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9)

8.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저택에 도착해 멀쩡한 릴리아나를 확인한 그는 그제야 제 심장이 안정을 되찾는 것을 느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게 된 것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정이 버겁게 느껴지면서도 그녀를 보고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그에게 한없이 안정감을 주었다.

마침내 바보스럽게 웃게 될 정도로.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오면서 그는 한숨 자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황궁 연회장을 보여주고 거기서 프러포즈를 해주면 릴리아나가 좋아하겠지.

그 얼굴을 상상하면서 아이든은 미소 지었다.

집무실로 곧장 찾아간 아이든은 잠긴 서랍에 키를 꽂아 넣고 돌렸다.

달칵.

텅 빈 집무실에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서랍 문을 열자 안쪽에 고이 간직했던 작은 상자가 하나 보였다.

아이든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꺼내 들고 열어 보았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초대 가주 부부가 착용했던 예물 반지를 엮어 만든 목걸이.

아이든은 프러포즈를 이것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물건.

딜리아 가주가 되었다는 증거.

이것을 물려받는 것이야말로 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었으니까.

아이든은 짧은 회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과거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상자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미소 지었다.

그녀가 좋아해 주어야 할 텐데.

걱정 어린 마음을 안고 하녀들에게 그녀가 있는 곳을 물어 찾아간 서재.

노크를 하려던 마음을 바꾸어 문틈에 기대어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책도 거꾸로 든 채 멍하게 서 있더니, 별안간 한숨을 내쉬고 눈가를 문질렀다.

안색이 너무 창백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핏기 가신 얼굴로 돌아서서 저를 확인한 릴리아나는 두드러지게 흠칫 놀랐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이든은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는 거 아닌가.

안색이 너무 창백한데.

부인 식사 영양에 신경 좀 쓰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프러포즈는… 물 건너갔군.

그런 생각들 때문에.

“들어오시지 않으실 건가요?”

그녀가 재차 물어왔다.

얼굴에 볼일 없으면 나가달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이든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말했다.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그녀의 상태는 어디도 갈 수 없을 것 같을 정도인데.

저도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칭찬이라도 받고 싶어 이러는 것인지.

“잠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말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아이든은 그 말에 비로소 제가 일주일간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했다.

피곤을 이겨내고 올 만큼 그녀가 제게 중요했던가.

“그랬었지.”

“그랬었지?”

아이든의 억양을 따라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는 제법 사랑스러웠다.

…피곤을 이겨내고 올 만큼.

“그런데요?”

“안색이 좋지 않군.”

아이든은 다른 무엇도 생각하고 인지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그녀의 안색과 건강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다.

“괜찮아요.”

그녀의 괜찮다는 말에도 아이든은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다.

무의식의 본능에 의거한 행동이었는데 그녀가 놀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열은 없는데.”

“저는 괜찮아요, 아이든.”

그러면서 제 팔을 떼어내는 그녀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숨이 막혔다.

아이든의 얼굴 근육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가 저택을 비우기만 하면 그대에겐 늘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모양이야. 이번엔 대체 뭐지? 괜찮은 척이라면 집어치워. 안색이 창백한 게 꼭 살아있는 시체 같으니까.”

불쾌감에 이성을 상실했다.

이렇게 쌀쌀맞게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가 널 걱정하고 있다고. 걱정된다고.

그 말 한마디가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이든. 그러라고 호위까지 붙이신 게 아닌가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피곤함이 몰려든 표정이었다.

“그런 의….”

“저택을 비우신 동안 불상사 같은 일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모두 맞은 바 일을 각자 자리에서 잘해주고 있고요.”

항변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더 빨랐다.

그녀는 명백하게 제 의도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이봐.”

내 말을 좀 들어, 제발.

아이든이 이를 악물고 부르자 그녀가 움찔거렸다.

모든 행동이 거슬린다.

왜 이렇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 말을 자르고 대답한 건… 죄송해요… 싫어하시는 것인데.”

자신의 눈치를 보며 겁먹은 얼굴도, 한 번도 싫다 한 적 없는 일을 오해하는 것도.

모든 것이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굳이 더 캐내지 않았어도 되었을 일을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종용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상상도 하지 못하고.

“피 냄새… 때문에요, 아이든….”

