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39)

15. 아이든 딜리아

어머니는 얼굴이고 몸이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아이든을 때렸다.

볼이 퉁퉁 부어오르고 축 늘어진 상태에서도 온몸이 덜덜 떨리도록 아팠다.

그래도 몸이 아픈 것보다 어머니께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나를 좀 봐주세요.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잖아요. 어머니의 아들이잖아요.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 어머니 품에 안겨보고 싶어요.

그런 생각으로 펑펑 울면서 날밤을 샌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나중에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느 날엔가 어머니는 미쳐버렸다.

야밤에 고요한 저택에 어머니의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괴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아이든의 아버지는 뒤늦게 어머니를 고쳐보려 유명하다는 의원을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

어머니를 고칠 수 있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든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그때에도 참 냉정해 보였다.

어머니를 품에 안고 미안하다 한마디 사과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

그는 부친이 두렵고 끔찍했다.

저건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그럼 죽어야 하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미쳐버리고 나서도 그를 괴롭혔다.

매일같이 제 큰아들을 찾아와 고함질렀다.

[내가 괴물을 낳았어! 하하하…! 괴물을, 괴물을 낳았어! 넌 괴물이야! 누가 너 같은 걸 사랑할 수 있겠어?! 그놈은 괴물이야…! 그런데 넌 그놈의 자식이잖아! 으흐흐… 괴물… 괴물 같은 놈…!]

[너 때문에 불행해! 너로 인해 불행해졌어!]

[넌 죽을 때까지 혼자여야 해. 널 원망하고 저주해. 너만 낳지 않았어도 내가… 다 너 때문이야! 차라리 죽어버려!]

아버지는 아이든마저 점점 정신줄을 놓자, 어머니를 영원히 가두어버렸다.

아이든은 더 이상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지만 매일 밤 어머니의 환영을 보았다.

어머니는 매일매일 아이든에게 속삭였다.

[차라리 죽어버려.]

아버지는 아이든을 붙잡고 매일같이 말했다.

[정신 차려라, 아이든! 너는 이 가문의 후계자다! 딜리아 가문은 무너져서도 명예를 잃어서도 안 된다!]

아이든이 원한 것은 그저 감싸 안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뿐이었다

그것마저 너무 어려운 소원이었을까.

아버지는 아이든을 더욱 몰아세웠다.

정신 줄을 놓아가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이든은 모두를 원망하고 저주했다.

나는 매일같이 고통받는데, 동생들은 늘 멀쩡해.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은 건드리지 않아.

그들은 나를 미워해.

나도 그들을 미워하고 저주해.

차라리 모두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매일 밤 울면서 부모와 형제를 그리고 스스로를 저주했다.

그렇게 그는 서서히 어둠에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14살의 어느 날, 아이든의 손에는 검이 들렸다.

그 순간, 이 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신비롭고 아름답던 요정님이 떠올랐다.

나의 요정님.

아름답게 빛나던 나의 첫사랑.

당신에게 모든 걸 바칠게요.

아마도… 이젠 당신처럼 빛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아이든은 웃었다.

원망, 슬픔, 외로움, 사랑, 미움, 해방감이 하나로 합쳐진, 복잡한 감정이 실린 참혹하게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아이든은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냉혹하고 두렵던 아버지도 사람이었다.

잠든 모습이 한없이 부드럽게 보이는.

“당신을 저주해.”

두 손으로 잡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온 힘을 다해 검을 꽂아 넣었다.

아버지가 아닌, 그 자신의 배에.

털썩.

“우욱.”

무릎 꿇고 주저앉은 아이든의 입에서 울컥 피가 솟구쳤다.

몰려오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생각했다.

멍청한. 심장을 찔렀어야지.

검을 망설임 없이 배에서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배에서 피가 솟구쳐 아버지의 침실 사방으로 튀었다.

다시 찌르고 싶었지만 고통으로 덜덜 떨리는 손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에서 검이 툭 힘없이 떨어졌다.

그 찰나, 눈을 뜬 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한없이 커진 동공에 계속해서 피를 토해내는 자신의 실루엣이 비췄다.

