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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26화 (26/43)

26화

“멍청아! 난 혼자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 봤자 좋은 꼴 못 본다고! 알겠어? 지금 너 혼자 떠난다는 건 날 외톨이로 두고 엿이나 먹어 보라 하는 거랑 같은 거야! 응? 야! 기온! 기온! 기오오온!”

없는 힘을 쥐어 짜내 그를 부르고 또 불렀다. 멀어지는 그를 어떻게 해서든 붙잡아야만 했다. 나는 혼자 떠날 수 없었다. 혼자 떠나서 갈 곳도 없었다. 영원한 방랑자가 될 거라면, 곁에 기온이라도 있어야 했다.

아니, 기온만이 필요했다.

“기……온. 흐흐흑…….”

진심이 닿은 걸까.

멀어지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나는 손을 뻗어 그에게 오라고 했다. 말로 할 수 없다면 이렇게 행동으로라도 보여야 했다. 울면서, 얼른 오라고, 그대로 가 버리면 나 여기서 차라리 죽어 버릴 거라고, 마음을 담아 손짓했다.

그가 곁으로 오기까지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울다가 웃으면 큰일 난다는데. 나는 웃었다. 언제 울었냐 싶게 웃다가 기온의 팔을 툭 때렸다.

“또 가기만 해 봐.”

말을 알아들은 걸까. 기온이 헬기 문을 닫았다.

「가자, 어디로든. 함께.」

나는 그의 말에 내 멋대로 대답했다.

“넌 나랑 가야 해. 어디로든, 같이.”

우리는 갈 곳이 없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어딜 가서 살아도 살 것이다.

우리만의 낙원을 찾아 가야 한다.

그런 곳이 없다면 차라리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헬기 조종술 배워 두길 잘했어.”

우리를 실은 헬기가 37기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 *

바다가 끝이 없었다.

나는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또 몸의 고통을 숨기려고, 기온에게 최대한 웃어 보였다.

기온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앞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날았을까?

마침내 땅이 나타났다. 땅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새파란 녹지였다.

연료가 아슬아슬하지만, 최대한 날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 드디어 뭔가가 보였다. 호수와 그 뒤 저택이었다. 작고 흐릿하게 보였지만, 분명 인간들이 사는 곳의 모습이었다.

“어, 호수다! 호수가 보여! 그리고 커다란 건물도…… 아, 드디어!”

기쁨도 잠시, 연료는 우리가 무사히 어딘가로 도착할 희망을 주지 않았다.

기온이 내 얼굴을 보았다.

그도 내게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아. 으으.”

날 수 없다.

더 날아가기 힘들고, 설사 호수를 무사히 건넌다고 해도 그 다음은?

막막했다. 화가 나고 슬펐다. 괴물들을 피해 강물 아래로 떨어지려 할 때보다 더 큰 절망이 나를 덮치고 말았다.

나는 기온을 보았다.

미안했다. 그에게 따라오라고 한 내가 이 순간 미치도록 싫었다.

이런 끝을 맺고 싶지 않았는데.

몸의 상처보다 심장이 더 아팠다.

기온의 얼굴이 슬프게 구겨졌다. 그는 돌연 내 손을 잡았다.

이 상황이 뭔지 아는 걸까?

하지만 손을 꽉 잡아 주는 그의 체온은 아주 따뜻했다.

문득 그가 입을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포기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이제 우리에게 시간이 없었다.

금방 저 아래로 떨어질 테니까.

「윤해.」

“기온.”

서로 이름을 불렀다.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듯 입을 맞췄다.

그 후 어둠이 닥쳤다.

기온과 내 기억의, 끝이었다.

제11장. 기다림에 관하여

이시도르는 다 가진 자였다.

유서 깊은 대부호 가문에서 건강하게 태어났고, 세기의 미남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외모도 준수했다. 게다가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각종 사업을 족히 몇 배나 불리고 확장시킬 만큼 능력도 있었다.

특히나 그가 사업 중 가장 관심 있게 보고 크게 투자한 분야는 생명 공학이었다. 30대 즈음에 그는 ‘이터니티’라는 이름의 생명 공학 프로젝트를 시작해 큰 부를 이뤘다. 올해로 예순이지만 20대 외모를 유지하는 것도 다 그가 이터니티에 투자해 눈부신 성과를 본 덕분이었다.

그는 겉모습만 젊게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건강도 최고의 상태를 유지했다. 그가 매일 먹는 고가의 약이 회춘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이시도르는 그 약을 돈이 남아도는 부자들에게 팔려고 내놨고, 광고 문구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몸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고를 내보이기 전에 몸소 그 약을 먹어 젊음을 증명해 보였다.

어마어마한 부, 젊음, 건강, 그리고 성공한 사업가라는 명예.

모든 걸 다 가진 이 같지만, 그에게는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그는 돈에 혈안이 된 형제나 사촌은 필요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 배우자도 필요 없었다.

자식. 오직 자신의 피를 이어 받은 자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의 자식은 이미 세상에 존재했다.