릴리아나의 대답을 듣고서 아이든은 순간 멍해졌다.

뒤통수를 예고 없이 가격당한 기분이었다.

“아.”

짧은 침음 끝에 그는 충격받은 얼굴로 제 옷소매를 걷어 팔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피 냄새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예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씻는다고 씻은 건데.

열심히 씻은 건데.

하.

“아, 아니요. 공작님 그게 아니라…!”

“젠장.”

이러려고 그렇게 급히 저택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다면 당연히 황성에서 옷을 갈아입고 깔끔하게 채비한 뒤 돌아왔을 것이다.

그는 자주 그렇게 하곤 했었으니까.

“하… 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급하게 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피곤하면 자야지.

무슨 빌어먹을 프러포즈를 한다고.

아이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재를 급하게 빠져나왔다.

다시 씻어야겠다.

깨끗하게.

살 냄새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이젠 정말 한숨 자야겠다.

아무도 들이지 않는 나만의 요새에서.

***

다이닝 룸에 앉은 아이든은 맞은편 비어있는 자리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약이라도 처먹은 것처럼 잠만 잤다.

피곤은 가셨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녀가 걱정되었다.

아까 표정이 정말 좋지 않았던 것도 같은데.

충격받은 것 같기도 했는데.

괜찮은 건가?

나 때문에 저녁도 포기하고 내려오지 않는 건가?

“주인님. 식사 준비시키겠습니다.”

“…화이트 와인 한 잔.”

“예.”

시종이 나가려는데 아이든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너 가서 집사 불러와.”

“예. 주인님.”

시종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튼이 들어와 목례했다.

“부르셨습니까?”

아이든은 시종에게 와인을 주문하고서 제 맞은편 자리를 턱짓했다.

“뭐 하고 있지 지금?”

“산책하고 돌아와 막 환복 하셨을 겁니다.”

“데려와.”

아이든은 그렇게 말하고 시종이 빠르게 가져온 와인 잔을 손에 들었다.

그녀가 불편해하면 제가 나가면 된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안 된 얼굴을 생각하면 뭐라도 먹여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닝 룸에 들어온 릴리아나는 아까보다 핏기가 돌아온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아이든은 남모르게 안도했다.

잠들기 전 그녀에게서 받은 불쾌함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는 스파클링 와인을 주문하는 그녀를 흘끗 바라보고 제 손에 들린 화이트 와인을 바라보았다.

몸도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툭 치면 쓰러질 것 같고, 불면 날아갈 것 같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가 어떻게든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매일 같이 불안에 떨었던 일주일이 무색했다.

이렇게 제 눈앞에 있는데도 그는 염려와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

나는 리제를 불러 외출 단장을 했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던 말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나를 찾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였고 착각이었는지 그는 온종일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서 저녁 무렵 즈음에 이왕 외출복을 입은 김에 나가나 보자고 정원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바깥 공기를 쐬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당신이 오해한 것이라고, 그렇게 해명이라도 해야했다.

그가 원하지도 않았을 냄새 때문에 기분 상하게 한 것도 사과해야 했다.

그리고 다신 그렇게 내게 상처 되는 말을 뱉어내고 등을 보이지 말아 달라고….

그 말도 꼭 하고 싶었다.

내게 그럴 용기가 받쳐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방으로 돌아와 환복을 마치고 아이든을 찾아 나서려는데 칼튼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마님. 주인님께서 함께 저녁을 들고 싶어하십니다.”

“…저와요?”

“예. 지금 저녁이 준비되었으니 내려가시면 됩니다.”

“…네. 그럴게요.”

그가 먼저 나를 찾은 게 의외였다.

당분간 나를 보지 않을 것처럼 위협적으로 굴어 놓고서.

내 말이 그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따지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식사시간동안에?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겠다.

그래야 체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는 칼튼과 함께 다이닝 룸으로 내려갔다.

안에 들어서니 그는 벌써 착석해서 화이트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면서 내 자리에 앉아 근처에 대기하던 사용인에게 말했다.

“나는 스파클링 샹그리아 한잔 가져다주겠어? 단맛은 첨가하지 않아도 좋아.”

“예, 마님.”

사용인이 주방으로 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고개를 돌렸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이 기회였다.

