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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10화 (10/43)

10화

무슨 말일까.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해. 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그가 뭔가 동의를 구하듯 내뱉은 ‘응?’이라는 소리였다. 그는 내가 웃을 때까지 보챘다. 내 앞머리를 훌쳐 주기도 하고, 어깨를 다정하게 살짝 흔들어 주기도 했으며, 걱정하는 표정을 내내 짓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결국, 나는 억지로라도 웃어 주었다.

그러자 그가 활짝 웃으며 뭐라고 말했다.

「그래. 이렇게 웃어.」

억지로 웃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로 웃게 되었다.

참 알 수 없었다. 불편해야 하는데, 그게 맞는데, 그의 안달 난 강아지 같은 표정을 보면 왜 마음이 편히 놓일까?

「오늘 해가 참 지긋지긋하다.」

우두머리는 중얼거리며 나를 제 무릎으로 홱 끌었다. 졸지에 나는 그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커다란 손이 막았다.

“아후.”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더위에 지쳐 얌전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그의 무릎은 담요에 덮여 있어도 차가운 느낌이었다. 희한한 체온이다. 어떨 때는 한없이 뜨겁다가, 지금 이렇게 끓는 태양 아래서는 한없이 시원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시원함을 평가했다.

“좋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때마침 하늘을 보고 있었다. 태양에 녹아난 새파란 하늘 아래 선명하게 각이 서 있는 그의 새하얀 턱은 괴물의 것답지 않게 고왔다.

어떻게 탄생한 괴물이기에 머리카락은 있는데 수염 자국은 하나도 없을까? 면도를 딱히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털이 비교적 촘촘히 나 있는 괴물들과는 달라서, 내가 더 친근감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문득 만져 보고 싶어졌다. 촉감을 확인해 보고 턱의 체온도 느껴 보고 싶었다. 궁금증에 손이 저절로 움직이려 했다.

그 순간, 그가 다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선명한 하늘색 눈동자를 보자 나는 그대로 손을 멈췄다.

그는 내 손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잡았다. 어쩐지 이제까지와는 다른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네가 타고 온 이 공간은 좋은데…… 계속 여기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뭐라는 거야.

「밤에는 인공 달이 뜨니까.」

인공 달.

정식 명칭은 인공 달이지만 다른 말로는 ‘하이퍼 문’으로 불리는 단어를 그가 말했다. 하이퍼 문이라고 또렷이 발음했다.

유일하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달이 뭐 어떠하다는 건지는 몰라도, 그는 분명 인공 달을 말하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 준 걸까? 어떻게 안 거지?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프지는 않은데, 아플 정도는 아닌데…….

갑자기, 햇살 아래 그의 눈이 차가운 남색처럼 보였다.

「궁금해. 달이 들 때까지 여기 있어도…… 내가 널 가만히 둘 수 있을까?」

제4장. 통했다

괴물의 세계에 발 들인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직 숨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많은 걸 파악했다. 연구소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이 낯선 괴물이 섞여 있는 무리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아 간 상태였다.

우두머리의 이름은 기온.

모두가 그를 기온이라 불렀다.

기온은 제 무리의 괴물들에게 시아로파를 포함한 여러 먹이를 구해 주었다. 이 협곡에서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시아로파 밭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그는 괴물들이 원할 때마다 많은 양의 시아로파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행하는 몸짓은 일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무척이나 빨랐다. 자연 법칙을 깨 버리는 빠르기는 괴물들에게 그 자체로 공포로 군림했다.

모든 괴물이 남다른 능력을 지닌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그중에서도 최측근으로 명령을 듣는 부하가 둘 있었는데, 검은 피부의 거인인 고울과 붉은 원숭이처럼 생긴 르피레가 바로 그들이었다.

고울은 동족을 먹는 끔찍한 괴물이지만 성격은 순했다. 때론 바보 같기도 했다. 그 덩치로 르피레에게 툭하면 맞았다. 그런데도 딱히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괴물 중 웃음도 많은 편이라, 죽은 동료의 사체를 뜯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웃었다. 정이 많아서 혈관이 축 늘어나는 다리 살 하나를 내게 권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복잡한 감상을 주는 괴물이었다.

르피레는 고울과 정반대였다. 그는 웬만하면 육식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 시아로파만 먹고 그게 부족하면 다른 풀을 뜯어 먹었다. 다른 짐승이나 동료를 입에 넣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채식주의 괴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르피레는 성 취향이 남달랐다. 성기의 모양새를 보면 수컷이 분명한데 희한하게도 거의 수컷만 탐하며 매일 교접을 시도했다. 그것도 털이 없는 수컷에만 끌리는 듯 비교적 매끈한 놈들만 골라서 일을 저질렀다.

처음엔 알 수 없었다. 그 붉은 원숭이 자식은 덩치도 작은데 어떻게 수컷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건 녀석의 민첩함과 양쪽 어깨에 길게 돋아난 뿔 덕분이었다. 우두머리 기온의 빠르기에 비할 바 안 되지만 르피레는 상당히 몸짓이 날렵했고 어깨에 돋아난 뿔이 위협적이라 그것으로 공격을 시도하면 어떤 괴물이든 제게 무릎을 꿇릴 수 있었다.

단 한 사람, 그보다 더 빠른 기온을 빼고.

