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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봄을 팔고있다-2화 (2/91)

〈 2화 〉 chapter 1: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1)

* * *

팔목이 욱신거린다.

바라보니 새빨갛게 부어오른 것이 내일이면 시퍼런 멍이 들어앉을 것이다.

머리는 땀과 체액에 절여, 뭉치고 질척거렸다.

그의 역겨운 욕정이 가득 들어차던 음부는 화끈거려서, 아마 돌아가면 얼음찜질을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내려진 커튼을 당겨,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완전히 해가 뜨지 않아, 여명빛이 도시의 거리를 비추었다.

모텔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하자, 아직 오전 6시 15분.

7시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현금을 담아두었던 별다른 장식 없는 은빛 파우치 백을 열어, 다시금 지폐를 꺼내 액수를 확인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를 안았던 남자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욕실의 바닥은 물이 듬성듬성 채워져 있었고, 세면대의 거울에는 미세한 김이 껴 있었다.

샤워기의 호스를 틀자, 차가운 물이 급속도로 나와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피해 기다리자, 이내 김이 나는 따뜻한 물이 나왔다.

나는 천천히 머리부터 충분히 물을 적시며,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씻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침이 묻어 냄새나던 가슴도, 빨갛게 흔적이 남은 목덜미도, 역겨운 막대가 지나가던 음부도 연신 손을 비벼가며 씻어내었다.

역겨워.

역겨워. 역겨워. 역겨워.

천천히 움직이던 손이 마치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껌딱지를 떼어내듯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역겨워.

내가 왜 이래야 하지?

언제까지?

힘들어.

다 씹새끼들이야.

죽어버려.

“...아..!”

나도 모르게 깨물고 있었던 입술이 피가 났는지 비린 피 맛이 느껴질 때쯤, 물고 있던 이빨을 들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낸 나는, 모텔에 기본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샴푸와 바디로션으로 씻어낸 몸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샤워를 끝내고 다시금 시계를 바라보니, 6시 42분.

침대 밑쪽으로 던져두었던 속옷과 겉옷들을 갈아입자, 슬슬 모텔을 나설 시간이 되었다.

회색 후드티의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빨갛게 타들어 가는 담배의 연기가 눈을 찌르자,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한 방울. 두 방울.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고, 연신 담배의 길이를 줄여나갔다.

타들어 간 회색의 담뱃재가 침구로 떨어지자, 급히 닦아내려고 했지만, 이미 잿빛의 흔적은 침구에 늘어 붙어버렸다.

시계를 바라본다.

6시 57분.

담뱃갑과 라이터는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고,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파우치 백을 챙긴 나는, 금방 피운 담배 연기가 가득한 모텔의 방에서 나왔다.

오래되어 동작도 잘 되지 않아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엘리베이터를 지나, 비상계단을 통해 한 층 한 층 내려갔다.

이윽고 모텔의 출입문을 나서자, 갑작스럽게 비치는 햇빛에 눈이 움츠러들었다.

모텔들과 듬성듬성 존재하는 편의점으로 차 있는 모텔촌을 나와,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가로 발을 옮겼다.

그러자 저 멀리, 전봇대의 옆에 세워진 자동차가 보인다.

검은색으로 뒤덮인 작은 밴 하나가, 태양빛을 흡수하며 더욱 진하게 보였다.

시동이 켜져 있는지 깜빡이가 깜빡거리고, 뒤에서는 매연이 희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진하게 코팅된 창문이 달린 차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장식이라고는 백미러에 달린 네모난 방향제가 전부.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돈은.”

운전하는 차와 비슷하게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팔을 쭉 내밀며 나에게 물었다.

“....오늘 치 57만 원에서 30% 뗀 17만 원이요.”

나는 파우치 백에서 지폐를 꺼내, 17만 원을 그에게 건넸다.

“.....영 일을 못 하는구만...”

그런 돈을 받은 남자는 손가락으로 만원으로 이루어진 지폐를 세며 중얼거렸다.

순간적으로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 실장.

성이 박이라는 것 말고는 직접 이름을 언급한 적이 없고, 박 실장이라고 부르라 하여, 모두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는 원래 자그마한 오피스텔을 빌려, 여자들을 모아서 성매매 장소로 사용한 모양이었지만, 단속에 걸린 이후로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익명채팅어플에서 남자들을 꼬신 후, 약속을 잡으면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픽업해주는 대신, 수수료로 오늘치의 30%를 가져간다.

나만 보면 가격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의 돈까지 받았기에 그럭저럭 수익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멈춰있던 검은 밴의 깜빡이가 꺼지고,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전봇대가 가득한 골목길을 지나, 어느새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 나온 벤을 탄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이지만, 길가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금방 자고 일어났는지, 피곤한 얼굴로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걷는 남자.

어디 급한 일이 있는지, 하이힐을 신은 채 서둘러 발을 옮기는 여자.

회사에서 철야를 했는지, 넥타이를 풀어헤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남자.

누구나 이 광경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아침 일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꿈만 같은 광경이다.

나도 저들 사이에 끼어있던 적이 있었다.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보람차던,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

나는 창문에서 눈을 돌려, 귀에 이어폰을 꽂아 노래를 틀었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던 발라드 가수의 노래가 귀에서 울려 퍼졌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이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을 보시면, 지겹지도 않냐고 진저리를 내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아, 조용히 상상해본다.

