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_부인을 도와 공무를 처리하다
관원의 성적 평가를 위해, 육역은 집을 나서 며칠 간 강녕부를 한 바퀴 돌았다. 경성으로 돌아오니 온 성은 버들개지가 춤추듯 허공을 날아다니는 좋은 시절이고, 그는 공무를 인계한 후 바로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금하는 서재에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쓰고 있다가 육역의 발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를 향해 눈부시게 웃어주었다. 그런 후…….
사실 그런 후는 없었다. 그녀는 바로 머리를 숙였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썼다.
포두가 되더니, 위세도 커졌다?
육역은 미간을 찌푸렸다. 탁자를 돌아가 그도 그녀가 무얼 쓰고 있는지 어깨너머로 보았다.
“박도 마모, 이런 것도 항목에 써야 해?”
그가 이상하다는 뜻으로 물었다.
금하는 마지막 몇 글자를 더 쓴 다음 붓을 놓았다. 바로 일어난 그녀는 육역의 허리를 두 팔로 감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무척이나 괴롭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육선문에 진주사 한 분이 새로 오셨는데요.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총포두가 그의 말을 다 받아들여요. 나머지 고생은 우리가 하는 거죠.”
“음?”
육역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매우 흥미가 생겨 그녀의 불평을 듣고 있었다.
“진주사 이분은 새로 부임해서 의욕이 완전 횃불처럼 타올라요. 오자마자 하신 말씀이 육선문은 경비가 빠듯하다, 재원 마련이 너무 힘들다, 그러니 경비 절감 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러셨죠. 하지만 이건 아니죠. 박도가 모자란 것도 모두 상세항목을 써서 보고를 올려야 하고, 심사와 비준을 거쳐 검사하고, 다시 사용할 수 없는지 확인하고, 이래야 칼을 바꿀 수 있어요.”
금하는 육역의 품에 기대어 분개했다.
“제 부하 중 둘이 칼을 바꿔야 해요. 그래서 제가 그들 대신 보고서를 쓰고 있었어요.”
얘기를 다 들은 육역은 비록 금하의 말에 공감은 할 수 있었지만,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들 쪽에게 얼마나 줄일 수 있다고.”
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호부에 은자를 더 배정할 방법을 찾아야 마땅한 것이지.”
금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의 표정은 불만스러워졌다.
“은자는 전부 당신 금의위 쪽으로 배분되잖아요.”
육역이 실소하며 그녀를 더욱 바짝 끌어안았다. 지극히 여유로운 어조로 물었다.
“남편이 며칠이나 집을 비웠는데, 내가 보고 싶진 않았나? 왜 자꾸 일 얘기만 하지?”
“아…….”
“아는 뭐야, 흐흠, 나는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린 건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제가 공무에 시달린다는 거죠. 사실 바빠요, 너무 바빠! 제발 이해해줘요……. 배고프죠. 국수 한 그릇 줄까요?”
금하가 기분을 맞춰주려 그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국수 한 그릇만?”
“밤에 전 또 순찰 나가야 해요.”
금하가 방안의 서양시계를 보고는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 조금 후면 교대해야 하네. 먼저 보고서도 보내야 해요. 아니면 당신은 대양네 가서 한 끼 때울래요?”
육역은 그녀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금하는 까치발을 하고, 활짝 웃으며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에게 안겨 허공으로 떠올라 곧장 내실로 들어갔다.
“안 돼요. 나 빨리 가야 하는데…….”
그녀는 채 말도 끝내지 못했다. 당장 급한 육역의 입술에 막힌 채 침상 위에 내려졌다.
뜨겁게 입술을 가르고 침입한 혀끝이 그녀의 것을 샅샅이 맛보는 동안, 금하는 머릿속이 몽롱해지면서도 미미하게나마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래. 괜찮아. 어차피 옷도 갈아입었어야 하니까. 시간 절약되고……!
“읏!”
금하의 생각은 그곳에서 멈췄다.
턱을 타고 내려간 육역의 입술이 하얀 금하의 살결 위로 뜨겁게 닿았다. 가늘고 섬세한 쇄골 위로 그의 혀끝이 닿은 순간,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붙들었다. 견디지 못한 탄식이 길게 새어나왔다.
봉긋 솟은 가슴 위에 닿은 숨결은 그녀를 뜨겁게 달구었고, 견딜 수 없어 허리를 비틀었다. 살짝 들린 허리 밑으로 손을 넣은 그의 손길에 옷감 스치는 소리가 사륵사륵 들렸다.
집 안도, 집 밖도 봄빛이 바야흐로 좋았다.
