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4)
* * *
봄이 기억이 난다.
막 20살이 된 나는, 뭐가 그렇게 설렌다고, 길가에 피어난 벚꽃을 바라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설레어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즐기며 길가를 걸었지.
처음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들.
대학교 신입생 자리에서 처음 가진 술자리.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때의 나는, 그게 뭐가 그렇게 즐겁다고 웃었을까.
나는 봄을 기억해 본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이, 내 심장을 난도질하며 지나간다.
그럼에도 나는 봄을 기억해 본다.
다시는 오지 않을 봄을, 그저 기억해 본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으음....”
머리가 납덩이처럼 묵직하다.
어지러운 머리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휴대폰 알람을 끄기 위해, 손을 뻗었다.
가까스로 닿은 휴대폰의 알람을 끄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내용물이 빈 체로 뒹굴거리는 보드카 병과, 꽁초로 꽃을 이룰 듯한 종이컵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제부터 술과 담배만 들이키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시간은 오후 2시.
나는 언제나처럼 클러치 백에서 피임약을 하나 꺼내, 물 없이 꿀꺽 삼켰다.
씁쓸하게 남은 약이 혀에 달라붙어 있어서 쓴맛이 느껴졌다.
물을 찾아 냉장고로 기어갈 기력도 없었던 나는, 인상을 찌푸릴 대로 찌푸리며 그저 쓴맛이 사라질 때까지 미련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벽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물면서 막 깨어난 뇌를 니코틴으로 일깨우고 있자니, 뜬금없이 휴대폰에서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오늘 밤인가.”
매신저를 깔아둔 이유라고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던 것을 잘 알던 나는, 휴대폰 잠금을 풀고 나에게 온 메시지를 찾아보았다.
[오늘 밤 10시, 손님이 모텔이 아닌 자신이 사는 집으로 와달라고 요구.
통상 금액의 두 배를 주겠다고 함.]
“...뭐?”
나는 박 실장이 보낸 메시지를 살펴보다가 평소와는 다른 메시지에 작은 혼란을 받았다.
메신저 어플의 역할은 단 하나.
박 실장이 어플이든 인터넷 사이트든 해서 잡아 온 손님이 나를 지목하면, 박 실장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손님을 받을 것인지, 안 받을 것인지 물어보는 용도밖에 없었다.
그렇다, 내가 처음 이 매춘 일을 시작 할 때는, 문답무용으로 나를 끌고 갔지만, 보통은 일하는 여자들의 의견이 중요했다.
아무리 일이 잡혀도, 오늘따라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는 거고, 한다고 하면 박 실장이 픽업하러 오는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목적인 5천만 원을 벌기 위해서, 나는 큰 문제가 없다면 나는 거의 무조건 일을 받았다.
애초에 내 지명률은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매우 낮았기 때문에, 항상 일을 받는다고 해도, 날마다 일을 나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뭔가 좀 이상했다.
매춘은 엄밀히 따지면 국가가 금지한 범죄행위.
그렇기에 손님 측이든 여자들 측이든 이런 행위를 들키고 싶지도 않고, 들킬 마음도 없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그저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이면 서로 본 적도 없는 것처럼 그저 남남으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대부분 일회성 장소인 모텔을 선호하며, 거의 다 모텔에서 이 일을 벌인다.
그런데 굳이, 나를 자기 집으로 들이려는 이 손님이 나는 매우 수상쩍게 느껴졌다.
하지만, 박 실장이 보낸 글 중,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통상 요금의 두 배.
현재 내 지명금은 21만 원에서 28만 원 사이에 있었다.
지명도가 오를수록, 부르는 금액도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솔직히 손님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았다.
이딴 짓에 인기가 많아 봐야 역겨움만 올라왔지만, 지명도가 높은 여자들은 내가 버는 돈의 수배는 가볍게 벌어냈다.
그들은 손님에게 친절하고, 색기가 넘치며, 남자를 홀릴 줄 알았다.
그렇기에 여기서 일하는 여자들은 어떻게든 지명도를 올리기 위해 뭐든지 하고는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남자였던 내가 남자에게 안긴다는 것 자체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남자 앞에서 재롱이나 떨고, 귀여움받으면서 봉사를 하라니.
죽어도 못하는 일이었다.
안다, 내 배가 처 부른 것쯤은.
