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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17화 (17/43)

17화

발음이 또렷하고, 자연스러웠다.

나 또한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 주었다.

“응. 기온. 왜?”

기분이 좋은지 그가 생긋 웃었다. 이름 부르기가 장난처럼 변해 갔다.

「윤해.」

“기온.”

「윤해.」

“기온.”

「윤해, 윤해야.」

“기온, 기온아. 기온 씨? 기온 군? 기온 군 좋다. 은근히 너한테 어울려.”

「부르니까 좋아.」

“……불러 줘서 좋아.”

「앞으로도 불러 줄래?」

“오늘 치킨 잘 먹었다. 그렇지?”

이런 게 서로 길든다는 건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없었다면 37 기지에서의 내 생활은 지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느새 내가 그와 함께 있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지옥보다는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걸 지켜보던 기온이 말했다.

「입술 부딪치고 싶어.」

그러고는 내 입술을 찾았다.

“……!”

바로 입술을 물진 않았다. 입술 아래의 움푹 팬 부분을 혀끝으로 핥고 간질이다가, 아랫입술을 조심히 빨아들였다. 나긋나긋하고도 다정한 느낌에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러자 그는 혀를 살짝 빼내 내 혀를 찾았다. 혀끝끼리 닿는 느낌이 찌릿했다. 두 입술 사이 혀들은 금세 서로 부드럽게 엉켜들었다.

이건 키스다.

낮에 그가 장난스럽게 했던 뺨 키스와는 다르게 진지했다. 나 역시 진지해졌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 기분이 좋은 건지, 그의 입맞춤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애초에 그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얽힌 혀는 떨어지지 않았다. 더욱 깊어진 키스에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는 내 몸을 꽃밭 위에 천천히 눕혔다. 두 쌍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것만으로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기온.”

알 수 없었다. 꽃의 매캐한 냄새를 맡을 때 이성을 곧잘 지키는 편이었는데, 어째서 나는 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더 깊게 키스하는 걸까.

그리고 그도 그렇다. 그 역시 꽃밭 위에선 이성을 지켜 내 몸을 탐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어째서…….

「윤해―」

거친 숨을 내쉬며 내 목을 관능적으로 빠는 걸까.

오늘은 평소와 달라도 아주 다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도 내 이름을 또렷이 불렀다. 같은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고, 쉬는 이 시간. 인간과 괴물이었던 우리는 지금을 기점으로 친구 사이로 변했다.

그 ‘친구’란 개념이 좀 야한 짓을 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키스에 숨이 버거워졌다. 내가 가쁜 숨에 어지러워하자, 그는 입술을 내려 목에 혀를 댔다. 혀끝으로 간질이다가, 긋듯이 누르기도 하고, 과즙을 삼키듯 빨기도 했다. 목에 머무르던 그의 거친 숨이 점점 내려갔다. 쇄골을 물어 데우니 타 버릴 것 같았다. ‘으으응.’ 하고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흘리자, 그걸 들은 기온은 입술을 가슴으로 옮겨 살 곳곳을 한껏 물어 빨았다.

“읏, 아, 으응…….”

신기했다. 야한 짓인데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또한 그가 쓰는 언어 중 하나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분의 실체 같았다.

「먹는 것도 아닌데 맛있는 건 처음이야. 입에 담아 핥고 빨수록 더 갈증이 나는 것도 처음이고. 넌 알까? 혹시 너도 그렇진 않아?」

그는 유두를 빨다가 어깨를 물었다. 팔로 키스하며 내려오다가 다시 가슴을 빨아들였다. 몸의 한 점, 또 한 점이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몸속에서 피가 소용돌이쳤고, 그 소용돌이는 쾌락이라는 점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계속 이러다간 기온에게 다 흡수될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그에게 뜨거운 뭔가를 주고 싶어졌다.

“기온.”

이름을 부르자, 가슴을 빨아들이는 힘이 더 강해졌다. 나는 그의 등을 천천히 누르며, 그의 머리도 쓰다듬었다. 내가 천천히 다리를 벌리자 그는 하체를 더 꽉 밀어붙인 채 나의 체온을 느꼈다.

「하아, 하…….」

그는 숨결을 골랐다. 한참 전부터 부풀어 있던 성기는 완전히 딱딱해져 종아리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조금씩 마찰을 하며 그가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 날 보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또 키스했다. 이마와 머리에 세세히 닿는 입맞춤이 좋았다.

「미안해. 이런 짓하는 내가, 괴물 같아도 이해해 줘.」

가슴이 저릿했다.

대체 무슨 말이기에 이리도 애틋하게 들릴까.

“기온…….”

「그래 줄 거지?」

눈을 살짝 찡그리면서 웃는다. 그러면서도 흥분을 채 제어하지 못하듯 호흡이 가빠졌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생겼다. 그의 욕구라면 무엇이든 다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애정이 솟았다.

나는 몸과 함께 마음을 완전히 열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가 성기를 한껏 들이밀고 들어왔다. 헤매지도, 어려워하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고도 힘찬 삽입이었다.

