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미친 거야. 완전히 돌은 거지.”
무서웠다. 머릿속에선 재환이 잔인하게 먹히는 장면이 다시금 재생되고 있었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동굴 속 추위도 한몫했다.
「왜 우는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괴물의 우두머리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한 걸까.
아무리 봐도 역시나 기이했다. 나를 안고 오랫동안 동굴의 길을 걸어왔으면 아직도 숨이 거칠어야 정상이 아닐까? 그러나 그의 호흡은 극히 차분했다.
두려움에 뒤로 물러났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나를 또 관찰하듯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달콤하게 보였던 하늘색 눈동자가 다시금 무섭게 보였다.
쿵, 쿵쿵! 쿵쿵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빛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그는 한층 더 무서워 보였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바람에 섞인 습기가 심상찮다 싶더니 기어이 얼굴에 후드득 물이 닿았다.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삽시간에 거세진 빗방울은 동굴 입구도 침범해 바닥에 깔린 식물들도 적셨고, 그러자 탄내도 한층 더 강해졌다.
매캐한 냄새는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탈출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무슨 수로?
내가 생각한 건 아직 허리 뒤에 소지하고 있는 무기였다. 만일에 대비해 아주 작은 크기의 호신용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놈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빼앗지 않았다.
만약 이것으로 저놈을 쏘면 어떨까?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는 척했다. 벽을 더듬어 몸을 지탱하는 듯이 움직이다가 총을 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겨우 잡은 총을 앞으로 뻗어 내기엔 쉽지 않았다.
우두머리의 시선 때문이었다. 몸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진 채 제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지그시 보는 괴물은 시선만으로도 사슬처럼 옭아매는 위압이 있었다. 몸은 잘 조각된 석상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데 기다란 머리카락만 비바람에 휘날린다. 그것도 제 몸 색과 같은 새하얀 식물 위에서 아주 꼿꼿하게. 또 우아하게.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다면 지금 그의 모습이 아닐까.
그는 기이한 형광 하늘색의 눈동자를 통해 내게 속삭였다.
뭘 하려는 거지?
더 움직여 봐.
어서.
네가 어쩌려는지 궁금해.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어도 도무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걸 택했다.
시야에서 그를 차단하니 더 무서웠지만, 최대한 정신 차려야 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무슨 방법이 있나?
상대는 괴물이다. 그것도 사람을 홀리는 괴물, 아니 마물에 더 가까웠다. 이대로 그에게 잡혀 있어선 안 되었다.
죽여야 해.
무조건 죽여야 한다.
일단 죽여야만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눈을 뜨고서 총을 앞으로 뻗는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스윽― 팍!
빛 덩어리가 돌진한다 싶더니 손이 따끔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서 총이 사라졌다.
“아…….”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우두머리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서 있던 곳에 있었다. 다만 아까와는 자세가 달라졌다. 등을 벽에 기대고 팔짱을 낀 채 느긋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진하던 빛, 따끔함과 함께 사라진 총, 아까와는 자세가 달라진 그의 모습.
이게 뜻하는 게 뭘까.
그의 미소는 묘했다. 마치 어려운 춤이나 묘기를 성공해 낸 후 관객들을 마주하는 재주꾼처럼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이 모든 건, 그가 빛과 같은 속도로 내게 다가와 총을 날려 버리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괴물답게 빠르기도 상식을 벗어났다.
절망스러웠다. 기댈 수 있는 무기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풀썩 주저앉으며 아직도 따끔함이 남아 있는 손을 만졌다. 빗소리가 더 세졌다. 사선으로 몰아치는 비는 내 몸을 적셨다. 머리가 축축한가 싶더니 팔도, 가슴도, 배도 축축해졌다.
그리고 아래도 축축해졌다.
이상한 느낌에 나는 입고 있는 바지를 보았다. 주저앉으면서 무심결에 실금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이 이상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차라리 그때 의식이 깨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재환이 잡아먹히던 모습을 보고 충격에 아예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멀쩡한 몸은 굶주림의 증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꼬르륵― 꼬르르르륵―.
「배고파?」
우두머리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뭔가 먹을 게 필요해?」
“뭐라는 거야? 오지 마! 저리 가!”
뒤로 물려나려고 했지만, 벽이 가로막고 있어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진저리를 치며 바닥의 꽃들을 움켜잡고 뜯었다.
그러자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런 순간에도 배 속의 아우성은 멈추질 않았다.
꼬르으으윽―.
