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잘 해낼 거예요
그는 현관문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나를 끌고 들어와 사용인들 앞에 세우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 부인에게 당장 사죄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 결과 모두 다 무릎 꿇고 리제에게 성의를 다해 사죄하며 내게 충성을 다 하겠노라 맹세했다.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 역시 그렇게 허무하게 직장을 잃고 싶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들의 사죄와 맹세가 진심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든은 한 번만 더 속는 셈 치고 저들을 지켜봐 달라고 내게 사정했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제국 유일의 공작이 여자에게 사정하며 매달리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 그의 최대 약점은 파혼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내가 왜 그의 옆에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약점이었다.
어쨌든 그 일은 그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일단락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사용인들은 내게 아주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대했고, 누구도 리제를 무시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아이든에게 저택의 안살림을 내게 넘길 것을 요구했다.
그가 거부하면 이렇게 저렇게 말해야지 생각해 왔던 것이 무색하게 아이든은 흔쾌하게 수락해 주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그냥 하면 돼.]
아마도 그가 강물에 빠진다면 입만 동동 떠오르지 않을까?
그의 뻔한 수작 같은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쨌든 이리저리 되어서 나는 일주일째 저택 재정 관리와 안살림의 전반적인 것들을 배우면서 실질적인 업무에 들어가게 되었고, 서재 정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바빠지게 되었다.
아이든은 긴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로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그는 아침 식사만 마치고 나면 집무실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바쁜 업무로 인해 낮 시간엔 서재에서 잘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정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오늘도 외출 예정은 없으신가요?”
모닝롤을 뜯으면서 물었는데, 그는 나를 힐끗 바라보고는 아주 짧게 대답했다.
“그래.”
나는 눈을 가늘고 뜨고 먹는 데 다시 집중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의 저런 태도가 매우 수상쩍었다.
나는 워낙 이른 시간에 깼기 때문에 이른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귀택한 다음날부터 꼬박꼬박 내가 식사하는 시간만 되면 나타나 저렇게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저럴 거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굳이 나와서 나와 식사를 함께할 이유가 없을 텐데.
굳이, 굳이 이 시간에 딱딱 맞춰 일어나 나오는 건 무슨 심보인지.
나는 뜯은 빵에 크림치즈를 올려 입에 베어 물고 씹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빵이나 치즈가 맛없어서 가 아니었다.
요즘 그의 수상쩍은 행동은 그뿐만이 아니었는데, 나는 왠지 그가 이전에 내게 사정하며 매달림으로 구겨진 자존심을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해 내게 시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면 내가 식사를 하고 있노라면 그가 종종 나를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는 휙 시선을 돌렸다.
“아니.”
예상대로 쌀쌀맞은 단답형으로 대답한 그가 식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워도 될까요, 주인님?”
옆에서 대기하던 하인이 묻자 그는 고개만 한번 끄덕이고는 그대로 다이닝룸을 나가버렸다.
내게 일언반구 한마디 인사도 없이 말이다.
이런 지가 딱 일주일째였다.
그가 돌아온 이후로 내내 쭉 저랬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가 내게 시위를 하고 있다는 내 의심은 굉장히 타당한 것이었다.
도대체 아침을 먹으라는 건지 눈치를 먹으라는 건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무얼 하나.
먹다가 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목이 콱콱 막혀오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냅킨으로 입 주변을 정리했다.
“치워주세요.”
***
아이든은 식사 때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음식이 하나도 맛있지 않았다.
그가 릴리아나의 생활패턴에 맞춰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식사에 참여하는 것은 함께 식사나 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었다.
그는 매 식사 때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저 손가락에 들어가는 반지 사이즈는 대체 몇인 거지?
빌어먹을 손가락은 또 왜 저렇게 얇아?
저렇게 복스럽게 먹는데 살은 손가락으로는 안가는 모양이지?
이 세상에 저 손가락에 맞는 반지가 있기는 한 건가?
여자들은 무슨 반지를 줘야 좋아하지?
다이아? 금? 은? 세공한 광석?
저 얼굴에 어울리는 귀걸이는 무슨 색을 골라야 하지?
또 어두운색을 골랐다간 취향이 어쩌고저쩌고 듣기 싫은 소리나 하겠지.
하. 이딴 걸 물어보는 게 이렇게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나?
아니 그 전에 누군가에게 선물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지….