아침에 비적비적 일어나,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저들처럼 지겹다는 얼굴을 하며 버스에 올라타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다.

그렇게 사회의 큰 톱니바퀴의 일원이 되어, 오늘도 사람들과 합을 맞추어 돌아가는 내 모습.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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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자가 되었던 날.

나는 살 곳을 잃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대학을 막 졸업한 나는,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취준생이었기에, 조금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하며 침대에서 비척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커다라던 남자의 손이 작고 부드러운 손이 되었고, 목소리는 얇아졌으며, 가슴에는 큰 지방 덩어리가, 둔부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던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 방 벽에 걸려있던 거울을 바라보았다.

26년간 바라보았던 김상국의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거울에는 생뚱맞은 얼굴만이 비쳤다.

갸름한 턱선, 사라진 목울대, 속눈썹은 길고, 코는 오똑하게 서 있는, 그야말로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항상 짧게 잘랐던 머리카락이 이제는 허리춤까지 내려와 살랑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내 몸의 변화에 나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누가, 하룻밤 만에 몸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겠는가.

나는 그냥 생생한 꿈 정도로 받아들였다.

항상 입고 있던 목이 늘어나 축 처진 흰 티 사이로 가슴골이 보이는 것을 즐기며, 최대한 이 꿈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그때. 내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상국아~ 아직 자.....어머!!! 누...누구세요!!”

아침상을 차리셨는지 나를 깨우러 오신 어머니가 여자로 변한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그럼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체, 헤벌쭉 실실 웃으며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나 여자가 된 것 같아. 이거 꿈이지? 그치?”

“사...상국이 여자친구? 그런데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헉! 그...아가씨...는...누구?”

아버지는 신문을 읽다가 어머니의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읽다 만 신문을 들고 내 방에 들어서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자, 그런 분위기를 감당하지 못한 나는 이제 슬슬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나는 내 볼을 꼬집었다.

아팠다.

“어?”

이상하다.

아플 리가 없는데?

“어..? 어...?”

나는 한 볼을 꼬집는 것도 모자라, 다른 한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거나, 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팠다.

“아니...꿈이...왜...안 깨!”

당혹감.

분명 이쯤 되면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데도 나는 여전히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벽을 머리로 들이받으면서까지 잠에서 깨려고 노력했으나, 쿵쿵 울리는 소리와 살갗이 까졌는지 새빨간 핏방울이 부드럽고 좁은 이마에서 맻일 뿐이었다.

“여...여보.....”

“제...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일단 경찰에 전화를 걸어...아...아가씨....!!! 일단 진정하고....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습니까?”

“아...아냐...나야 나! 김상국! 어머니 아버지 아들! 김상국!”

그런 내 모습에 부모님은 핸드폰을 들어,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나는 처절하게 아버지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아니...남의 아들 가지고 이런 장난을....! 됐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서에 가서 이야기해! 경찰에 전화 걸었어?”

“여..여보세요? 거기 경찰이죠...! 저희 집에 웬 처음 보는 여성이...!”

“아..씨!”

경찰에 전화까지 하는 어머니의 행동에 다급해진 나는, 책상에 얹어뒀던 휴대폰과 지갑, 담배랑 라이터 같은 잡다한 것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방문을 가로막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밀치며 현관으로 향했다.

원래의 내 발과는 다른, 조그마한 발은 항상 신던 슬리퍼가 헐렁할 정도였기에, 나는 몇 번이나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신고는 현관을 박차고 집을 나섰다.

23층 아파트의 7층에 살고 있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무시한 채,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분명 이것은 꿈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깨어나지를 않는 건가.

지독한 악몽, 숨이 턱턱 막혀오는 악몽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건물 밖으로 나온 나는 땅을 박차고 뛰며, 아파트 단지를 지나 거리로 나왔다.

너무나도 평범한 거리.

태양이 밝게 비추어 화창한 날씨를 연출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을 옮기며 바삐 걸어가는, 그런 언제나 보와 온 풍경.

그럼에도 나는 내가 마치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야...저기 저 여자 봐.”

“헐....미쳤나? 근데 개쩐다....”

그렇게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던 나를, 사람들이 눈치채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몸의 사이즈와 달라, 이미 쇄골이 휑하니 들어내는 흰 티와, 허리가 맞지 않아 주르륵 흘러내리려고 하는 반바지.

긴 머리는 잔뜩 휘날려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멍하니 영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나는 그런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뒤로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렇게 가까스로 흘러내리지 않게 반바지를 손으로 끌어 잡으며, 내가 동네에서 담배를 피기 위해 자주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 없는 골목길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한번 고른 나는, 용케 떨어지지 않았던 휴대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지문 정보가 다릅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하...하하...!! 진짜 현실감 있네! 그러니까 좀 깨라고 시발!”

악몽.

악몽 그 자체였다.

이제는 미친것처럼 실실 쪼개던 나는,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컥! 콜록..! 콜록콜록!!! 크하...!”

뜨겁게 내려가는 담배 연기에 마치 처음 담배를 피던 사람처럼 미친 듯이 기침을 냈다.

20XX년 4월 23일.

26년의 삶을 살았던 남자.

김상국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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