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망가져 버린다 해도
결혼 예식이 모두 끝나고 난 후, 연회장은 그야말로 파티 분위기가 되었다.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고 난 후, 아이든은 내 손을 잡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려는 거예요? 아직 연회가 한창인데…?”
“그대 얼굴이 창백해. 쉬어야 해.”
아….
내 얼굴이 창백한가…?
나는 괜찮은데….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든이 온갖 걱정이 가득 들어찬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나를 아직도 손대면 깨질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게 몹시 낯설고 간질거리게 느껴졌다.
그가 다시 내 손을 끌어당겨서, 나는 그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물었다.
“저택으로 돌아갈 건가요?”
“황궁에 특별히 신방이 마련됐다. 우린 거기서 하룻밤 묵고 갈 거야.”
예? 황궁이라뇨?
아, 아니 그보다 신방이라니?
“저, 저기 지금 제가 뭘 잘못 들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그래도 부모님께 인사는….”
우뚝.
아이든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내게 가까이 다가와 서서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본인 몰골이 어떤 줄이나… 하…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려던 나는 달싹이던 입을 다물었다.
그가 곧 짓씹듯이 말했다.
“두 번이야. 벌써 사경을 헤맨 것만 두 번이라고.”
“아이든, 저는 괜….”
“게다가 한 번은 심장도 안 뛰었지. 사람 미쳐버리게. 내가 들쳐 업고 가야겠어?”
“…가요. 갈게요.”
맥이 안 뛰었다는 리제의 말을 들었던 터라 나는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단지 악몽을 꾸고 일어났던 것뿐이었는데.
심장이 멈추었던 것 역시 일라즈의 힘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곧 아이든이 다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에게 끌려 황궁 별채에 마련된 신방으로 갔다.
황족도 아니고, 일개 귀족 따위에게 황궁에 신방을 마련해 주다니.
황제가 미친 게 아닐까?
공작에게 쩔쩔맨다는 소문은 진짜였던 걸까?
본궁에서 좀 떨어진 별채에 마련된 신방은 별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말 화려함의 극치였다.
온천지가 번쩍이는 통에 내 몸이 다 망극해졌다.
신방이라고 바닥이며 침대며 여기저기 새빨간 꽃잎이 흩날려서 눈 둘 곳이 없었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아이든은 익숙한 듯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거슬리는 모든 물건들을 발로 툭툭 밀어내고 꽃잎들을 짜증스럽게 발로 훑어내고는 나를 데리고 곧장 침대로 갔다.
누가 봐도 야릇한 방 분위기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 방에 좀만 더 오래 있다가는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빌어먹을, 어떤 놈이 이런…!”
아이든은 짜증스럽게 침대 위에 흩날리는 꽃잎을 털어내고 말했다.
“앉아.”
“…의복을….”
“아.”
그는 침대 옆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곧이어 황궁 시녀 두 명이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리제는요?”
“그 아이는 저택으로 돌아갈 거야.”
“왜요?”
“여긴 황궁이야, 리안.”
“…….”
나는 고개를 돌려 황궁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리제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부인이 의복이 불편하다고 하니, 적당히 숨쉬기 편안한 옷으로 가져오고 갈아입는 것을 도와. 끝나면 들어오지.”
아이든이 시녀들에게 명령하고서 방을 나섰다.
그는 황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꼭 황족이라도 된 양 시녀들을 부리는 게 익숙해 보였다.
시녀 한 명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 하나와 실크 카디건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시녀들의 시중을 받아 조였던 코르셋을 풀고 품이 넓은 원피스로 환복을 하고 나자 한결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하명하십시오.”
시녀들이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쉬고 싶으니 나가 주겠어요?”
“예, 부인.”
시녀들이 물러나는 것을 보며 침대에 앉았다.
번쩍거리는 황금색이 부담스러웠지만, 엉덩이에 닿는 매트리스가 무척 부드럽고 포근했다.
손으로 침대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고 있는데 문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편안한 옷으로 환복한 아이든이 어느새 들어와 자신의 제복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있었다.
황궁에는 없는 옷이 없나 보다.
아니면 우리를 위해 의복까지 마련해 두었을까?
“누워 있지 왜 그러고 있어.”
아이든이 다가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내 이마에 가져다 대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이마에서 손을 내리면서 그가 말했다.
“열이 난다, 리안.”
나는 그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내 이마에 가져다 대보았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대 손도 뜨거워서 그래. 누워. 저택에서 챙겨온 약이 있어. 혹시 몰라 시녀에게 달여서 가져오라고 일러두었으니 금방 올 거야.”
“네….”
아이든이 일어나 나를 침대에 누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안 그래도 지치고 힘들었던 나는 못 이기는 척 그의 손길을 의지해 침대에 누웠다.
아이든이 이불을 내 목까지 끌어다 덮어주었다.
“…공작님은요?”
“그대와 함께 잘 건데?”