어서 돈을 벌어, 하루빨리 신분을 구해야 하는데도, 나는 이 저열하고 티끌만 남은 마음속의 김상국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길가에서 밟은 껌처럼, 끈덕지게 내 발에 붙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테세우스의 배. 라는 이론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영웅인 테세우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귀환할 때 타고 왔던 이 배를, 아테네인들은 이를 소중히 여겨 보관했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배는 점차 풍화되고, 녹슬어갔다.
그러자 아테네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욱 튼튼한 나무를 사용해 새로 그 자리에 박아넣었다.
허나, 처음에는 그저 낡은 판자 한 조각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며 다른 부위도 전부 상하게 되어, 모든 판자를 갈아 끼우게 된다면,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가 맞는가?
마찬가지로, 내 안에 남아있는 김상국의 모든 것을 버려버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이미 김상국인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나마저 그걸 버려버린다면, 26살 김상국은 영영 죽어버리고, 속이 텅텅 비어버려 껍데기만 남은 김미영만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그러지 못했다.
“.............”
[할게요.]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손가락으로 터치패드를 두들겨, 박 실장에게 일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이렇게 고민해도 달라지지 않는 점이 딱 하나 있다.
빈 껍데기만 남든, 뭐든 간에, 돈은 벌어야 한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는 수상쩍지만 두 배를 준다는 말에 수락해버리고 말았다.
화면이 꺼진 휴대폰에, 내 얼굴이 비친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휴대폰을 대충 집어던지고,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속도 쓰리고, 담배도 다 떨어졌으니, 나갔다 와야 하기는 했다.
“......썩은 내가 나네...”
갈아입으려고 한 후드티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코인 세탁장에서 빨래도 끝내야 할 판이었다.
후드티에 코를 박고 냄새를 킁킁거리던 나는, 입으려다 말고 다른 방에 있는 빨래 할 때 옷들을 담아서 들고 가는 비닐 가방을 꺼내, 후드티와 방바닥에 던져놓고 잊어버린 잡다한 옷들과 속옷들을 집어넣었다.
옷들을 다 정리하고 나니, 이제는 입고 나갈 옷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내가 입는 것들이라고는, 후드티와 박스티 같은, 최대한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들만 사서, 죄다 똑같은 옷에 똑같은 어두운 계열의 색깔밖에 없었다.
대충 적어도 입을 수는 있는 박스티와 청바지를 꺼내려던 나는, 바깥을 날씨를 생각하며 청바지 대신, 얇은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얇은 다리가 드러나는 반바지는 개인적으로 정말 입고 싶지 않았지만, 점차 더워지는 날씨 덕분에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충 나갈 채비를 마친 나는 옷들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들어 집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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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거리의 가로등이 켜지는 늦은 밤.
나는 밤만큼이나 어두운 벤에서 내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파트 단지는 그럭저럭, 앞쪽에 단지 내 아이들이 놀기 위해, 플라스틱 그네나 미끄럼틀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고, 관리 사무소 또한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 단지.
“104동 1304호. 거기로 가면 된다. 내일 아침 나는 여기로 올 테니까 시간 맞춰서 내려와.”
박 실장은 언제나 그렇듯, 자동차 창문만 내려, 빼꼼 얼굴을 내밀더니, 자신이 할 말을 끝내면 순식간에 가버렸다.
그렇게 멀어지던 벤을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려 104동이 어디 있는지 찾다가, 바로 눈앞의 아파트가 104동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계단을 올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입구에는 전자식 출입문이 존재했는데,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세대 호출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문이 열려있었다.
배달 음식도 아닌데, 굳이 입구 앞에서 세대 호출 버튼을 눌러봤자 좋을 건 없었기에, 나는 그냥 열린 통로를 통해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배달 음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나는, 박 실장이 말해준 대로 13층을 누른 후,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13층이라는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나는 엘리베이터를 나와 13층 복도에 섰다.
1304호.
눈앞에 적힌 번호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아파트에, 방음도 잘 안돼 보이는 이런 곳에 굳이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나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이 있는 손님이 걸린 건 아닐지 고민했지만, 통상의 두 배나 되는 금액은 나에게서 그런 고민을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심호흡을 마친 나는, 현관 앞에 달린 벨을 누르자, 삐리리리! 거리는 기계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 뒤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며 끼익하며 현관문이 열렸다.
“아...오셨습니까..?”
“아...네...”
그리고 나는 현관문을 열어준 사람을 바라보자, 어째서 그가 모텔이 아닌 자기 집으로 나를 부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오른쪽 팔에 목발을 짚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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