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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9화 (9/43)

9화

나는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에이, 몰라.”

그동안 그가 내게 먹을 것과 마실 거, 씻을 물을 데워 준 것들을 생각해 에너지 바 하나를 주는 것도 도리라고 여겼다.

에너지 바 하나를 까서 들이밀었는데 정작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고맙지만 사양하지.」

“왜 안 먹어?”

「인간들 음식을 잘못 먹어서 탈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리고 너 먹을 것도 부족한데.」

“뭐라는 거야. 먹기 싫으면 그만둬.”

「그래도 맛은 궁금하다.」

“그렇게 보지도 마. 배고픈 강아지도 아니고 말이야. 덩치는 큰 게.”

「부스러기 묻히고 종알거리는 네 입술 맛도 궁금해져.」

또다. 또 이유 없이 느끼함이 느껴진다.

나는 나를 보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그의 표정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어제보다 두렵진 않았지만, 다른 의미로 찝찝했다.

하긴, 괴물이 나를 실시간 관찰하는데 기분이 좋으면 이상하지.

목이 텁텁했다. 탄산수 하나를 따서 삼키며 먼 곳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시선을 피한 건 큰 실수였다. 봐선 안 될 게 시야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으윽.”

또 그 검은 피부의 거인이 보였다. 어제 재환을 뜯어 먹었던 괴물이 동족을 또 뜯어 먹고 있었다.

지켜보는데 심장이 뛰었다. 재환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때처럼 우지끈하게 아픈 채로 뛰었다.

보통 괴물들은 우두머리나 거인처럼 특수한 외형을 가진 자들을 제외하곤 2.5미터가 많은데, 지금 먹히는 가여운 괴물은 고작 내 키와 비슷했다.

아직 어린 괴물 같았다. 다리부터 뜯어 우적우적 씹어 먹히는데, 그렇다면 머리로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반항을 하지 않았다. 기절한 상태로 먹히는 건지, 아니면 죽어서 먹히는 건지? 어쨌거나 끔찍하긴 매한가지였다.

“욱…….”

나는 입을 막고 그 장면에서 눈을 돌렸다. 역겨움에 지금껏 먹었던 것이 다 나올 것 같았다.

저 멀리서 그렇게 끔찍한 일이 행해지는데도 우두머리는 평온하게 에너지 바를 요리조리 살펴보기만 했다.

그 무신경함이 부러웠다. 물론 그에게는 일상이니 무신경하고 말 것도 없을 것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이중적인 기분이 들었다.

비록 괴물의 우두머리긴 하지만, 나름대로 내게 잘해 준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설마 갑자기 태도가 변해 나를 저 고깃덩이처럼 으깨 씹진 않을까?

아니.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절대로.

「왜 그렇게 봐? 되게 불쌍해 보여.」

나는 그의 말도, 이러한 현실도, 모두 어렵기만 해서 고개를 저었다.

저 멀리서 턱 소리가 들렸다.

검은 거인이 먹고 남은 것을 어디론가 던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끔찍해서 눈을 꼭 감았다. 태양이 이토록 작열하는데도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몸서리쳤다.

그런 내 몸을 뭔가가 감쌌다.

「추워? 왜 이렇게 떨어?」

우두머리가 남은 담요 중 하나를 들어 내 몸을 감싸 주었던 것이다.

새끼를 돌보는 부모처럼 다정한 몸짓의 의미를 처음엔 알 수 없었다.

눈을 뜬 나는 그를 보았다.

「촉감 좋아. 그치?」

그는 내게 착 달라붙어 담요로 만든 치마에 뺨을 비벼 댔다. 두 눈을 꼭 감고 입가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금색의 긴 속눈썹이 괴물의 것 같지 않고 고와 보였다.

괴물이 아니라 애교 많은 강아지 같았다.

정이 부족한 건가.

애초에 괴물들에게 정이 필요한가?

당황스러워 그에게서 몸을 조금 뗐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굉장히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작 좀 처먹어! 고울! 새벽에 먹은 여우 소화는 시키고 먹냐, 이 새끼야?」

괴물들의 목소리는 우두머리를 빼고는 원래 끔찍했다.

그런데 지금 들은 목소리는 끔찍함을 넘어 악독함마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놀랐다.

이번에는 나보다 훨씬 작은 괴물로, 피부가 다른 괴물들보다 더 빨갰다. 붉은 원숭이처럼 생겨서 날름 내민 혓바닥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뿔이 날 수 없는 것 같은 양쪽 어깨에 뿔이 돋아나 있었다.

기형의 붉은 원숭이라 이름 붙이면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붉은 원숭이는 검은 거인에게 잔소리를 하는 표정으로 외치다가 설핏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원숭이의 샛노란 눈동자가 기분 나빠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그 작은 원숭이가 이리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대장! 일어났나!」

「르피레. 넌 유독 아침에만 목소리가 너무 높아. 좀 낮게 말할 수 없나?」

「미안!」

「그건 그렇고, 순찰은 어때?」

「별일 없었어!」

붉은 원숭이는 우두머리에게 극히 복종의 태도로 대화를 이어갔다. 도중에 나를 흘끔 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찝찝했다. 원숭이의 시선에서 경계심과 혐오가 느껴졌다. 내가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검은 거인이 포악한 식사법으로 무섭게 느껴졌다면, 저 붉은 원숭이는 덩치는 작아도 그 안에 깃든 꺼림칙함이 소름 끼쳤다.

