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39)

23.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길 수 없어

상황이 상황인지라 에릭을 포함한 세 명의 기사가 한 명씩 돌아가며 밤새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곤히 잠든 아슬란의 이마에 입 맞추고 일어났다.

침대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티 테이블 의자에 앉아 창밖을 응시했다.

8시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밤하늘은 벌써 어둑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음에도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입이 가벼운 사용인도 잡았고, 이제 나는 이 저택에서 안살림을 잘 꾸려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도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전서구를 확인한 뒤로 불안감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아니었어도 그는 전쟁에 나갔을 거야.

내가 아니었어도 그는 제국을 수호해야 하니까.

하지만 정말 내가 아니었어도 그랬을까…?

마법사들은 내가 아니었어도 제도에 테러를 일으키고 전쟁을 불사하겠다 마음먹었을까?

내가 제국인이 아니었어도…?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외로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딜리아 가문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홀로 이끌어 오면서 아이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지금의 나처럼 자리가 가지는 무게감에 그 어떤 불안감, 두려움을 표도 내지 못한 채로 혼자 한없이 외로워 떨지 않았을까?

내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면 저택의 모두가 두렵고 불안할 거야.

나는 낮 시간 동안 그런 생각으로 버텨왔다.

분명 아이든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는 무너져서도, 실패해서도 안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을 것이다.

아무리 아프고 아파도.

두 손을 교차해 팔을 감쌌다.

두 눈을 감고 탁자에 이마를 기대었다.

“…너무 두려워요, 아이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 찰나 순식간에 몰려드는 한기에 번뜩 고개를 든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열려 있어…?

방금 전까지 닫혀 있었는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온몸이 순식간에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섬과 동시에 전에 느껴본 적 있던 어두운 기운이 내 몸을 옭아맸다.

동시에 내 앞에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사람 형태를 갖추어 갔다.

복면을 쓴 사내였다.

숨기지 않은 살기 가득한 금빛 눈동자에 숨이 턱 막혀왔다.

“쉬—소리 지르면 당신 아들도 같이 죽는 겁니다.”

나는 눈동자를 돌려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다시 복면의 사내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아이만은 안 돼.

“이 저택의 주인이 자리를 비우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당신은 모를 테지.”

아아. 아이든…!

복면의 남자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그거 아십니까? 제도의 테러에 당해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서 죽어갈 사람들도. 그들을 죽인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

두 눈에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려졌다.

부정하고 싶었는데.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이 제국에 존재하기 때문에.”

절망감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라 온몸을 지배했다.

“당신이 태어나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두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수도 없이 흘러내렸다.

내 존재 자체가 이 제국에 죄악이 되어 버렸어.

내가 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어.

아이든도….

그도….

“그러니까 그냥 죽어주십시오. 이 자리에서.”

그 순간이었다.

온몸이 따뜻해져 오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내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동시에 복면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성력을 각성하지 못했다고… 그랬는데….”

나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내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빛이 순식간에 아슬란에게로 뻗어 나가 아이를 휘어 감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는 다행히도 깊이 잠들어 깨지 않고 있었다.

침실 안에 더없이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빛의 자녀, 일라즈의 딸이여. 그대의 빛이 어둠에 먹히지 않도록 주의하라.]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아스라이 흩어졌다.

빛무리 또한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모든 빛이 사라졌을 때, 내 몸을 옭아매던 어두운 기운이 사라짐과 동시에 복면 사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을 가렸던 복면 밖으로 새빨간 피가 물들다 못해 목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내려 사내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심장을 뚫고 나온 검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곧 검이 회수되면서 복면 사내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복면 사내 뒤에 보이는 사람의 형체에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또 다른 복면을 쓴 사내가 내게 깍듯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창문으로 뛰어내렸고, 뒤이어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다급하게 창문으로 날아들어왔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든이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서 있었다.

“릴리아나….”

그의 얼굴이 시야에 한가득 차 들어왔다.

일그러진 얼굴, 평정심을 잃고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이마에서부터 얼굴 옆 라인을 타고 흘러내리는 새빨간 핏물.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악문 잇새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저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거야.

아이든의 이마에 흐르고 있는 피도 모두 내 탓이야!

내가 사라져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면 그게 맞는 것이 아닐까?

“나를 봐, 릴리아나. 내 눈을 봐.”

아이든의 눈을 바라보았다.

깊은 심해 같은 두 눈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가슴에 담았다.

“그 표정…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제발… 그대 탓이 아니야. 언젠가는 일어났어야 할 일이었어. 제국은 오래전부터… 우린 오래전부터 그들의 적이었어, 리안.”

아아… 아이든….

“그대 탓이 아니야.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나는… 나는 살아갈 수 없어, 리안.”

