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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사육당하다-3화 (3/43)

3화

우두머리가 갑자기 검은 거인에게 뭐라고 말했다.

「예쁘다. 어…… 진짜 예뻐. 이렇게 예쁜 애 본 적이 없어.」

그러자 검은 거인이 재환을 보았다.

「수컷 말인가?」

우두머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죽을래?」

「미안하다. 농담이다.」

「……암컷만 잡아 와.」

「알겠다.」

그러자 거인이 고개를 끄덕이곤 우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쿵!

크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놀란 재환이 바로 총을 쐈다. 그와 동시에 내 옆으로 뭔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탕! 쿠우우웅!

뼈를 울리는 듯한 큰 총성과 바위가 깨지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충격에 내 몸은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몇 초가 지났을까.

나는 꼭 감았던 눈을 떴다.

눈앞에 있어야 할 우두머리와 거인 중에서, 거인만 보였다.

분명 재환이 거인과 우두머리를 향해 총을 쏜 듯한데, 거인은 총을 맞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그림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우두머리가 있었다.

총을 들고 있어야 할 재환의 손에서 총이 사라졌다.

설마, 쐈을 때의 충격으로 손에서 떨어진 건가?

그러고 보니 바닥에 총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총구의 방향이 저 뒤쪽 부서진 바위를 향한 채였다.

‘뭐지? 어떻게 총이……!’

어떻게 총구의 방향이 변했을까?

재환의 솜씨가 미숙해서?

그럴 리 없었다.

그는 정예군 훈련을 제대로 받은 우리 군의 대위였다.

나는 재환과 가까이 있는 우두머리를 보았다.

아무래도 우두머리가 재환의 몸을 건드려 총구의 방향을 바꾸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우두머리는 재환을 끌고 와 거인에게 넘겼다.

「이 미친놈 처리해.」

거인은 겁을 집어먹은 재환을 받아들고서 제 우두머리에게 뭐라고 말했다.

「처리? 평소처럼 해도 되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두머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마자 거인은 곧바로 재환의 몸통을 들고 올렸다. 그리고 재환의 몸을 감싼 천 조각을 모두 찢었다.

순간, 너무나 끔찍한 상상이 현실로 펼쳐져 나는 충격에 빠졌다.

“아, 안……!”

거인은 커다란 입을 벌려 재환을 먹었다.

으극!

끄드득!

두개골을 스낵처럼 와작 씹고, 근육으로 뒤덮였던 어깨살을 뜯어 먹었다. 탄탄하던 엉덩이와 허벅지는 살점 그대로 삼켜졌다.

모래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

“아…….”

나는 똑똑히 보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거인에게 살점과 근육과 혈관이 찢겨 먹히는 재환의 모습은 그 언젠가 오래된 그림에서 보았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처럼 기괴해 보였다.

그리고 그 끔찍함의 후유증은 비명 아닌 다른 증상으로 나타났다.

“흐…….”

더욱 광포하게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나는 쓰러졌다. 의식 또한 바람에 날아가려 했다.

그 직전, 나를 안아 올리는 누군가의 몸짓을 느꼈다.

따뜻한 품이었다. 기분 좋은 향도 났다. 괴물 맞나?

눈꺼풀을 겨우 떠서 나를 안은 이를 보았다.

괴물의 우두머리였다.

「가여워라. 많이 놀랐나 봐.」

낯선 말을 들으며 나는 천천히 의식을 놓았다.

제2장. 탐색

휘이이잉―.

스산한 바람 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향기가 느껴졌다.

낯설지 않았다. 좋았다. 레몬과 박하와 장미를 뒤섞은 듯하면서도 기분을 한없이 붕 뜨게 했다. 덕분에 아주 끔찍한 상황을 겪고서도 두렵지 않고 몽롱했다.

아마 마약이 아니라면 이런 효과는 나오기 불가능할 텐데.

나는 히죽 웃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목을 핥고 있음이 느껴졌다.

“으……응?”

말캉한 젤리처럼 부드럽고 축축했다. 한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목을 핥는 그 부드러운 것은 마치 햇볕에 잠긴 돌처럼 묵직하게 따뜻했다.

반복적으로 핥아 대는 따뜻한 느낌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하얀 피부의 남자가 내 목을 핥고 있었다.

“아.”

그는 내가 깨어난 걸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하얀 피부에 눈동자는 하늘색이었다. 그것도 아주 특이한 형광 하늘색.

“……!”

뒤늦게야 나는 알았다.

그가 괴물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순간 뇌리에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재환이 잡아먹히던, 그 장면.

비명이 터졌다.

