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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11화 (11/43)

11화

「드디어 뭔가 통하는 느낌이다!」

내 어깨를 잡고 가슴에 뺨을 비비다가 다시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러곤 바람개비처럼 꽃밭 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나는 어지러운 상태에서 외쳤다.

“그만! 좀 그만!”

「앞으로는 말도 통하겠지, 응?」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천진난만함이 부담스러웠다.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상이라도 줄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위험하지 않은가. 지금 이렇게 동굴 속 꽃밭 위에서 단둘이 몸을 접촉하는 거, 아슬아슬했다.

예상치 않은 상황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가령, 갑자기 그가 르피레보다 더한 변태가 되어 내 몸을 덮친다든지.

신사적이라고 해도 그는 결국엔 괴물과 한 무리에 속해 있으니, 갑자기 짐승처럼 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곧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냐.”

기온이 그럴 리 없었다.

이성을 쉽게 잃을 괴물이었다면 진작 잃고도 남았을 테지.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내 몸을 먹는 데 쓰거나 욕구를 푸는 데 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렇게 내 몸과 붙어 있다고 해도, 절대로 나를…….

“기온. 넌 참 자제심이 뛰어나.”

나는 내가 한 칭찬이 사실이길 바랐다.

* * *

열흘째 밤이었다.

우리는 잠들기 전에 항상 곁에 빛나는 호박을 두고 잤다.

샘물에서 목욕할 때 물을 데우려고 띄웠던, 그 빛 알갱이를 가둔 투명 호박은 유용했다.

‘빛의 요람’이라 불리기도 하는 호박은 참 가벼웠는데, 그래서인지 이따금 동굴 속으로 들어온 바람에 밀려 흔들렸다. 때론 절벽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때론 동굴 저 안으로 구르기도 하고 또 잠든 우리의 몸을 툭툭 치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호박이 구르다가 내 머리를 가볍게 툭 치고 지나갔다.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계속 잠을 청했겠지만, 어딘가 이상한 느낌에 나는 눈을 떴다.

아래가 축축했다.

망할. 월경이 시작되었다. 엉덩이 아래의 담요와 탄내 꽃이 전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예상한 일이긴 했다.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가슴만 부풀고 아팠으니까. 극심한 스트레스에 좀 늦춰지다가 이제야 시작한 것이다.

덜컥 걱정이 들었다. 헬기엔 여분의 생리용품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고립될 줄 몰랐으니 챙겨 오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깔끔하게 처리해야만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 몇몇 암컷들처럼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도 끔찍했다.

급한 대로 가위로 여분의 담요를 조각내어 기저귀처럼 쓸 수밖에 없는 건가.

“쯧.”

나는 혀를 차며 빛나는 호박을 들었다. 이제부터 동굴 속 샘물 목욕탕에 가서 씻을 건데 그러려면 랜턴 역할을 하는 이 호박은 필수였다.

발걸음이 느렸다. 생리 첫날 특유의 몸이 붓는 느낌에 빠르게 걷기 싫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드디어 도착했다.

모퉁이를 돌기만 하면 바로 샘물이 나올 것이었다.

그 직전 느껴진 기척과 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아. 하.」

누군가의 숨소리였다. 낯설지 않았다. 기온의 숨소리인 듯해서 나는 바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다시 내 기척을 숨겨야 했다.

봐선 안 될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는 자위를 하고 있었다. 물가에 걸터앉아 자신의 성기를 만지고 또 만졌다. 아니, 그건 마찰이었다.

시선은 물이 흐르는 벽을 향해 있었고, 입 밖으로는 뜨거운 숨이 흘렀다. 손을 점점 빨리 놀리면서 쾌감에 이르려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는데, 그러지 않은 내가 용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놀랄 것도, 충격일 것도, 없다.

낯설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 역시 숨이 붙어 있는 생물이다. 정상적인 생식이 가능한지는 몰라도 일단은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그가 욕구 해소를 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게다가 험한 식으로 충족한 것도 아니었다. 저 정도면 은밀하고 순한 편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장소와 시간을 택해 혼자서 처리한 부분은 좀 고맙기도 했다. 괴물의 우두머리라는 자리에 있으니 얼마든지 충동에 이끌려 르피레처럼 제멋대로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아.”

나는 눈을 감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아래의 처리가 급했지만, 그를 방해하지 않고 돌아서기로 했다.

생각 끝에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엄마! 으악!”

