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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11화 (11/91)

〈 11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10)

* * *

도어락에 카드를 가져다 대자, 이내 맑은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금방의 방과 같은 크기일 테지만, 쓰레기는 고사하고 가구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에 더욱 넓어 보였다.

휑한 빈방 구석,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다리를 펴자, 피시방의 좁은 자리와는 다르게 쭉 하고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집.

나는 당분간 내 몸을 뉠 집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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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이걸로 몇 대째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목이 따끔거리는 것과, 방바닥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들로 봐서는 상당히 많이 피워댄 것 같았다.

창문도 열지 않아서인지 온 방에 담배 냄새가 넓게 퍼졌다.

나는 피던 담배를 대충 담뱃갑에 비벼끈 뒤 텅 빈 담뱃갑을 집어던졌다.

턱 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나는 후드티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은 지폐를 펴내며 액수를 새었다.

“....25만 원.”

꼬깃꼬깃한 5만 원짜리 지폐가 내 손에 들어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지폐를 멍하니 바라보니, 어느새 배가 고파져 왔다.

돈을 아낀다고 밥도 잘 먹지를 않았고, 남은 돈도 목욕탕에서 목욕하기 위해 대부분 써버렸기에, 나는 상당히 굶은 상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구라고는 기본으로 달린 작은 냉장고, 옵션으로 부착된 벽 에어컨.

화장실에는 샴푸나 수건은 고사하고 휴지조차 없었다.

목이 타서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역시나 텅 비어있었다.

이 집은 말 그대로 비어있었다.

당분간 이 집에서 지내려면 일단 기본적인 것을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도어락 카드와 5만 원짜리 지폐를 지갑에 넣고, 집을 나섰다.

탕탕거리는 요란한 슬리퍼 소리가 빌라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

각각의 문 앞에는 떼어내지 않은 전단지가 가득한 걸로 봐서, 이 빌라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했다.

바깥은 이미 해가 어둑어둑하게 저물어, 밤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빌라 밖을 나온 나였지만, 여기까지 박 실장의 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근처 지리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일단 거리로 나가기 위해 탁 트인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건너지 않아, 사거리를 지나자,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함께, 여러 편의성 가게가 늘어져 있었다.

나는 2번째 건물의 대형마트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 할인 마트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 바깥의 공기와 다른,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덮었다.

그제야 내 몸이 땀범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옷을 살 때는 대충 아무거나 샀지만, 곧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몸매가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할인 마트는 다X소만큼 다양한 것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나는 기타 물품 판매대에 들어서서, 가장 저렴한 비누와 칫솔, 치약, 샴푸나 수건 등 잡다한 것을 골라왔다.

두루마리 휴지도 필요하기는 했지만, 죄다 대량으로 팔고 있어서, 들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곽 휴지 두 개를 골랐다.

“다 합쳐서 4만 2천 7백 원입니다.”

계산대에 다가가니, 한창 벽에 걸린 낡은 티비로 야구를 보던 할아버지가 나를 반겼다.

“.....xx세 갑이요.”

보통 한 갑씩 사고는 했지만, 이왕 나온 김에 좀 사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던 나는, 담배도 같이 계산을 요구했다.

“저...손님?”

“..네?”

그러자 할아버지는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지? 민증 달라는 건가?

민증이 없는 나이기에 담배를 사지 못하나 싶어 거의 포기한 체 나는 그 늙은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xx가 지금 다 나가서, 없는데....다른 것도 괜찮으신가요?”

“아...네...뭐....그럼 에X체인지 주세요.”

그는 내 민증을 요구한 것이 아닌, 마침 내가 원하던 담배가 다 떨어져서 곤란하다는 것에 나는 내심 안도감을 내며 다른 담배를 불렀다.

“봉투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냥 종량제 봉투 큰 걸로 담아 주세요.”

“네~”

그렇게 계산한 뒤, 봉투를 집자, 상당히 묵직했다.