「저런. 많이 고픈가 봐?」
알 수 없는 소리를 말한 그가 갑자기 절벽 끝으로 갔다. 그러고는 또 한 번 번개처럼 빛이 번쩍였다. 비가 오는 중에 번개까지 치는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번쩍임은 그가 내게서 총을 빼앗았을 때 느꼈던 그런 종류였다. 그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빛을 내는 거였다.
그가 사라졌다.
어디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나는 다시 절벽 끝으로 가서 아래를 보았다. 위도 보았다. 그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지?
아니. 알 게 뭔가. 알 필요도 없었다.
몸이 축 늘어졌다. 이런 불안한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번개처럼 빠르다면, 번개처럼 나를 죽여 주지.
그럼 아프지도 않을 텐데.
나는 탄내를 뿜어내는 꽃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간절히 바랐다. 얼른 이 시간이 저 까마득한 동굴 끝 죽음의 땅으로 고통 없이 사라졌으면.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코끝으로 탄내 아닌 다른 향이 느껴졌다. 소나무와 같은 종류의 나무에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낯설지 않은 식물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시아로파.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특수 식물이었다.
억센 줄기에 잎이 가득 돋아난 시아로파가 엄청나게 많이 꺾여 있었다.
그걸 가져온 이는 우두머리였다.
믿을 수 없지만, 그가 빛과 같은 속도로 어디론가 가서 시아로파를 구해 온 것이다.
그는 그중 한 줄기를 빼내 가장 커다란 잎 하나를 뗐다. 그리고 그것을 내 입에 갖다 댔다.
「이거.」
먹으라는 뜻인가?
인간인 내가 시아로파를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보통 37 기지의 괴물들은 시아로파를 주식으로 먹는다. 시아로파가 부족하면 그들의 목숨도 위험하다고 봐야 했다.
이 특이한 괴물도 37 기지에 사는 괴물이라 그런지 주식으로 시아로파를 먹는 모양이었다.
그저 멍하니 보기만 하는데 그가 또 말했다.
「먹어. 자. 이렇게 줄게.」
그는 가지런한 이로 시아로파의 뭉툭하고 짧은 줄기 부분을 끊어서 퉤 뱉어 냈다. 그리고 순전히 잎만 남은 것을 다시 내게 주었다. 괴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상당히 배려해 주는 것이었으나…….
「먹으라고, 예쁜아.」
나는 그의 헤픈 웃음이 무섭기만 했다.
「맛있는 거야. 다른 애들은 먹고 싶어도 이만큼 많이 먹을 수는 없다고.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거듭 권유 받았지만, 나는 시아로파를 먹지 않았다.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지?」
우두머리는 내게 시아로파 먹이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가 대신 먹었다.
그것도 시아로파의 맨 끝에 돋아난 새순 부분만 골라서 씹었다. 그 부분이 가장 순하고 보드라워 보였다. 그 역시 나처럼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꽤 많은 양을 먹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그의 몸이 다시 밝아졌다.
시아로파에는 생명체 각자가 가진 고유의 능력을 특화해 주는 성분이 있다고 했다. 그의 고유 능력은 몸의 발광일 것이었다. 시아로파를 먹은 그가 몸이 더 밝아지는 걸 보면 그랬다.
그가 식사하는 동안, 나는 긴장이 조금 사라져서 벽에 등을 댄 채 앉아 있었다.
여러 소리가 귓속을 메웠다.
괴물이 시아로파의 새순을 삼키는 소리, 세찬 빗소리, 까마득한 아래에서 흘러가는 거친 물소리.
한꺼번에 들으니, 기묘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게 공포에 지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몸의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비는 언제쯤 그칠까?
갈수록 거세지는 비는 내 안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구조 희망을 깔끔히 지웠다. 애초에 극비 프로젝트였다. 어그러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군인을 찾거나 구조하려는 일은 합리성을 핑계로 허가가 나지 않을 것이다.
망했다.
이럴 거면 왜 군인이 되었을까!
탓하려면 나를 탓해야겠지.
애초에 자의는 없는 삶이었다. 학교는 부모님이 다니시던 학교로 갔고, 전공도 부모님과 똑같은 쪽으로 선택했다. 그 학교에서 선배 재환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의 뒤를 따르겠다고 결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와 같은 군 소속 연구실에서 상관과 부하로 일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만족했다. 비록 재환을 더는 동경하지 않았고 오히려 실망만 했지만, 그 즈음에 중요해진 건 돈이었으니까. 군 연구소는 봉급을 꽤 많이 줘서,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다.
“흑…….”
눈물이 났다.
「또 울어?」
우두머리는 내가 훌쩍이는 모습을 보고 식사를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극히 평온해서 그런지, 아주 친근한 존재가 말을 거는 듯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목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