도대체 성가셔 죽겠군.
프러포즈 형식은 대체 누가 정해놓은 거야?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그 순간 릴리아나가 인상을 팍 구기면서 물었다.
아이든은 흠칫했다.
자신이 그녀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든은 제 속마음이 들키기라도 한 것 같아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아니.”
그리고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치워도 될까요, 주인님?”
너무 크게 당황한 나머지 하인의 물음이 무엇이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든은 그저 이해하지도 못한 질문에 고개만 한번 끄덕이곤 황급하게 다이닝룸을 빠져나왔다.
그의 얼굴부터 귀까지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돌아가서 칼 폴쳐에게 그녀의 손가락 사이즈라도 알아오라고 해야겠다.
앞으로 식사는 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젠장, 이게 다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어.
아이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
아이든이 외출을 하지 않게 되면서 그의 부관인 칼이 저택으로 찾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아마도 아이든과 함께 집무실에서 내내 업무를 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칼은 그냥 오거나 그냥 가지 않고 항상 내게 들러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
그에 대한 인상은 첫날부터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내게 꼬박 들르는 것이 꽤나 달갑게 느껴졌다.
더구나 그는 붙임성이 좋고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게 될 만큼 우리는 그새 생각보다 많이 편해져 있었다.
오후 5시쯤 되었을 때, 일을 마치고 산책이라도 하려고 1층으로 내려가자 칼이 퇴근하려는지 로비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시나요?”
칼이 갑자기 들려온 내 목소리에 놀란 듯 몸을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빠르게 몸을 돌려 내게 웃어 보였다. 특유의 해 없어 보이는 미소였다.
“예. 요 며칠 공작님께서 말도 안 되게 일찍 보내주셔서요.”
그는 정말로 이른 퇴근이 기쁜 얼굴이었다.
평소에는 대체 몇 시까지 일을 하기에 저러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이 저택에 발을 들여놓았던 첫날에도 아이든은 칼에게 눈과 손을 쉬지 말라고 명령했었다.
그는 어지간히도 부하가 쉬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혹여나 내게 화가 난 것이 그의 업무에도 영향을 끼친 것일까?
“산책 나가십니까?”
칼이 내게 물었다.
“어머. 어떻게 아셨나요? 저 역시 이제 막 하루 일과를 끝낸 참이라서요.”
그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모으고 있던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의아 해져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칼?”
“아. 그렇군요. 혹시 그 산책에 제가 좀 동행해 드려도 괜찮을지요? 부인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하고 싶은 말? 그게 뭘까?
그와 내가 좀 편한 사이가 되었다고는 하나 개인적인 대화 주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할 이야기라는 게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졌다.
“나갈까요, 그럼?”
“예. 가시지요.”
나는 칼과 함께 저택 현관을 지나 정원에 들어섰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치맛자락이 가볍게 흔들거렸다.
바람에 실려 오는 늦봄의 향취에 기분마저 달뜨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정원을 거니는 발걸음도 더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시간이면 벌써 지고도 남았을 태양은 아직도 중천에서 내려갈 줄을 몰랐다.
날은 아직도 밝고 따스했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나는 머리칼을 귀 뒤로 살짝 넘기면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칼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아이든보다는 한 뼘이나 작은 그였지만 내게는 그 역시 너무 거대해 보였다.
나는 왜 이리 작아서 남자들을 올려다봐야 하는 것일까.
목이 아프다 목이.
“할 말이 있으시다고요?”
내 질문에 칼이 예상치 못했다는 듯 움찔 놀라는가 싶더니 주먹 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푸하, 하고 웃어버렸다.
내 질문의 어디가 그렇게 웃음이 나는 건지.
칼은 참 웃음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
“부인께서는 안 그래 보이시는데 이런 부분은 각하와 꼭 닮으셨습니다.”
나는 당황했다.
아이든과 내가 닮았 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 내가… 아이든과요? 대체 어느 부분이?”
“기다림을 싫어하시는 부분이요.”
흠칫.
아… 내가 너무 성급하게 물었나?
우리는 이제 막 저택에서 나왔을 뿐인데.
부모님 앞이었다면 품위 떨어진다고 한 소리 들었을 게 분명해.
너무 귀족답지 못 했던 것 같아.
나는 민망해져서 어색하게 웃었다.
“공작님께서도 기다리는 걸 싫어하시나요?”
