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23)화 (223/224)

외전 5화_혼담편 : 혼담을 꺼낸 거야, 요괴 퇴치하는 거야?

육역이 혼담 얘기를 위해 금하의 집을 방문했을 때, 금하는 그보다 더 긴장했다. 문밖에 숨어서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어머니는 찬거리를 사 오라며 그녀를 내쫓으셨다.

그리고 그녀가 찬거리를 사서 돌아왔을 때, 육역은 이미 양친의 동의를 얻었다. 원진 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었고, 온 가족이 식탁에 함께 모였다.

상에는 맛 좋은 요리와 반찬이 가득 올라와 입가에 온통 기름을 묻히며 먹던 원익은 예비 매형이 매일매일 집에 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밥을 먹은 후, 금하는 그릇을 부엌으로 옮겨 깨끗이 설거지를 끝냈다. 그리고 육역이 차를 다 마시길 기다려 그를 배웅하기 위해 문을 나섰다.

육역은 금하의 손을 감싸 쥔 채 금하를 따라 적당한 속도로 천천히 거닐었다.

“얼른 말해 줘요. 우리 엄마를 어떻게 설득했어요?”

금하는 호기심을 잔뜩 담아 물었다. 육역이 그런 그녀를 흘끔 보았다.

“그리 어려운 일이었나? 어머님은 줄곧 너를 빨리 시집보내고 싶어 하셨고, 내가 혼담을 꺼냈으니, 당연히 마음에 꼭 들어 하셨겠지.”

“대인은 본인이 금의위인 걸 절대 잊지 마요. 우리 엄마는 평범한 백성이시라, 금의위의 금자 소리만 들어도 숨기 바쁘시다고요. 내가 전에는 대인이 금의위라고 말도 못 꺼냈어요.”

육역이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 처음 원진 씨를 만났을 때, 그분은 경계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셨다.

옆에서 금하는 다시 한 번 재촉했다.

“빨리 말해 봐요. 우리 엄마한테 대체 어떻게 얘기했어요?”

생각을 하던 육역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말했었잖아? 어머님이 아버님께 시집온 것은 아버님이 너무 온순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잡혀 살까 걱정되셨기 때문이라고.”

“그랬죠!”

금하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대인도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잡혀 살까 걱정된다고요?”

육역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어. 장가들면, 네가 다른 사람 잡고 살까 걱정하실 필요 없으시다고.”

“…….”

금하는 믿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가 그 말에 당장 허락을 했다고요?”

“어머님이 말씀하셨지. 네가 어릴 때부터 거리를 주름잡아서, 장래에 시댁에 가서도 소란피우고 사람 못 살게 할까 걱정하셨대. 날 보시더니 널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리 오래 생각 안 하시고 바로 승낙하셨다.”

금하는 한동안 멍해졌다가 뒤이어 화가 나 펄쩍 뛰었다.

“이게 장가가는 거예요, 아니면 요괴를 퇴치하는 거예요?!”

외전 5화_결혼 후, 부부는 사건 수사를 분명히 따지다

저녁을 다 먹고 한가할 때였다. 서재에서 서류를 정리한 육역이 밖으로 나왔다.

“수박 드세요!”

금하가 뜰에서 그를 불렀다. 옆에는 모기를 쫓는 훈향이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허공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앉은 육역이 수박 한 조각을 들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었다.

“요즘 당신 매우 한가한 것 같아. 무슨 사건을 처리했지?”

그가 사건 얘기를 꺼내자, 금하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한가해요? 오늘 하루만 해도 사건 열 몇 개를 해결했는걸요.”

“사건 열 몇 개?”

“어린애가 안에서 문을 잠근 거예요. 우리 포쾌들이 2층 창문을 통해 들어갔어요. 그리고 또 어떤 부부는 목욕통을 사는 걸로 싸우기 시작했는데, 남편이 얼굴을 긁혔대요. 참, 오늘 또 금의위 사칭해서 공짜 밥 먹은 놈을 잡았는데…….”

금하가 문득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요새 무슨 사건 다뤄요?”

육역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밀이라 말할 수 없어.”

“아……, 사람과 관련 있어요?”

금하가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말할 수 없어.”

“군사정보에 관련된 건가요?”

“말할 수 없어.”

그의 말투는 빈틈 하나 없이 엄정하여 금하도 그를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수박을 계속 먹어댈 뿐이었다.

