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21)화 (221/224)

외전 3화

“난 수영 진짜 못 해. 너 알잖아.”

“걱정하지 마. 넌 물에 들어갈 필요 없고, 배에서 날 지원하면 돼.”

금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당부했다.

“중요한 건 발각되지 않는 거야.”

“……분명 관부 사람인데, 기어코 도둑놈 행세를 하는 거냐.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야.”

양악은 계속 투덜거렸다.

그녀가 물에 들어가는 건 설마 생신선물을 횡령하려는 것인가?

육역은 가라앉은 안색으로 두 사람이 갑판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후 그도 조용히 자신의 선실로 돌아와 짙은 남색의 잠수복으로 갈아입었다.

원래는 그도 배에서 기다리려 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 또한 생신선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무척이나 호기심이 일었다.

물 밑에 숨긴다고? 대체 어디에?

그는 물속으로 잠수하여 왕방흥의 배 아래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리고 바로 금하가 배 밑바닥을 두드리며 뜯으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나타난 것을 본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우스꽝스러웠다. 처음에는 얼이 빠져 굳었고, 그 후는 입으로 와르르 거품을 쏟아냈다. 마지막에는 손가락으로 수면을 가리켜 위로 올라가 숨을 돌리겠다고 의미를 전했다.

하지만 육역이 그리 바보는 아니라 그녀가 기회를 틈타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왼팔을 잡아 힘껏 끌어내렸고, 그녀가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 막혀 하는 모습을 잠시 감상했다.

사실 그녀의 연기는 그럴싸하지 않았다. 그는 조옥에 장시간 있으며 숨이 막힌 사람들이 어떤 모습인지는 더없이 잘 알았다. 그녀의 이런 연기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것과 같은 심정으로 보일 뿐이다.

어쨌든 그녀는 결국 고분고분해져 눈치 있게 더는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육역은 그제야 금하를 놓고 방금 그녀가 끙끙대던 밑바닥 선반으로 헤엄쳐가 상세히 살폈다. 그런 후 힘을 준 주먹을 내리쳐 그 이상한 선반을 부숴 날렸다. 안에서 8개의 거무스름한 장목 상자가 놓여 있었다.

육역은 이번 여정에 잠복과 잠수를 비롯한 부하 누구도 데려오지 않았다. 상자 하나를 배로 옮긴 그는 원금하의 수영 실력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고, 또 배 위에서 양악이 보조를 맞춰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역은 그녀에게 즉시 나머지 상자 몇 개도 전부 배로 옮기라 지시를 내렸다.

육역은 선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후 생신선물 상자를 열었다. 대략 보아도 귀중한 물건이 매우 많았다. 분명 구경은 변방에서조차 쉴 틈 없이 긁어 들일 수 있는 것은 전부 긁어 들였을 터였다.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원금하와 양악으로 짐작한 그가 말했다.

“들어와.”

그녀가 선실로 들어왔을 때, 무심코 시선을 든 육역은 저도 모르게 순간 멈칫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축축이 젖고, 입술색은 다소 하얗게 떴다. 원체 여위고 허약한 몸인지라, 보고 있으니 가련한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아무리 포쾌라 해도 여자였다. 이른 봄추위는 여전히 매서워 아마 물속에서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

평소 육역은 사람을 부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에, 조금 전 그녀에게 상자를 모두 올려놓으라 한 것도 깊이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래도 여자란 것을 잊었다니,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후회하는 눈빛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눈망울을 또르르 굴려 장목상자를 빤히 쳐다보며 양악과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저거 봐. 비취 박은 은사자야!”

“금사정기린호, 금앵무여지잔, 저 잔은 무게가 4, 5냥은 나가겠다.”

“아마 그러겠지.”

금하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을 내며 와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육역은 미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가슴 속에서 이제 막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 연민의 감정도 어느새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너희 두 사람이 몰래 물속으로 들어간 건 이 생신선물의 횡령 때문인가?”

그가 냉랭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이 질문으로 원금하와 양악은 한순간 초조해했다. 잇따라 해명한다는 것이 서로 말이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그래도 포쾌씩이나 하는 자들이 누군가의 질문에 이렇게 당황하다니. 육역은 속으로 비웃으며 이어서 물었다.

“너희는 상자가 물속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네가 말해 봐.”

육역은 다소 온순해 보이는 양악이 먼저 대답하게 했다.

“음, 음……. 그게 이렇습니다. 그 상자들은 윗면에 밀랍이 있었고, 아, 아니요, 바닥에 밀랍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 흔적들이……, 바로 이래서, 그 뒤로 우리가 추측하길…….”

양악은 심하게 더듬거렸다. 더는 참을 수 없던 육역이 제지하고 시선을 들어 원금하를 바라보았다.

“네가 말해.”

그녀는 다소 무례하게 두 손을 펴 보였다.

“사실 막연한 추측입니다. 운이 이렇게 좋아 정말로 물 아래서 찾을 줄 몰랐어요.”

“그랬군.”

육역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럼 너희는 차라리 다시 추측해 봐라. 내가 너희를 상자에 담아 강 밑으로 던져버릴지, 아닐지.”

“경력 대인 정말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하…….”

그녀는 억지로 두어 번 웃어 보였다.

육역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이 알아낸 것과 추측을 하나하나 사실대로 말해야 했고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너는 이미 다 추측했으면서도 애써 진상을 숨겼다. 그런데도 횡령하려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육역이 느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왕방흥, 그리고 그의 수하들 전부 혐의가 있는 이상 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가 당연히 곤란했습니다.”

금하가 그의 기분을 맞추며 웃어 보였다.