“각하께서는 빠른 걸 좋아하십니다. ‘어느 면’ 으로나.”
칼은 [어느 면]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어느 면’ 으로나….”
나는 그의 강한 악센트를 따라 하며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왠지 모르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일 것 같아서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이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부인께서는 어떠십니까?”
“무얼 말인가요?”
칼은 꺼낼 말을 정리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닫았다가를 몇 번인가 반복하더니 또다시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엔 의문스러웠는데 나는 이제 그가 왜 내 손을 저렇게 바라보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갑작스레 든 내 추측이 과연 사실일지 궁금해졌지만 당장은 참아 보기로 했다.
당장 우리의 대화 주제는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공작 각하와 결혼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에 후회는 없으시겠습니까?”
후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칼이 내가 아닌 아이든을 걱정하였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 보좌관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가 매우 이상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해보자면….
“제게 선택의 여지가 있긴 했었나요?”
“…지금이라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신다면 제가 방법을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칼이 내게 왜요?”
나는 천천히 걷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어 그를 정면에서 올려다보았다.
올곧은 눈빛에 의심이 될 만한 다른 감정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연모하는 이유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를 정말로 순수하게 걱정해 주는 것일까? 그가 나를 왜?
“칼.”
“예. 말씀하십시오.”
“그대는 공작님의 보좌관이에요. 그렇지요?”
내 말에 그가 눈에 띄게 가라앉은 눈빛을 했다.
“예. 맞습니다.”
“보좌관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요?”
“…상관을 돕는 일을 맡은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예. 맞아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칼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부인, 저는 그저….”
“칼.”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저지시켰다.
그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이라면 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기뻤다.
누군가가 나를 그다지도 생각해 준다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생경한 것이었으므로.
하지만 이 문제는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대는 아이든 딜리아 공작님의 보좌관이잖아요. 내가 아니라.”
“예, 그렇지요.”
“그렇다면 저보다는 그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내 물음에도 칼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걱정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공작의 냉혹한 성격으로 인해 내가 불행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칼이 아닌 내 최측근인 리제가 내게 그런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까?
사실은 많이 걱정스럽고 두려워.
내가 그렇게 원했던 결혼은 아니었잖아.
공작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더더욱.
게다가 나는 결혼에 결코 작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는걸.
아니다. 이런 걸 어떻게….
나는 결단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말했겠지.
“그대 말이 맞아요. 이 결혼은 내가 결정한 것이었어요.”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당신의 뜻대로 하겠노라고.
“나는 잘 해낼 거예요.”
내가 벌여놓은 일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잖아.
그것이 책임감 있고, 어른스러운 것이잖아.
무언가로부터 숨고 도망치지 않아.
아무것도 외면하고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엇이 되었든.”
칼의 놀란 듯 커진 눈동자가 나를 오롯이 담고 있었다.
그는 이내 얕은 숨과 함께 낮은 웃음을 뱉어내었다.
“당신은 역시… 참으로 각하와 닮으셨습니다.”
“자꾸 무섭고 소름 돋는 말씀을 하시네요. 나는 그와는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칼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내 말은 아마도 공작은 절대 알 수 없는 우리만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였을 것이다.
나도 이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감사합니다, 부인.”
“무엇이 말인가요?”
웃음을 갈무리한 그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며칠간 당신을 뵐 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데일 저택으로 선물을 가져다드렸던 날에도 그랬지만요.”
“당신은 상관의 명을 수행했을 뿐이잖아요. 그 직무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공작님과 그대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와 신뢰가 동반되어야만 해요.”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멈추었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칼이 옆에서 내 걸음 속도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어 주었다.
나는 그가 참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명을 수행하는 데 주저하지 마세요, 칼.”
“예?”
그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묻어 나와 나는 옅게 웃었다.
“내 손을 계속해서 쳐다보셨잖아요. 칼은 귀족이예요. 그렇게 무례한 행동을 아무 이유 없이 할 분이 아니신 걸 알고 있어요.”
“…알고 계셨습니까?”
“너무 티가 나던걸요. 힐끗거리는 건 더 눈에 띈답니다.”
“…송구합니다. 무례하다, 언짢다 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언짢지는 않았어요. 외간 남자가 한 남자의 부인에게 보낼 시선으로는 굉장히 무례했지만.”
“다시 한번 송구합니다, 부인.”