“흥, 너무 의기양양해하지 말죠. 나도 조만간 큰 사건을 맡게 될 거니까!”

* * *

이후 며칠이 지났다. 금하는 집에 돌아온 육역을 매우 기쁜 얼굴로 맞이했다.

“육선문의 월급날인가?”

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지. 지금은 월 초도 아니고.”

금하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큰 사건을 맡았나?”

육역의 추측에 그녀는 듬뿍 넘치게 의기양양해 했다.

“말할 수 없어요!”

마침내 이 ‘말할 수 없다.’를 말할 기회가 생겼으니, 금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재밌다는 눈빛의 육역도 관심이 대단했다.

“위험하지 않아?”

“위험하지도 않고 좋은 임무이기까지 해요.”

“좋은 임무?”

육역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네!”

금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 오늘 밤 난, 사건 조사하러 나가야 해요. 조금 늦을 수도 있으니, 기다리지 마요.”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당신도 잘 알아서 조심하도록 해.”

* * *

선악방은 경성 안 최대의 가무방이었다. 방에는 춤추는 무녀가 매우 많았는데, 호선무를 잘 추는 무녀가 가장 큰 명성을 얻었다. 매일 밤 그녀가 무대에 오를 때면 무수한 부잣집 도련님들이 금 구슬, 비취 목걸이, 은 장신구 등 각종 값나가는 것들을 높은 무대 위로 경쟁적으로 던지곤 했다.

금하는 가장 구석지고 눈에 띄지 않은 탁자에 앉았다. 차를 시키려 했지만, 양악에게 신속히 제지당했다.

“금하 나으리, 우리 먹으러 온 거 아니다. 총포두가 떼어주는 경비는 매우 적어.”

“아이고, 다른 탁자는 다들 먹고 마시잖아. 우리가 아무 것도 안 시키면, 보자마자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금하의 태도는 의젓하고 위엄이 있었다.

“이게 다 사건을 위해서잖아. 조금 더 쓰자!”

양악은 돈을 물같이 쓰는 주변 부자 도련님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 한 주전자만 가능해. 절대 더 할 순 없어.”

“적어도 호박씨 한 접시는 더 하지?”

금하가 흥정을 시작했다.

“여기 호박씨는 바깥보다 3배는 비싸. 너 바보냐?”

양악의 말에 금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금하는 황량한 야외에 잠복근무하는 것보다 몇 배나 좋은지 모른다며 이 임무는 좋은 임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저녁 내내 차 한 주전자를 마셨을 뿐이고, 점원의 적지 않은 눈총도 받고 앉았으니, 참으로 이 임무는 울적하기 그지없는 일이 돼 버렸다.

깊은 밤이 되자, 악사가 연주하는 노래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이국적인 풍정이 물씬 풍기더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긴 치마를 입은 열 몇 명의 아가씨가 높은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치마는 넓게 펼쳐져 마치 꽃봉오리가 눈부시게 핀 것 같았다.

키가 큰 이민족의 아가씨는 치마에 그려진 꽃송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예뻤다.

눈동자는 선명하게 파랗고 갈색 머리에 가는 허리, 그리고 얼굴 표정도 다양했다. 또한, 이곳저곳을 유혹적으로 훑는 그녀의 눈빛은 보는 이의 영혼을 앗아갈 듯 아찔했다.

금하는 팔꿈치로 양악을 쿡쿡 찔렀다.

“봐봐. 그야말로 인간 세상의 최고의 미인이라 할 만하다.”

양악은 그녀를 눈 부릅뜨고 바라보며 경고했다.

“너 내 부인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선악방 온 일도 얘기하지 마.”

양악이 말하는 부인이란 순우민을 뜻함이었다. 금하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넌 그저 공무로 와서 본 것뿐이잖아. 무슨 딴짓 한 것도 아니고. 제 발 저릴 게 뭐야?”

“넌 여인의 마음을 알지 못해. 요컨대 쓸데없이 말 보태지 말라는 거지.”

“대양, 나도 여자야. 왜 알지 못하냐? 날 믿어라. 새언니는 성격이 좋아서 말해도 괜찮아.”

양악은 매우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며 탄식했다.

“지난번 덕흥가의 그 재봉사 기억해?”

“기억하지. 누군가 고의로 불량 천을 갖고 그녀를 속였잖아. 네가 그 일을 해결해 줬지.”

