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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6화 (6/91)

〈 6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5)

* * *

“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욱신거리는 둔부가 내 의식을 다시금 깨웠다.

천장은 여전히 오랜지 빛이 맴도는 은은한 전등이 나를 비추었다.

“..헉!”

민준.

그 자식은 어디 있지?

기절하기 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끔찍한 경험을 잊지 못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허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일이 모두 꿈이었다면 좋겠지만, 둔부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여기저기 전신에 얼룩처럼 남아있는 시퍼런 멍, 그리고 내 안에 느껴지는 역겨운 이질감이, 모두 현실임을 알려주었다.

뻐근거리는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다리 사이에서 주르륵, 무언가가 흘러내린다.

새빨간 혈액과, 끈적한 정액이 한데 합쳐, 내 다리를 타고 바닥을 적신다.

“아...하아....”

역겹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나는, 화장실로 달려 들어가, 변기를 부여잡고 위장을 비워냈다.

시큼한 토악질이 내 목을 넘고 변기로 내려갔다.

“하아..하아...”

구토를 끝내고, 화장실에 달린 거울을 바라본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뺨은 얻어맞아서인지 퉁퉁 부어있었다.

목덜미와 가슴은 진한 멍이 얼룩덜룩 새겨져 있다.

나는 샤워기를 틀어, 내 전신을 씻겨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머리부터 천천히 몸을 적셔간다.

“....흐윽...!”

작은 안도감.

“흐어...흐흐흑.....흐윽...!”

단 하루.

단 하루 간의 겪은 일들 중, 유일하게 안도감이 드는 이 시간.

나는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목이 쉬어서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았지만, 목청껏 울부짖었다.

욕탕 바닥에 주저앉자, 씻겨나가는 피와 정액이 섞여 분홍빛을 내며, 하수구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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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되어 처음으로 전신을 씻은 경험은 최악이었다.

혹시나 싶어 라는 마음으로 손을 넣어서까지 안을 깔끔하게 씻어냈다.

머리카락은 남자였을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길었기에, 말리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피로 얼룩진 침대 커버를 수건으로 가리고, 최대한 먼 구석에 자리 잡아 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모텔방을 뒤덮었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폈을까?

다음 담배를 피기 위해 담뱃갑을 뒤적거렸지만, 어느새 비어있는 갑과 꽁초가 수북한 재떨이를 보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목이 따끔거렸다.

그렇게 하염없이, 천장을 올려보았다.

나선으로 이어진 선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무늬들이 그 주변을 감싼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힉!”

그러다가 갑자기 울린 모텔방에 비치된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집어 올렸다.

“.....여보세요?”

“손님? 이제 곧 체크아웃할 시간이십니다.”

“...아...네....”

카운터에서 걸려온 전화가 시간이 없다며 나를 이 방에서 내쫓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 54분.

보통 12시까지 체크아웃인 것을 생각하면 이제 곧 여기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방구석, 작은 쇼파에 던져져 있는 옷을 주워,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여전히 큼직해서 신기 힘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는 모텔을 나섰다.

밝은 태양이 나를 비추자, 나는 나도 모르게 후드 모자를 푸욱 눌러썼다.

“.....하..”

잠시 동안 모텔의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다가, 이내 모텔방에서 다 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xx한 갑이요..”

일하는 것이 귀찮아 죽겠다는 태도가 눈에 훤히 보이는 알바생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갑을 요구했다.

“......4500원입니다.”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알바생은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마쳤다.

스스로 봐도, 이 얼굴은 꽤나 젊어 보였지만, 이곳이 모텔촌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도, 그는 큰 의심 없이 나에게 담배를 팔았다.

민증도 없는 나는 담배 한 갑조차 사기 힘들었다.

편의점을 나온 즉시 담배를 물던 나는, 또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안에 쌌지...?”

질내 사정.

남자였던 나는, 야동에서나 보던, 그런 행위를 실제로 내 몸으로 경험했다.

아무리 씻어냈다고 해도, 질내 사정한 지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

만약, 그 일로 현재 여자인 내가 임신을 할지도 모르...

“우웁...!”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다시금 구토감이 목 밑까지 차올랐다.

역겹다.