“네에?”
너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가 그의 제지에 도로 눕고 말았다.
“가, 같이 한 침대에서요?”
“뭐가 문제지? 우린 이제 진짜 부부가 되었는데.”
“그… 그렇긴 하지만….”
아이든은 이불을 다시 제대로 덮어주고는 나를 힐끔 바라보고 낮게 웃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참에 저택 침실도 하나로 합치는 게 좋겠군.”
“네에에?”
“농담이다.”
하….
이 인간이 진짜…!
나는 그를 한번 째려봐 주고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버렸다.
“놀리는 것 좀 그만하세요!”
“…미안해.”
흠칫.
그가 내게 사과의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 낯선 음성에 이불을 살짝 내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가 나를 바라보며 아프게 미소 지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늘 그대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
아니야. 그거 아니에요….
내가 지금 열나는 게 왜 당신 때문이에요?
“밝고 건강했던 그대가 공작저에 와서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나와 결혼해 줘서 정말 고맙다.”
속이 울렁거려.
두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흔들리는 시야에 그가 일렁거렸다.
나는 이불을 완전히 내리고 일어나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프게 웃지 말아요….
그런데 내가 이 말을 당신에게 해도 되는 걸까요?
“사랑해 주겠다는 약속도….”
욱신….
가슴이 너무 아파서 심장 깨 옷을 부여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럼에도 나는 표정을 갈무리하려고 애썼다.
“그런 약속은 해줄 수 없어, 리안.”
그런 못된 말 하면서 애칭 부르는 건 반칙이잖아….
두근거리면서도 욱신거리는 심장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심장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부디… 용서해.”
이건 반칙이야.
너무 해.
이건 아니잖아요.
그런 얼굴로….
그렇게 아픈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하….”
애써 갈무리했던 표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왜 약속을 못 해줘요…? 앞으로의 일을 당신이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
“리안….”
무너진 내 표정을 바라보는 아이든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당장 사랑해 달라고 안 해요… 그렇게 고집 피우지 않을 거예요…!”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그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그래도 장담은 하지 말지. 나한테 제발 그러지 말지….”
눈물 섞인 목소리로 속마음을 끄집어냈다.
“당장 사랑해 달라고 안 할게….”
한번 터진 눈물은 의지를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자존심을 세울 틈도 없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눈물에 무너져 흐느껴 울었다.
그의 고통 섞여 떨리는 깊은 한숨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의 복잡한 마음이 더 나를 아프게 찔러왔다.
나를 밀어내는 명쾌한 답이 있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나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그렇게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눈물에 섞여 심장을 옥좨는 고통마저 흩어져 버렸으면….
***
결혼 예식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사제가 눈치채지 않을까 미리 예상은 했다.
하지만 식이 끝나고 따로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든은 결혼식 중간에 모두가 듣는 앞에서 리안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이 황당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가 디누트 자손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에도, 신탁의 내용이 나왔을 때에도 아이든은 침착하게 미소 지었다.
리안이라면 왠지 고귀해 보이고 특별해 보이는 느낌이 늘 있어왔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그녀의 방을 꾸며줄 때에도 왠지 신성제국의 양식을 가져오고 싶었지.
아이든은 그녀가 디누트의 자손이라는 것에 왠지 모를 뿌듯함 마저 느꼈다.
사제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까지는 그랬다.
리안이 이미 신성력을 사용했다는 말.
아이든은 리안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다 신성력을 썼다는 거지?
그것이 이 여자가 쓰러진 것과 관계가 있을까?
그러나 정작 바라본 리안의 얼굴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혼란함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녀 자신조차 모르는 신성력이라.
아이든은 이것도 돌아가면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식의 막바지, 반지를 끼워주려고 돌아섰을 때 아이든은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예식 중간에 갑자기 쓰러지면 큰일이었다.
사제의 말이나 다른 것들을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반지를 서로 나눠 끼고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에 입 맞추었다.
이로써 제국의 귀족 모두에게 리안이 아이든의 배우자임을 알린 것이었다.
아이든은 식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돌아다니며 인사를 끝마쳤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곧 쓰러질 것만 같은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모든 인사치레를 끝마치고 나서야 아이든은 리안의 손을 붙잡고 급하게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제 몸은 챙기지 않고 부모님 생각부터 하는 그녀에게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조건 절대 안정이라는 의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입으로는 못된 말들만 터져 나왔다.
다시 그녀의 심장이 멈추어 버리면, 이번엔 다시 깨어나지 않고 그대로 잃게 된다면.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리안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무조건 누워있어야 했다.
화려한 게 좋다던 그녀에게 최고로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황제와 황태자를 협박까지 해가며 얻어낸 황궁의 신방은 오늘 환자 요양원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방에 들어서자마자 남사스럽기 짝이 없는 꽃잎들과 분위기에 치가 떨렸다.
아이든이 황궁을 제 집처럼 들락거린 지가 도대체 몇 년인가.