“그 여자가 무슨 방법으로 우리 집을 알아봤는지 모르지만, 옷 두 벌을 지어 보내왔어. 나는 며칠째 우리 부인 눈치만 보고 있다.”

“좋은 일이네. 새언니는 역시 화끈함이 있어!”

금하는 눈으로는 줄곧 무대 위의 아가씨를 주시하면서도 입으로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

양악은 그녀에게 크게 눈을 흘겼다.

무대 위에선 춤 한 곡이 끝났다. 갈색머리 아가씨가 무대 아래 사람들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를 하자, 무대 위로 날아간 금괴와 은괴, 각종 옥기 등이 그녀의 발아래 연이어 떨어졌다.

그러나 갈색머리 아가씨는 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할 뿐, 발밑 가득한 아름답고 귀한 보석들은 줍지 않았다. 작은 바구니를 든 계집종에게 챙기라 한 그녀는 겨우 진주 팔찌 하나를 주웠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 진주는 매우 크고 둥근 것으로 가장 큰 것은 어린아이의 엄지손가락만 했다.

금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녀가 그 진주를 소매 속으로 넣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갈색머리 아가씨는 높은 무대에서 내려와 장내를 돌며 인사를 시작했다.

사실 금하가 앉은 자리는 너무 외져서 여자는 벌써 금하의 시야에선 보이지 않았다. 다급히 일어난 그녀가 앞으로 몸을 내밀자, 갈색머리 아가씨의 짙은 자색 옷자락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다른 이의 옷자락도 겹쳐 있었다. 심지어 매우 눈에 익은 게 아닌가!

금하는 두어 걸음 더 앞으로 나가서야 이 광경 전체를 볼 수 있었다

갈색머리 아가씨는 육역의 품에 안겼다. 여자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끌어 앉은 육역이 그녀의 눈처럼 하얀 팔을 따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나긋한 허리를 흔들며 매우 부끄러워했으나, 몸짓에는 좋지만 싫은 척한다는 뜻이 충분히 담겼다.

금하는 그 아가씨의 희고 보드라운 팔을 단단히 응시하며,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 후 갑자기 뛰쳐나간 금하가 갈색머리 아가씨를 육역의 품에서 힘껏 끌어내 자신 쪽으로 당겼다.

“이 여자 내 거예요!”

그녀는 의연하고 엄숙한 어조로 육역에게 말했다.

금하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았건만, 육역은 놀라지도 않았다. 방금 여자에게서 찾아낸 진주 팔찌를 그녀를 향해 들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내 거지.”

다른 한쪽의 잠복은 여자에게 진주 팔찌를 던졌던 이의 제압을 이미 끝냈다.

“내 거라니까요!”

금하가 갈색머리 아가씨의 팔을 잡아당겨 그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자의 팔꿈치에 난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이 여자는 폭행살인사건의 공모 혐의가 있어요. 나는 심문을 위해 데려갈 거예요.”

육역이 진주팔찌의 가장 큰 진주알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조금 힘을 주자 진주가 가루로 바스라지고, 안에 숨겨 있던 작은 서신 조각이 드러났다.

“이 여자는 동시에 적과 내통한 혐의가 있어. 나와 가야 해.”

금하는 갈색머리 아가씨를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고 끌어당겼다.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우선 나와 가야 해요!”

이미 예상했던 듯 육역이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여자를 데리고 가서 당신 그 사건에 대한 것도 합쳐서 진술을 받지. 그런 뒤에 보내줄게.”

금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내가 이 여자를 데려가서 당신 그 사건의 진술도 합쳐서 물어볼게요. 그런 뒤에 내가 보내줄게요.”

양악과 잠복은 그들 옆에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냐를 떠나 그들에게는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육역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하던 대로 하자.”

금하는 의연히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동시에 출수했다.

“가위, 바위, 보!”

금하의 보 대 맞은편 육역의 가위.

금하의 기가 일시에 푹 꺾였다. 양악은 매우 동정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일찍 돌아가 쉬어.”

육역이 금하의 볼 옆에 붙은 머리카락을 다정한 손길로 정리해줬다. 눈빛이 더없이 다정했다.

“할멈이 당신에게 주려고 훈툰을 준비했어.”

말을 마친 그가 잠복과 함께 갈색머리 아가씨를 압송했다.

그 자리에 남은 금하는 연신 억울해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대양, 왜 매번 나만 져?”

“운명이지.”

양악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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