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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32화 (32/43)

32화

제13장. 언제나 네 곁에

재회의 기쁜 기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터니티 재단 교육부에서 갑작스럽게 윤해를 불렀다.

마침 그날 기온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던 윤해는 기온과 함께 가기로 했다.

기온은 윤해의 호위기사인 것처럼 앞장섰다.

“내가 운전 실력 보여 줄게.”

그는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인간 세상 전반에 잘 적응한 모습을 훈장처럼 보이기 좋아하는 그에게 운전 실력을 보여 주는 건 아마 가장 들뜬 일일지도 몰랐다.

윤해는 그런 그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으으, 이거 뭐야…….”

도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차 안에서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어때? 재미있지?”

“아니…… 저,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좋게 말해야 할까?

분명 도로 위에서 어떤 차도 받지 않고 가고 있지만, 속도 변환이나 급정거 버릇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물론 기온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운전할 줄 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만, 아무래도 아직 동승자의 편안함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윤해는 기온을 보며 애써 웃음 지었다.

기온이 그런 윤해를 느끼곤 물었다.

“응? 문제? 어디 불편해?”

“……아냐. 잘, 잘하네.”

“훗. 남들은 그냥 자동주행 시스템을 이용하라고 하지만 그래서야 버튼 누를 줄 아는 원숭이밖에 더 되겠어? 이렇게 직접 운전해서 무사고 경력을 몇 년 만들어 놔야 어디 가서 운전 좀 한다고 할 수 있지.”

“차라리 자동주행을 하지 그래…….”

“응?”

“아, 하하. 아무것도.”

“그리고 운전하는 게 말 타는 것보다 좋아.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비슷하게는 되잖아.”

“살려 줘…….”

“윤해?”

“응? 왜?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런데 지금껏 무사고 경력 맞지?”

“그럼.”

이렇게 거칠게 운전하는데도 사고를 낸 적 없다, 라.

이것도 능력은 능력이라며 윤해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쳐 주었다.

기온은 박수 소리를 듣고는 흥이 나서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그것도 최신 유행의 음악이었다.

윤해는 음악이라고는 군 연구소 시절 들었던 기상곡밖에 몰랐다. 그래서인지 기온이 튼 음악을 조금은 신기한 기분으로 들었다.

그러다가 기온을 보고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진짜, 모든 것에 잘 적응하네.”

“해야지. 앞으로 오래, 잘 살려면.”

기온은 사실은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다.

앞으로 너랑, 오래, 행복하게 잘 살려면,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머쓱했고, 연인처럼 구는 것에 스스로 경계를 했다.

갑자기 윤해가 핸들 위 그의 손등을 가볍게 쥐었다. 그러고는 그가 찬 손목시계를 손끝으로 더듬고, 그의 잘 다려진 정장 소매도 찬찬히 만졌다.

신기한 기분으로 만진다는 건 알겠지만, 기온은 손이 자꾸만 움츠러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기특해. 기온.”

“……자꾸 기특하단 말 하지 마. 부끄럽잖아.”

“예전처럼 그런 신기한 능력들…… 그러니까, 몸이 빛나거나 번개처럼 빠르거나, 그런 능력이 사라져도 아쉽지 않아?”

“아쉬울 게 뭐가 있어? 난 그때보다 지금이 더 능력자가 된 것 같은데.”

“네가 이렇게 긍정적인 인간인 줄 몰랐어.”

인간이란 말은 기온에게 그 어떤 칭찬보다 기분 좋은 평이었다.

그는 조금 으스대며 말했다.

“난 37 기지에서부터 긍정 빼면 시체였어. 이제라도 알아 둬.”

“그래, 으아아아아! 제발 살살 좀! 아니, 그냥 자동주행 하라고!”

“헉. 방금 소리 질렀어?”

“아니……. 내가 언제…… 엄마야! 속도! 속도 좀 제발! 누굴 다시 죽게 만들 셈이야!”

차 속도의 기복을 따라잡지 못한 윤해가 결국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화를 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진심이 튀어 나온 것이다.

기온은 무척이나 놀랐다. 37기지에서도 가끔 윤해의 짜증을 접하긴 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이런 분노는 없었다. 자신이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미안! 진짜 미안!”

기온은 곧 속도를 극히 낮췄다. 방금 전에 연달아 소리를 지른 것에 스스로도 놀란 윤해는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뒤늦게야 민망해져 기온의 눈치를 보았다.

기온은 울기 직전의 얼굴로 앞만 보고 묵묵히 운전했다.

“미안하긴, 갑자기 소리 지른 내가 미…….”

사과하려던 윤해는 돌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푸흡, 으하하하!”

기온은 울상이 되어 물었다.

“왜 웃어?”

“아니, 잔소리에도 자동주행 안 하는 너도 참 너다 싶어서.”

“아. 응. 운전은 내 손으로 해야지.”