“아아아악!”

그러자 그가 천천히 내게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내가 지른 소리에도 놀라지 않았다. 시끄러울 텐데도 눈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막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이하게도 그의 별난 색깔 눈동자는 나를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홀린 듯 그 두 점을 바라보자, 무서워서 질렀던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아, 하…….”

거칠었던 호흡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지켜보던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히죽.

괴물치고는 참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는 웃었다.

하얗던 그의 피부가 더 하얘졌다. 자세히 보니 피부에서 빛이 나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자, 자체 발광?”

문득 ‘반디’라는 이름을 가진 곤충이 기억났다. 지금은 멸종된 그 작은 생물은 스스로 빛을 낸다고 했다. 노랑인지 연두인지 모를 모호한 색을 낸다고 했는데, 이 우두머리에게도 반디가 가진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빛의 색이 달랐다. 그의 몸에서 나는 빛은 저 하늘의 인공 달이 뿜어내는 특유의 복숭아 색보다 더 밝고 예쁜 색이었다.

쿵, 쿵, 쿵…….

두려움과 놀라움에 격하게 뛰던 내 심장은 정상적인 호흡과 함께 차차 원래의 박동을 찾아 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장소도 점차 눈에 들어왔다.

동굴이었다. 깊진 않았고 바로 저 아래 비탈진 길이 보였다.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차분해질수록 이 우두머리의 몸에서 나오는 빛도 더 명확해졌다. 밝아진 빛은 안개처럼 밀도 있는 덩어리를 이루다가 종종 은색의 모래알 같은 점으로 변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빛 알갱이들은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점점 증가했는데, 그럴수록 기분이 더 몽롱해졌다. 빛 알갱이들이 내 기분을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눈을 뜨기 전부터 느꼈던 좋은 향, 어쩌면 우두머리의 몸에서 내뿜는 빛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뭐 아로마 캔들도 아니고.

혼란스러웠다.

연구소에 있는 정보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현상에 대해 접한 적이 없었다. 빛을 내는 생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향기를 내는 생물은 식물이 아닌 이상 희한했다. 37 기지의 어떤 괴물도 스스로 빛과 향을 동시에 내진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빛 알갱이를 잡으려 했다. 손에 닿는다면 잡아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연구자적인 관점도 거기서 끝이었다.

그가 웃었다. 그는 내가 잡으려 하는 빛 알갱이를 손으로 훌쳐 버리곤 기분 좋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괴물이지 않은가.

그러나 웃는 그는 너무 아름다웠다. 나를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듯 상체를 앞으로 당기는 몸짓도 괴물답지 않게 우아했다.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인 어깨도 멋졌다. 등으로 머리칼이 곱게 흘러내려 유려한 선을 만드는 것도 예뻤다.

가장 매혹적인 건 눈동자였다. 하늘색 보석처럼 빛나는 눈. 그 눈은 이방인인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기한 그 무언가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단지 내가 향기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느끼는 감상일까?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나 역시 지금 들뜬 기분으로 눈앞의 괴물을 보고 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알갱이를 신비로운 듯 보고, 또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본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간절함을 담아 다시 손을 내밀기까지.

그러자 그가 빛 알갱이 하나를 잡아서 내게 주었다.

그것도 손에 주는 게 아니라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순간,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 좋아. 좋아.”

향기가 아까보다 수십 배는 더 좋아졌다. 나는 중독된 듯 그의 향을 더 깊이 맡으려 했다. 바보처럼 벌어진 내 입술 사이로 타액이 흘렀고, 두 손은 멋대로 올라가 그의 빛 알갱이에 닿으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빛이 더 강해져 거의 노랑이 되었다.

더 강해진 향기에 눈이 핑 돌 정도로 아찔해졌다. 힘이 빠졌다.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게 점점 불가능해졌다.

나는 쓰러져 그의 몸에 닿았다. 그러자 그가 나를 품에 안으며 옆으로 누웠다.

연인도 아닌데 주고받는 몸짓이 다정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혀를 가져갔다.

빛 알갱이가 마구 입속으로 들어왔다.

“너무 좋아.”

그의 어깨는 매끈했다. 인간의 체온보다 조금 더 높았고, 살은 더 단단했다.

그리고 맛있었다. 핥으면 핥을수록 단맛이 느껴졌다. 혀에 닿는 즉시 뇌로 잔잔한 쾌감이 전달되었다. 중독적인 단맛을 탐식하려 입술을 점점 내려 그의 가슴을 물었다. 사탕을 핥아 먹을 때처럼 나는 단단한 그의 가슴을 핥고 또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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