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 21화 (21/39)

그 공작의 아내로 사는 법 3권

21.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슬란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영특한지 한 번 읽은 책의 지식은 절대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가정교사를 구해다 붙여주니 제법 겉모습도 귀족의 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학습이 빠른 아이였다.

나는 아이에게 딜리아 가문이 제국의 수호 가문이며 대대로 제국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가르칠 선생도 구해주었다.

아이 역시 딜리아 성을 받았으므로 그 역할이 훗날 이 아이에게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는 곧잘 이해하고 사명감을 가져주었다.

나와 아이든은 종종 아슬란을 들여다보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아이든이 밖에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알 수 없는 여자를 집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부터였다.

그전에 내게 실감 나는 연기를 해줄 여자를 구하고 있다고 하더니 정말 구해온 모양이었다.

그들의 다정한 애정행각이 진한 스킨십이 없었을 뿐이지 얼마나 리얼했는지, 미리 언질을 받고 시작한 일임에도 매 순간 차오르는 짜증과 질투심에 시달려야 했다.

그냥 싸우는 척만 하자고 할걸. 아니 그냥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만 해도 내가 알아서 여자 만나고 왔냐고 연기를 해 주었을 텐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혹시 내가 진심으로 질투를 느껴 주기를 바라고서 저러는 건가?

혹시 여자를 끼고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종내에는 참지 못하고 그의 집무실에 쳐들어가 여자와 노닥거리는 그에게 저택이 울리도록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다.

“정말 너무해요! 두고 봐! 똑같이 느끼게 해 줄 거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든을 뒤로하고 집무실을 나오려다가 다시 한번 뒤를 돌아 아이든의 무릎 위에 앉아 한껏 꼬리를 살랑거리던 여자를 노려봐 주었다.

저 여자가 제일 큰 문제였다.

연기인 척 하면서도 진심으로 저렇게 들러붙어 있는 꼴을 좀 보라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는데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아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흥!”

그리고 문을 쾅 부서질 듯 닫고 나와서 씩씩거렸다.

이제 더는 못 참겠어. 나도 안 참을 거야!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이건 다 아이든의 잘못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를 호위하던 에릭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뒤따랐다.

“…괜찮으십니까?”

그의 질문에 복도를 걷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아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건 그냥 짜고 치는 거니까.

공기 중에 흩어질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들인데.

“하나도 괜찮지가 않아요.”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해. 아무도 보지 않는 집무실까지 들어가서 저러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무릎 위에 앉아서?

그 여자는 누가 봐도 아이든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참지 않을 거예요. 똑같은 감정을 본인도 느껴 보라지.”

내가 다시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자 에릭이 부리나케 내 옆으로 따라붙으면서 그답지 않게 잔뜩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한 얼굴로 말을 붙여왔다.

“이건 모두 계획된 것이지 않습니까? 각하께서는 지금 연기를….”

“에릭.”

“예?”

다시 걸음을 멈추어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아이든의 사람인가요?”

“예?”

에릭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아이든의 사람인 거죠.”

“부인, 저는 그저….”

당황한 얼굴로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답은 듣지 않아도 좋아요.”

다시 발걸음을 떼어 빠르게 침실로 들어섰다.

리제가 내 침구를 정리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마님. 서재로 가신 것 아니셨어요?”

나는 내 뒤에 따라붙은 에릭을 모른 체하며 리제를 향해 애써 미소 지었다.

“리제. 나가 줄래? 혼자 있고 싶어.”

“앗! 네, 마님!”

리제가 방을 나가고 난 후, 티 테이블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심신이 지친 탓일까? 귀족의 체면이나 기품 따위를 생각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에릭이 내 곁으로 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었다.

“제가 부인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그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하인 하나가 여전히 몰려든 이들의 사정을 듣고 열심히 종이에 끄적이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에릭….”

“예. 말씀하십시오.”

“그대는 이미 아이든의 사람이잖아요.”

“…제게… 제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고개를 돌려 에릭을 바라보았다.

그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그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말인가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에릭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는 어째서 아이든이 아닌 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내가 원하니까?

아니면 더 이상 아이든에게 충성심이 들지 않아서? 그럴 리가 있을까?

“내가 그러길 원한다고 생각해요?”

