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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8화 (8/43)

8화

그는 샘 주변에 굴러다니는 반짝이 호박을 샘물에 하나둘 있는 대로 넣었다.

뭘 하려는 건지, 의도를 알 수 없어서 지켜보았는데, 그가 호박을 7개 정도 넣고 난 후에 물에 손을 가져갔다.

「됐네. 딱 좋다. 이제 들어가도 돼.」

나는 그를 따라 손을 물에 집어넣어 보았다.

“어…… 뭐야.”

물이 따뜻해졌다. 체온보다 조금 높아 몸을 담그기 딱 좋았다. 신기해서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가를 올려 웃고 있었다.

「좋아?」

“응?”

「내가 이렇게 해 주니 좋지?」

“뭐래, 또…….”

「있지. 난 다른 녀석들이랑 다르다고. 뭔가, 뭔가 인간답거든. 진짜야.」

나는 그를 무시하고 물에 들어갔다. 물론, 벗고 들어갈 수 없어서 옷은 입은 채였다.

기분 좋은 따뜻함이 온몸을 감쌌다. 벽 한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가만히 따뜻함을 즐기기로 했다.

“아. 이건 좀 좋네.”

지옥 속 천국이라면 이런 기분일까. 이대로 머리끝까지 푹 잠겨 무의식의 세계로 사라지고 싶었다.

따뜻함을 만끽하는데 우두머리가 어디론가 갔다. 쥐처럼 자그마한 생물이 나타나 그의 주의를 끈 것이다. 그는 기분 나쁘고 성가신 걸 본 양 그 생물을 멀리 쫓아내려 동굴 저 안쪽으로 나갔고, 나는 더더욱 깊이 물속에 몸을 담갔다.

“아아아. 좋다.”

나른하게 기지개했다가 빛나는 호박을 들여다보았다. 호박 속의 빛 알갱이는 아무리 봐도 어제 우두머리의 몸에서 나왔던 것과 같았다. 이 호박을 터뜨리면 어젯밤처럼 다시 그런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몽롱해져 알갱이를 입에 머금으려 할 테고, 그 후엔 또 이성을 잃겠지…….

괜히 호박을 깨서 좋을 건 없을 것이다.

답답한 기분에 물속에서 걸리적거리는 바지를 벗었다. 팬티도 벗어 땅에 올려 두었다.

완전한 알몸으로 씻고 또 씻었다.

벽에서 차가운 물이 흘러내려 왔지만, 그 차가운 물도 투명 호박이 뿜어내는 온기에 금세 데워졌다.

여기서는 얼마간이고 이렇게 목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딱 그때까지일 뿐이었다.

작은 동물을 쫓아내고 우두머리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내 팬티와 바지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제 허리에 감긴 가죽을 몽땅 벗어 던지며 물에 들어왔다.

「같이 씻자.」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안 돼. 들어오지 마.”

알몸으로 웅덩이에 들어온 그가 기어이 내게로 향했다. 용건이라도 있는 듯 점점 거리를 좁혔다.

「인간들은 어떻게 씻지? 알고 싶어. 나도 인간들 씻는 건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거든. 뭐랄까. 좀 더 인간다울 거야.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인간다울 거라고.」

부담스러운 그에게서 피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피하려 했지만, 어차피 좁은 웅덩이 안에선 소용없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알몸인지라 쉽지 않았다.

옷을 입어야 한다. 최대한 빠르게.

나는 팔을 뻗어 내가 벗어 놓은 젖은 팬티를 챙기려 했다.

그러자 그가 내 팔을 잡았다.

「나가려고?」

“뭐래?”

「아직 따뜻한데 왜?」

“손 놔.”

「이런 건 치워 버려.」

그는 내 바지와 팬티를 저쪽 바닥에 던져 버렸다.

황당한 나는 그를 피하며 따졌다.

“뭐 하는 짓이야!”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씻는 데 걸리적거리잖아. 입지 마.」

그러고는 머리끝까지 잠글 기세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또 나왔다. 또 들어가고, 또 나왔다.

「푸하! 되게 따뜻해! 예쁜이도 이리 와! 얼른!」

“뭐야…….”

물장구를 치며 유유히 물속을 돌아다니는 그는 괴물이라기보다 덩치 큰 아이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탄성을 터뜨렸다. 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물장구를 쳤다. 미소와 여유와 장난과 천진난만함이 그의 머리와 사지를 타고 물에 어우러졌다.

시선은 늘 내게로 향해 있었다.

줄곧 생각하는 거지만, 괴물의 눈 같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공포와 두려움과 이질감을 점점 잊어 갔다. 그리고 아예 나중에는 마치 가족에게 하듯 일상적인 말투로 그에게 이런저런 말도 걸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봐. 너, 외계인이지?”

