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에게 사육당하다-1화 (1/43)

1화

프롤로그. 괴물의 일기

-인공 달에 의한 신인류 각성 실험 일지.

작성자 제인 B M.-

[서기 2188년 3월 4일]

37 기지에서 병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실패했다. 누구 탓이냐고? 내 탓이다. 물주들은 병기를 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따분한 건 만들기 싫었다.

내가 만들어야 할 것, 또 내가 원하는 건 이상적인 생물이었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빛처럼 빠르고, 좋은 향기도 나는, 그 무언가.

어쨌거나 병기도 실패고 내가 원하던 생물도 실패였다.

나는 연구실에서 쫓겨났다.

[서기 2190년 5월 1일]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물주 이시도르의 지원금은 넉넉했고, 그의 유전자와 내 유전자 또한 완벽했다.

이시도르는 모르겠지만, 콩에서 태어난 생명은 여러 마리였다.

아름다운 것들.

암컷으로 태어났지만, 인공 달의 영향을 받는 이상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암컷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수컷으로 변할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병기로 쓸 수 있는 모종의 능력을 지녀 강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대한다.

내가 만든 피조물들이 내 이상에 다다를 수 있기를.

[서기 2192년 4월 5일]

이시도르가 나를 엿 먹일 준비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멍청하고 허술한 게 돈만 많아서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이별이다. 망할.

그래도 프로젝트는 순조롭다.

이시도르에게서 내가 데리고 도망쳤던 아이, 아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기온(Kion)이 드디어 변성한 것이다. 녀석은 이제 누가 뭐래도 완전한 수컷이다.

37 기지의 실패작들처럼 시아로파를 먹여야 하는 건 성가시지만, 그래도 능력 각성까지는 기다려 봐야겠지.

강하고, 아름다우며, 빠르고, 빛나면서도 향기로운, 이상의 생물이 될 때까지 이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절대.

[서기 2200년 6월 30일]

기온의 키는 나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외모는 이시도르 쪽을 좀 더 닮았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쪽으로 닮았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동안 먹인 시아로파가 얼마인데, 아직도 녀석은 목표치에 이르지 못했다.

빛과 향, 빠르기, 강함 그 어느 것도 없으니까.

게다가 인공 달빛을 쐬기만 하면 내게 발정해서 몹시 곤란하다.

내 비록 놈을 자식으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미인데 이건 아니지.

어쨌거나 이번에도 실패할 조짐이다.

37 기지의 괴물들을 만들었던 그때처럼.

술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서기 2200년 7월 5일]

기온이 인공 달빛으로 발정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미인 나 외에도 다른 여자한테까지 그런다.

이건 좀 난감하다. 아니, 너무 곤란하다.

이러다가 유리관을 뚫고 나와서 사고라도 치면 골치 아파지는데.

[서기 2200년 7월 10일]

아. 포기다.

녀석을 37 기지에 맡겨 두기로 했다.

비록 그곳엔 실패작들이 많아 위험하겠지만, 뭐 어떤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지.

나는 기온이 후자일 거라고 믿는다.

[서기 2200년 7월 12일]

녀석을 37 기지에 두고 왔다.

울던데.

뭐가 그리 서러운지 엉엉 울던데…….

그런 건 처음이라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서야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심한 놈.

제1장. 조난과 배신

세계군 연구소 상부에서 대위 방재환에게 지시했다.

“37 기지로 가.”

갑작스러운 명령에 재환은 이유를 묻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상관을 보았다.

상관이 재환의 눈을 피했다. 그것만으로도 지시 내용이 꺼림칙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창밖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긴 상관은 말을 이었다.

“시아로파 샘플이 필요해.”

“시아로파 말입니까?”

“방 대위도 이 연구소에서 몇 년을 지냈으니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어. 병기 실험엔 그만 한 게 없다는 걸. 그리고 그건 알다시피, 37 기지 거기서만 자란다지.”

“예.”

“참, 이건 기밀 프로젝트니까 입조심하고, 김 중위와 가도록.”

재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37 기지는 위험한 곳이었다. 과거 과학자들이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물 병기를 태어나게 해 훈련을 시키려고 장을 펼쳤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생물 병기들은 도무지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강한 힘을 가진 것만큼이나 무식했다. 먹고, 싸우고, 번식하는 것밖에 몰랐다. 아무리 특별한 놈을 찾으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러 그것들은 병기 구실을 할 수 없는 괴물로 정의되었고, 투자자들도 지원을 멈추었다. 결국, 그곳은 남겨진 괴물들이 서로 잡아먹거나 먹히며 사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험악하기 이를 데 없다는 37 기지는 현재 사람이 드나드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집무실로 돌아간 재환은 혀를 찼다.