「그럼 가 봐.」

「그런데 말이야!」

「뭐?」

「오늘 시아로파를 주지 않았다만!」

「아. 그랬지. 참.」

붉은 원숭이는 간곡한 말투로 우두머리에게 말했고, 우두머리는 뭔가 잊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 우두머리가 나를 보았다.

그의 새하얀 손이 내 몸을 둘러싼 담요를 좀 더 꼼꼼히 여며 주었다.

「여기 있어. 금방 올 테니까.」

너무나 작게 속삭이는 그 말은 연인끼리 약속이라도 하는 듯 은밀했다. 그리고 다정했다.

나는 의아해서 그를 보았으나, 그는 헬기 밖으로 나가더니 순식간에 또 사라졌다.

번쩍. 어제도 그랬듯 번개처럼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리고 헬기 안에 혼자 남은 나는…….

「고울. 저 암컷이 대장의 먹이라고?」

「그래. 르피레.」

「왜 아직 살아 있을까!」

「모른다.」

검은 거인과 붉은 원숭이의 시선이 기분 나빴다. 왜 자꾸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걸까.

외면하려고 나는 헬기 바닥으로 몸을 웅크렸다. 우두머리가 담요를 덮어 주고 간 것도 효과 없이 오싹했다. 견디는 시간이 괴로웠다.

모두 괴물이긴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어느 정도 아는 괴물을 대하는 것과 모르는 괴물을 대하는 것은 기분이 달랐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는 괴물-그러니까 우두머리가 옆에 있었으면 했다. 저 바깥의 검은 거인이나 빨간 원숭이와는 단 1초도 있고 싶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의 눈빛이 내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나에 대한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혹, 대장을 유혹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싫증이 났으면 좋겠군.」

「흐흐. 우리끼리 같이 나눠 먹기도 하고, 응?」

「미친. 나는 너처럼 뭐든지 뜯어 먹지 않아! 오히려 즐기는 축에 속하지!」

「변태 놈. 너한테 당할 바에 혀 깨물고 죽겠다.」

「말 다 했냐, 덩치! 뒈져 볼래?」

「덤벼라. 가루를 만들어 주겠다.」

사람을 잡아먹었던 거인의 굵직한 목소리와 기분 나쁜 눈빛의 붉은 원숭이가 내뱉는 고음이 서로 공처럼 오갔다. 해석을 할 수 없으니 더 무서웠다.

아니, 해석하는 게 더 무서운 건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몸을 덜덜 떨기를 몇 분이 흘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두머리의 것이다!

「자아. 먹이다! 이 정도면 실컷 먹겠지? 알아서 나눠 먹어. 다투지 않고 잘 나눠 먹으면 저녁에도 또 구해다 주지.」

이 상황에서만큼은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나는 당장 바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선 우두머리가 괴물들에게 시아로파를 나눠 주고 있었다. 시아로파뿐만이 아니었다. 몸집이 큰 기형 개도 있었다. 축 늘어진 걸 보니 죽은 게 분명했다.

「먹이닷!」

「먹이야!」

「감사합니다! 대장!」

그건 다 괴물들의 먹이가 되는 모양이었다. 괴물들은 저마다 우두머리에게 복종, 충성, 감사의 몸짓을 보였다.

그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우두머리는 헬기로 다가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짓는 웃음이 묘하다. 햇빛이 따가운 듯 살짝 찡그리며 웃는데, 양 볼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갔다.

나는 눈을 일시적으로 질끈 감았다.

아.

그의 피부가 하얀 편이라 그런지, 보고 있으니 눈이 따가웠다.

「여기 좋다. 깔끔하고 복잡해. 인간의 물건 느낌이 나. 여기 타면 나도 인간이 된 것 같아.」

그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나는 그를 피하지 않았다.

「뭔지는 잘 몰라도 인간들만의 무언가가 느껴져. 앞으로 내 자리로 써야겠어.」

우두머리는 헬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뒷자리의 남는 공간에 누워 뒹굴었는데, 해맑은 그 모습이 동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가령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준 나무 위 작은 오두막에 간 소년이나 아니면 숲 은밀한 곳에 자기만의 비밀 기지를 만든 소년처럼. 내게 비유의 재능은 없지만, 어쨌든 그는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은 안심하며 그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안심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낯선 곳의 위험한 괴물들에게 잡힌 내가 헬기도 통신 기구도 망가진 마당에 안심을 한다?

지나가는 저 괴물들이 웃을 일이었다.

「와하하하!」

때마침 뒤에서 우두머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니, 그의 손에는 휴대용 선풍기가 있었다. 용케 전원을 켜 시원한 바람을 제 몸 이곳저곳에 쐬는 중이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큰 웃음을 터뜨리던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이거 되게 시원…… 어? 너 표정이 왜 그래?」

그는 선풍기를 던져 버리고 다시 앞좌석으로 왔다.

그리고 시아로파 향이 강하게 나는 손으로 내 입가를 쭉 찢을 듯 올렸다.

「예쁜아.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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