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7)
* * *
카드가 정지된 지 3일이 지났다.
“.....하...”
피시방의 의자에 앉아, 씻지를 못해서 엉겨 붙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현재 남은 돈은 약 1만 2천 원.
이 돈이 떨어지고 나면, 나는 길바닥에 나 앉아야 했다.
“어쩌지...어쩌지...”
곧 돈이 떨어지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진다.
차리리 노숙자가 돼서, 무료 급식소라도 전진해야 할까.
그러다가 결국 죽는 걸까.
아르바이트는커녕, 막노동조차 불가능한 나는, 더 이상 돈을 벌 방법이 없었다.
....단 한 가지 빼고.
나는 시선을 어떻게든 돌렸던 모니터에 다시금 시야를 돌렸다.
[여성이라면 누구든지 가능. 월 수입 500만 원 이상 보장!]
예전의 나였다면 1의 관심도 가지지 않을 수상하기 짝에 없는 광고를 두고, 나는 미친 듯이 고민하고 있었다.
성매매.
말 그대로 돈을 받고 몸을 대주는 것.
원래 여자였던 사람도 거부감을 느끼는 데, 남자였던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끔찍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내 상황은 그야말로 절벽의 끝으로 몰린 상황.
이대로는 그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돈.
돈이 필요했다.
돈이 있다면 신분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생길지도 몰랐다.
“...시발...시발 시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광고에 적힌 이메일로 메일을 보내고 말았다.
보내버렸다.
그리고 얼마나 있었을까.
흡연실에서 담배를 태우고 나오자, 내 메일함에 한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휴대폰을 쓰지 못했던 나였기에, 문자가 아닌 메일을 보냈지만. 약 5분도 되지 않아서 바로 답장이 왔다.
[오늘 저녁 7시에 XX역 앞에 있는 번호판 XXXXXX이 달린 차량에 타주시죠.]
“...후우...”
현재 시간은 3시 16분.
XX역이라면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일단 나가자.”
아무리 개떡 같은 일이라 해도, 며칠간 씻지 않아 기름기가 흐르는 머리칼. 때가 탄 피부, 음식물과 담배 냄새가 배여 역겨운 냄새를 내뿜는 옷을 입고는 갈 수 없었다.
피시방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나는 그곳을 나섰다.
피시방은 4층이었고, 지하에는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
여성이 되고 나서 씻은 적이라고는 그 모텔에서 한 번밖에 없었기에, 목욕탕을 가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성, 그러니 여탕에 들어가야만 했다.
“제발....사람이 별로 없기를...”
엘리베이터에 타서,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리 내가 지금 여자라고 해도, 여탕에 들어가는 것이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남자 때야 여탕에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고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농담 같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목욕탕의 카운터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성인 한 명이요.”
“네~ 성인 6,000원입니다.”
“그...그리고 칫솔이랑 샴푸랑 바디워시도 하나씩 주세요.”
“네~다 합쳐서 8,000원입니다.”
“여..여기.”
“네~여기 열쇠하고 수건, 그리고 칫솔, 샴푸, 바디워시 입니다.”
현금을 건네자, 거스름과 여러 가지를 챙겨주는 아주머니.
그나저나 여탕은 수건을 따로 받는건가?
남탕에 갈 때는 언제나 수건이 넉넉히 구비되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고 보니 여성의 수건 회수율은 매우 낮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여탕에 들어서자, 다행히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사람의 인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옷을 벗어, 대충 캐비닛에 넣으려고 하다가, 이내 주섬주섬 챙겨서 탕으로 들어섰다.
탕도 마찬가지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있는 사람이라고는 뜨거워 보이는 열탕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할머니 한 분이 눈을 감고 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을 뿐.
나는 챙겨온 옷을 목욕탕의 바가지에 담아, 대충 숨겨두었다.
샤워기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에서 물을 틀어, 따뜻한 온수를 온몸으로 맞았다.
긴장되던 근육이 이완되면서, 몸이 나른해져 왔다.
카운터에서 산 일회용 샴푸를 반으로 나눠, 머리를 감았다.
