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8)
* * *
“내려.”
침묵이 이어지던 벤이 어느새 멈추고, 시동을 끄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차에 내리자 보이는 것은, 회색으로 페인트칠 되어있는 작은 빌라.
4층까지 지어져 있는 빌라로 앞서 걸어가는 남자를 따라, 나는 천천히 걸어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올라가던 남자는 301호의 문 앞에서 도어락을 눌렀다.
문이 벌컥 열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남자.
이렇게 되면 나는 이 남자와 완벽하게 둘이서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이 자꾸만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한다고 외치는 듯 느껴졌다.
“빨리 들어와라.”
“히..익....!”
하지만 그런 나를 귀찮다는 듯이 내 팔을 잡아끌자, 나는 마땅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끌려 들어오게 되었다.
이 얇은 팔은 성인 남성의 두툼한 팔에는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방의 안은 맥주 캔과 쓰레기봉투가 나뒹굴었고, 마땅한 가구라고 하기에는 작은 탁자와 작은 냉장고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거실의 정중앙에 있는 고급스러워 보인 쇼파가 이 방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를 끌던 손을 놓은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가 쇼파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쇼파의 근처 바닥에는 대충 비벼끈 꽁초와 담뱃갑 또한 널브러져 있었다.
“나이.”
“에?”
“몇 살이냐고.”
“어....저...스물 여...아니 스물 두 살이요...”
갑자기 질문하는 남성의 말에 본능적으로 남자였을 시절의 나이를 이야기하려다가, 지금 상태를 생각해 적절하게 줄여서 대답했다.
“이름.”
“이...름...”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내 이름은 여태까지 김상국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지만, 지금 이 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말하기 싫으면 대충 아무 가명이나 대. 프로필을 만들 때 들어갈 이름이니까.”
“어....그..그럼 미영. 김미영이요.”
아무 이름이라도 대라는 남자의 말에, 나는 가끔 어떻게 알아냈을지 모를 내 번호로 오는 스팸메일의 단골, 김미영 팀장의 이름을 대었다.
이런 곳에 쓰이다니 이상하게 느낄지는 몰라도, 어차피 흔하디흔한 이름이니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박 실장이라고 불러라.”
“예..예..”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고, 손님이 너를 지목하면, 내가 픽업해서 이어 줄 거다. 그리고 명심해. 네가 남자랑 뒹굴고 번 모든 돈의 30%는 내가 가져간다. 불만 있으면 딴 데 찾아보던가.”
“ㅈ...저...그...한번 하는데 얼마 정도죠..?”
“대부분 긴 밤으로 사니까 21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일 거다. 인기가 많거나 지정하는 손님이 많으면 가격은 오르고, 아니면 그냥 최저가로 뒹구는 거지.”
“예...”
40만 원.
내가 편의점에서 대략 2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딱 한 번 만에 벌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할 거야?”
“예?”
“이 일 할 거냐고.”
자신을 박 실장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어느새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짓이기며 나에게 물었다.
“......”
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추잡하고 더러운 일을, 꼭 해야만 했다.
하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였던 내가, 남자에게 가랑이를 벌린다.
상상만 해도 구토가 쏠리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
결국, 끝까지 입은 벌리지 못한 체,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좋아, 따라와라.”
내 대답을 알아챈 박 실장은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 건너편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박 실장의 뒤를 따라 활짝 열려있는 방으로 향했다.
안방도 마찬가지로 가구는 별로 없었지만, 거실과는 다르게 아주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침대 또한 특색은 없었지만, 큰 먼지도 없이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특이한 것은 벽의 한구석에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 같은 것을 볼 때 사용하는 흰 커튼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저기 앞에 서라.”
그렇게 잠시 멍하니 방을 구경하고 있던 나에게, 박 실장이 말했다.
“저...저기 앞이요?”
“그래.”
그는 나에게 흰 커튼의 앞에 설 것을 요구했다.
그 말에 나는 슬금슬금 걸어가,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멀뚱멀뚱 섰다.
“그대로 옷을 벗어.”
“ㅇ.....예??”
갑자기 옷을 벗으라니.
그게 뭔 소리야?
“프로필로 사용할 사진이 필요하니까 빨리 벗어라.”
