나....너도 이 일 상당히 오래 하는구나? 보통 애들은 짧으면 1개월, 길면 4개월 정도 하는데....”

“.............”

그녀는 말을 끝까지 잇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숨은 뜻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야 이런 일을 3년째 하고 있냐는 질문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나도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새로 나온 파데 봤어? 너무 좋더라~”

“아...저는 그냥 싼 거 쓰고 있어서...”

“뭐? 그럼 안돼~ 이왕 하는 거 좋은 거 써야지~ 자! 이리 와 봐! 내가 아껴 쓰고 있는 건데, 보자...”

“앗...! 자...잠시만...!”

그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쪽 대화는 더는 하지 않고, 재빠르게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이런 점이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인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차질 없이, 그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까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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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손님은 어디 계신대?”

미영이 차에서 내리자, 하린과 박 실장, 단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지랄 마, 내가 부른 이유를 니년이 모를 이유가 없잖아."

박 실장은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더니, 깜빡이를 켜고는 하린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적당히 하지 그래? 그러다가 진짜 몸 망가진다.”

그러자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던 하린이 얼굴을 굳히고는, 박 실장에게 싸늘한 경고를 날렸다.

“염병 떨고 있네 썅년이...니 년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냐?”

“닥치고! 팔 거야 말 거야?”

“......그래 그래 알았어.”

박 실장의 계속되는 압박에, 하린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신의 클러치 백에서 작은 지퍼 백을 하나 꺼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지퍼 백에는 새하얀 가루가 윤기를 흘리며 들어있었다.

“빠...빨리 내놔!”

“돈.”

“으큭....!”

박 실장이 당장이라도 하린의 손에 들린 지퍼백을 뺏으려 들자, 하린은 꺼냈던 지퍼백을 다시금 클러치 백에 넣었다.

“시발...시발....자!”

얼굴을 찌푸리며 욕짓거리를 하던 박 실장이 차의 보관함을 열어 뒤적거리더니, 5만 원 짜리 지폐 한 다발을 꺼내, 하린에게 던졌다.

“.......모자란데?”

“뭔 개수작이야? 분명 저번에도 이 가격으로 샀잖아!!”

하지만, 돈다발을 건네받은 하린이 지폐의 액수를 세더니, 고개를 저었다.

“요즘 단속도 자주 뜨고, 항구에서 수입해오던 러시아 코쟁이들이 가격을 올렸어. 그래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더 받아야 해.”

“....그래서 얼마나 더 내야 하는데?”

“한 다발 더.”

“지랄하지 마! 이 씨발련아! 뒤지고 싶어? 어떻게 가격의 두 배가 뛰어?”

보통 사던 가격의 두 배.

원래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는데 갑자기 몸값이 두 배나 뛰어버리니 박 실장의 속마음은 터져만 갔다.

“싫으면 사지 말든 가, 우리도 큰 위험부담을 떠안고 이 짓 하고 있거든?”

“시발....시발...! 가져가 시발...!”

아무리 박 실장이 화를 내도, 눈 깜짝 안하며 선택을 강요하는 하린의 모습을 보던 박 실장은, 머리끝까지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다시금 보관함을 뒤적거려 금방과 같은 돈 뭉치를 던져 주었다.

“자, 여기.”

“하아...하아....!”

만족스러운 액수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하린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지퍼백을 박 실장에게 넘기자, 그는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개새끼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지퍼백에 담긴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뭐, 한 번에 너무 많이 해서 골로 가지는 말고, 난 여기에서 내려서 택시 타고 간다.”

“.....알아서 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린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휘젓고는, 차 문을 벌컥 열어 내렸다.

금방 내린 검은 밴에서 또각거리는 걸음걸이로 멀리 떨어진 하린은, 마찬가지로 클러치 백에 있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병신.”

그렇게 그녀는, 어두운 밤의 거리로 자신의 몸을 감추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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