* * *
때는 이미 삼경, 딱따기가 딱딱딱 세 번 울렸다.
으스스한 꽃샘추위에 금하는 발이 얼어 저릴 지경이라 제자리에서 동동동 발을 굴렀다.
“하야夏爷,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금하의 부하 둘이 동대가 쪽을 가리켰다.
“가봐. 이쪽은 내가 지키고 있을게.”
동대가에는 지금도 영업하는 가게가 적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가서 뜨거운 거라도 먹고 싶었을 것이다. 금하는 부하들의 마음을 정확히 꿰고 있었으나, 그들이 가는 걸 막지는 않았다.
홀로 돌아서 두어 걸음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배 안 고파? 부하들에게 먹을 거라도 가져오라고 해야지 않아?”
미소를 머금은 육역이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고요한 거리. 그의 웃는 얼굴에는 따스한 온화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밤중에 어떻게 나왔어요. 먼 곳에서 방금 돌아왔는데, 잘 쉬고 있어야죠.”
금하는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으나, 눈과 마음 모두 웃음으로 가득했다.
“나도 공무가 있어.”
금하는 순간 멈칫했다.
“무슨 공무요?”
육역은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앞서 동대가로 갔던 포쾌 둘이 돌아왔다. 그들은 먼저 육역에게 예를 표한 뒤 금하에게 보고했다.
“저희 둘이 성황묘 쪽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쪽은 매우 어두워 등롱을 켜야 합니다.”
“음?”
금하는 그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야, 잊으셨어요? 진주사께서 밤에 순찰돌 때 쓰는 등롱도 초를 절약해야 한다 하셨잖아요. 우리 둘이 아까 한참을 생각해 봐도 규정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초 굵기를 대체 8푼을 써야 하나요, 1촌을 써야 하나요?”
금하는 아연해졌다.
“초도 규정을 정했어?!”
진주사 이분은 진정 사람을 미쳐버리게 할 작정인가 보다.
육역은 웃음을 참기 위해, 얼굴을 살짝 돌려야 했다.
“생각 좀 해 보자. 너희는 먼저 밝은 곳부터 순찰해.”
그녀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포쾌 둘이 멀리 가고서야 금하는 육역의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려놨다.
“너무 웃지 말아요! 이제 육선문이 얼마나 짠돌이인 줄 알겠죠. 진주사 그분은 또 구두로 출장경비를 반으로 줄였대요. 진짜 살 수가 없어.”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당신 봤을 때 돈 때문에 어려워하더니, 내게 시집온 지금도 온종일 은자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군. 차라리 당신을 남진무사로 이동시킬까? 구태여 육선문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잖아.”
“싫어요!”
금하는 즉시 거절했다.
하지만 육역도 그녀가 그렇게 말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촛불은 8푼인지, 1촌인지 기억이 났나?”
“…….”
“그렇게 기억이 안 나는데, 왜 진주사한테 물으러 가지 않아?”
그가 의견을 냈지만, 금하는 순간 멍해졌다.
“지금? 하지만 이미 3경이 지났어요. 아마 그분은 벌써 잠들었을 거예요.”
육역은 다른 생각이 있는 듯했다.
“당신 아직 순찰 중이잖아?”
“……그렇긴 하죠.”
진주사의 집은 이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던 금하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정말 진주사의 집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밤하늘에 우렁차게 퍼졌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하인 하나가 나와 문을 열었다. 제패를 꺼내 보인 금하는 하인에게 예의 있게 말했다.
“육선문 포쾌가 용무가 있어 귀댁의 어르신을 찾아왔습니다. 공무입니다!”
하인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을 거라고 여겼다. 그는 서둘러 달려가 진주사를 불렀고, 잠시 후 옷도 제대로 못 갖춘 진주사가 부랴부랴 급하게 나왔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
그에게 공수를 올린 금하는 일부러 의아한 척을 하며 물었다.
“어, 진주사께서 이렇게 일찍 주무신 건 아니시죠? 귀하께선 육선문을 위해 소득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법을 찾기 위해 나날이 침식을 잊고, 있는 힘을 다 하신다고 늘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진주사는 억지로 하품을 참았다.
“그렇지. 나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육선문의 지난 장부를 보고 있었지.”
그래서 금하는 야간 촛불 굵기에 대해 매우 예의 있게 물었고, 아울러 겸사겸사 말했다.
“제 부하들은 제게 또 진주사 님을 방해하지 말자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주사 님은 육선문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 하시니, 우리가 비용절약을 실천하기 위해 이러는 걸 아신다면, 틀림없이 문제 삼지 않으실 거라고도 얘기해 주었지요.”
