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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7화 (7/91)

〈 7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6)

* * *

어릴 적 가족들과 모여서 텔레비전을 봤었다.

아버지는 야구 채널, 나는 만화영화를 틀어주던 키즈 채널을 보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강력한 압박에 사이좋게 동물들의 다큐멘터리 채널을 틀었을 때.

그곳에서는 해마에 대해 나오고 있었다.

해마는 특이하게 남자가 알을 품어서 새끼를 낳는다.

어렸던 나는 그저 그렇구나 하는 마음으로만 바라보았다.

남자가 여자처럼 아이를 낳다니, 해마라는 생물은 특이하다.

설마 내가 해마처럼 여자가 될 줄은, 그때의 나는 꿈도 꾸지 못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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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반짝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기지개를 폈다.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있던 몸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곧게 펴진다.

게이밍 전용 의자는 푹신했지만, 역시나 의자는 의자, 잘만한 공간이 되질 못 했다.

피시방 노숙 3일째.

갈 곳이 없던 나는 그나마 갈 수 있는 피시방을 택했다.

모텔에 갈 정도로 돈이 풍족한 것도 아니고, 만화카페도 은근 비쌌다.

지금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남은 돈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층 어려진 외모 덕에,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은 덤이었다.

우리 동네의 피시방은 민증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 나는 결국 버스를 타고 동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피시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야간을 담당하던 아르바이트생은 밤 10시가 되도 만사 졸린 눈으로 카운터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뿐, 특별히 미성년자들을 잡지 않았다.

피시방 사장님은 열불을 낼 상황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피시방에 자리를 잡은 나는 평소처럼 느긋이 게임을 켤 생각을 때려치우고 지금까지 인터넷에 내 몸의 변화에 대해 검색했다.

[자고 일어나니 여자가]

[성전환 증후군]

[남성이 여성의 몸으로.] 등등.

밤새도록 자판을 두들기며 검색했지만, 나오는 것이라고는 TS 물 소설과 만화투성이, 정작 내가 필요한 정보는 단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낙담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

­이용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아..벌써 그렇게 됐나?”

곧 이용시간이 끝나, 컴퓨터가 꺼진다는 소식에,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주섬주섬 꺼내 카운터로 향했다.

“76번 시간 좀 충전해주세요.”

“네, 10시간이면 될까요?”

“네.”

몇 번이고 카운터에서 시간을 충전했는지, 카운터에서 날 발견한 알바생은 말도 안 했는데 이미 익숙한 듯, 10시간을 충전해주기 위해 내 카드를 받아갔다.

마침 알바생은 밥을 먹고 있었기에, 뭔가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식사를 한 지 오래 돼서 배가 출출했다.

‘대충 라면이나 먹을까? 이젠 질리는데...’

이미 피시방에 존재하는 모든 라면을 먹어본 나는, 차리리 잠시 나가서 뭐라도 사 먹고 올까 고민에 빠졌다.

“그...저기요?”

“...예?”

“이 카드...도난...카드라고...계산이 안되세요.”

어.

“그..자..자자잠시만요? 그..그럴 리가 없는,,데...?”

도난 카드라니? 내가 직접 발급받은 내 체크카드인데?

이 상황에 당황한 나는 말까지 더듬으면서 다시금 결제를 부탁했으나.

“이미 세 번이나 결제 시도를 해도, 결제가 안 되네요.”

“아...일단 알겠습니다..”

몆 번이고 내 카드를 카드 리더기에 꽂던 알바가 곤란한 얼굴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일단 알바가 건네는 카드를 받아, 다시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도난 카드.

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혹시나 그 카드를 주었던 사람이 사용할 수도 있으니 카드사에 연락해서 아예 출금을 금지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내 카드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부모님 밖에 없는...데..

“...미친..”

확실했다.

부모님이 내 카드를 끊어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보통의 나는 어디에 갈 때면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께 꼭 연락하고, 어디로 가는지, 언제 오는지 연락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연락도 없이, 며칠이나 집을 비웠으니, 부모님은 아마 내가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갑자기 집에 나타난 여자 에다가, 사라진 아들의 카드를 마음껏 쓰고 다닌 범죄자가 된 것이다.

내가 어디에 카드를 썼지?

카드사에 연락만 한다면,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샀는지 전부 나온다.

나는 약 3일간 이 피시방에서 지냈고, 약 6시간 전까지 카드가 긁어졌다.

그렇다면 6시간 사이에 실종 신고를 하고, 지금 경찰들이 내 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경찰에게 잡힌다.

만약 경찰들에게 들켜서 잡힌다면, 내가 김상국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지문도 다르고, 신분도 없다.

나를 증명할 수단은 단지 내 기억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나를 믿어줄까?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되었다고?

잡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감옥? 국외추방?

몸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불길한 상상은 살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이윽고 두려움이 되어 나를 덮쳤다.

“...일단 나가자...”

이미 여기서 3일간 지내왔다.

곧 있으면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낼지도 모르니 당장이라도 이 피시방을 나서야 했다.

자리를 박차고 피시방을 나가자, 알바생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혹시 금방 휴대폰으로 날 신고한 건 아닐까?’

의심.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침착...침착하자...”

밖으로 나와, 곧바로 사람이 없는 골목길로 들어선 나는 이대로 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했으나, 미친 듯이 뛰는 심장박동은 느려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맞아, 내 카드를 정지시켰다면, 내 휴대폰도 이미 추적대상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가끔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찾거나 하는 통에, 이미 내 휴대폰에는 위치 정보가 켜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바로 내 휴대폰의 유심칩을 꺼내려다가, 요즘에는 유심칩이나 위치 정보가 꺼져있어도 위치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기에, 그냥 아예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돈....돈을 얼마나 있지?”

내 계좌에는 알바를 하며 모은, 약 몇십 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있었다.

당장 갈 곳도 없던 나에게,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줄 소중한 돈.

지갑을 열어보니, ATM 기계에 가기 귀찮아 넣어놓았던 5만 원짜리 두 장.

10만 원.

그것에 내 전 재산이었다.

“안돼...안돼....!”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에 빠졌다.

이걸로 며칠이나 살 수 있지?

피시방 한 시간에 약 1,200원.

밥 한 끼에 약 4,000원.

옷과 씻는 것을 둘째 쳐도, 약 삼 일이면 다 떨어질 돈이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해도, 나는 신분이 없었다.

알바 면접단계에서 탈락할 것이 뻔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의 불을 붙이려고 했으나,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막막했다.

당장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신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지..?

“...조건...”

나는 금방 내가 중얼거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건만남.

남자와 여자가 조건을 만들어 만나는 일.

말이 만남이지 말 그대로 그냥 성매매였다.

“시발...그건 아냐...!”

친구한테 강간당한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떨리고 구역질이 나는데, 나 스스로 남정네 앞에서 가랑이를 벌리라고?

차리리 뒈져버리고 말지.

상상만 해도 역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는 했다.

이 외모를 이용해서 청소년 보호센터에 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것마저도 신분이 필요했다.

신분, 신분이 있는 것이 당연한 상식인 대한민국에서 내가 살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진짜 시발....나보고 어쩌라고..!”

나는 얼굴을 찌뿌린 체 한껏 윽박질렀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이 몸뚱이 하나.

“.....일단 천천히 생각해보자...”

나는 피는 둥 마는 둥 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다시 발을 돌려 거리로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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