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흐윽…… 흐으…….」
그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발정을 했는지, 번식기에 접어든 짐승처럼 호흡했다.
「이래서야 누가 누굴 먹는 건지, 원.」
뜻이 있는 말 같았지만,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맛있는 가슴에 입술을 댄 채 고개를 올려 그를 보았다.
하늘색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매력적인 눈두덩 아래 기다란 눈매가 웃는 것도, 노려보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그렸다. 그리고 서서히 입가가 올라가는데 비로소 웃는 것처럼 보였다.
돌연 자세가 홱 바뀌었다.
“아!”
그가 나를 바닥에 완전히 눕히고 올라탄 것이다.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인 온몸이 내 상체를 압박했다. 고개를 내린 그가 내 목에 입술을 댔다.
아까처럼 또 목을 핥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극히 미미하게 남은 이성이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순간 이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서 나오는 향기가 더 강해져 나를 흩트렸다. 그의 호흡 또한 더욱더 거칠어졌고, 내 호흡도 거칠어졌다.
번식기에 접어든 짐승은 그뿐만 아니라 나일지도 몰랐다. 과열된 욕망이 온몸을 지배했다.
“하아, 하. 얼른. 얼른.”
핥아 줘, 나를 핥아 줘.
그러나 그의 고개는 목이 아닌 가슴으로 내려갔다. 괴물답지 않은 가지런한 치아가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뜯기 시작했다.
흥분한 나는 그 짧은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스스로 셔츠를 완전히 벗었다. 브래지어 역시 뜯어서 던져 버렸다.
「성질 급한데?」
내 행동으로 그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진 건 두말할 게 없었다.
그는 고개를 내 가슴 사이로 꽂듯이 내렸다. 아득! 가지런한 이가 가슴살을 사납게 물었다.
“아악!”
고통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내 몸통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입술을 가슴에 붙여 이를 세워 긁는가 싶더니, 그 입술에서 서서히 힘을 뺀다. 이내 혀가 나와 닿았는데, 보통 사람들보다 길게 느껴지는 혀였다.
“으!”
물컹하고 뜨거운 혀가 유두를 부드럽게 돌려 핥았다. 몇 번을 그러자 유두가 바짝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그는 그곳을 간지럽히고, 맛을 보듯 혀끝으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타액과 함께 삼키려 하기도 했다.
“아, 앙.”
입 밖으로 비음이 나왔다. 제정신이었다면 이런 소리를 낼 정도로 흥분하지 않을 텐데. 알면서도 나는 자지러지며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가늘게 빠져나오는 머리카락이 괴물의 것답지 않게 고왔다.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세듯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때, 그의 입술은 어느덧 아랫배로 내려와 있었다.
「너무 좋단 말이지.」
이건 섹스의 전조였다. 얼마 전까지도 재환, 그 자식과 했던 행위를 이 괴물과 할 것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키스였다.
서로 낯선 몸에 이끌려 향을 맡고 맛을 보지만 키스만은 예외였다.
나와 괴물은 입을 맞추지 않았다.
감정이 없이 몽롱한 기분과 본능만 날뛰는 이 행위는 섹스라기보다 교접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우두머리가 내 다리 사이로 고개를 내렸다.
그때, 낮고 둔한 울림의 목소리가 우리의 행위를 막았다.
「우리, 왔다. 대장.」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피부가 검고 덩치가 산만 한 거인이었다. 재환을 먹어 버린 그 끔찍한 괴물이었다. 지금쯤 저 커다란 배 속에서 재환을 소화하고 있을 것이다.
잔인한 괴물이 순진하리만치 아둔한 표정으로 제 우두머리에게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타고 온 거, 뒤져 봤다. 특별한 거 없다. 있다고 해도, 그거,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거 아니다.」
거인의 말을 듣는 동안 우두머리의 몸에선 빛과 향이 줄어들었다. 흥분 가득하던 모습에서 차분한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이 기묘하다.
나 역시 거인을 본 뒤로 들뜨고 몽롱하던 기분이 차분해졌다.
「또 저 암컷 외에 다른 놈들, 안 보였다.」
우두머리는 거인의 말이 다소 성가신 듯 대답했다.
「알았어. 가 봐.」
거인은 허리를 숙여 잠깐 복종의 자세를 보인 뒤 뒤돌아서 갔다.
그런데 거인이 돌아서자마자 한 무리의 괴물이 다가왔다. 저들끼리 웅성거리며 우리를 무슨 구경거리인 양 보고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우리를 보는 괴물들의 시선도 두 종류로 나뉜 듯했다.
괴물 중 근육이 발달하고 털이 많은 것, 즉 수컷들은 나를 보고 있었고, 털이 없고 가슴이 나온 암컷들은 우두머리를 보고 있었다. 암컷은 코를 킁킁거리기도 했다. 마치 조금 전에 내가 우두머리의 향을 맡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킁킁킁킁!」
「킁킁킁!」
징그러운 소리. 설마 나도 저랬단 말인가? 혐오가 확 일었다.