그가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져서 나는 내 왼손을 들어 그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눈대중으로 보아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을 텐데요.”
칼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공작님께서는 이런 면에서는 참 어리숙하시네요. 칼 보좌관 역시도.”
“고, 공작부인….”
“그가 이런 명령을 내리면 그대라도 나서서 이건 아주 멍청한 명령이라고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때때로 직언을 할 수 있는 것도 보좌관의 중요한 업무잖아요?”
칼이 당황한 기색으로 입만 벙긋거려서 나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아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순식간에 칼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부, 부인!”
“제 손가락 치수를 알고 싶으시면 직접 만져 보실래요? 사실은 저도 반지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스스로 맞추어 본 적도 없고요.”
“아, 아니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칼이 급하게 내게서 자신의 손을 거두어 갔다.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의 눈앞에서 내 손을 거두었다.
“미안해요, 칼. 그대 반응이 너무 재밌고 귀여워서 그만. 하지만 치수를 모른다는 말은 진심이었어요. 사실 공작님께서 반지를 맞추러 함께 가자고 제안하셨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을 텐데요.”
“귀… 귀엽….”
칼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크흠. 흠! 각하께서는 서프라이즈로 부인께 선물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든 공작이? 그 냉정한 사람이?
서프라이즈?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나는 잠깐 동안 멍해졌다.
그러다가 곧 일주일 내내 나를 죽일 듯 노려봤던 그가 떠올랐다.
나는 그가 불만을 표출하며 시위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 칼의 모습을 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깜짝 선물이라기엔… 너무 티가 나던걸요?”
“예? 각하께서요? 뭔가 티 나게 행동하실 분은 아니십니다만….”
그렇지. 그러면 그의 수많은 별명들이 무색하겠지.
“아니요. 너무 심하게 티가 났어요. 눈빛만으로도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는걸요.”
“각하께서요…?”
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두 분 다 여자는 처음 대해 보시는가 봐요. 그렇죠?”
칼이 또다시 당황하며 헛기침을 했다. 수긍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괜찮아요, 칼. 그대에게 좋은 정인이 나타나기를 기도할게요.”
“부인… 놀리는 건 그만둬 주십시오….”
그의 어깨가 부쩍 축 처져 보여서 나는 이만 그를 놔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공작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염려 놓으시고 칼도 그만 퇴근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부인. 하지만 문 앞까진 모셔다드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는 고맙게도 저택의 현관문까지 나와 동행해 주었다.
아주 짧은 거리였음에도 그는 그것이 여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남성의 도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너무 과보호라고 생각했지만.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칼.”
내가 인사말을 건네고 현관문을 여는데 칼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부인.”
음?
나는 뒤돌아 계단 아래에 선 칼을 바라보았다.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칼이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참 강하신 분입니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다.
그의 눈을 보고 있노라니 내게 다정한 오빠라도 생긴 기분이 들었다.
“잘 해내실 겁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아아… 왜일까?
그는 내가 했던 말을 그저 반복했을 뿐인데.
그에게 크게 위로받아 버린 것 같아.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구멍이 꽉 막힌 듯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서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나는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고마워요, 칼.”
잘 해낼게요. 무엇이 되었든.
***
칼 폴쳐 경과 산책을 한 다음 날, 나는 아침을 함께 먹으면서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반지는 함께 맞추러 가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그는 내가 아침 식사를 모두 끝낼 때까지 모습을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마님. 전서가 왔습니다.”
다이닝룸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칼튼이 다가와 편지를 하나 내밀었다.
“제게요?”
“예. 받으십시오.”
내가 딜리아 공작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 부모님뿐일 텐데…?
나는 전서를 받아서 펴보았다.
편지지에는 익숙하고도 유려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일이 생겨 급하게 출타했다. 언제 다시 돌아갈지 정해진 것이 없으니 기다리지 말도록. Ps.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도 좋아. 이번엔 정말로. – 아이든으로부터.]
외출했구나.
그래서 식사 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었어.
나는 추신 글을 읽고 픽 웃어버렸다.
저번 일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게 전권을 넘기겠다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 공작가로 손님이 오실 예정입니다, 마님.”
“손님이요?”
나는 편지를 다시 접으면서 칼튼을 바라보았다.
“델리카 의상실의 마담 클레어가 10시쯤 도착 예정이라고 합니다.”
델리카 의상실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었다.