다만 그가 잃어버려서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 * *

과거, 그는 제인이라는 이름의 대리모를 구했다.

제인은 단순한 대리모가 아니었다. 이시도르가 소유한 세계 최고의 생명 과학 대학에 입학을 앞둔 수재였고, 신체도 건강했다. 보통 그런 수재에겐 어련히 각종 장학금과 혜택이 갈 테지만, 그녀는 돈이 더 필요하다며 이시도르의 대리모 일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이시도르는 아직도 그녀가 했던 인상적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는다면, 오직 당신의 아이만 낳고 싶습니다.’

‘어째서요?’

‘완벽한 유전자를 받아 아이를 낳아 보고 싶으니까요.’

‘내 유전자가 완벽하다? 칭찬은 고마운데, 어쨌거나 당신과 나의 아이가 생긴다 해도 나는 아이와 당신의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허락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괜찮습니다. 어머니라는 자리에 특별히 욕심은 없습니다. 단지 세상에 멋진 인간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에 만족합니다.’

이시도르는 독특한 말을 하는 그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자녀를 낳기로 했다. 수십 장의 계약서가 만들어졌고, 제인과 이시도르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제인은 건강한 딸을 낳았다. 딸은 이시도르를 닮아 새하얀 피부에 금발이었고, 어린아이인데도 미모가 뛰어났다.

계약대로라면 제인은 아이를 낳자마자 이시도르의 저택에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제인은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 태어난 아이와의 관계를 칼처럼 끊기는 힘들다며, 몇 년 만이라도 키울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 누구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고요. 보통의 아이처럼 키우면 안 될까요? 적어도 아주 어린 시절에나마 제 품에서 평온하고 조용하게 키우고 싶은데…….’

아이를 낳은 기쁨과 곧 헤어질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 그것으로 이시도르의 마음은 흔들리기 충분했다.

게다가 마침 그때 이시도르는 아프리카 개발 건으로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터라, 태어난 아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 없었다. 애정은커녕 관심을 주기도 바쁜 시기였고, 어차피 아이의 기억이 서너 살 때부터 시작되는 거라면 아주 갓난아이일 때는 제인에게 전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다.

결국, 이시도르는 아이를 직접 기르고 싶다는 청을 허락했다. 어떤 감시도, 참견도 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돈만 건네는 자신보다, 직접 품어 낳아 기르는 사랑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그녀를 믿었다. 그리고 딸을 봐 주는 대가로 또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건넸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났을 때였다. 이시도르는 길었던 아프리카 생활을 청산했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 딸과 함께 지내려고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전에 제인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볼 생각이었다. 가기 전에 미리 알려 두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가고 싶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 조용히 그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몰래 다가가 지켜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제인은 주인이 부재한 이시도르의 저택 안쪽 별채를 제멋대로 쓰고 있었다. 그곳은 하나의 작은 실험실이었다. 딸아이는 벌거벗겨진 채 특수한 관에서 눈을 감고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알 수 없는 약물을 만들어 그 특수 관으로 주입하고 있었다. 수상한 액체를 주입당한 아이는 발작을 일으켰고, 제인은 그 모습을 흡족한 듯 보며 웃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건, 그런 아이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복제라도 한 듯 여럿이었다. 전부 이시도르와 닮은 아이들이었다. 그 많은 여자아이가 제인에 의해 이상한 실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시도르는 당장이라도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실낱같은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그는 냉정히 또 냉정히 생각했다.

그는 바로 돌아가 제인에 관해 조사를 시작했다. 대리모를 뽑았을 때 했던 검사보다 더 치밀하고 철저하게 그녀의 진짜 정체를 밝혀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몇 겹의 가면을 쓴 복잡한 인물이었다.

제인은 단순한 수재가 아니었다. 이미 12살에 대학 과정을 졸업했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영재 시스템으로 더 깊은 공부를 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모 국가에 있는 민간 연구업체, 즉 37 기지와 관련된 연구자로 일했다가 쫓겨난 전적이 있었다. 쫓겨난 이유는 상부에서 금지한 실험, 즉 인간과 동식물 융합 복제 실험을 해서였다.

이시도르에게 접근한 것도 자신의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전자와 금전적 지원을 이용하여 몹쓸 실험을 했던 것이다.

촘촘했던 사기 계획에 백치처럼 당해 버린 이시도르는 분노했다. 자신의 학교 학생이란 점에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자괴감도 들었다.

조급하게 행동해선 안 되었다. 제인이 딸아이들을 인질 삼아 다른 악한 짓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차분히 복수를 생각했다. 제인을 부드럽게 회유해 아이들을 확보하고, 그 이후 그녀를 정부 기관에 신고해 처벌받도록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부 기관의 사람들이 들이닥쳤을 때, 이미 그녀는 여자 아이 하나와 함께 정체불명의 헬기에 몸을 싣고 떠난 뒤였다.

그녀가 떠난 실험실에 남은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곳엔 문서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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