남자였다면 이런 건 한 손으로도 쉽게 들어 올렸겠지만, 나는 결국 두 팔로 들어 올려 할인 마트를 나왔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킁..킁킁...”

코끝을 맴도는 맛있는 냄새가 내 굶주린 배를 자극했다.

“....배고프네...”

그대로 돌아가도 좋지만, 이왕 나온 김에 배고픈 배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위장을 자극하던 냄새를 눈으로 쫓았다.

그 정체는 바로 국밥집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에 홀린 듯, 국밥집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몇 분이세요?”

“저 혼자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머리를 뽀글뽀글하게 볶은 아주머니가 나를 반기며 자리로 안내했다.

“주문은 뭐로 하실래요?”

“돼지 하나 주세요.”

“네~ 이모! 여기 돼지 하나!”

내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가 돌아가자, 나는 기본으로 지급된 물수건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나이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나이가 찬 중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양복을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뚝배기를 들어 마시는 사람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맞은 편 아저씨와 크게 웃고 떠드는 대머리 아저씨.

아까 전 마트의 할아버지가 보던 야구 채널을 보며 욕을 한 바가지는 부어대는 아저씨 등.

“돼지 나왔습니다~”

그렇게 대충 둘러보며, 먼저 나온 깍두기를 아작거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내는 돼지국밥이 나왔다.

“앗뜨...!”

먼저 밥을 먹으려다가 뜨거운 스뎅 그릇에 손을 데고 말았다.

이런 뜨거운 그릇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옮기는 아주머니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해졌거나.

간신히 밥뚜껑을 열고, 그 사이 숟가락으로 뚝배기를 휘적거리며 국물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뜨겁지만 따뜻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한 입, 두 입.

점점 숟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도, 흰 쌀밥도 입속에 욱여넣었다.

어느새 내 앞에는 텅 빈 그릇들만이 남아 있었다.

입이 더 이상 뭐든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배가 불렀다.

잠시간의 여운을 느끼던 나는, 주머니에서 아까 계산하고 남은 거스름 중, 만 원짜리를 하나 꺼내, 국밥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바깥은 이미, 어둠으로 깜깜해져서 도로 위의 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천천히 걸었다.

손에 들린 봉투가 무거웠다.

오른손, 왼손으로 번갈아서 들거나, 양팔로 양 손잡이를 잡으면서 걸었다.

어느새 내가 살 방이 있는 빌라로 들어서는 골목길이 보였다.

골목길은 금방 걸어온 거리보다 한층 더 어두웠다.

불빛이라고는 스무 걸음에 하나씩 있는 가로등의 불빛만이 유일해 보였다.

그렇게 걸어가던 나는, 네 번째 가로등의 아래에 들고 있던 봉투를 잠시 내려놓았다.

가로등은 오래돼서 그런 건 지 켜졌다 꺼졌다 깜빡거렸다.

손바닥을 바라보니 비닐 손잡이에 끌린 자국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대 꺼내,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내 목을 타고, 폐를 지나, 다시 밖으로 나왔다.

“....흐윽...”

연기가 매워서일까, 내 손등에 눈물이 한 방울 툭 하고 떨어졌다.

정말 죽고 싶었다.

억지로 당하고, 나 스스로 가랑이를 벌리고.

치욕스럽고, 아팠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을 뉠 공간도, 따뜻한 밥도.

하다못해 걸치고 있는 옷도.

내 알몸을 드러내고, 추잡하게 가랑이를 벌리고, 그들의 욕망을 받아드려야만.

지붕 아래에서 잠이 들 수 있고, 허기진 배도 채울 수 있었다.

피시방에서 들킬까 봐 새벽 마다 눈치를 보며 쪽잠을 자지 않아도.

배가 고파도 돈을 아끼기 위해 한참 굶고는 제일 저렴한 라면을 하나 시켜 먹지 않아도.

거리를 나돌며 오늘 밤, 잠들 곳을 찾지 않아도.

나는 살 수 있었다.

아.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피던 담배가 어느새 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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