“썩을.”

듣기로 시아로파는 꼭 37 기지가 아니어도 얻을 수 있다던데. 생명 공학 사업으로 큰 부를 이룬 자, 이시도르가 넘치도록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까. 군 상부에서 그를 살살 구슬려서 얻으면 될 텐데, 아마도 세계군이라는 단체 특성상 자존심에 그런 것까지는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결국, 희생당하는 건 아랫사람들뿐이었다.

“까딱 잘못돼서 조난이라도 당하면 지들이 구해 줄 거냐고.”

구시렁거리긴 해도 재환은 군에 몸담고 있는 이상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존재였다.

어두운 그의 얼굴을 보던 김윤해 중위가 이번 지시 내용이 프린트 된 종이를 손에서 내리며 말했다.

“저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만.”

재환은 마뜩찮은 기분으로 윤해를 보았다. 흥미로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 중위. 그런 말하는 표정치고는 너무 딱딱하지 않아?”

재환은 되물으며 예전의 윤해를 떠올렸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늘 웃는 얼굴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무슨 이유인지, 점점 그녀의 미소를 보기가 힘들었다. 애인으로서 남들이 보지 않을 땐 오빠라는 호칭도 곧잘 썼는데, 요새는 거의 듣기 힘들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빈정거리거나 반박하는 말을 하곤 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37 기지, 대위님이 입대 전부터 가고 싶어 하셨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스릴 있고 짜릿할 거라고 하셨지요.”

“그때는 뭣도 모를 때고.”

일순 윤해의 표정에서 흐린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상관의 대답에 실망한 듯했다.

곧 못마땅한 투의 물음이 갔다.

“아. 지금은 다른가 보죠?”

재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번씩 윤해가 예전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짜증이 난다. 사람이란 게 기억만 먹고 사는 미련한 생물도 아닌데 매번 과거 이야기를 할 게 뭔지?

“대위님?”

윤해가 도발하듯 다시 물었다.

재환은 싸늘하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왜일까.

오늘처럼 기분이 별로인 날에는 심술이 돋는다. 예를 들어, 윤해의 저 무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싶다거나, 그러면서 적당히 욕구도 충족하고 싶다거나.

재환은 나직이 한숨을 쉬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래. 37 기지가 흥미로울 것 같다고?”

그는 그 말을 되뇌며 그녀의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코가 눌리도록 세게 박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니 제복을 뚫고 그녀의 냄새가 느껴졌다.

아주 좋은 냄새. 남자를 들뜨게 하지만, 결코 과하지는 않았다. 화장품 냄새보다는 진했고 향수보다는 약했다.

하긴. 사내들이 버글거리는 군에서 여자 냄새 자체만으로도 원래 기분 좋은 거였다. 그래서 사귀는 것도 있었고.

“진짜 흥미는 말이야……. 이런 데서 보는 재미지.”

“대위님.”

“쉿. 여기 네 대위님이 어디 있어?”

그 말에 윤해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박자 늦게 내쉬는 한숨이 재환에겐 미묘하게 들렸다. 냄새를 맡은 순간부터 몸이 들뜨더니 그녀의 숨소리에 이성이 끊길 듯했다. 짓궂게 웃은 그는 재빨리 그녀의 제복 바지를 벗겼다.

“대위님…… 아.”

“쉿. 복도에 들릴라.”

“오늘은, 저―”

“오늘 뭐? 이렇게 잘 들어가는데? 후우. 역시 여기서 하는 게 최고야, 늘. 그렇지 않아?”

윤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재환은 뒤에서 안고 삽입했지만, 그녀의 엉망진창이 될 표정이 훤히 그려졌다. 웃음이 나왔다. 흥분 어린 숨과 함께 나오는 웃음을 들은 윤해가 주의를 주었다.

“복도에 들립, 니다.”

하지만 재환에겐 이것도 재미의 장치일 뿐이었다. 그는 한 번, 또 한 번, 그렇게 계속. 그녀의 몸에 수십 번 자신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점점 흥이 다한 재환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다가 사정했다.

“크윽.”

숨을 고르면서 윤해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쾌락의 여운을 담지도, 그렇다고 불쾌함을 담지도 않았다. 색깔로 정의하자면 회색이었다. 옷을 제대로 갖춰 입는 모습이 조금 전까지 그런 짓을 하던 여자의 모습 같지 않았다.

‘재미없긴.’

재환도 바지를 추슬렀다. 버릇처럼 질문이 나왔다.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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