평생 아버지의 그런 표정은 처음 보았다.

충격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아버지는 튕겨지듯 일어나 아이든을 들쳐 안았다.

“안 돼! 아아, 안 된다! 안 돼!”

아버지의 눈에서 떨어지는 저것은 눈물인가?

“거, 거, 거기 아무도 없느냐! 의원을 불러오라! 의원을 불러와!”

아버지가 말을 더듬기도 하셨던가?

“안 된다! 안 돼! 참거라! 안 된다!”

“쿨럭…!”

또 한 차례 피를 토해내자 정신이 어지럽고 아찔해졌다.

아버지는 저를 안은 채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온 집안의 사람들이 깨어나 저택이 환해졌다.

고요하던 저택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 의원을! 의원을 불러오라!”

나를 죽인 것은 당신인데.

어째서 그렇게 희게 질린 얼굴이야?

어째서 그렇게 아픈 얼굴이야?

내가 이렇게 되길 바랐잖아.

당신들의 소원이었잖아.

“견뎌야 한다! 견뎌야 해! 괜찮다. 괜찮아! 이 아비가 있다! 견디거라!”

그렇게 듣고 싶던 말이었는데.

괜찮다는 말.

진작 나를 좀 찌를 걸 그랬나 봐.

그럼 좀 더 일찍 사랑받았을까.

자신의 방 침대에 눕혀진 채 아이든은 그런 생각을 했다.

사용인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아이든의 배를 계속해서 눌러 지혈하고 있었다.

침대는 순식간에 피로 물들어 축축해졌다.

“괜찮다! 아비를 믿거라! 아이든! 정신 차려라! 살 수 있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다급하게 계속 말을 걸어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이 감기려고 하면 어김없이 말을 걸어왔다.

“아이든! 안 돼! 아비를 봐! 의원이 온다! 이제 의원이 와! 눈을 감으면 안 된다!”

연신 눈물을 어린아이처럼 닦아가며 말을 거는 아버지와, 어느새 달려온 것인지 자신을 둘러싸고 엉엉 우는 동생들 때문에 귀가 멍하고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면서 의식이 희미 해져갔다.

힘없이 눈이 감겼다.

이것으로 되었어.

저들이 나로 인해 울었잖아.

한줄기 희미했던 의식마저 끊기고 아이든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아론 딜리아는 안 된다고 목 놓아 고함지르며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든이 희미하게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눈앞에는 익숙한 인영이 서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나의 요정님.

나는 죽은 건가?

그러면 당신은… 정말 천사인 건가?

“…이든. 아이든.”

다정하게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

따뜻하고 고귀한 목소리.

아이든은 마음이 한없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희미하게 떠졌던 눈을 감았다.

온전한 손길을 느끼고 싶어서.

“괜찮아, 아이든. 괜찮아.”

어린아이 달래는 목소리에 아이든이 다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요ㅈ….”

개미만 한 작은 목소리는 잔뜩 쉬어서 나왔다.

요정님은 쉬잇-하고 작게 속삭이고 아이든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 잘 될 거야. 넌 살아야 해.”

뭐…?

아직 죽은 게… 아닌가…?

어째서…?

그녀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원하니까.”

그 순간, 아이든을 잡은 그녀의 손에서 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너무 눈이 부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아이든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검에 찔려 죽어가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과다출혈로 죽을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아이든이 정신을 완전히 차렸을 때, 아버지는 저택에 없었다.

형제들은 매일같이 그를 찾아와 염려하고 걱정하며 시중을 들어주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매일같이 학대당한 채로 고통 속에 허우적거릴 땐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들이.

형제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든은 아무런 감흥도 감동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회복 기간 동안 침대에서 심적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드디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거동이 가능해졌을 때, 아이든은 결심했다.

[넌 살아야 해. 내가 원하니까.]

그래. 이미 산목숨인데.

살아야겠다.

자신의 생을 원했던 그녀를 생각해서라도.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어느 날, 아론이 돌아왔다.

살아나다 못해 회복해 저택을 돌아다니는 아이든과 마주쳤을 때, 아론은 커진 눈으로 한동안 우뚝 멈추어 서서 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키가, 조금 더 컸나.

