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9)

24. 신성 황제의 배도

신성 제국 황실의 황제 침실 안쪽 깊은 곳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다른 문이 존재했다.

그 문 안,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가면 신성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방이 하나 있었다.

방의 앞쪽에는 제단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역시 사특한 기운이 가득한 향이 항상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 앞에는 24시간 내내 화장실에 가거나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기도를 드리는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성제국의 황제는 그 제단이 있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그의 눈은 광기에 젖어 초점은 흐려진 채였다.

기도를 드리던 로브의 사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몸을 정하게 하고 들어오십시오.”

황제가 비릿하게 웃었다.

“더 정하게 할 것이 남아 있겠는가.”

자조하듯 뱉어내는 말에 로브 사내가 기도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폐하. 몸을 정하게 하고 오십시오.”

“빌어먹을. 바라는 것도 많지.”

황제는 도로 문을 열고 나가더니 십여 분 뒤에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가축의 사체를 든 채 돌아왔다.

제단 앞으로 사채를 던져 놓은 황제가 웃었다.

“그래도 누구 덕에 내가 이 자리를 유지하는데. 해드려야지. 어떤가. 아주 신선한 피를 가져왔네.”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가까이 와 주십시오.”

황제는 욕지거리를 뱉어내고 사내에게 다가왔다.

“무릎을.”

사내의 말에 황제가 앞에 무릎을 꿇어 주저앉았다.

황제의 머리 위로 손을 얹은 사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1분쯤 지났을 때 사내의 손에서 검붉은 기운이 뻗어 나와 황제의 머리 위로 내려앉아 사라졌다.

동시에 황제의 눈이 번뜩이며 순간적으로 붉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이걸로 또 한동안은 황제 역할 해 먹는 데 문제는 없겠군그래.”

황제는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신성제국을 통치할 황제가 신성력이 미미하다는 걸 알게 되면 이 자리는 곧 다른 놈의 차지가 될 것이고 그는 피로 얼룩지게 될 터였다.

황제는 이 자리를 그렇게 내놓고 싶지도 않았고 목숨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이다지도 망가져 버린 자신이 끔찍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이유였다.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현재의 삶은 아름다워야 하니까.

다른 이가 어리석다 욕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에게는 황위가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절대 잃고 싶지 않았다.

“스펠른으로 향한 성기사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내의 물음에 황제는 혀끝을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뭘 어쩔 수나 있겠나? 내 기도를 신께서 들어주실 리가 만무할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전쟁에서 질 것이네. 곧 자네의 바람대로 악신의 추종자들과 마법사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황제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사내가 미소 지었다.

선이 곱고 아름답게 생긴 사내가 지은 미소는 누구라도 홀릴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얼굴만 본다면 참 선한 인상인데 말이지.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미소 지었다.

“수고하게.”

“살펴 가십시오.”

황제는 그를 뒤로하고, 제단 방을 나섰다.

계단에 떨어져 있는 핏방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누굴 시킬 수도 없고… 또 혼자 궁상맞게 닦아야겠구먼. 빌어먹을.”

스펠른이 승리하고 나면 이놈의 제국도 신성제국이라는 칭호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황제는 느릿하게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다.

나른해진 눈빛에는 여전히 광기가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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