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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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미 재떨이에는 다 피우고 남은 필터만이 자욱하게 쌓여있었다.
뻑뻑하며 피웠던 담배의 연기가 천장을 자욱하게 채워, 무늬가 희미하게 가려질 때쯤 되자, 나는 모텔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7시 3분.
“아...가야하네...”
약속된 시간보다 3분이나 지난 시점이 돼서야,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꾸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가며, 모텔 방 출입문에 다가가 손잡이를 돌리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터운 철로 이루어진 문을 여는 데 힘이 들어가질 않아, 전신을 기대며 열자, 간신히 문이 활짝 열렸다.
갑작스레 열려서 그런지, 몸을 기대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몸을 허우적거리며 그대로 모텔 복도에 엎어져 버렸다.
다행히 카펫이 깔려있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일어나려고 하는 데 자꾸 전신의 힘이 풀리며 헛손질을 남발했다.
“저기...괜찮으세요?”
마침 아침에 모텔방을 돌며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그런 내 꼴을 보더니 다가와서 내 팔을 끌어 일으켜 세웠다.
“걸을 수 있으세요...?”
“...괜찮습니다. 그럼...”
내가 걷기 힘든 것을 눈치를 챘는지, 내 팔을 자기 어깨에 올리려던 아주머니를 약하게 밀어내고, 나는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에 다가가 탑승했다.
위이잉하며 앨리베이터가 작동한다.
“하아...하아...”
밀폐된 이 공간이, 나를 옥죄오는 것만 같다.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윽고 1층에 도착하자, 나는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바닥을 박차고 달려, 모텔을 나왔다.
아침의 햇살이 나를 비추고, 금방까지 내가 있었던 모텔을 비춘다.
각각의 창문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린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는 정 반대처럼, 모텔은 그저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그게 너무나도 역겨웠다.
숨을 돌리며 천천히 거리를 걷는다.
이내 나를 태웠던 벤이, 시동이 꺼진 채로 길 건너편에 주차되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늦었다. 시간 개념이 없나?”
“.......죄송합니다...”
밴에 기대어, 담배를 피던 박 실장은, 멀리서 걸어오던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피던 담배를 버리더니, 대충 짓밟아 불씨를 꺼트렸다.
“다음번에는 늦지 마라. 타.”
그는 내 모습을 흘낏 바라보더니, 이내 간단한 충고 한마디를 남기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나도 뒤를 이어, 벤의 묵직한 뒷문을 비척거리며 열은 뒤, 차석에 앉았다.
“돈은.”
“여..여기 28만원이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돈을 묻는 그에게, 나는 파우치 백을 열어, 꼬깃꼬깃한 지폐를 펴 보였다.
“늦었으니까, 10만 원 가져간다.”
“아...”
원래 받기로 한 30%라면, 대강 8만 4천 원.
하지만 그는, 내가 늦었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5만 원 자리 두 장을 챙겼다.
“참고로 월세는 별도다. 한 달에 40만 원씩.”
“40...만원이요...?”
“싫으면, 언제든지 나가도 상관없다. 만약 못하겠으면 그냥 닥치고 돈이나 들고 와, 매달 5일이다.”
“...네..”
그는 이미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상당히 높은 방세를 요구했지만, 나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내어준 방이 없다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이내 시동이 걸리던 벤이 거친 시동음을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길가에 박힌 가로수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머금은 나뭇잎이 아침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린다.
그 아래로 사람들이 한둘씩,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없다.
질척하고 어두운 밴에서, 내 봄을 팔아 생긴 돈을 바치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것이 꿈이었다면.
전부 끔찍한 악몽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내 눈을 감는다.
눈을 뜨고 나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빌면서.
나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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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하고 밟히는 브레이크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탓에, 창문 밖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리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현재 사는 빌라에 도착한 듯 보였다.
“내려, 난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하니까.”
다시금 낑낑거리며 차 문을 열고 내리자, 박 실장은 기어를 돌려 거대한 밴을 후진시키며, 골목을 나가더니, 이내 육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나아가버렸다.
“......”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되지만, 나는 빌라로 들어가는 길 대신, 골목을 나가기 시작했다.
저번에 봤던 기억대로라면, 분명 이쪽으로 나아가면 할인 마트가 하나 있었다.
그렇게 걸어서 골목을 나오니, 예상대로 바로 보이는 할인 마트가 막 개점을 한 듯 보였다.
나는 거침없이 마트로 들어서자, 아침이라서 그런지 저번에는 들려오던 최신 노래 메들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인사하는 할아버지를 제치고, 곧바로 냉장고로 다가가 소주 두 병을 골랐다.
“이거하고....XX세 갑이요.”
“네~다해서 만 구천 팔 백 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예.”
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내밀고, 봉투에 담긴 술과 담배를 받아들이고는 마트를 나왔다.
모텔에서 나올 때만 해도, 신선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 느껴졌는데, 어느새 뜨거운 열기가 내 몸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태양이 나를 비추자, 나는 반사적으로 그늘을 찾아 그 아래를 걸었다.
그렇게 걸어, 나는 내 집 내가 사는 방으로 돌아왔다.
언젠가는 떠날 방이지만, 적어도 나를 뉘게 해주는 방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느새 땀에 푹 젖은 후드티를 벗어 던지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상태로 나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마트에서 가져온 봉투를 뒤적거리니, 차갑게 식혀진 소주병이 잡혔다.
소주병을 열고, 잔에 따르려고 했지만, 이 집에는 잔은커녕 종이컵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냥. 병째로 입에 대며 꼴깍꼴깍 미친 듯이 소주를 목 뒤로 넘겼다.
“프하..!”
분명 차가운 술인데, 왜 이렇게 목이 뜨거운 걸까.
나는 주머니에 남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생각했다.
담배 연기를 훅하고 들이켰더니, 머리가 핑하면서 돌았다.
빈 속에 소주를 들이 부었더니, 속은 불편하고 머리는 어지러워따.
하지만 소즈를 마쉬는 꺼슬 멈추찌는 안아따.
나는 개소캐서 변을 들이낀다.
아.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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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맛있네.
나는 편의점에서 산 비싼 보드카를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역시 비싼 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술에 비해, 안주라고 칠 만한 것은 새우 맛 과자뿐이지만, 상관없었다.
그 조그마한 과자에도 굳이 사야 할까? 하며 벌벌거렸지만, 이상하게도 술을 살 때는 과감해져 갔다.
스트레스 풀이라고 할 만한 게, 비싼 술 마시기라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이런 내가 싫어서 피시방에서 게임도 해보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그 무엇 하나 재미있지 않았다.
남자였을 때는, 그렇게 환장하던 게임도, 가끔 치킨을 시켜 먹으며 행복에 차던 감정도, 이미 내 안에서 메말라버렸다.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는 방구석에 박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실 때 집중할 것이라고는, 그저 병에 남은 술을 보고, 다음번에는 얼마나 들이킬까? 하는 생각밖에 안 해도 되니까.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던 나는, 인터넷에서 대충 구한 공기계 휴대폰을 꺼내, 노래를 틀었다.
남자였을 때도 옛날 노래라고 불리던 발라드 노래의 선율이 방을 채운다.
이제는 어느 길가를 걸어도, 이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다.
나만이, 나만이 떠올리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 추억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도 잊혀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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