“구....굳이 옷을 벗...어야 하나...요?”
아무리 원래 남자였다 하더라도 여자가 된 지금은 남성의 앞에서 옷 따위는 결코 벗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후드티 안에는 속옷조차 걸치지 않았기에, 옷을 벗는다는 것은 알몸을 보이는 것 그 자체였다.
“일한다며.
더 이상 시간 끄는 것도 귀찮으니까, 자꾸 머뭇거리면 그냥 없는 이야기 셈 치고 그냥 그만둔다.”
“아..아뇨! 벗을게요! 벗으면 되잖아요!”
자꾸 말을 웅얼거리는 내가 짜증이 나는지,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쓸며 말했다.
‘시발...개 시발....!’
속으로 온갖 쌍욕을 내뱉으며, 나는 천천히 옷을 벗었다.
후드티를 벗자,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봉긋한 가슴이 찬 공기를 맞았다.
“.....싫은 척하더니 이거 완전 변태년 이었네. 설마 아래도 안 입었을 줄이야.”
‘지랄 하지 마 시발...’
결국, 천 한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알몸을 오늘 처음 본 남자에게 전부 들어내고 말았다.
“.....속옷 살 돈이 없어서...”
“뭐, 돈이 없으니 이딴 짓이나 하지. 뭐, 아주 가끔 그냥 떡을 치는 것에 미친년이 올 때가 있기는 하지만, 넌 아닌 것 같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박 실장은 휴대폰을 꺼내서, 내 알몸을 연신 찍어대기 시작했다.
카메라 셔터가 울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고, 나는 밀려오는 수치감에 온몸이 잠겨 익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입어도 된다.”
박 실장은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었는지, 이내 휴대폰을 내리자, 나는 아주 빠르게 다시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었다.
“그럼 이제 네가 살고 있는 집 주소나 말해봐.”
“주...주소요?”
“손님한테 연락이 오면, 내가 픽업해야 하니까, 얼른 말해. 아니면 처음 봤던 그 지하철 입구면 되나? 아무튼, 오늘 할 일은 없으니 얼른 주소나 말하고 가라.”
대충 손을 휘적거리며 다시금 담배를 입에 문 박 실장이 방문을 나섰다.
“어...언제부터 일을.....할 수 있죠?”
“아마 운 좋으면 내일, 아니면 며칠은 걸리겠지.”
“아...안되는데...”
오늘 박 실장을 만나기 위해서 남은 돈까지 탈탈 털었는데, 이대로 돌아가 봤자 피시방에서 자리조차 구하지 못한다.
“....왜? 돈이 급하나?”
“.....네.”
내 질문에 갑자기 몸을 틀더니, 나에게 묻는 박 실장.
그런 그의 말에 왠지 불길함이 서려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애초에 지낼 곳은 있나?”
“....조금 일이 있어서 집 자체를 구하지를 못하는 터라...”
“그럼 지금까지 어디서 지냈지?”
“그...피시방에서...”
“흠...”
어느새 박 실장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순순히 대답하고 말았다.
내 대답을 들은 박 실장은 이내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 빌라에는 나 말고 딱히 사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방 몇 개를 가지고 있기는 한데....일단 그곳에서 지내지? 그쪽이 내가 손님한테 보낼 때 편해서 나쁘지는 않고....월세는 좀 싸게 받도록 하지.”
“저...정말입니까?”
작은 빌라에다가, 박 실장이 빌려준다는 말이 미심쩍기는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더 이상 편히 눕지도 못하는 피시방 의자에서 씻지 못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쪽잠을 자지 않아도 될지 몰랐다.
“뭐 가능하기는 하지.”
“부...부탁 드리겠습니다!”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만, 이 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호의에 나는 내 마음속의 박 실장을 꽤나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인식했다.
“뭐...다 좋다 이거야.......그런데 말이야.”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그냥 주는 호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해주기에는....내가 물장사를 하지만 일단 장사를 하는 사람이거든. 손익계산이 뚜렷한 사람이야.”
“네?”
“일단....그 옷부터 다시 벗어볼까?”
그가 씨익 웃는다.
내가 그 미소의 의미를 알기까지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