에릭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제가… 제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요? 에릭은 울프하운드잖아요. 그곳이 얼마나 들어가기 어렵고 대단한 곳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요.”

“저는 제국 출신이 아닙니다, 부인.”

뭐라고?

나는 너무 놀라서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아무리 보아도 외국인의 외모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럼 에릭은 어디 출신이죠?”

“저는 신성제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부모가 병으로 죽기 전까지는요. 그 후로 각하께서 저를 거두어 주셨습니다.”

신성제국!

나는 너무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에릭은 더없이 간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곳이 프리온이었다면 저 같은 귀족도 뭣도 아닌 자는 부인의 존안을 감히 뵙지도 못했을 겁니다. 디누트는 그런 의미니까요.”

나는 에릭이 귀족 출신인 줄로만 알았다.

그는 늘 예의 바르고 행동에 절제가 있었고, 여자에게 신사적이었다.

평민은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귀족의 소양을 익힌 자들이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었으니까.

갑작스레 그의 새로운 정보를 너무 많이 얻게 되어 기분이 얼떨떨했다.

“감히 가져서는 안 되는 욕심이라 생각했습니다. 너무 귀하신 분이니까요. 하지만 부인께서 명을 내려 주신다면 목숨 바쳐 따를 것입니다.”

내가 오로지 디누트이기 때문에.

그렇구나.

속에 흐르는 선대의 피가 나를 고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구나.

고작 별 볼 일 없는 백작 영애였던 내가.

그가 어째서 내가 집무실을 나오자마자 안절부절못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내가 명령 따위를 내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내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명백하게도.

“원해요. 그러니 내 사람이 되어주세요, 에릭.”

에릭이 제 검을 검집 채로 빼 들고 내게 고개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따를 것입니다, 주군.”

주군.

그 단어는 그가 이제 내 것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에 이는 것을 느꼈다.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검 손잡이에 묶어주었다.

“내게 죽음의 맹세를 하셨군요. 그러니 나 역시 맹세의 깃을 달아드려야 할 테지만 지금 내게는 이 손수건이 전부예요.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해 줘요. 꼭 맹세의 깃으로 바꿔 줄게요.”

“…저는 이것이 더 좋습니다.”

에릭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를 알아온 이래 가장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에릭은 이제 내 것이 되었군요. 기뻐요.”

그가 멍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흡사 우상을 바라보는 듯한 두 눈이 부담스러워져 나는 곧 그에게 문밖에서 대기할 것을 명했다.

순순히 침실을 나서는 그를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내 일거수일투족을 아이든에게 고하지 않게 될까?

울프하운드에서 그는 이제 나와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 내가 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반나절이 좀 지났을 때, 아이든이 나를 찾아왔다.

침실에서 오랜만에 수를 놓고 있던 나는 그의 반갑지 않은 방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업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리안.”

“여자 혼자 집무실에 두고 왔나요?”

아이든이 난처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나를 안으려고 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아이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래, 리안?”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나는 그마저 짜증이 났다.

왜 그런지 몰라서 묻는 건가, 진정?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와서 나를 안으려고 할 수 있어?

이렇게 독한 향수 냄새를 묻히고 와서?!

“그 표정 뭐야? 왜 그러는데?”

“몰라서 묻는 거 아니잖아요.”

“리안. 아까 그건 그대도 알다시피….”

“모르겠어요.”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감정이 고스란히 목소리에 묻어 나오자 아이든이 더없이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굳이 집무실까지 여자를 끌고 들어간 이유를 나는 모르겠어요. 정말 연기가 맞긴 해요? 거긴 보는 눈도 없는 밀실인데? 굳이? 왜?”

아이든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리안. 이리 와. 그거 아니야.”

“설명이 필요해요.”

아이든은 난처한 듯 이마를 만지며 대답했다.

“사용인에게 보여야 했어. 그래야 저들끼리 소문이 나겠지. 공작이 다른 여자를 끼고 있다. 이렇게.”

나는 그의 손을 탁 쳐내면서 짓씹듯이 말했다.

“그 모습을 내게 보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니 애초에, 사용인이 올 때만 그런 모습을 보이면 되는 건데?”

“아….”

아이든이 귀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왜요?!”

“…큭…!”“!”

나는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입을 딱 벌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미안해해야 하는 건데, 웃어? 지금 웃은 거야?

“아이든!”