아니, 그건 그의 또 다른 언어가 내 안에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심장부터 찌르르 울리던 몸이었다. 배 속에서도 뭔가가 가득 울렸다. 삽입 후 그가 나를 가만히 안고만 있었는데, 안이 진동하는 듯했다. 가슴으로, 다리로, 나도 모르게 그를 온 힘으로 죄었다. 온몸이 그를 모조리 흡수할 듯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자 그는 서서히 허리를 흔들며 비명 같은 숨소리를 터뜨렸다.

“크윽, 윽! 윽! 하! 윽!”

기온이 내게 가득 들어왔다. 들어오고 들어와도 부족한 듯 계속, 탐욕스럽게. 37 기지의 괴물이라 여겼던 것과 몸을 겹치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좋았다. 더 깊이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커져만 갔다.

빨라지던 그의 몸이 다시 느려졌다. 그는 일부러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벅찬 숨과 함께 말했다.

「아아, 이런 거였어. 알아? 나 처음이야. 다른 것들이랑은 하기 싫었어. 그러면 진짜 괴물이 될 것 같았으니까. 이런 건, 이런 몸짓은 좋아하는 상대와 하고 싶었지. 하지만 희망이 없었으니까, 그냥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일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너랑 하게 되다니. 좋다. 너무. 너무 좋아.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 내 마음껏 움직이고 싶어.」

그의 몸짓이 다시 빨라졌다. 나는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다가 격해지는 움직임에 혀를 깨물고 말았다.

“윽.”

「괜찮아?」

“응. 너무 좋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도 기온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여전했다. 나는 좀 부러 엄하게 말했다.

“멈추지 마. 혼낼 거야. 지금 너무 좋단 말이야. 기온. 응? 기온.”

역시 이름을 부르는 건 효과가 좋았다. 그는 다시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표정과 호흡 그리고 눈빛으로 마음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내가 과장하는 게 아니라면, 그는 경이로워했다. 좋아하고 황홀해하는 모습에서 신기함마저 볼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자제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솔직하게 나를 느꼈고, 내 몸을 즐겼다. 그가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들어 올수록 내 안의 나는 지워지고 오직 그만 남은 것 같았다.

「하아, 윽……!」

사정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내 안에 자신을 가득 부은 채로도 계속, 또 계속 움직였다. 연신 미안한 얼굴로 뭐라고 속삭이면서 끝도 없이.

등에서 꽃이 마구 짓뭉개진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를 밀어내고 좀 더 보송한 꽃밭에 그를 눕혔다. 그리고 그의 위로 올라탔다. 그는 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졌다.

모든 게 하얗게 보였다. 그가 누워 있는 꽃밭, 그의 밝아지는 몸, 그의 미소마저.

나는 그의 손에 키스하며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해도, 이번엔 내 힘으로 그를 절정으로 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 * *

참 문제다. 그와 처음 한 섹스인데, 이틀간 연속으로 하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임신은 안 되겠지? 외모는 인간이어도 전혀 다른 종이니까, 안 될 것이다. 또 안 돼야 하고.

그나저나 어제는 몰랐는데 다시 복통과 두통이 느껴졌다.

정신이 깨어난 이후, 그런 생각을 하며 반나절을 축 늘어져 있었다.

「일어나지 마. 그냥 누워 있어. 목말라? 물 가져다줄게. 기다려.」

그 말을 듣고 또 잠을 잤다.

한참 후 다시 깨어난 내게 그는 물을 주었다. 열매 바가지에 담아온 물이었다. 나는 그것을 모조리 마셨고, 후에는 그가 깨끗이 씻어 말린 담요를 덮고 누웠다. 그러자 그가 뭐라고 다정하게 말하며 말린 과일을 주었다.

충실한 하인처럼 잘해 주는 그를 보고 있으면, 내 자신이 너무 작아졌다.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기운을 차릴 때쯤 그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일을 했다. 꽃밭의 꽃을 따서 말린 다음 가루를 만들어 따로 보관했고, 마른 담요를 챙겼으며, 또 물과 식량도 챙겼다. 식량이라고 해 봐야 몇 가지 열매뿐이지만, 그것도 헬기에서 가져온 배낭에 넣고 보니 든든해 보였다.

물건 준비를 마친 그는 긴 머리도 가죽 끈으로 질끈 묶었다.

이제 보니 어디 먼 길이라도 떠날 듯한 모습이었다.

“뭐 해?”

내가 묻자, 그가 동굴 바깥을 가리키며 환히 웃었다.

「가자.」

상황과 제스처를 보니 어딘가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디로?”

이렇게 묻는다고 해서 확실하게 대답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나 눈빛, 표정으로 조금의 힌트라도 구하고 싶었다.

“어딜 간다는 거야?”

「저번에 데려가지 못했던 곳. 그때는 무리하게 빨리 가려다가 네가 다쳤어. 이제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힘들겠지만, 그냥 걸어서 가자. 생각해 보니,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아. 좀 고단하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게 감싸는 손길이 싫지 않았지만, 여전히 답을 알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너무 먼 곳은 아니겠지?”

「천국에 가는 거야. 그렇게만 알아 둬.」

손을 꽉 잡는 그의 손과 굵직한 목소리가 진중했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믿고 따라가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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