나는 눈앞에 있는 기온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온몸이 반짝거리는 그는 민망한 하체를 담요로 감싸 가린 상태였다.

「이봐.」

그가 한쪽 팔을 뻗어 내가 서 있는 벽 옆에 짚었다. 나는 철책처럼 둘러진 그의 팔을 보았다. 이런 위압감, 기분이 이상했다.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그러자 그가 걸음을 옮겨 내 시선의 앞에 섰다.

마지못해 나는 그를 보았다.

그의 눈이 묻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평소와 달리 무서워 보였다.

그가 점점 다가왔다.

나는 뒤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가로막힌 벽 때문에 더 물러날 수 없었다.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호흡도 가빠졌다.

그의 호흡인가 했더니, 내 것이었다.

그의 몸에서 밝은 빛에 이어 빛 알갱이가 뿜어져 나왔고, 나는 그 기묘한 현상에 전처럼 또 영향을 받아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뭐 했지? 언제부터 날 본 거야?」

그의 말이 구애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낮고 선명한 목소리도, 도발적인 표정도, 눈빛도 모두 달콤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알갱이는 마치 설탕 같았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둥둥 떠다니던 빛 알갱이 하나가 내 입속에 들어왔다.

미치겠네. 그에게 키스해 버릴 것 같았다.

“……!”

「……?」

이럴 수가.

충동을 느끼자마자 몸이 움직일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미 그의 입술에 닿아 있었다. 닿은 것도 모자라 혀를 꺼내 핥기 시작했다. 의지를 벗어난 채 탐하는 입술은 그의 눈빛이나 목소리보다 몇 배는 달콤했다.

“흡!”

입술의 결은 부드러웠고 촉감은 코코넛 과육 같았다. 시아로파의 향기가 이렇게나 맛있었던가? 아찔한 맛에 타액이 턱을 타고 흘렀다.

순간,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예쁜아.」

나를 부르는 듯했다.

「너,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

그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더니 키스를 퍼부었다. 내가 했던 것보다 더 격렬한 키스였다.

아니, 그가 퍼붓는 입맞춤은 절대로 키스라고 부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신선한 물을 마실 때의 짜릿함을 입술로 표현하는 듯했다. 갓 딴 시아로파에서 즙을 짜내 마실 때처럼 갈증이 느껴졌다.

흥분이 고조에 이른 나 역시 그의 몸을 껴안았다. 그러자 그가 거친 숨을 토하며 내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아!”

아픔은 흐려지던 이성을 다시 예리하게 꺼냈다.

불현듯 얼마 전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이 기억난다.

고울에게 몸을 뜯어 먹히던 재환의 모습.

기온은 고울처럼 식인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금 박아 둔 아픔은 그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재생시켰다.

나는 넌더리를 치듯 그의 몸을 밀어냈다.

거부의 몸짓에 그가 키스를 멈췄다.

「미안. 아팠지? 실수였어. 다시 하면 깨물지 않을게. 응? ……예쁜아?」

나는 아쉬워하는 그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나 그나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아픔에 내 정신만 평상시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길진 않을 것이다. 그의 몸에서 빛 알갱이가 뿜어져 나오는 한, 나는 다시 흥분의 상태로 되돌아갈 테니까.

그를 말려야 했다.

나는 두 손으로는 그의 팔을 달래듯 천천히 어루만졌다.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이건, 이건 뭔가 위험해.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하는데 갑자기 그가 손을 끌어와 손등을 할짝거렸다. 살짝 뺀 입술이 못 다한 키스를 마저 이어 갈 듯 간절하게 손등을 핥았다.

이건 구애였다.

아니면 식욕을 뜻하는 걸까?

어쨌든 그에게 물린 내 입술은 아직도 얼얼했고, 나는 흥분한 와중에도 이런 상황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싫은 게 아니야. 네가 싫어서 그런 건 절대…… 그냥 무서우니까. 너무 무서우니까.”

나는 탄내 꽃밭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하지만 어리석은 일이었다. 번개처럼 빠른 그의 앞에서 빠르게 뛴다 한들 손바닥 안이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손이 잡혔다.

「예쁜아. 잠깐.」

“놓으라고 했잖아!”

신경질적으로 외친 후, 정적이 흘렀다.

내가 지른 소리에 나조차도 놀랐다. 과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놓아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미안.」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꽃밭으로 달려갔다.

아니,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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