「응?」

“너 같은 건 본 적이 없어. 병기 도감에서도 마찬가지고. 지금껏 그 어느 종도 너같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일 순 없거든. 아니……. 애초에 다 말이 안 되지. 외계인이 왜 사람처럼 생겼겠어. 이건 말이 안 돼. 그래.”

물론 그에게 통하진 않았다.

「나 유혹하려고 재잘거리는 거야? 그치? 감이 좀 그런데……. 내가 틀렸나?」

이유를 모르게 느끼한 눈빛을 보내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물이 식어 가고 있었다.

빛나는 호박에서 빛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호박 속 빛 알갱이들이 힘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동굴 속도 어두워졌다.

그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슬슬 나가자.」

그는 내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따라 나가 줄 수 없었다.

「왜?」

나는 지금 알몸이다. 젖어 버린 팬티와 옷은 저 멀리 바닥에 있고, 이대로 나가긴 확실히 이상했다.

물론 어제는 셔츠가 뜯겨 상반신을 노출했지만,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고 지금은 달랐다.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부끄러웠다. 괴물 앞이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이번에도 나는 물속에서 그러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알아듣게끔 하는 게 통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아오! 속 터지네. 좀 알아들어라!”

급기야 설명하다 속에 불이 붙은 나는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 그것도 내 옷이 아닌 그의 하체를 가리고 있던 가죽으로 온몸을 칭칭 싸 보였다.

그는 무척이나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이런 거! 이런 옷이 필요하다고! 응? 나도 옷이 있어야 물 밖으로 부담 없이 나갈 수 있단 말이야!”

온 동굴에 내 목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왔다.

씩씩…….

별것도 아닌데 너무 소리를 질렀나?

절절한 고성에 담긴 내 뜻이 드디어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 것 같다는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예쁜 옷이 입고 싶은가 보구나? 보자……. 어디서 구하지?」

* * *

태양이 잔인하게 빛을 뿌렸다. 끓는 바람은 협곡의 거친 땅을 매만졌고, 허공엔 메마른 먼지가 숨결처럼 터져 나왔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타고 왔던 온 헬기를 보았다.

헬기는 멀쩡하지 않았다. 이제 절대로 다시 날 수 없을 것이다. 창과 회전 날개가 부서진 모습을 보니 내 가슴도 다시금 부서졌다.

다 저 괴물들 때문이다.

괴물들이 건드린 게 틀림없을 테니까.

나는 괴물들을 보았다. 딱히 노려보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힘이 빠져, 아무런 생각 없이 보는 것이었다.

헬기 주위에서 그들은 나와 우두머리를 보고 웅성거렸다.

「뭐야. 왜 대장의 가죽이 저 암컷 몸을 가리는 데 쓰이고 있는데?」

「그리고 대장은 왜 알몸이고?」

「대장이 저 암컷에게 가죽을 준 게 아닐까?」

「세상에. 그럴 리가? 대장이 그럴 리 없다.」

「둘이 잤나?」

「잤네. 잤어.」

수런거리는 괴물들이 짜증나는지 우두머리가 외쳤다.

「꺼져! 시끄럽게 하지 말고!」

큰 소리에 움츠러든 괴물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헬기 안으로 들어갔다.

망가져서 다시는 날 수 없다고 해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 것이다. 통신 장치도 그렇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식량도, 물도.

과연 예상대로였다.

통신 장치도, 식량도, 물도 다 있었다. 여분으로 준비해 둔 담요도 4개나 있었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통신 장치의 전원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우두머리에게서 빼앗아 썼던 가죽을 몸에서 떼어 내고 더 부드러운 담요로 온몸을 칭칭 감았다.

그러자 날 따라온 우두머리도 그 담요 중 하나를 들어 날 따라 했다. 게다가 그는 이런 더위에도 온몸을 감싸는 담요의 감촉이 퍽 좋은 모양인지 행복감에 젖어 든 표정을 지었다.

「부드럽다. 이거. 인간들 옷은 참 부드러워서 좋아.」

“뭐 하는 거야?”

「참. 나는 가슴은 안 가려야겠다. 답답해.」

우두머리가 가슴까지 올려 묶은 담요를 허리로 내렸다.

“이상한 애야.”

나는 생수와 먹을 것을 찾았다. 다행히도 양이 제법 넉넉했다. 생수도, 탄산수도, 에너지 바와 간편식도 있었다.

물부터 찾았다. 물다운 물을 마시고 싶었으니까. 300밀리리터 용량의 워터 바를 들자마자 한입에 흘려 넣었다.

다 마시고 나니 허기가 졌다.

이번엔 에너지 바를 들었다. 봉투를 뜯자마자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아니, 흡수했다.

「퍽퍽해 보이는 걸 잘도 먹네.」

나도 이럴 줄 몰랐다. 퍽퍽한 옥수수 맛의 에너지 바가 이토록 맛있다고 느낄 날이 올지. 연구소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음식이었다.

「무슨 맛이야? 맛있어?」

어쩐지 우두머리가 날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에너지 바를 보는 눈빛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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