기가 막혀서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나머지 손을 내게 들어 보이면서까지 큭큭대고 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웃겨?

나 화난 거 안 보여?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크큭… 으흡….”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미안…! 미안…! 아흑, 미안…!”

“하!”

짜증이 폭발해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를 지나쳐 나가려는데, 그가 내 손목을 재빨리 붙잡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나는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어 버렸다.

나를 힘주어 끌어안은 그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며 숨을 골랐다.

“미안해. 내가 미안. 용서해 줘, 리안. 다신 그러지 않을게. 약속해.”

“뭐예요? 진짜 그랬단 말이지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일부러 그랬어. 사용인에게 보여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대가 봐주길 바랐거든. 어떻게 나와줄까 궁금하고 기대했어. 이런 질투를 바랬거든.”

그가 다시 한번 낮게 웃으면서 내 이마에 입 맞추었다.

“사랑스럽다, 리안. 정말 미칠 것 같아.”

나는 당신이 괘씸해 죽겠는데!

“이거 놔요. 나 진짜 기분 엄청 안 좋아. 나도 똑같이 해 줄 거야. 진심이에요. 누구든 불러와서 내가 똑…!”

그가 내 말을 막고 거칠게 키스 해왔다.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키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져 갈 때쯤 나를 놓아준 그가 양팔로 나를 끌어안고 다정하고도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지 마. 무릎을 꿇으라면 그럴 수도 있어. 진심이야. 그대가 다른 남자랑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견디지 못할 거야.”

그의 속삭임에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었지만 어쩌겠나.

그냥 이런 순간이 너무 좋은걸.

그가 나를 놔주고 한없이 다정하게 바라봐서, 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다음엔 이런 경고도 없어요. 진짜 해버릴 거야.”

“얼마든지. 그럴 일이 아예 없을 테니까. 이래서야 우리 제대로 된 연기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

“난 할 수 있거든요?!”

그를 얄밉게 노려보자 또다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큰일이야.”

“뭐가요?”

“주머니에 넣어 다녔으면 좋겠어. 아니면 목걸이에 걸고 다니던지.”

“끔찍한 말을.”

기함을 하면서도 나는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이 남자는 어떻게 이다지도 사랑스러울까?

여자가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 훈련이라도 받은 것 같아.

“여자는 갔어요?”

“그대가 가버리고 나서 진작에 돌아갔어.”

“근데 왜 바로 오지 않았어요? 내가 화난 걸 알았잖아요!”

아이든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미안해. 오늘은 정말 내가 다 잘못했어.”

“아니까 다행이네요.”

또다시 입술을 삐죽거리자, 아이든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리안….”

“왜 그래요?”

갑작스러운 태도에 나는 당황해서 그를 붙잡았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지?

내내 괜찮아 보였는데….

“할까?”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깜빡거렸다.

아이든이 그런 내 묵묵부답을 무엇으로 받아들였는지 나를 순식간에 번쩍 안아 들었다.

“앗! 왜 이래요!”

당황해서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때려봤지만, 그는 나를 놔주기는커녕 침대에 나를 눕히고 위로 올라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얼굴이 희게 질려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뭐, 뭐예요? 이 환한 대낮에! 미쳤나 봐! 문 열려 있는 거 안 보여요?”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며칠은 이러지 않더니 또 왜 그러는지 몰라!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문이라도 좀 닫고 와요…!”

간절하게 속삭이자 그가 낮게 웃으면서 내 목에 입 맞추고 일어섰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든이 다시 내 위로 올라와 내 손을 잡아 끌어내렸다.

“얼굴 보여줘.”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대보다 중요한 게 어딨겠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그가 다시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해, 리안.”

***

왤까?

황태자는 궁에 있어야 하고, 본래 이렇게 막 직접 찾아올 위치에 있는 분도 아니실 텐데.

대체 왜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불만이 한가득했지만 애써 미소를 가면으로 뒤집어쓰고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꺼림칙했다.

아이든 역시 내 옆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짜증 나는 표정을 짓고서 황태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연유로 황송하게도 저희를 직접 찾아오셨나요?”

“친절하게 말할 필요 없어, 부인.”

아이든이 짓씹듯이 말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스산해졌다.

황태자는 그런 분위기나 아이든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들에게 양아들이 생겼다던데? 입적이 승인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던데. 내가 좀 호기심이 왕성하잖나?”