“아이든, 할 말이….”

“릴리아나.”

동시에 입을 연 우리는 서로 잠깐 동안 당황했다.

“제가 먼저….”

“내가 먼저….”

그의 눈빛에 일순 당황과 절망이 스쳐 지나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절망이라니.

그건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 아닌가?

그가 먼저 말하면 내가 사과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 텐데.

나는 가운데 위치한 타조 구이 접시를 바라보고 숨을 들이켰다.

“죄송해요, 아이든.”

“…뭐?”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아까 처음 저택에 귀가하실 때 옷에서 피 냄새가 많이 났어요. 제게는 익숙치 않은 상황이라서 좀 머리가 어지럽고 아팠던 것도 사실이지만…. 상처를 드리려던 게 아니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내가 말을 끝마치자 그의 인상은 볼품없이 구겨져 있었다.

“지금 무슨… 릴리아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내게 더 상처 되는 말을 쏟아붓기 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하고 싶었다.

“피 냄새가 베는 게 공작님이 원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제 말실수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이젠 제가 익숙해져야 할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릴리아나!”

흠칫.

소리치는 그 때문에 놀란 나머지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짙은 한숨을 내쉬고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릴리아나.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판단하고… 그 지레짐작하는 것 좀 그만둬.”

“네…?”

“나는 하나도 상처받지 않았고 기분 나쁘지도 않았어.”

“하지만 아까…!”

그는 나에게서 시선을 피하면서,

“그대가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잖아.”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예…?”

그가 시선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뱉어내는 말이 무색하게 그는 본인이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그대로 멍해져 버렸다.

“내가 그대 앞에서 피 냄새를 풍겼잖아. 모두 지워내고 집에 올 수도 있었는데, 나는… 배려 없는 내 행동 때문에 그대가 아팠잖아.”

무슨….

이게 무슨…!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라고? 누가 피 냄새에 익숙해지라고 했나? 그대가 왜? 그딴 거에 익숙해 지지마. 잘못은 내가 한 거야. 나는,”

그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손가락이 저릿해졌다.

그는 망설이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대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그의 말이 쉽게 해석이 되지가 않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던 저릿한 감각은 이제 몸을 타고 심장까지 뻗어왔다.

당신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당신한테 나는 대체 뭐예요…?

왜…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예요…?

그 표정의 의미가 대체 뭔데…?

“아이든… 저는 대체 뭐예요…?”

“뭐…?”

그의 눈빛에 순간 당황이 들어찼다.

나는 사용인이 우리의 눈치를 보면서 샹그리아를 놓고 물러나는 동안 침묵했다.

진정되지 않는 심장 때문에 짙게 숨을 내뱉었다.

“대답해 주세요.”

“도대체 뭘?”

“당신한테 저는 뭐예요?”

“그대는 내 부인이잖아.”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입술.

그의 얼굴에는 연인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드러난 표정은 대답만큼이나 심플했다.

“그렇군요.”

그는 나를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구나.

우리는 계약에 의한 관계니까.

허탈한 감정이 내 심장에 비집고 들어왔다.

당연한 대답이었는데도 나는 무슨 기대를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쿵쾅거렸던 심장은 어느새 안정되어 제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손의 떨림도 저릿거림도 멈추었다.

이내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안이 너무 쓰게 느껴졌다.

기대에 보상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나는 이미….

그를 마음에 두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마음이 참 가볍기도 하지, 릴리아나.

회귀 전에 내게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못하는 남편을 사랑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뼈저리게 경험해놓고도.

멍청한….

“저를 좋아하지는 않으시는군요?”

이런 말을 뱉으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이제 내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천천히 식탁을 짚고 일어섰다.

이것으로 내 저녁은 끝이었다.

이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듯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도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사용인에게 말했다.

“샹그리아는 내 침실로 올려 주렴.”

그리고 아이든을 향해 고개 숙였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공작님.”

그리고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다이닝 룸을 나와버렸다.

2층 계단을 오르면서 뒤늦게 몰려오는 한기에 팔로 감싼 채로 몸을 떨었다.

초여름에 느끼는 추위라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내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을 것만 같았다.

더 많은 이들이 내 꼴을 보기 전에 어서 침실로 돌아가 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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