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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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한 머리칼.
사각진 뿔테안경.
상당히 큰 키와 어깨.
그리고 그의 오른팔에 잡혀있는 목발.
나는 문이 열렸음에도 나를 부른 그의 모습에 잠깐 넋을 놓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저기?”
“아?...아 네, 실례....하겠습니다.”
그런 나를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바라보던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그의 방을 바라본 내 감상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상당히 넓어 보이는 거실에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가득 있었는데, 거대한 샹들리에, 인간 남자 얼굴의 석고상, 상당히 큰 사과 모형과 화려한 액자에 비해 상당히 밋밋한 그림.
그런 것들이 무질서하게 늘어나 있었지만, 정작 바닥에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원두커피의 냄새가 훅하고 끼쳤다.
냄새가 풍겨오는 곳을 바라보니, 막 커피를 끓이고 있었는지 커피 머신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화장실은 어디....?”
“네? 아, 저쪽의 끝에 있....”
“그럼....씻고 오겠습니다.”
“아..! 그게...!”
나는 일단 남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은 후, 쏜살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려한 바깥과는 다르게, 화장실은 별 특색 없는 무던한 화장실이었...지만, 금방 내 시선을 사로잡은 별 모양 샤워커튼을 바라보고 다시 마음을 바꿨다.
“....뭐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런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내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저런 가구들을 집에 들여놓을 정도로 상당히 돈이 많아 보이는 그가 왜 성매매를, 그것도 제일 저렴한 나를 골랐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단순한 취미? 아니면 불편한 다리 때문에 연애를 못 해서?
나는 옷을 벗고, 하기 전 몸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면서도,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고 항상 느끼던 역겨운 감각과 허무함을 곱씹으며 괴로워할 틈조차 없었다.
샤워가 끝나고 머리를 말린 뒤, 여기가 모텔이었다면 언제나 준비된 목욕가운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내가 입고 온 옷을 다시 입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샤...샤워는 끝나셨나요?”
그러자 그는,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나를 바라보고는 황급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선금 52만 원입니다.”
어쨌든, 그가 나와의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서 불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에, 나는 일단 언제나 하는 것처럼 선금을 요구했다.
“아...네네! 선금 말이죠...!! 잠시만...요!”
그러자 그는 목발을 짚으며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다가 탁자에 놓인 봉투를 챙겨왔다.
“여기, 5만 원권 11장이 들어 있어요.”
“네...? 3만 원이나 더 들어 있는데....”
그는 나에게 흰 봉투를 건네며, 원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넣었다며 말해줬다.
금액 확인을 위해 봉투를 열고 지폐를 세고 있던 도중이었기에, 금방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뇨,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으니...그냥 받아 주세요.”
“예...그렇다면...감사합니다.”
언제나 돈을 깎으려고 들거나, 추가금을 빌미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던 남자들도 많았기에,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요령을 몰랐던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경우를 겪어버렸기에 알 수 있었다.
순수한 호의라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5만 원 권이 가득한 현금을 다시 봉투에 넣어, 클러치 백에 보관한 나는, 몸이 불편한 사람과는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그가 앉아있는 쇼파의 앞에서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크흡..! 자...잠시만요!”
“....역시 거실에서 하시는 건 그러신가요? 그럼 침실로....”
내가 그의 앞에서 옷을 벗어 알몸을 보이자,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역시나 거실의 쇼파에서 하기는 싫었나 싶었던 나는, 침실이 어디인지 물었다.
“아..아뇨! 그게 아니라....아무튼 옷을 다시 입어주세요!”
“.....네.”
허나 그는 아까부터 고개를 돌려, 내 알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피하며 나에게 옷을 입을 것을 요구했다.
어째서 나를 불러놓고,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이유를 몰랐던 나는, 잠시 멍해졌지만, 그의 말대로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일단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내가 옷을 다 입자, 그제야 나를 바라보던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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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모델을 부탁드린다고요?”
나는 금방까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다시금 내가 들었던 말이 사실인지 나 앞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그에게 되물었다.
“네....일단 저는 그림으로 밥을 벌어먹고 있는 사람인데....아직까지 단 한 번도 인물화를 그려본 적이 없기에...그래서 제 그림의 모델을 구하고자 이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화가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나는 대강 그쪽 일을 할 것 같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는 신체가 불편한데도, 상당히 넓은 집에, 온갖 물건들을 들여놓고 살고 있었다.
그럼 집에서 일하는 사람일 테고, 아마 소설가나 화가일 것임을 나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허나, 모델을 구한다면, 본격적으로 그림 모델을 하는 사람을 부르면 되는데 왜 조건만남 같은 곳에서 모델을 구하는지.
만약 여기서 불렀다고 해도, 나보다 더 아름답고 여성적인 사람들도 많은데, 그중에서 왜 나를 불렀는지.
이상한 점이 여러 개 있기는 했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남자와 뒹굴지 않고, 모델 일로만 돈을 번다면 나는 원래 돈의 절반을 받더라도 충분히 이 요구에 응했을 것이다.
그들의 성적 욕구를 버리는 쓰레기통 취급보다는, 이쪽이 훨씬 좋았다.
심지어 받는 돈조차 보통 때보다 두 배나 됐었다.
그렇기에 굳이 그런 말들을 꺼내 가며 상황을 어색하게 가져가는 것보단, 그저 말을 아끼고 이 일을 수락하는 게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상황이었다.
“....좋아요.”
“정말이신가요?! 다행이다....”
내가 그의 모델을 하겠다고 수락하자, 그는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그러면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발을 절뚝거리며 어떤 방으로 향했다.
나도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여...여기에 앉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네.”
그를 따라 들어온 방에는, 바닥에는 신문지가 가득 깔려있고, 군데군데 페인트인지 물감인지 모를 것들이 묻어있었다.
방 벽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캔버스가 세워져 있었다.
인물화를 그려본 적 없다고 하던 그의 말처럼, 캔버스에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은, 풍경화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종이 향이 났다.
종이의 냄새와 물감 특유의 냄새가 이 방에 넓게 퍼져있었다.
그는 방의 중심에 작은 나무 의자를 세워놓고, 그 앞에는 이젤*(그림을 그릴 때 앉아서 그리는 도구, 아래 참조.)을 놔두었다.
“그...포즈는...어떻게 해야 하는지...”
허나, 막상 그림의 모델이 되니, 자세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화가니까, 조금 특이한 포즈를 취해야 하나 고민하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포즈는 굳이 정하지는 않았고,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아주세요.”
그러나 그는 딱히 포즈를 지정하지는 않았기에, 더더욱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결국 그냥 앉아있기 편하게 털썩 앉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네..네..”
내가 자리에 앉으니 마찬가지로 이젤의 앞에 앉은 그가 연필을 잡자,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며 딱딱하게 몸이 굳어버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 모습을 그린다고 생각하니, 편할 것으로 생각했던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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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사각.
연필이 캔버스 위를 달리는 소리만이 이 방에서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저 그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며, 곧게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흘낏흘낏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첫인상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쭈뼛거리는 인상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세상 진지해 보였다.
사각 사각.
대화는 일절 없이, 연필이 캔버스 위를 달리는 소리만이 이 방을 채운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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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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