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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15화 (15/91)

〈 15화 〉 chapter 2: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2)

* * *

4,527만 원.

그것이 내가 3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은 돈이었다.

남자였던 나는, 색기를 부릴 줄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남자들이 지갑을 더 열게 만드는 방법 따위는 더더욱 몰랐다.

그래서 그냥, 내 몸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그들이 내 몸으로 뭔 짓을 하든, 그저 마음을 죽이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렇게 하니까 일단 돈은 벌리기는 했다.

항상 최저 금액에, 일주일에 3~5일 정도만 일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더럽게 안 벌리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가슴도 크고, 사근사근하게 말도 잘 걸며, 요염한 색기를 부리는 여자 대신, 칙칙하고, 반응 없는 나를 고르는 사람 따위는 여자를 사는 주제 돈도 쪼달리는 새끼들뿐이었으니까.

아니면 진성 변태놈 이거나.

나는 지하철의 락커를 잠군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상 주위를 돌려보았다.

내가 계좌라도 만들 수 있다면, 이렇게 마음을 졸여가며 지하철 락커를 쓸 이유 따위는 없었다.

허나, 나는 신분도 없고, 계좌 따위는 당연히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계좌를 빌려? 미친 소리.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사람은 정말 돈이면 뭐든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

항상 마주치는 박 실장도 돈에 미친 사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

그리고, 나 조차도 말이다.

“...시발....기분 좃같네.”

분명 돈 버는 것은 순조롭고, 어떻게든 버텨나가고 있었다.

허나, 점차 갈가리 찢어지고 박살이 나는 정신 상태는 언제나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럴 때 해결법은 별것 없다.

“....술이나 사서 돌아가자.”

거하게 취해서, 쿡쿡 찌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내 마음을 취하게 만들면, 조금 괜찮아졌다.

오늘은 조금 비싼 걸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지하철 출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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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어느새 잠들었던 나를, 시끄러운 티비 소리와 자욱한 담배 냄새에 잠겼던 눈을 뜨게 만들었다.

“아 거 재미없는 것밖에 안 하네...”

내 위에서 신나게 허리를 흔들던 그는 어느새 쇼파에 앉아 담배를 물면서 리모콘으로 채널을 마구잡이로 돌리고 있었다.

“........”

“아, 일어났나?”

내가 몸을 일으키자,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바깥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지, 불빛이라고는 티비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빛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그렇지, 나는 지금 몸을 팔고 있었지.’

막 일어나 정돈되지 않았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하며, 나는 다시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떠올렸다.

나는 돈을 받고 내 몸을 팔았다.

곧, 일어날 일임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내 입 구멍에 뭐라도 쑤셔 넣기 위해서,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서 나는 내 몸을 팔았다.

그 사실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칠 것 같았던 나는, 예상외로 그저, ‘결국 저질러 버렸나.’ 같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나도 무덤덤하고, 아무렇지 않았다.

이 모텔의 안은 마치 꿈속의 풍경처럼 내 오감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분명 시간 동안에는 몇 번을 싸질러도 상관없었다고 했나...?”

“....예....”

베개에 짓눌려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가다듬고 있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남성이 네게 물었다.

나는 저 뜻을 단번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그럼, 좀 더 즐겨볼까?”

어느새 빳빳하게 세운 물건을 나에게 보이며, 그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다음으로 이루어질 일을 모르는 게 비정상이지.

“..........”

나는 그저 말없이, 다시금 침대에 누워 허벅지를 벌렸다.

천장.

모텔방의 천장이 보였다.

그 천장의 무늬는 두 색깔로 이루어진 사각형이, 빈틈없이 채워지며,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빨강.”

초록.

빨강.

나는, 나도 모르게 조용히, 그 천장의 패턴들을 눈으로 쫓아가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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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 잘 있어라.”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하룻밤을 보내던 남성이 모텔방의 문을 닫고 나갔다.

결국,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한 체, 나는 그와 몸을 맞대었다.

거의 잠긴 눈으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일단 날씨 자체가 덥기도 하고, 아침이 될 동안 두 사람이 뒤엉키는 체온은 나를 찝찝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침대에서 나와, 발바닥을 모텔 방바닥에 가져다 대자, 시원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대충 저벅거리며, 모텔에 비치되어있는 자그마한 냉장고를 열어, 생수 한 통을 꺼내 종이컵 같은 곳에다가 따라 마시지도 않고, 그대로 입을 대어 벌컥벌컥하며 물을 마셨다.

아릴듯한 차가움이 목을 타고 위장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서늘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집에서 이런 식으로 물을 마시면,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고는 했었는데.

“...큽!....콜록..!콜록...”

갑작스레 사례가 들린 나는 물을 뱉어내며 연신 헛기침을 콜록거렸다.

그 덕에 지저분해진 방바닥을, 대충 발로 닦아내 봤지만, 전혀 닦아내지지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곳을 청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마시던 물통을 탁자에 올려두고, 샤워실로 향했다.

금방까지 그가 쓰고 있었던 샤워실의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나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걸어가, 샤워실의 수도꼭지를 온수로 맞추어 틀었다.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은, 어젯밤과는 다르게 바로 따뜻한 물이 틀어져 나왔다.

끈적거리는 땀에 젖은 내 몸을, 따뜻한 온수로 씻겨내자, 이윽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아침 시간이였...

평온?

“아....”

이상했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평온하지?

나는 금방까지만 해도....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었는데?

“우웁..! 우웨엑...!”

마비되었던 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으윽...!”

미처 마비되어,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요동치며 물밀 듯 내 마음을 들쑤셨다.

28만 원.

그것이 내 가치.

“더러워.....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나는 미친 듯이 내 양팔을 박박 긁으며 소리쳤다.

역겨워.

성욕이 번들거리는 그 물건이, 내 안으로 들어왔어.

마치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었어.

근데, 나는 그걸 그냥 허락하고, 돈이나 받고 헤벌레 거렸어.

“하아...하아...!”

나는 샤워실 에서 쏟아지는 물을 끄지도 않고, 화장실 문을 박차며 나왔다.

“으윽...! 흐으...”

젖은 발바닥이 미끄러워 휘청거리며 쓰러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 내 옷이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아...하아...쓰읍....하아...”

어느새 방바닥에 방치되어있던 내 후드티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담배를 물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자꾸 부싯돌을 헛돌며, 잘 켜지지 않았다.

간신히 두 손으로 불을 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크게 한 모금을 빨았다.

“하아...아아...”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오늘 새벽 내가 바라보던 무늬들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강....초록.....빨강...초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늬들의 색깔을 중얼거렸다.

그럴수록 나는 점차 모텔의 천장에 빨려 들어간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 곳에는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무늬만이, 나를 반겼다.

그렇게 나는 창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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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을까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한 문장을 본 기억이 났다.

봄을 판다는 것이 매춘을 의미한다는 내용의 글.

여성을 봄에 비유해, 소중한 것을 판다는 뜻이라고.

봄을 팔아버린 여성들은 계절이 바뀌어, 봄이 와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도.

싱그럽게 피어나는 벚꽃도.

한 해를 시작하는 설레는 심정도.

봄을 팔아버린 나는, 다시는 봄빛을 느끼지 못할 것임을 깨달아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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