보통의 인간이 그랬다면 쓸데없는 고집이라 여겼겠지만, 기온이라 다르게 느껴졌다.

윤해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다시 눈을 뜨면 자기도 모르게 운전에 참견할 것이니, 차라리 시각을 차단한 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았다.

‘무사고랬으니, 믿어야지. 어쩌겠어.’

하지만 곧 다시 운전은 난폭해졌다.

그런데도 용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고, 비로소 차는 이터니티 재단 교육부 건물에 도착했다.

학과장은 그들을 반가운 인사로 맞이했다.

그러고는 곧 본론으로 들어가, 윤해에게 새로운 일을 제의했다.

“네? 눈높이 교육이요?”

이시도르의 연구실은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영재를 뽑아 유치원부터 대학 과정까지 모두 이시도르가 후원해서 교육하는 시스템으로, 학생들은 졸업 후엔 이터니티에서 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또 그중 일부는 훗날 이터니티 스쿨의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초등부 교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번에 초등부 교사가 2주 간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리 교사가 필요했는데, 아이들이나 이시도르가 추천한 사람이 바로 윤해였다. 몇 번 재단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던 윤해의 존재는 인기가 많았다. 물론 단순히 인기만 많은 것으로 교사를 시키진 않았다. 군 연구소에서의 경력이 있던 그녀가 평소 부업도 찾았기에 이 일에 적격이라 판단된 것이다.

학과장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육해 보는 거예요.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은 없을 테지만, 꽤 잘할 것 같은데요?”

윤해는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왜 하필 저죠?”

“아이들에게 친근한 선생님을 붙여 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다른 선생님들은 다 무서운데 윤해 씨는 그렇지 않다나. 말이 통하고 재미있게 수업을 해 줄 것 같다네요.”

“아.”

“그리고 예쁘대요.”

“허!”

예쁘다는 소리를 기온에게 말고는 딱히 많이 들어 본 적 없던 윤해였다.

아이들의 말은 진실하다고 했지?

윤해는 머쓱함에 앞머리를 쓸어 넘겼지만, 기분이 좋은 걸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진짜 아이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느끼며, 학과장은 조건을 이어서 말했다.

“딱 이 주만 맡아 주면 돼요. 보수도 괜찮고요. 연구실 스케줄이랑 잘 조정해서 수업 잡아 볼게요. 할 거죠?”

“해야죠. 귀여운 아이들 가르치는 거, 한 번쯤 해 보고 싶었거든요.”

무조건 찬성하는 그녀와는 달리, 함께 듣고 있던 기온은 영 싫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이제 곧 윤해의 휴가가 다가온다. 기온은 그 휴가를 위해 자신의 스케줄도 다 비워 둔 상태였다. 둘이서 함께할 소중한 시간을 학교 아이들에게 빼앗기기는 싫었다.

기온은 학과장 앞에서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는 좀 그래서, 윤해에게 에둘러 중얼거렸다.

“나도 너한테 배울 게 많은데.”

“응? 배울 거?”

“기초과학은 다른 선생이 아닌 너한테 배우고 싶었고.”

그러자 학과장이 질문을 던졌다.

“네? 기초과학을 배우고 싶었다니요? 애초에 기온 군은 칩으로 모든 지식을 습득하지 않았나요?”

기온은 방해꾼 학과장을 지그시 보며 웃었다. 윤해가 보기에는 생글생글 웃는 것이지만, 학과장의 눈에는 살기를 숨긴 웃음이었다.

“왜, 왜 그렇게 웃는지요, 기온 군…….”

기온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칩이 만능은 아니죠. 학교 애들도 칩으로 이식받는 게 가능한데 왜 굳이 학교에 다닐까요?”

“그야 칩은 비싸니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칩으로 이식받는 지식과 실제로 배우는 것은 매우 다르죠. 뭐가 더 낫다는 걸 아니까 이시도르 이사장님께서 칩을 금지시킨 거 아닙니까.”

학과장은 기온이 연인을 학생들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저렇게 나오는 걸 다 알면서도 끝끝내 모른 체했다.

“어쨌거나 다음 주부터 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럼 윤해 씨가 오는 거로 알아 두겠습니다.”

윤해는 기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흔쾌히 대답했다.

“네, 학과장님!”

학과장이 자리를 떠나고 나자, 윤해는 페이퍼 컴퓨터로 아이들 수업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마뜩찮은 기온이 진지하게 타협을 시도했다.

“있잖아.”

“응.”

“아이들 가르치는 거, 되게 힘들대.”

“걔들은 보통 아이들이 아니야. 얼마나 똑똑한 애들인데.”

“그러니 더 힘들 거 아냐?”

기온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하지 말라고, 해서 좋을 거 없다고, 온 마음으로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몰라주는 윤해는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으음. 그래도 이런 기회 흔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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