한기가 도는 썰렁한 밤, 바람 또한 서늘했다. 진주사는 입고 있는 장포를 둘둘 싸매고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문제 삼을 리 없다.”
금하는 바로 공수하며 작별을 고했다. 뒤로 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연기처럼 재빨리 길모퉁이를 달려가 육역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맞다, 깜박하고 못 물어본 게 또 있는데…….”
이것으론 장난이 부족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갈 생각으로 들썩거렸다. 그런데 육역이 그녀를 붙들었다.
“지금은 가지 마. 먼저 우린 훈툰을 먹으며 몸을 녹이는 거로 해.”
금하는 놀고 싶은 마음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저 분 한 번 더 불러 놓고 훈툰 먹으러 가요.”
“우리가 훈툰을 먹고 나면, 그도 거의 잠들었겠지. 그때 다시 가.”
“…….”
금하는 갑자기 모든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골탕 먹이는 쪽에선, 그는 정말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외전 6화_월봉이 나오지 않아요
때는 바야흐로 3월초, 육역이 월봉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금하는 부러움 반 질시 반이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북진무사에 내려주는 은자 중에서 2할만 나눠 육선문에 준다면, 우리도 이렇게 숨 막힐 정도는 아닐 텐데요.”
금하가 은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가난하면 뜻도 초라해진다더니, 정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육역은 재밌다는 눈빛으로 은자를 입술로 가리켰다.
“당신은 내 은자 쓰는 게 안 좋아?”
“안 좋은 건 아니지만, 나는 당신이 내 은자를 쓰게 하고 싶다고요!”
금하가 고개를 의기양양하게 높이 들었다.
“내일은 육선문 월급날이니, 그때 내가 크게 한턱 쏠게요.”
“좋아. 취선루의 팔보야가 괜찮다던데. 맛보러 가기 딱 좋군.”
육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육역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사에게 부인이 돌아왔냐고 물었다. 집사가 대답하려는 순간, 금하가 힘들어 끙끙대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빨리 와서……, 도와줘…….”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으로 육역은 문밖으로 성큼성큼 뛰쳐나왔다. 그러다 그는 한순간 아연해졌다.
금하는 짐수레 하나를 집을 향해 필사적인 힘을 쓰며 끌어오고 있었다. 수레에는 갖가지 물건이 겹치고 겹쳐 가득 쌓였다.
육역이 급히 다가가 수레를 함께 끌었고, 문 앞에 세워놓고서야 물었다.
“당신 이건……, 육선문을 몽땅 털었나?”
풀이 팍 죽은 금하가 그를 바라봤다.
“육선문이 은자가 모자라서 월봉도 못 줘요. 이 수레의 물건은 월봉 대신 가져온 거예요. 우리한테 직접 가져가 팔으라네요. 그들이 계산하니까, 은량으로 바꾸면 딱 은자 네 냥이래요.”
“…….”
육역이 수레 옆으로 다가가 위에 놓인 물건을 자세히 살폈다. 질항아리 몇 개, 소금절인 생선 약간, 표고버섯 약간, 그리고 면화솜 등……. 생각도 못 한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옆에 선 금하는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팔보야는 먹을 수가 없어요.”
육역은 집사에게 뒤죽박죽인 물건을 전부 옮기라고 일렀다. 자신은 손에 집히는 대로 소금에 절인 오리알을 들고 금하를 향해 웃었다.
“딱 좋은데. 요즘 내가 상초열이 있었어. 맑은 죽을 끓여서, 이걸 썰어 넣으면 정말 좋겠다.”
“정말 괜찮아요? 좋아요?”
“정말 좋아.”
분명하게 말한 육역이 금하의 어깨를 끌어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요리에는 맑은 죽과 소금에 절인 오리알이 더해졌다.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요?”
“응.”
금하는 여전히 미안함에 더한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육역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 먹고 견뎌요?”
“안 믿기면 보여줄게.”
죽 한 그릇을 후르륵 마신 육역이 바로 금하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녀가 놀라 버둥댔지만, 하인들이 눈치챌까 걱정돼 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하인들은 보통 그들 부부가 함께 있으면,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 있었다.
곧바로 금하를 안아 침실로 자리를 옮긴 육역은 무언가 말을 하려던 금하의 입술도 막았다.
물론 육역에게는 행복하고도 흡족한 저녁시간이었다. 가끔 육선문이 월봉을 못 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시진 후, 그는 야식 겸 두 번째 저녁을 찾았다는 후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