이렇게 훌쩍 자랐던가.

아론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안심했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났음에.

“…다행이구나.”

“…예.”

아이든은 무감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자랐구나. 못 본 새에.”

“…….”

아이든은 아론 딜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검푸른 눈동자에 아버지의 부드럽게 풀린 얼굴이 가득 찼다.

부드럽게 풀린 표정이라니.

외모가 아니었다면 제 아비가 맞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비와는 반대로 무감한 얼굴의 아이든은 놀랍도록 이 전날의 아론을 닮아있었다.

아론은 그 모습을 그토록 바라왔는데, 이 순간 믿을 수 없게도 슬퍼졌다.

“그래. 들어가 쉬거라.”

아이든은 꾸벅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 그를 지나쳐갔다.

냉정하도록 빠르게.

그 뒤로 며칠은 아론을 볼 수 없었다.

일주일이 더 흘렀을 때, 훈련장에서 검술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던 아이든은 심장에 칼이 꽂힌 채로 나란히 떨어져 죽은 부모의 시신을 발견했다.

유서는 짧았다.

[모든 것은 아이든 딜리아에게 상속한다.]

유서 외에도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우리가 너를 망쳤구나. 아들을 잃을 뻔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못난 부모를 용서치 말거라. 행복해지거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하….”

아이든은 편지를 손에 든 채로 허탈한 웃음을 뱉어냈다.

행복해지라고…?

이제 와서…?

“…미친… 하하….”

아이든은 그 자리에 한동안 그렇게 서서 웃을 뿐이었다.

***

장례는 빠르게 치러졌다.

형제들은 목놓아 울었다.

아이든의 눈에 비친 그들은 참으로 역겹게도 순수한 존재였다.

아이든은 울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그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일가친척 모두가 수군대며 저를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들은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래알만큼도 모를 테니까.

장례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든의 침실은 부모의 방이 되었다.

아이든의 서재는 아버지의 집무실이 되었다.

허탈했다.

이 자리를 가지려, 그토록 아등바등했음이.

아이든은 집무실 책상을 손으로 쓸면서 비뚤게 웃었다.

진작 죽어볼 걸 그랬나 보네.

집사인 칼튼이 아이든을 염려해 곁에서 노력했지만, 그것마저 우습게 느껴졌다.

제가 맞고 있을 때는 왜 이렇게 잘해주지 못했던가.

이 집안의 사람들 모두가 똑같다.

하나같이 위선적이다.

한동안 아이든은 그렇게 모든 것을 비뚤게 받아들였다.

슬픔 따윈 없었다.

마치 모든 감정을 하루아침에 지워낸 것처럼 보였다.

형제들은 매일같이 아이든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엔가 형제들이 아이든을 찾아와 떠나겠노라 말했다.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다.

어째서 가느냐고 물었지만, 대답 또한 없었다.

그렇게 형제들마저 저택을 나가버렸다.

그래도 형제라고 경제적 지원이라도 해줘야 하나 싶어,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해 보았지만 제국의 어디에서도 형제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뒤로 아이든은 한동안 부모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저택은 더욱 살얼음판이 되었다.

칼튼이 걱정되는 마음에 매일같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을 때,

아이든은 항상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눈에 초점 따위는 없었다.

아이든이 침실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는 그날부터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냉혹하게 태어났던 사람처럼 굴었다.

어린 나이에 공작 위를 물려받았지만,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이든을 두려워했다.

아이든은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매일같이 자신에게 쓸모없다 말했지만, 사실 자신은 제국의 누구보다 강한 무력을 지녔음을.

세뇌와 무시와 천대에 짓눌려 그는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부모를 떠올리게 되는 끔찍한 딜리아 성을 처분하고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 오로지 아이든만의 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요정님을 까맣게 잊게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것처럼.

아이든은 매일같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갈고닦았다.

더 강해져야 해.

더 냉정해져야 해.

아무도 나를 밟고 올라서지 못하도록.

아무도 나를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아무도 내게 두려움으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고 냉정해졌다.

제국에서 그 누구도 그에게 두려움으로 군림하지 못했다.

그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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