어련하실까.

발 빠르기도 하지.

나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부인은 여전하군. 참 솔직해.”

“그게 매력이지.”

아이든이 맞받아쳤다.

나는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했다.

황태자가 놀란 눈으로 아이든을 바라보았다.

“자네 그런 말도 할 줄 알았나?”

“쯧.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이든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나는 얼른 아이든의 손을 잡고 어색하게 웃었다.

“전하. 그래서 용건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황태자가 아이든의 손을 맞잡은 내 손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대들의 양아들이 보고 싶어.”

나는 순간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다.

아슬란의 머리를 염색해 둔데다가 아이가 어미를 더 많이 닮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자못 불안해졌다.

아이를 황태자에게 보여도 되는 걸까?

“그건 불가능할 것 같군.”

아이든이 나를 힐끗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가 내 손을 더욱 꼭 붙들어왔다.

마치 불안해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여 주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내내 평민으로 살아온 아인데. 황태자를 눈앞에서 보면 까무러칠 줄 누가 알겠어.”

아이든의 말에 황태자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네. 궁금했는데. 아쉽게 되었군. 어떤 아이기에 ‘그 공작’님께서 선뜻 입양에 나섰을까 싶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든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겨우 고작 그딴 거 때문에 내 집에 들이닥쳤다는 거군. 황태자 전하께서는 할 일이 없이 한가하신가 본데.”

황태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친우 집에 오길 뭐가 그렇게 어렵겠나. 내 엉덩이가 너무 무거워 황궁 땅에 붙은 것도 아니고.”

아이든이 으득하고 이가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든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이토록 짜증이 난 이유를 난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사랑을 나누려는 타이밍에 들이닥친 황태자가 얄밉기도 했겠지.

민망해진 마음에 큼큼거리며 아이든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아이든은 그런 내 어깨를 끌어당겨 안으면서 짓씹듯이 말했다.

“제발 좀 꺼져. 눈치가 있으면.”

황태자가 커진 눈으로 나와 아이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새…? 허….”

이러다 얼굴이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아이든을 잡지 않은 왼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읊조렸다.

“아이든, 제발 그만 해요….”

***

황태자는 밖에 몰려 있는 자들에 대해 묻고 호기심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 나를 한 번 더 지긋이 바라보고는 싱긋 웃었다.

“그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건 내 진심이야.”

나 역시 해 없이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물론 나는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변함없는 생각 때문에 그의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아이든 역시 나의 의견에 동조했다.

속이 시커먼 놈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첨언하면서 말이다.

이 제국의 미래가 달린 자가 속이 시커멓다니.

제국은 정말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황태자는 아슬란에 대해 큰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갔다.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사용인이 드디어 몰려든 사람들의 사정을 일일이 작성한 서류 보고서를 올렸다.

나와 아이든, 칼은 집무실에 둘러앉아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면서 얼굴이 희게 질렸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들 많았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서류 한 뭉치를 잡아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우리는 장작 세 시간 동안 숨만 쉬면서 서류를 들추어 보았다.

집무실 안에는 서류를 들출 때 나는 팔랑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구나.

보고서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고, 나만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며 억울하고 분통해 했던 내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이렇게 부유하게 옷을 입고, 따뜻한 곳에서 자고 맛있고 풍요로운 음식을 먹으며 값비싼 장신구를 달고 살아가는데.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고 분통했을까?

나는 너무나 복에 겨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후원자를 선정해야 할지 기준선이 필요했다.

게다가 솔직히 서류를 읽으면 읽을수록 강하게 드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제국민들을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황실이에요.”

침묵을 깨고 속상한 목소리로 내뱉은 내 말에 칼이 쓰게 웃었다.

“어디 가서 그런 얘기하면 황실 모독죄로 잡혀간다, 리안.”

아이든이 서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여상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듣는 귀라곤 여기 두 사람 뿐인걸요.”

“실제로 황제 폐하께서 제국민을 돌보는 데에 큰 관심이 없으신 것은 맞는 말이지요. 제국이 이만큼 번영한 것은 모두 다 황태자 전하와 각하의 덕분입니다.”

칼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실제로 황실 내에서 입지는 폐하보다 황태자 전하께서 더 좋으신 편이지요. 모두 다 쉬쉬할 뿐.”

