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12)
* * *
“708호, 거기가 손님이 있는 방이다.”
박 실장은 운전석에 앉은 체, 창문만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는, 나에게 말했다.
이미 어두운 밤 인데도 그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는데, 그 선글라스에 내가 비쳐 보일 정도로 진한 코팅을 해서 밖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싶었다.
“돈은 28만 원. 그게 네가 8시간 동안 뒹굴고 벌 돈이다. 내일 아침 7시까지 여기로 올 테니 타자마자 바로 30%를 내놔.”
“예...예에..”
“그럼.”
딱 자기 할 말만을 끝내고 창문을 닫은 박 실장이 자동차 페달을 밟자,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어두운 밤에 어두운 차가 나아가니, 벌써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
지금 내 눈앞에는 모텔이 있다.
상당히 높은 층의 모텔의 맨 위에는 구닥다리 모텔 특유의 이상한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했다.
나는 오늘. 이 곳에서 매춘을 한다.
강간이든 협박이든 완전히 숫처녀는 아닐지 몰라도, 낯선 사람에게 몸을 판다는 행위는 누구나 거부감이 강하기 마련이다.
“우...우웁..!”
떨리던 가슴이 이윽고 무너지더니,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대놓고 모텔 입구에서 구토를 해봤자 성가신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모텔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황급히 달려가 건물 벽에 기대며 시큼한 위액을 내뱉었다.
먹은 것이 없어 담즙만 나온 것인지 쓴맛이 혀 위로 퍼졌다.
“후...진정하자, 진정...”
대충 팔로 입가를 슥슥 닦은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금방 구토를 해서 그런지 담배 연기가 목을 지나가자 괜스레 따끔거렸다.
나는 팔을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이 없어 시간을 알 수 없었기에, 다X소에서 대충 저렴한 걸로 산 손목시계가 현재 시간을 알려주었다.
오후 10시 53분.
내 시간을 주고 파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던 나는, 피던 담배를 필터까지 피우고, 대충 집어던졌다.
모텔의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입구에 들어섰다.
이 모텔은 2층이 프론트였기 때문에, 괜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민증도 없는 내가 프론트에서 걸리기라도 하면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자, 마침 1층에 있었는지 바로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7층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우웅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물 외관과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 내부는 더럽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귀에서는 자꾸 윙 소리가 맴돌았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우욱...!”
마비되었던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지금, 나는 남자에게 내 몸을 팔려고 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야.
말도 안 돼.
이딴 짓은 당장이라도 그만둬야 했다.
나는 다시금 버튼을 눌러 7층으로 가던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1층을 눌렀다.
멈칫하던 엘리베이터는 다시금 아래로 내려가며, 문을 열었다.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모텔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하아...하아...”
나는 거친 심호흡을 정돈하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모텔의 바깥.
어둡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손가락으로 샐 만큼 적은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본다.
사람들은 지나다니지 않고, 쓰레기가 구석에 처박혀 있다.
길가에는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고, 건너편의 골목길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봉지가 터졌는지, 김칫국물 같은 것들이 줄줄 새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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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로?
갈 곳은 있나?
먹을 것은? 돈은?
라면상자나 주워서 이불로 삼고, 이딴 길바닥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아...아아...”
맞다.
나는 그런 삶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나 스스로 이곳에 왔다.
마지막까지 몰린 절벽의 아래에서, 간신히 손을 절벽 위에 걸친 체, 어떻게든 버둥거리고 있었다.
지금 도망가버린다면, 이 손을 놓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남은 것은.
죽음.
길바닥에서 싸늘하게 죽든, 경찰에게 잡혀 감방에서 내 삶을 비관한 체 변기에 얼굴을 박든.
알지도 못하는 해외로 추방되어 범죄의 표적이 되든.
“하..하아...”
뜨겁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고동친다.
엄청나게 후들거리던 다리의 떨림이 멈춘다.
나는 이내 뒷걸음을 치다, 몸을 돌려 다시금 천천히 모텔로 발을 옮겼다.
살기 위해서는, 제정신이 아니어야만 했다.
금방 내가 나와서 그런지 아까와 마찬가지로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버튼을 누른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내 귀를 맴돌았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 오늘따라 내 전신을 무겁게 눌려왔다.
띵 하며 7층에 도착했다는 신호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천천히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701호, 702호, 703호.
내 앞에 무수한 번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708호.
가장 끝자리에 있는, 내 손님이 있는 방.
나는 발을 들어, 한 발, 한 발 708호의 앞까지 발을 딛었다.
어느새 708호 앞까지 온 나는, 다시금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59분.
약속된 시간까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었다.
똑똑하고 노크를 하자,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터벅터벅하던 발소리가 커지더니, 철컥하고 모텔의 문이 열렸다.
“들어와.”
출입문 손잡이를 잡은 남자는 목욕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새빨간 파우치 백을 손으로 꽉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모텔 특유의 싸구려 방향제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엉켜 이상한 냄새가 방 안에서 풍겨왔다.
그 남자는 내가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하고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갔다.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후...늦었네? 11시까지라고는 했지만, 너무 칼같이 온 거 아냐? 더 늦었으면 그쪽 실장에게 따지려고 했어.”
“.....죄송합니다.”
방에 들어선 남자가 모텔에 비치된 쇼파에 앉아, 담배를 물면서 나에게 불평했다.
그의 인상은 아직 중년은 아니지만, 점차 깊어져 가는 팔자 주름과 넓은 이마를 보니, 아마 30대 후반처럼 보였다.
눈매는 서글서글하고 앉아있자 불룩한 배가 툭 하고 튀어나와 있었다.
전형적인 30대 후반 회사원.
그러고 보니 오늘은 금요일.
아마 회사를 마치고 나를 부른 것 같았다.
“.....그렇게 멀뚱멀뚱하게 서 있을 거야?”
피우던 담배를 다 피우지도 않고, 재떨이에 비비며 불을 끈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
“.....선금 28만 원입니다.”
“.......저 테이블 위에 올려뒀어.”
나는 하린이 말한 대로 먼저 선금을 요구하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손을 들어 앞쪽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5만 원짜리와 만 원짜리 현금이 한데 뭉쳐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현금다발을 주워 금액을 확인했다.
5만 원짜리 5장. 만 원짜리 3장.
틀림없이 정확한 액수였다.
“일단 이 후드는 좀 벗지 그래?”
“힉..!”
그렇게 내 눈앞의 돈을 세는 사이, 그 남자는 눈치도 못 채게 슬금슬금 걸어와, 내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소름이 돋으며 나도 모르게 새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반응 귀여운데? 이 일 한 지 얼마 안 됐어?”
남자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씨...씻고 오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현금과 파우치 백을 손에 쥐고, 남자에게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시발...”
철컥하고 화장실 문이 잠기는 것을 확인한 나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그마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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