추악하고 더럽다.

아기를 가진다는 신성하고 축복받을 일을 이렇게 취급한다는 죄책감이 약간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일을 상상하자 너무나도 두려웠다.

여자는 위험일 일 때 임신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고 했고, 그 예외 중에 내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전에 피임약도, 콘돔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사후 피임약인데.

“......시발..”

대한민국의 사후피임약은 의사의 진료서 없이는 판매할 수 없도록 법으로 막아놓은 상태.

다시 말해 나는 구매할 수 없었다.

“시발...시발...!”

몸이 떨려온다.

피려다 만 담배를 나도 모르게 구겨버렸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어떻게...어떻게..?

“....아.”

분명 예전에 내 동기였던 여자애가 이 근처 병원에 갈 때, 나도 따라간 적이 있었다.

보통 처음 병원에 갈 때, 신분을 인증하고, 다음번에는 이름만 말해도 기록된 신분으로 진료를 한다는 것을 떠올린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내 몸을 돌렸다.

그 애한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별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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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름이...?”

“ㅎ...한예지요...”

소독약 냄새와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

5층 상가의 2층에 있는 작은 동네병원에는 언제나 노인들이 가득 차 있었다.

“xx년생 맞으시죠?”

“네..!네네..”

“진료표를 들고, 대기해 주세요.”

“..네.”

심드렁하게 나를 얼핏 바라보던 중년의 간호사는, 키보드를 두들기며 나에게 말했다.

“.....하..”

다행이 진료까지는 어떻게든 되었다.

만약 최근에 예지가 이 병원을 들렀다면 들켰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건강한 모양이다.

그렇게 번호표를 꼭 쥐고, 병원에 구비되어있는 쇼파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한예지 님.”

“......”

“한예지 님?”

“아..네!”

“2번 진료실로 와주세요.”

맞다.

나는 지금 한예지였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는지, 나를 부르는 간호사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나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자, 한창 두들기던 키보드에서 손을 뗀 의사 선생님이 나를 반겼다.

“어디가 편찮으신가요?”

인자하신 표정의 의사선생님은 주름이 진 눈가로 웃어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그....사후피임약을 좀....”

“아~....사정하신지 시간이 얼마나 지나셨나요?”

“어..그..그게....한 10시간은 지난 것 같아요...”

술을 마실 때가 저녁 10시쯤 되었고, 지금이 오후 1시니까, 대충 10시간 정도 지난 셈이었다.

“아아~....처방전 드릴 테니, 어서 약국에서 받아서 드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피임 확률이 낮아지니, 빨리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말을 더듬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네...그럼...”

약 1분도 걸리지 않은 진료를 마치고. 나는 진료실을 나왔다.

“한예지 님?”

“네?”

“여기 진료서 드릴 테니까, 1층에 있는 약국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

진료비를 지출한 나는, 서둘러 병원을 나와 1층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 특유의 약 냄새에, 나는 슬며시 코를 찡그렸다.

“뭐 찾으시나요?”

하얀 가운을 입은,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여자 약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사후 피임약을 좀...”

“진료서는 병원에서 떼 오셨나요?”

“네..여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약사가 내 진료표를 들고,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벽이 쳐져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약상자를 들고나왔다.

“여기 사후 피임약이고, 질내 사정하신 지 약 72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거의 없으니 최대한 빨리 드셔주세요.”

“네...”

약상자를 받아든 나는,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이 자그마한 약이 3만 원이나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좀 그렇죠?”

“네?”

그렇게 결제를 끝내자, 약사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에 싸지른 놈은 무사태평하건만, 우리 같은 여자들만 이렇게 전진긍긍하단 말이죠..참..”

“아...네...”

“그딴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생으로 해주지 마세요. 알았죠?”

닥쳐.

“아...네...그럼...”

닥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약사는 분명 불안한 내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말일지는 몰라도, 나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우리 같은 여자.

여자.

시발.

난 여자가 아니야.

여자가 아님에도 사후 피임약을 산, 모순적인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약국을 나온 나는 바로 약상자를 뜯어, 단 한 알 있는 알약을 조심스레 꺼내서 입안에 넣었다.

쓰디쓴 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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