“게다가 저희는 상자를 물속에 숨겼을 거라는 사실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찾은 후에 대인께 다시 말씀드리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녀는 여우처럼 웃고 있지만, 또 하필 도력은 없는 어린 여우다. 육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재밌어졌다.

그가 양악에게 왕방흥을 불러오라고 했을 때, 그녀가 또 할 일 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일부러 그녀에게 가시가 될 두어 마디 말을 참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화가나 이를 악물었으나 고집스럽게 참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또 그걸 보면서 이유도 없이 기분이 흐뭇해졌다.

* * *

사수죽은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북방 남자였고, 게다가 세상 물정에 그리 밝지도 않았다.

바로 그 상자들을 보고는 넋이 나가 육역이 조금 떠보자마자, 그는 바로 다 들통 났다고 오해해 마음 편히 모든 것을 인정해 버렸다.

하지만 육역은 이 일은 비록 그가 했으나, 뒤에는 분명 계획을 꾸민 이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선실 창 아래에서 도청하는 이가 있었다. 육역은 당연히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속으로는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이 어린 두 포쾌는 대관절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게 날뛰는 것인가, 아니면 양정만이 시킨 것인가.

감히 간 크게도 내 말을 엿들어?

사수죽은 강하고 고집이 센 성격으로 누구와 한패인지 절대 말하려 하지 않았다. 창문을 흘끔 본 육역이 돌연 섬광처럼 다리를 뻗었다. 바로 뼈가 부러지는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사수죽은 참담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육역은 당장 창문을 향해 돌아서 경악한 원금하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 조치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어린 두 포쾌에게 다시는 이런 도를 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주는 일종의 경고였고, 둘째는 사수죽을 조금 쉽게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육역은 이번 여정에 수행원을 데려오지 않았고, 원금하와 양악 두 사람은 그를 도청할 정도이니 분명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사수죽의 다리를 부러뜨려 그의 행동을 불편하게 하고, 누군가 그를 구하러 온다 해도 힘이 더 들게 만든 것이다.

그는 원금하 쪽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고, 우선 사공에게 사수죽을 데려가 제일 아래쪽 선실에 가두라고 명했다. 그런 후 곧장 양정만의 선실 문을 두드렸다.

“육 대인?”

양정만이 절뚝거리며 문을 열었다.

육역은 온화한 표정으로 교양 있게 예를 갖춰 말했다.

“제자들은 왜 제 창문 아래 숨어서 엿듣고 있었을까요? 저는 일을 할 때면 언제나 공명정대한가를 자문하여 결코 조금도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선배님께서 제게 무슨 오해나 서운한 마음이 있으실까 걱정입니다.”

양정만은 정신이 잠시 멍해졌지만 바로 알아듣고, 서둘러 육역에게 해명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대인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린 제자들이 짓궂어 감히 대인께 무례를 범하다니,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꼭 그 아이들에게 대인께 제대로 잘못을 빌라 하겠습니다.”

“선배님 말씀이 과하십니다.”

육역이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제 나이가 많지 않습니다. 이번 강남행에서 어긋난 곳이 있다면, 선배께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양정만이 급히 말했다.

“모든 것이 오해였으니 선배께서도 편히 쉬시지요. 제가 방해치 않겠습니다.”

육역이 돌아 나가고, 그 자리에 남은 양정만은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양정만도 금의위였던 적이 있으니 그는 금의위가 일을 할 때 미행과 도청이 일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지금 지극히 하지 말아야 할 금기를 범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양정만은 금하와 양악이 이리도 사리판단을 못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감히 육역의 창 아래 붙어 도청하다니.

육역의 품계와 신분으론 이 꼬맹이들을 그가 손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와 한마디 일러 준 것은 이미 그의 면을 충분히 봐준 것이었다.

강남 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그는 육역의 틀어진 기분을 좀 달래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 양악과 금하가 그 아래서 일할 때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양정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자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그가 정색을 하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매우 무겁게 냈다.

“너희는 이제 다 컸다. 내가 당부하는 말도 마음에 두지 말고, 다시는 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양악이 먼저 무릎을 꿇었다.

금하 역시 급히 따라서 꿇었다.

“대장, 육 대인이 하신 억지스러운 말은 듣지 마세요. 사실 우리는…….”

금하는 말을 다 하기도 전 양정만이 하도 사납게 눈을 뜨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장, 잘못했어요. 이후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녀도 어쩔 수 없이 그리 말했다.

양정만이 이렇게 작심하고 이들이 철저히 반성토록 한 것은 이런 모습을 육역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제자들을 무시한 채 펑 소리 나게 문을 닫았고, 밖에서 무릎을 꿇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이날 육역은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당연히 두 어린 포쾌가 양정만의 객실 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육역도 양정만이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런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둘이 감히 그를 도청한 것은 진정 일의 경중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벌쯤은 감수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바닥에 꿇고 있는 것뿐이니, 이미 저들을 상당히 봐준 셈이었다.

날이 저물어 참선은 나루터에 정박하여, 사공들이 분주히 배를 오르내리며 물과 식재료를 보충했다.

육역은 뱃머리에 기대어 석양을 보고 있었다. 동시에 이곳 나루터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여전히 배에 갇혀 있는 사수죽은 부상도 입었다. 패거리가 만약 의리를 따지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오늘 밤 그를 구하러 올 터였다.

절룩거리며 다가온 양정만이 그와 몇 마디 한담을 나누고, 육역은 그에게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 청했다. 사양치 못한 양정만과 두 사람은 안쪽 선실을 향해 걸었다.

“저들은…….”

육역은 금하와 양악이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부러 의아한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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