“칼 폴쳐. 그 입.”

아이든이 짐짓 엄한 말투로 꾸짖자 칼이 금방 입을 다물었다.

나는 칼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제국의 주인 대신 고군분투 하느라 정말 힘들었겠어요, 아이든.”

아이든이 눈썹을 치켜 올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정말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아이든이 움찔거리며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는 꼭 부끄러울 때 저렇게 시선을 피하고는 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진심이 담긴 칭찬을 듣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퍽 어색한 일일 것이다.

씁쓸하고 슬픈 일이었다.

그가 해 온 모든 일은 칭찬받아 마땅했는데.

“이렇게 멋진 남편을 두어서 정말 좋네요.”

아이든은 결국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면서 애원했다.

“제발 그만해, 리안….”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칼을 바라보았다.

칼 역시 흐뭇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고 키득거렸다.

잡담은 여기까지였다.

우리는 1시간여 되는 시간 동안 후원자 선정 기준을 정하고 서류를 분류했다.

먹고 살 기술이 없어 당장 굶어 죽게 생긴 자들은 어려운 순위로 5명을 선정해 가장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데에 주력하기로 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 중에 여자아이들 2명을 선정해 하녀 교육을 시키기로 했고, 남자아이들 중 영특한 아이들을 4명 정도 골라 집사 교육과 기사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해 주기로 했다.

솔직히 평민들 중에서도 이런 데에 정보가 발 빠른 집안은 아이들을 이른 나이부터 귀족가의 사용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나 가난하고 평민이라는 수준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어려운 자들이었다.

당연히 그 어떤 정보도 가질 수 없는 최하 중에서도 가장 최하층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몰라 굶어 죽는 불쌍한 자들.

공작가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고 나면 여기에 남을 수도, 혹은 다른 귀족가로 가서 일하며 온 가족이 먹고살 만큼의 수당을 받게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선정된 아이들의 집안에 우리는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후원해 주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도 아이든과 칼은 본래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또다시 바빠졌다.

나는 집무실을 나와 내 서재로 왔다.

그리고 칼튼에게서 그동안 내가 처리하지 못했던 재정과 안살림의 전반적인 일들을 보고 받았다.

피곤한 하루 일과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즈음 아슬란이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부리나케 아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윈터 경에게 인사를 마치고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또다시 전처럼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어머니!”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 지으며 아슬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찾았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니?”

“들어오세요, 어머니.”

나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의 침실에는 여전히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책이 늘어져 있었지만 티 테이블에는 정갈하고 예쁜 찻잔과 주전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로 꾸며져 있었다.

“아슬란. 이게 다 무엇이니?”

“앉으세요, 어머니.”

나는 티 테이블 의자를 빼내어 앉은 후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은 후 말했다.

“디저트… 제가 만들어 봤어요, 어머니.”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겉보기에 너무 완벽하고 예뻐서 당연히 주방장의 솜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어떻게… 너 혼자서 한 거니?”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위험한 게 있을 땐 하녀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제가 했어요! 어머니께 맛있는 디저트를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나는 커진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방에 늘어진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모든 책들이 다 제과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어여쁘게 올라온 디저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곧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 때문에… 이걸 만들려고 그렇게 방에서 책만 읽었니?”

“어머니. 조금만 더 자주 제 방에 찾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자주 뵙고 싶어요. 어머니께서 바쁘시다는 것은 알지만….”

“!”

아이의 말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5일 동안 한 번도 아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난 그동안 대체 무얼 했던 걸까.

아이가 낯선 곳에서 불안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앞으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었다.

아이의 양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었다.

“아슬란. 내가 미안하구나. 널 좀 더 자주 찾아왔어야 했는데….”

“어머니는 바쁘시잖아요. 이해는 하고 있어요.”

“아무리 바빠도 자식 얼굴조차 보지 않으면 안 되지. 부모는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좀 더 자주 찾아오마. 아카데미에 가기 전까지 매일 나와 이렇게 티타임을 가져 주겠니?”

아슬란은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기쁜 듯 해맑게 웃어 보였다.

“네, 어머니!”

나는 아슬란을 품에 안고 다독여 준 뒤 다시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아이가 만든 디저트를 한 개 가져와 입에 넣어보았다.

믿을 수 없게도 달콤했다.