황실 사람들과 공작님의 의상만 전담하고 있다는 그곳.
백작가의 영애들도 내로라하는 귀부인들도 그곳에서 의상을 맞추고 싶어 안달을 내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나는 델리카 의상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불가능한 것에는 포기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델리카 의상실에서 왜… 아이든의 의상이라도 주문했었나요?”
칼튼은 그저 인자한 미소만 지을 뿐이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담 클레어가 도착하면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마님.”
“그럼 수고하세요, 칼튼.”
편지를 가지고 다시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뒤에서 칼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님.”
내가 뒤를 돌아보자 칼튼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깜빡 잊을 뻔했습니다. 공작님께서 결혼식은 아주아주 특별하게 치러질 예정이라고 하시니 예복도 아주 특별하게 맞추어야 한다고 하셨답니다.”
“예…?”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칼튼이 한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럼. 올라가십시오, 마님.”
칼튼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버퍼링이 생긴 나는 뒤늦게야 고개를 끄덕이고 멍하니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침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너무 놀라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델리카 의상실의 예복이라니…!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의 반쪽이 되지 않은 한 절대 발걸음조차 해보지 못할 곳!
그런데 자그마치 결혼 예복을 델리카에서?
아무리 내가 델리카 의상실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들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지 않았다.
제국에 살아가는 모든 귀부인과 영애들이 델리카 예복을 입은 나를 부러워할 것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아이든과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카라니…!”
그래.
나도 어머니의 딸이었다.
이 숨길 수 없는 기쁨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엄청난 속물인 게 틀림없었다.
“마님…?”
언제 들어왔는지 리제와 내 전담 사용인인 마리가 들어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삼켜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씻고 싶으니 물 좀 받아 주겠니? 손님이 오실 예정이니 아로마 향과 꽃잎도 첨가해 주면 좋겠구나.”
“예, 마님.”
동시에 대답한 리제와 마리가 사이좋게 웃으면서 욕실로 걸어갔다.
어느새 둘은 꽤나 단짝이 되어 있었다.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내 손에 들린 편지를 바라보았다.
[Ps.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도 좋아. 이번엔 정말로. – 아이든으로부터.]
그의 추신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원하는 예복으로 맘껏 고르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십여 분 정도 탕에 몸을 담가 목욕을 하고 나온 나는 리제와 마리가 골라준 드레스를 입고서 화장대 앞에 앉았다.
마리가 장신구를 고르러 간 사이 리제가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오늘은 올림머리를 하고 싶어, 리제.”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래 보여?”
“네, 마님. 보기가 좋아요. 요새는 계속 정신도 없으시고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이셨었는데.”
나는 거울에 비친 리제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이 리제도 나 못지않게 기분이 고양되어 보였다.
“리제도 좋은 일이 있어? 기분은 나 못지않게 좋아 보이는걸?”
“아… 티가 났나요?”
리제가 혀를 빼꼼 내밀면서 귀엽게 웃었다.
“사실은 좀 기대가 돼서요. 보름 뒤에 열리는 축제를 마님도 알고 계시지요?”
아. 그레이스 축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로구나.
그레이스 축제는 2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제국의 큰 행사였다.
신성프리온제국은 프세아니아 제국과 약 100년 전에 평화의 불가침조약을 맺고 일정한 기간을 정해 제국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해주러 사신을 파견하고는 했다.
따지고 보자면 프리온제국의 성기사들도 그렇게 약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북쪽과 동쪽의 땅을 정복해 제국을 더욱 크고 강대하게 만든 바 있는 500년의 역사가 깊은 제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건국 50년을 맞이했을 뿐인 햇병아리인 프세아니아 제국과의 평화협정을 맺은 데에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초대 황제의 리더십, 그리고 딜리아 초대 가주의 괴물 같은 강인함에 있었다.
그 어떤 고위 성기사라 할지라도 딜리아 초대 가주와 그의 정예부대인 울프하운드를 이기지는 못했다.
울프하운드는 이름처럼 어마어마한 체력과 민첩함을 두루 갖추어 적을 사냥하고 제압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는 기사단이었다.
목표는 오로지 적의 처단.
그들은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살인 기계와도 같았다.
신성프리온제국은 프세아니아제국과의 1년 동안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기나긴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평화 협정을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꼬박 100년 동안 프리온제국에서는 꾸준하게 사신을 파견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신으로 오는 이는 신성 황제 휘하에 있는 고위 사제들이었다.