나는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품을 와락 끌어안았다.

“으흐윽…! 흐윽…! 끄윽…!”

왜 다쳤어요?

어쩌다 다쳤어요?

어쩌다가 그랬어요?

“흐으윽…!”

큰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까 봐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아이든이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속삭였다.

“스스로를 탓하지 마. 그들은 악이야.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길 수 없어.”

고마워요… 당신은 늘 내게 구원자가 되어주는 것 같아.

“나쁜 생각은 하지 말아 줘. 나만 두고 가면 안 돼. 제발… 제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리안….”

그가 매달리듯 애원하며 작게 속삭여왔다.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흐윽…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이든. 사랑해요….”

그가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입 맞추었다.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뜨거운 키스가 이어졌다.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들 무렵 그는 나를 놔주었다.

더없이 애절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입 맞춘 그가 작게 속삭였다.

“다녀올게. 그대에게 마법사 수장을 죽여 바칠 거야. 맹세해.”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발 다치지 말아요.”

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갈게.”

아이든이 내 머리카락에 입 맞추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내려다보자 곧 사람 몸보다 두 배는 큰 새하얀 새의 등에 올라탄 아이든이 보였다.

새가 하늘을 날아올라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졌다.

나는 두 손을 그러쥐고 주신께 기도했다.

부디 그가 무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

침실 안에서 공격을 받을 뻔했던 그 시각, 도대체 왜 기사들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아했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에릭은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 느끼고도 상황의 심상치 않음을 파악할 수 있는 자였는데.

뒤늦게 호위 기사들을 불러 모아 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자초지종을 묻자, 윈터 경이 죄책감이 가득 배인 얼굴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자신이 불침번 담당이었고,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도 문이 열리지도 부서지지도 않아서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어찌나 죄스러워하는지 괜찮다고 몇 번이나 다독여주었음에도 그는 한동안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복면 사내는 필시 마법사나 주술사였을 것이다.

내 몸을 그렇게 옭아맬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방문이 열리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던 것 역시 그 주술과 관련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로는 밤에도 기사 세 명이 모두 방에 들어와 차례대로 소파에서 잠을 청하면서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그가 떠난 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일부러라도 더없이 바쁜 생활을 이어갔다.

한가하게 할 일이 없을 때에는 사용인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나에 대한 소문은 곧 사그라들고 모두 루머였을 뿐이라는 소문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리제의 작품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볼 뿐이었다.

나는 때때로 아슬란과 호위 세 명을 대동하고 시내에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 가문이 후원해 주기로 한 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한 번씩 돌아다니며 확인도 하고, 아슬란과 맛있는 외식도 함께 했다.

가끔 아슬란을 시기 질투한 자들이 달려들기도 했는데, 호위 기사들이 어찌나 철저하게 막아서서 호위를 잘하는지 우리는 달려든 자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슬란이 아카데미에 갈 날도 어느덧 2주 남짓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그동안 잘 먹은 덕분인지 몰라보게 키가 훌쩍 자랐다.

이제야 제대로 10살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었지만.

들려오는 소문에는 제국 정예병이 프리온의 성기사들과 함께 선제공격에 성공했고, 꽤나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소문으로 아이든이 무사하다고 믿었고, 크게 안심했다.

그동안에 칼도 저택에 자주 왕래하며 내가 안전한지, 건강한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는 무력을 사용하는 기사는 아닌 탓에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혹여나 불안해하고 힘들어할까 염려해 주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어제부터 칼튼과 상의 끝에 침실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사람을 구했다.

아이든이 돌아왔을 때는 새로운 방에서 잘 수 있도록 꾸며 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와 아슬란은 당분간 손님용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아이와 함께 퍼즐 놀이를 하고 있는데 에릭이 급하게 창문을 열면서 말했다.

“전서구입니다, 주군.”

나는 부리나케 다가가 편지를 받아 들었다.

끈을 풀고 돌돌 말린 편지지를 펼쳐보았다.

[잘 지내고 있어? 여긴 스펠른이야. 마법사들이 세운 국가 말이야. 영토는 제국에 비해 아주 작은 곳이야. 우리가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을지 모르겠어. 그대에게 한 약속 기억하고 있지? 곧 갈게. 조금만 버텨줘. 사랑해. 그대가 보고 싶어. -아이든-]

나는 편지를 다시 돌돌 말아 협탁 안쪽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작은 편지지를 가져와 답장을 적었다.

[전서구는 잘 받았어요. 당신 소식은 전해 듣고 있어요. 여기까지 소문이 파다하던걸요.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다치지는 않으셨죠? 당신을 믿어요. 전 잘 지내고 있고 잘 견디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제 걱정은 마세요. 사랑해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리안-]

편지를 돌돌 말아 끈으로 묶어 에릭에게 건네었다.

