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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12화 (12/91)

〈 12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11)

* * *

“손님이다.”

내가 이 방에 살게된 지 약 2일이 지났을 때, 박 실장이 찾아왔다.

그도 내가 쓰는 것과 같은 키 카드를 사용하는지,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열렸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중요했지만, 그것보다 이어지는 박 실장의 말에 내 가슴이 요동쳤다.

“손...님이요?”

“오늘 밤 11시, 장소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XX모텔, 거기 있는 손님이 널 지명했다.”

시계 또한 없는 방이었기에, 현재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으로 대충 시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빛이라고는 밝게 떠오르는 둥근 달이 내뿜는 달빛과, 껌뻑거리는 낡은 가로등의 불빛만이 비춰오는걸 보면, 11시라는 시간이 곧 이라는 것을.

“지..지지...진짜로 가나요...?”

“그럼 가짜로 가냐? 난 차에 시동 걸고 있을 테니까, 준비해서 나와.”

걱정과 상상만으로 생각하던 일이 막상 닥치고 나니, 나는 제대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박 실장은 그런 나를 내팽개쳐 두고,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쾅! 하고 닫치는 문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도어락이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내 귀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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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조차 없어 슬리퍼를 끌고 빌라 바깥으로 나오자, 박 실장은 이미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빌라 입구 바로 앞까지 벤을 끌고 서 있었다.

커다란 크기의 칠흑 같은 자동차를 바라보자, 예전에 보던 범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섬뜩해졌다.

하지만 또 미적거리다가는 박 실장이 버럭 화를 낼 것 같았던 나는 꽤 묵직해서 열기 힘든 차 문을 힘겹게 열고, 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박 실장은 전혀 사용하지 않을 듯한 여성용 향수 냄새가 훅하고 코 끝에 끼쳤다.

“어머? 처음 보는 애네? 박 실장. 이 애는 누구야?”

코를 찡그리며 돌렸던 고개를 다시 차로 돌리자, 그 안에는 처음 보는 여성이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밝은 갈색으로 물들여진 머리카락이 풍만한 웨이브를 타고 그녀의 등 아래까지 내려왔다.

귀에는 반짝거리는 보석과 금으로 칠해진 귀걸이를 차고, 긴 속눈썹이 눈웃음을 지었다.

분홍빛으로 물든 뺨과 빨갛게 칠해진 입술이 마치 잘 익은 앵두 같았다.

결국 그동안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지 않은 나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그녀의 복장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새로 일하게 된 ‘미영’이다.”

“그래? 반가워~난 하린 이야~ 근데 박 실장, 얘 성인 맞아? 생긴 건 딱 고등학생 같은데?”

“성인 맞다.....야, 얼른 들어와서 차 문이나 닫아.”

“아...!ㄴ...네에...”

박 실장이 나에게 말하고 나서야, 내가 차 문을 열어둔 채로, 차 바깥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차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그녀와 최대한 거리를 벌린 뒤, 자리에 앉았다.

“이그....박 실장! 애한테 왜 이렇게 까탈스럽게 굴어? 무서워하잖아!”

“조용히 좀 해라.”

“에휴.....저기, 괜찮아?”

“ㄴ..네에...괜찮아요...”

하린이라고 불리던 여자는 박 실장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내가 최대한 거리를 벌렸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충 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 인상의 소유자인 박 실장에게 하는 태도를 보아, 그와 꽤 길게 안면을 보인 것 같았다.

“너 이 일 처음 하는 거야?”

“네에..”

“그래? 괜찮아, 까짓거 남자 새끼들 좆 빨아주고 그놈들 돈이나 빨아먹으면 되는걸?”

그녀는 머리를 넘기며 밝게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입은 가슴이 깊게 패인 옷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은색 십자가 목걸이가 보였다.

십자가를 친 사람치고는 말하는 게 참 그렇기는 했지만,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너 파우치 백은 없어?”

“파...뭐요?”

그러던 하린이 나를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는 얼굴을 지으며, 이내 나에게서 무언가를 찾았다.

하지만 파우치 백 이라는 걸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던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럼 너 정말 맨몸으로 가는 거야? 콘돔은?”

“아...그..그...게...못...샀어요....”

그녀가 직설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피임 도구를 묻자, 나는 금세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내가 창녀 짓을 한다고 해도,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하는 나는 콘돔을 챙긴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원래 남자였다.

생각해보니 만약 손님을 만나러 가서 하게 될 때, 콘돔이 없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편의점까지 가서 콘돔을 사게 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내 머릿속은 불안감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편의점 좀 들렀다 가자고 해야하나...?’

“에고.....자! 일단 이거 챙겨.”

그렇게 그녀의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 하고 있자, 하린이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빨간색의 작은 지퍼 가방은 꽤 묵직하게 차 있었다.

“아무리 모텔에서 콘돔을 공짜로 준다고는 해도, 쓰레기 같은 품질이니까, 따로 사서 가져가는 게 좋아, 여기 여유분 콘돔하고, 우리가 하는 일이 성병 같은 것도 조심해야 하니 여성 청결제랑 애액이 잘 안 나오면 아프니까 젤도 넣어줬고, 그리고....”

나에게 가방을 건네던 하린은 지퍼를 열며, 무엇이 들어있는지 나에게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콘돔부터 여러 가지 청결제, 간단한 여성 화장품 등등.

처음 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손님들 중 어떤 개 쓰레기 새끼는 후불로 준다고 해놓고 떡만 치고 나서 도망가는 일도 있으니까, 무조건 선급으로 받고, 가끔 노콘으로 하자고 떼쓰는 새끼들은 그냥 그 씹새끼 불알이나 차고 나와 버려.”

“네..네에에...”

하린의 말은 엄청나게 빠른데다가 듣기 거북할 정도의 수위를 달렸기 때문에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직시하지 못한 체, 그저 고개를 떨구고는 힘없게 대답했다.

“하린, 다 왔다. 내려.”

“뭐? 벌써?”

“벌써는 무슨, 한참을 달렸다.”

언제까지 도로 위를 달릴 것 같았던 벤이 어떤 건물 앞에서 멈추더니, 박 실장이 고개를 돌려 하린에게 말했다.

“음....아무튼 난 가볼게.....맞다, 그리고.”

“네?”

안전벨트를 풀어 헤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 문을 열다가, 문뜩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금 몸을 돌려 나에게 다가왔다.

“이 일....오래 하지 않는 편이 좋아. 나야 뭐, 남자 새끼들 자지 좀 빨아주고 박히는 게 그럭저럭 돈도 벌리고 할만해서 하고 있지만, 너는 아니잖아?”

“......”

“뭐, 내가 너무 주제넘게 말한 걸지도 모르지만, 이왕이면 딴 일 찾아봐, 이 일은 하다 보면 온갖 인간이 덜된 새끼들 만나는 게 일상이거든,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 쿡쿡....”

그런 자신의 처지가 우스운지, 그녀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가렸다.

“그럼, 다음에 봐~”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그녀가 차 밖으로 나섰다.

연분홍색의 하이힐을 신어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던 그녀는, 어느새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사라져 버렸다.

‘...이 일을 오래 하지 말라. 라....그것 참 웃긴 말이네.’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 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피식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누가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가.

다시금 시동이 걸린 벤이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창문 밖으로 그녀가 들어가 버린 건물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건물은 내 시야 밖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몸을 뒤로 눕힌 체, 그녀가 쥐여준 빨간색의 작은 클러치 백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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