어쨌거나 이 무리의 수컷들은 나를 괴롭힐 궁리만 했다. 그들은 기온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내게 달려들었다. 냄새를 맡는 건 예사였다. 손을 대 피부를 만져 댔고, 귓바퀴를 잡아당기기도 했으며, 머리칼을 뽑으려 하기도 했다.

그러한 행동은 암컷들의 질투를 일으켰다. 암컷들은 내게 직접 다가오진 않았지만, 나만 보면 저들끼리 수런거리거나 해코지를 했다. 그 해코지란 게 멀리서 돌 던지기, 가까이서 침 뱉기인데, 견디기 좀 어려웠다.

그나마 고울이 발견해 괴물들을 자제시킬 때는 좋았다. 나는 그 식인종 거인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험한 괴물들에게서 내가 기댈 만한 존재는 기온밖에 없었다.

그는 괴물이지만 괴물이 아니었다.

하얀 피부와 금빛 머리칼, 은은한 하늘색 눈동자로 이뤄진 눈부신 외모가 그랬고, 사근사근한 말투와 우아한 몸짓이 그랬다.

식성도 다른 괴물들과 달리 까탈스러웠다. 기온은 시아로파의 고운 새순만 먹었으며 고울처럼 동료를 먹진 않았다. 대신에 작은 동물은 먹었는데, 그 동물도 꼭 불에 태워서 부드러운 속살만 먹었다.

게다가 깔끔했다. 목욕과 나름의 양치질을 할 줄 알았다. 아마 인간과 같이 산 적이 있거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이 괴물임을 부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기온은 내게 적대적인 다른 괴물들과 달리 아주 호의적인 신사였다. 그는 내가 싫어하면 절대로 내 몸을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다른 괴물들처럼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반복적으로 맡을 때가 있었지만, 묘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동굴 생활이 지겨워서 헬기에 가곤 했다. 그곳에는 갖고 놀 만한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페이퍼 컴퓨터였다. 통신 상태는 망가졌지만 내부 자료가 많고 태양전지로 돌아가서 언제든 켜고 놀 수 있었다. 독서도 되고 글쓰기도 가능해서, 지겨워질 때마다 그것을 켜서 놀았다. 괴물들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기도 했다.

내가 페이퍼 컴퓨터 앞에 있으면, 기온은 다른 괴물들에게 뭐라고 윽박질렀는데, 그 이후엔 괴물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그게 기온의 세심한 배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달 뜨네. 얼른 자러 가자.」

그는 달이 완전히 뜨기 전에 나를 항상 동굴로 데려갔다. 가기 전에 헬기에서 에너지 바와 물을 챙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동굴로 향할 때 우리는 꼭 손을 맞잡았다. 함께 동굴의 어스름한 어둠을 뚫고 걸어가면 기분이 이상했다. 빛나는 그의 몸에 자꾸만 들뜨는 나를 느낀다. 과도한 성적 흥분 현상, 혹은 마약 중독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밤만 되면 빛과 향기를 내뿜는 그에게 나는 곧잘 흥분했다.

그러나 그런 증상은 탄내 꽃밭 위에 다다르면 거짓말처럼 뚝 멈추었다. 그 꽃밭 특유의 매캐한 냄새는 내게 이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내가 이성을 유지하는 한, 그도 내게 거리를 지켜 주었다.

우리는 꽃밭 위에 누웠다. 바로 잘 것 같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자기 전엔 늘 수업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인간으로서 가르쳐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페이퍼 컴퓨터 속에 저장된 인간 세상의 정보, 깔끔하게 머리 땋는 법, 공기놀이, 담요를 옷처럼 둘러 묶는 법, 욕설, 유행하던 노래까지, 다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심심풀이용 수업이었다. 답 없는 미래를 견뎌 내려고 만든 취미이기도 했다.

그는 내 말을 유심히 들었고,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잘 배우는 편이었다. 특히나 인간들의 물건에 관심이 많아서 페이퍼 컴퓨터를 대할 땐 눈빛이 달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페이퍼 컴퓨터 한 대를 더 가져와 그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때론 내게 이곳에 대해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목욕하는 법, 볼일 보는 법, 시아로파 가지로 양치질하는 법 등을 터득해 더욱 편히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이가 좋아졌다. 괴물과 괴물에게 잡힌 위기의 인간치고는 정말 너무나 사이가 좋았다.

담요 빨래를 하다가 물장구를 치고 놀 땐 생각 없이 해맑은 아이들 같았다. 끌어안고 서로를 커다란 베개로 여기며 잠들기도 했고,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다가 칭찬을 주고받을 땐 유치원 아이들처럼 부끄러워했다.

칭찬이 머쓱한지 그는 가끔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는데, 나중에 돌아올 땐 꼭 내가 먹을 만한 과일들을 가져오곤 했다.

「먹어.」

“고마워.”

「고마워.」

“내 말 따라 하는 거야?”

「내 므알…… 따라 하? 에이. 망할. 안 할래. 이건.」

“뭐야. 재미있어. 계속해 봐. 계속 내 말을 따라 해 봐, 기온.”

「내 이름 불러 준 거야? 또 말해 봐. 기온. 기온.」

“기온.”

「또.」

“……기온.”

나는 느꼈다. 이 호의적인 괴물을 잘만 이용하면 이곳을 탈출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잘했어! 예쁜아! 기온! 그게 내 이름이야!」

내가 이름을 똑바로 불러 주니 좋은지, 그는 와락 안겨 들어 몸을 비볐다.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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