암컷들의 콧소리는 우두머리의 성질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꺼져!」
여기서 나가라는 의미였는지, 괴물들이 아까 거인처럼 복종의 몸짓을 보인 후 뒤돌아섰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몇몇은 고집스럽게도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나 털이 수북한 수컷 괴물들의 시선이 나를 집요하게 탐했다.
츠읏!
우두머리가 혀를 찼다.
「아니, 차라리 내가 가지.」
그는 내 몸을 들어 가뿐하게 안았다. 그러고는 동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히쉬이이익…….
괴물들의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아쉬워하는 듯했다.
* * *
동굴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리 깊이 들어가도 끝에 다다르지 않았다.
갈수록 진해지는 어둠을 그의 몸이 환히 밝혀 주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나를 안은 채 조용한 동굴 속을 걸어가면서 그의 몸에선 다시 빛과 향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익숙한 길을 걷듯 빠르게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이따금 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괴물치곤 웃음이 헤펐다.
연구실에서 자료로 마주하던 괴물들은 거의 웃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의 삶은 너무 힘들었다. 그건 삶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시아로파를 주식으로 먹지만, 그게 부족하면 아무 동물이나 입에 쑤셔 넣어 주린 배를 채우는 것들. 머릿속엔 식욕과 성욕밖에 없어서 아무하고나 교접하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난 괴물의 자식들은 대부분 멀쩡히 살아갈 수 없었다. 협곡 아래 흐르는 거대한 강에 던져지거나, 먹혔다. 종을 보존할 욕구가 결여된 이들에게 자식이란 생존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인간처럼 갈등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해서 늘 혈투를 했다. 혈투에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괴롭힘의 대상 혹은 먹이가 되었다.
피 냄새가 끊일 날이 없는 날을 견디지 못해서 가끔 머리가 좋은 괴물들은 협곡을 탈출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37 기지를 둘러싼 죽음의 선이었다. 강력한 파괴 에너지가 흐르는 죽음의 선을 밟고 새까맣게 타서 죽어 버리는 동류를 보고 미쳐 버리는 괴물도 종종 있었다.
이토록 피폐한 시간을 견뎌 내는 그들에게 웃음은 입가에 경련이 일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을 표정이었다.
하지만 날 안고 있는 이 우두머리는 달랐다. 그는 내 입술을 보고도 웃고, 눈을 보고도 웃었으며, 가슴 가까이 킁킁 냄새를 맡고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실성한 건가?
물론 실성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그를 보고 내내 웃고 있었다. 입을 헤벌쭉 벌려서 빛 알갱이를 입에 담으려 했고, 그의 눈동자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또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몽롱하게 눈을 감기도 했다.
이건 마약이 분명했다. 그의 몸 자체가 내게 환각으로 작용한다.
마약 덩어리로 이뤄진 몸에 안겨 어디론가 가니 천국에라도 다다를 기분이었다. 내 손은 내 손이 아닌 듯 그의 목을 다정히 만졌고, 혀는 달콤한 그의 가슴을 할짝거리기 바빴다.
귀찮고 성가실 법한데도 그는 미소로 일관하며 견뎠다. 아니, 즐기는 것 같았다.
드디어 동굴의 끝이 나타났다.
그곳 바닥에는 처음 보는 꽃이 군집을 이루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길이는 잔디처럼 짧았고 꽃의 모양은 방울꽃처럼 귀여웠는데 결이 목화솜과 비슷해 보였다. 이 보송보송한 식물들은 동굴 끝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깎아 지르는 절벽인 듯했다.
우두머리는 나를 꽃들 위에 내려 눕혔다.
“아아, 싫어.”
혼자 눕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의 몸에 중독된 상태였으니까. 단 1초라도 그의 몸에서 떨어지기 싫었다.
나는 두 손을 뻗었다. 그의 목에 팔을 감아 내게로 끌어당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까 하지 못했던 것을 마저 해야지. 그의 부하들에게 방해받아 이어 나가지 못했던 은밀한 행위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숙이려 했다.
그때, 습기 어린 바람이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바닥의 새하얀 꽃들을 어루만지듯 미끄러져 들어온 바람은 내 코까지 닿았다.
순간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향을 느꼈다.
‘탄내?’
꽃의 향인 듯했다. 독특했다. 마른 풀이나 담배를 불에 태웠을 때 나는 냄새 같아서 어디선가 불이 난 줄 알았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탄내도 강해졌다.
그 냄새는 기묘하게 작용했다.
몽롱한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신비로운 빛과 향이 나는데, 나는 더는 그것에 휘둘리지 않았다.
실로, 꿈결을 걷는 듯하다가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차분히 일어나서 동굴 밖을 내려다보았다.
인공 달에서 내뿜는 빛 덕분에 모든 게 잘 보였다. 까마득한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위성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특이한 몸을 가진 괴물과 처음 보는 식물들도 그랬다. 어쩌면 이곳은 37 기지가 아니라, 외계의 행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