항상 짧은 머리였던 내가 긴 머리카락을 감으려고 하니, 꽤 힘들었다.
거품이 머리카락 전체로 잘 퍼져나가질 않아서, 끊임없이 머리카락을 비벼줘야 했다.
어떻게든 거품을 낸 머리카락을 씻어내자, 이내 진이 다 빠져버렸다.
칫솔로 이빨을 닦고, 나는 숨겨두었던 옷이 담긴 바가지를 들고 왔다.
구비되어 있는 비누를 써서, 물에 젖은 옷에 비누칠을 하며 옷을 빨았다.
시커먼 땟 국물이 나오면서 옷에 배인 냄새와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가기 시작했다.
다 빨아낸 옷의 물기를 최대한 짜내고, 다시금 바가지에 담아 찜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훅하고 느껴지는 열기에 나는 순간 숨을 참았다.
이곳에도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안심하며 뜨거운 바닥에 옷들을 펼쳤다.
이 정도 열기면 금방 마를 것 같았다.
옷들을 놔둔 나는 찜질방을 나와, 탕 안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이 주는 안정감과 포근함에, 나는 전신의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욕탕에 담긴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훌쩍...”
괜스레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집에 가고 싶어...”
언제나 나를 챙겨주시는 어머니.
무뚝뚝하지만 항상 나를 생각해주시는 아버지.
그리고 나.
잔잔하지만 평화로운 우리 집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언젠가, 남자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머니께 집을 비워서 죄송하다고 말해야지.
알바 열심히 하고, 자격증 공부도 해서 빨리 취직해야지.
그래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야지.
욕탕의 끝에서 팔을 베고 엎드린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이내 잠이 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녁의 지하철역에는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지하철의 입구에서는 마치 사람이 뿜어져 나오는 듯,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앞에서 입구 벽에 기대어 자꾸만 떨리는 전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곧, 그 사람이 말한 7시가 되어 갔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내 몸은 더욱 세차게 떨렸다.
긴장과 두려움이 한데 섞여, 점차 서 있기도 힘들어질 시점.
내 눈에 한 차량이 보였다.
길의 건너편의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칠흑같이 어두운색의 밴.
나는 본능적으로 그 밴이 그 사람이 말한 차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번호판을 확인해보자, 그 메일에 적힌 번호판이 맞았다.
나는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그 벤을 향해 걸어갔다.
점차 그 검은색 밴에게 다가갈수록,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차량의 앞까지 다가가자. 한 남성이 밴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타고 온 차와 같은 검은색 양복과 진하게 코팅된 선글라스를 낀 그 남성은 손에 든 담배를 다 피웠는지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비고 있었다.
“....저기..요...?”
꼴깍하고 침을 삼킨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Rg783?”
그런 나를 눈치챈 그 남성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흘깃 나를 흘겨보더니 내 이메일에 달린 닉네임을 불렀다.
짙은 눈썹과 뺨에 그어진 흉터 자국이 그를 더욱 험상궂은 표정으로 만들어 주었다.
“예..? 아 예...”
“...차에 타라.”
그는 딱 한마디 하고는, 차 문을 열어 운전석에 들어갔다.
“.....후..”
그를 따라서 차 문의 손잡이를 잡았던 나는, 순간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이 차에 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실 이 사람 장기 매매범 아니야?
아니면 중국에다가 날 팔면 어쩌지?
이 차를 타도 되는 걸까?
“뭐해? 안 탈 거야?”
막상 차에 타려고 하니, 금방까지 느끼던 공포감이 한층 거대해져, 지독한 망상을 하며 문 앞에서 꾸물거리자, 그 남성이 차의 창문을 내리며 고개를 불쑥 내밀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아뇨! 지금 타요...”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자리에 들어섰다.
벤의 내부는 겉에서 보던 크기와 비슷하게, 대충 7명이 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남자는 시동을 걸고는 바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친다.
식은땀이 계속 삐질 거리며 이마를 적셨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주워담을 수 없다.
그렇게 나와 남자를 태운 벤은 정처 없이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