에릭이 새 다리에 편지를 묶어 날려보내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전서구를 날려주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퍼즐 하다 말았어요.”

아슬란이 불퉁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얼른 아이에게 다가갔다.

“미안. 깜빡했구나. 다시 해보자.”

아이의 이마에 입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퍼즐을 다시 맞추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 번 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이든이 전쟁 중임이 무색하게 이곳은 한없이 평화롭고 조용했다.

그 이질적인 느낌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이 내 심장을 울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마음에 주문을 외워보았다.

괜찮아.

그는 괜찮을 거야.

나는 그를 믿어.

***

다음날에는 칼이 양손 가득 디저트 상자를 들고서 저택을 방문했다.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해맑게 웃는 그를 보고 나 역시 오랜만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위해 정원에 티 테이블을 마련하고 홍차를 준비했다.

그가 사 온 예쁘고 달콤해 보이는 디저트들 역시 트레이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나는 개인 앞 접시에 디저트 한 개를 옮겨 담아와 티 포크로 조금 잘라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상큼하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은 텍스처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유명한 곳에서 사 온 것이라더니. 정말 훌륭한데요?”

“다행입니다.”

칼이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홍차를 한 입 입에 머금고 향을 음미했다.

달콤한 디저트가 지나간 자리에 들어온 향긋한 차 한입이 입안을 말끔하게 씻겨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예쁜 디저트까지 사서 오셨나요?”

“어제 전서구가 제게 왔습니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부인이 불안해하실 것이라고 여기셨나 봅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칼을 바라보았다.

아이든이….

“제도에서 가장 달콤하고 맛있다고 소문난 베이커리를 찾아내라고 얼마나 강조를 하셨는지 모릅니다.”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예쁘고 정갈한 디저트.

그와 시내 데이트를 할 때에도, 아슬란과 시내 구경을 나갔을 때에도 나는 한 번도 이런 디저트를 파는 가게를 보지 못했다.

“솔직히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부인께서 각하의 무신경함 때문에 상처 받지 않으실까 염려했고, 결혼생활이 행복하리라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뭐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목이 콱 막혀오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전쟁을 해보진 않아서 나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 외에 큰일이 없는 나보단 그가 더 정신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텐데.

거기에서까지 나를 이토록 생각해 주다니….

“부인께서는 정말로 사랑받고 계십니다.”

결국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내 심정을 고백했다.

“아아…! 그가 너무 보고 싶어요…!”

칼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무릎 꿇고서 달래듯이 말했다.

“부인. 각하께서는 정말로 강한 분이십니다. 오늘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루셨고, 적국 황제의 목을 쳐서 폐하께 진상한 분인 것을요. 분명 별 탈 없이 돌아오실 겁니다.”

“두려워요. 분명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데… 그가 강하다는 것도, 그의 약속도 믿고 있는데….”

“각하께서도 그렇습니다, 부인.”

나는 고개를 들어 칼을 바라보았다.

칼이 내 손에 자신의 손수건을 쥐여주었다.

“각하께서도 역시 불안해하고 계십니다. 부인께서 혹여나 자신을 걱정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셔서 건강이 상하실까 두렵고, 이렇게 힘들어하실까 봐 불안해하셨지요.”

아이든은 전서에도 늘 그런 말을 적었었지.

그는 늘 본인보다 나를 더 걱정한다.

목숨에 위협을 매 순간 느끼는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전쟁터일 텐데도.

“각하께서는 그럼에도 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부인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인께서도 위치에 걸맞게 저택을 꾸려 가시면서 잘 버텨주고 계시죠. 그렇게 하는 것이 각하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에. 두 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이 많은 각하를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강하게 버텨 주십시오.”

맞아.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그가 그런 것처럼 나도 그래야 해.

칼은 옅게 미소 지었다.

“전쟁은 곧 끝날 겁니다. 마법사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들은 일개 약소국이고, 저희는 프리온제국과 합세한 만큼 그 위세에서부터 차이가 클 겁니다. 게다가 각하께서는 삶의 절반을 전쟁터에서 보내신 만큼 전술에도 각별히 뛰어나십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들이 각지에 흩어지고 숨어들었기 때문에 완벽한 소탕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언제나 강한 쪽은 우리였습니다.”

칼의 기나긴 위로의 말을 들으면서 용기가 샘솟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한번 닦아내고 칼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요, 칼. 더없이 큰 위로가 되었어요.”

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아 예쁘게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달콤한 디저트로 기분 전환을 좀 해 볼까요?”

나 역시 그를 향해 더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칼. 정말 고마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