나는 커진 눈으로 한껏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손뼉을 쳤다.

“정말 너무 맛있네! 아주 달콤해! 아슬란! 넌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구나!”

내 과장된 칭찬에 아이가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붉어진 얼굴로 예쁘게 웃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아이와 티타임을 가지는 동안 디저트를 빠짐없이 한 종류씩 모두 다 먹어보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할 생각을 다 했니?”

아슬란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어제 아버지가 왔다 가셨어요.”

아이든이?

혼자서?

“아버지께서 어머니는 아주 달콤한 걸 좋아하신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괜찮다고 했어요. 아버지께서 그러셨잖아요. 제가 행복하면 된다고요. 저는 책을 보는 동안에도, 달콤한 걸 만드는 동안에도 아주 행복했어요, 어머니.”

요 며칠 사용인들은 아슬란의 방에서만 나오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보이곤 했었다.

모두들 아슬란을 사랑스럽게 여겨 주었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란 이토록 사랑스러운 것인데.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너무 고맙구나.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아.”

아이는 티타임을 가지는 내내 내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종알거렸다.

검술 수업에서 스승님께 칭찬을 받았던 이야기부터 아이든이 나를 대하는 걸 보고 여자를 대할 땐 그렇게 대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하지만 아주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도 아슬란은 검술에도 학문에도 모두 다 뛰어난 흡수력을 보여주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모두 다 아슬란을 칭찬했다.

성장이 나날이 몰라보게 빠르다고 했었지.

나는 어쩌면 그것이 아이가 황실의 핏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혼자 추측해 보았다.

아이와의 티타임이 끝나고 방을 나서면서 나는 다시 한번 아슬란을 품에 안아주었다.

“내일 또 올게. 이젠 너를 위한 책을 읽으렴.”

“네, 어머니.”

아이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뒤로하고 침실로 돌아온 나는 설렁줄을 당겼다.

곧 리제가 들어왔다.

“마님 저 부르셨어요?”

“내일은 시내를 다녀오고 싶어. 마침 살 것도 있고, 아슬란을 위한 선물을 하나 구매하고 싶어서.”

“도련님이 정말 기뻐하시겠어요!”

사용인들은 이제 아슬란을 도련님이라 부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같은 평민 출신이라고 하대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심 큰 걱정이었던 나는 크게 안심했다.

아슬란은 명실상부하게 저택에서 가장 크게 사랑받는 주인이 된 셈이었다.

“그래. 정말 기뻐하겠지. 내일 마부에게 시내에 나갈 거라고 일러주고 오렴.”

리제가 알겠다고 대답하고 침실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튼이 침실 문을 두드렸다.

“마님.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침실로 가져다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내려갈게요, 칼튼. 일러주어 고마워요.”

“예. 알겠습니다, 마님.”

칼튼이 돌아가고 나 역시 금방 침실을 나왔다.

다이닝룸으로 가자 정갈하게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냅킨을 무릎 위에 펼치면서 내게 물을 따라주는 하인에게 말했다.

“각하께서는?”

“식사를 물리셨습니다.”

하지 않겠다고?

나는 놀란 눈으로 하인을 바라보았다.

“많이 바빠 보이셨습니다. 업무를 마치면 간단하게 요기 하겠다고 하셔서요.”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시작했다.

점심식사가 거의 마무리 될 때쯤 다이닝룸으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리안.”

아이든이었다.

그는 내게 다가와 이마에 입 맞추고 다정하게 말했다.

“급히 외출을 해야 할 거 같아. 신성제국에서 서신이 왔어. 황실에 다녀올게.”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 일인가요?”

“그래.”

수행 사제를 찾은 걸까?

찾지 못한 걸까?

“다녀오면 제게도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하지. 늦을지도 모르니 안 오면 먼저 자도록 해. 알겠지?”

“네. 그럴게요.”

“호위는 침실에 한 명 더 세울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감시가 아니고요?”

“호위지.”

그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내려온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알겠어요.”

내 대답에 그가 내 귀에다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였다.

“사랑해.”

심장이 순식간에 따뜻해져 오는 동시에 손가락 끝이 간질거렸다.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 입에 버드 키스를 해 준 그가 다이닝 룸을 나가고 나는 나머지 음식을 먹는데 집중했다.

부디 좋은 소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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