황실에서는 사제들을 맞이해 귀하게 대접하고 사제들은 일주일 동안 황실에 머물면서 지극정성을 다해 제국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프세아니아 전 지역에서는 사제들이 머무는 일주일 동안 큰 축제를 열어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그레이스 축제의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야간에만 볼 수 있는 화려한 조명 쇼와 오고 가는 사제들의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행렬이었다.
지난 그레이스 축제가 열렸을 때의 내 나이는 고작해야 3살이었다.
부모님께서 나를 안아 들고 멀리서나마 행렬도 보고 야간축제에도 참여하셨다고는 했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이 그날이 아주 달콤하고 행복한 하루였다는 것밖에는.
리제는 올해 딱 스무 살이 되었으니 그레이스 축제는 처음일 것이었다.
“그게 벌써 보름 남았구나.”
“네. 어릴 때 어렴풋이 부모님께서 사제 행렬이 아주 화려하고 예쁘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어서요. 정말 기대되요.”
“신성프리온제국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음식들도 축제 둘째 날부터는 시내에서 판매하니 맛볼 수 있을 거야, 리제. 나도 아주 어릴 적에 구름과자와 주홍빛이 도는 과일로 만든 샤베트를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달콤했거든.”
“어머나. 정말 먹어보고 싶어요! 마리와 함께 외출하면 꼭 사 와야겠어요.”
리제의 두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런 표정일 때의 리제는 정말 사랑스럽다.
리제도 올해 성인이 되었으니 꼭 좋은 짝을 만나면 좋을 텐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하게 리제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마리가 돌아와 리제와 함께 나를 꾸며주었다.
내 원대로 올림머리를 하고서 심플한 헤어장신구를 꽂고 팔찌와 귀걸이도 아주 심플한 것만 착용하고 거울로 매무새를 확인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칼튼입니다. 델리카 마담이 도착했습니다.”
“아. 응접실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곧 내려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마님.”
칼튼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한 번 더 점검하고 리제와 마리를 바라보았다.
“수고했어. 고마워.”
“예, 마님.”
그녀들을 뒤로하고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문 앞에 장신의 기사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어서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 남자는 내가 방에서 나오자마자 내 앞에 마주 서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울프하운드의 에릭 슈미트라고 합니다, 부인.”
붉은 머리칼. 선이 굵고 신사답게 생긴 얼굴.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첫날 저택으로 올 때 나를 호위했던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우리 한 번 본적이 있지요? 그런데 날 왜 찾아오셨죠?”
“기억해 주시다니 큰 영광입니다. 오늘부터 부인의 호위 기사로 임명받았습니다.”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슈미트 경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호위라니요? 들은 바가 없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그림자처럼 모시겠습니다.”
내 의중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고 계단으로 걸었다.
에릭 슈미트 경이 내 뒤에서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림자처럼 행동한다 한들 그는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나는 계단을 내려가려다 말고 뒤를 휙 돌아보았다.
“슈미트 경.”
“에릭이라 불러주십시오.”
“그래요, 에릭. 아이든이 출타할 때에는 울프하운드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나요?”
“때에 따라 다릅니다. 황궁에 입궁하실 때에는 단 한 명만 대동하십니다.”
“그가 오늘 입궁을 했나요?”
“아닙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에릭을 바라보았다.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아서였다.
아이든은 도대체 그렇게 급히 어딜 간 것일까?
“에릭은 그가 함께 가지 않았나 보군요?”
그렇다면 떠보는 수밖에.
“아닙니다. 저 역시 함께 움직였으나….”
에릭은 말끝을 흐리면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기사단을 대동할 정도의 일로 나갔다는 말이로구나.
“…각하의 명을 받고 급히 저만 돌아왔습니다.”
“그렇군요.”
“마님께서는….”
그는 또다시 말끝을 흐리고는 피식 미소 지었다.
나를 향한 미소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뭘 어떻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명령을 수행하는 중에는 잡담을 하지 않습니다.”
“잡담은 아니었는데….”
잡담이었나…?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곤 뒤돌아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어쨌든 그는 뭔가 조금은 큰일로 기사단을 대동하고 움직였다는 말이었다.
그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편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나는 결혼 준비를 혼자 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바쁜 남편은 예복이나 맞추고 가셨는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