제가 이런 걸 못 견디어 하는 걸 황궁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틀림없이 카이의 짓이었다.
돌아가면 카이부터 찾아 멱살부터 잡고야 말리라.
아이든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민망한 마음에 꽃잎을 여기저기 흩트려버렸다.
옷을 갈아입고 시녀에게 약을 달여 오라 들려주고 돌아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살펴본 리안은 열이 났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든은 고개를 들이미는 불안감을 애써 눌러 삼켰다.
괜찮을 거야.
쉬면 돼.
다 괜찮아질 거야.
사제의 말을 들은 뒤로 리안은 줄곧 얼굴에 핏기가 없고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되지도 않는 농담도 던졌다.
제가 이런 농담도 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녀 때문에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은 비단 이런 농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든은 리안으로 인해 서서히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리안은 이미 아이든의 세상 그 자체가 되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그녀가 원한다면 정말 제국이라도 손에 쥐여주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절절한 사랑 고백에 대한 답은 별개의 문제였다.
자신이 그녀에게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 증명되면 가차 없이 그녀를 놓아줄 계획이었다.
무조건 리안을 제 옆에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위험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럼에도 제 옆을 지켜주고 결혼해 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제가 입장 바꿔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고 떠난다고 해도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그녀를 지킬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당장 사랑해 줄 수 있다는 답을 해 줄 수 없는 것도,
우는 그녀를 달랠 방도가 없다는 것도
심장이 미어지도록 아팠지만 별 수 없었다.
아이든은 서럽게 우는 그녀 앞에서 고통 섞인 한숨을 길게 뱉어냈다.
***
울다 지쳐 잠이 들었었나 보다.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켜 보니 방은 어두컴컴하고 내 바로 옆에 아이든이 잠들어 있었다.
한 침대에서 잘 거라는 말은 진심이었나….
이불을 살며시 들어 그의 목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잠든 그의 얼굴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방이 너무 어두워 세세하게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가 눈치채지 않도록 몸을 슬며시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침대 앞 티 테이블에 약이 담긴 컵이 놓여 있어 나는 그것을 들어 한 번에 들이켰다.
“…으….”
몇 번이나 먹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다.
쓴맛이면 차라리 나을 텐데.
약의 요상한 맛에 몸서리를 치면서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며시 들쳐 보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지 하늘이 어둑해져 있었다.
낮에는 번쩍거리던 모든 건물들이 실루엣만 보였다.
“…으으….”
순간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놀라 그에게로 다가갔다.
“…흐헉…!”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은 그가 거칠게 숨을 쉬면서 괴로워했다.
“! 아이든!”
놀라서 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부여잡았다.
“괜찮아요?”
침대 바로 옆 협탁 위에 놓인 등에 불을 켜고 그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이마에 엄청난 양의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세상에! 땀 좀 봐….”
나는 원피스 소매를 끌어당겨 그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아이든이 흠칫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동공이 풀려 초점이 흐려진 눈이었다.
“너…!”
아이든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우악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네…?”
“너 뭐냐고 대체!”
갑자기 높아진 언성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아… 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몸도 입도 굳어버렸다.
머리도 역시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잡은 팔이 너무 아팠다.
“아… 아이든… 아, 아파요….”
내 신음 섞인 말에 그가 이제야 번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놓아주었다.
어느새 눈에는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은 그는 어딘가 모르게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되짚어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왜…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저리 가.”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화가 난 듯도 하고 음산하게 들려와서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이든….”
“제발 좀…!”
후욱.
숨을 들이켜며 몸을 떨었다.
그가 화를 내면서 나를 돌아보더니 일순 눈이 커다래졌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몸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도… 손도 대면 안 되는구나….”
눈가가 화르르 뜨거워졌다.
“미안해요… 미….”
휙!
아이든이 순식간에 내 팔을 잡아당겨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
“그런 거 아니야, 리안.”
아… 안아준 거…
지금 안아준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
하….
“미안해….”
안아 줬어….
겨우 안아준 건데….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나는….
“미안해….”
따뜻해.
너무너무 따뜻해….
“흐윽….”
마음속 깊은 곳부터 도사리던 결핍된 무언가가 탁하고 터진 기분이었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그를 와락 끌어안고, 손가락에 핏기가 가시도록 힘주어 그의 옷을 부여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리안. 괜찮아….”
얼굴이 일그러졌다.
목구멍에서 막힌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흐윽…!”
허리에 감긴 단단한 팔이 좋았다.
뒷머리를 다정하게 쓸어주는 손길이 좋았다.
이 생소하면서도 따뜻한 감각이 너무너무 좋아서, 참고 억누르기만 했던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흐윽…! 흐윽…! 흐으윽…!”
“리안… 울지 마, 제발….”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의 품이 너무너무 좋아.
절대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지 못할 거야.
내가 불행해진다고 해도.
내가 망가져 버린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