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20)화 (220/224)

외전 2화

육역은 바닥에 엎어진 두간 매대를 훑어보았다. 바닥에는 아직 뜨거운 김이 오르는 두간과 각종 장즙이 가득했다. 참을 수 없는 귀찮음에 미간을 찡그린 그는 잠수에게 우선 점쟁이를 조옥으로 압송하라 명했다.

점쟁이는 조옥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조혁이 이미 죽었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당연히 그도 죽을 때까지 고통당하고 싶지 않았다. 홀연 그가 일어나려 맹렬하게 발버둥 쳤는데, 그건 도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이 발린 비수 위에 직접 몸을 문지르기 위해서였다.

눈 깜짝할 짧은 순간, 그는 입으로 검은 피를 토하며 황천길로 갔다.

손을 내밀어 그의 호흡을 살핀 잠수가 육역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뒤져.”

육역이 명했다.

잠수는 먼저 독 묻은 비수를 꼼꼼히 싸서 챙겼다. 그리고 손을 휘두르자, 금의위 몇 명이 앞으로 나와 점쟁이의 몸을 샅샅이 뒤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곳도 놓치지 않았다.

육역은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낮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일을 그래도 제법 꼼꼼하게 하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뭘? 많이 해서 숙련된 것뿐이지. 기껏해야 우리 관아 검시관이 하는 수준에 다들 어설퍼.”

여전히 조금 전 그 여자의 목소리이다. 그러나 어조는 크게 달라져 무시하는 느낌이 듬뿍 배였다. ‘우리 관아’라는 네 글자도 육역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여자의 목소리가 다소 귀에 익은 것을 깨달아 살짝 고개를 돌렸다.

“육대인, 없습니다!”

수색을 끝냈지만, 그들은 점쟁이의 몸에서 찾고 있던 소주방어도를 찾지 못했다.

육역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 조혁과 이 사람까지 전부 죽었다. 그러나 방어도는 찾지 못하였으니, 확실히 일이 귀찮아졌다. 그때 또 뒤에서 소곤소곤하는 사담이 들려왔다.

“저들이 뭘 찾고 있을 것 같아?”

말을 한 건 분명 그 아가씨 옆에 선 키가 큰 남자였다.

“말해야 아나. 분명 국가의 대사와 관련된 큰 사건이겠지.”

목소리는 비록 작았으나, ‘큰 사건’이라는 세 글자를 그녀가 고의로 길고 느리게 끌어 말하는 것만큼은 정확하게 들었다. 분명 금의위를 비꼬는 뜻이었다.

육역은 결국 기억해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오늘 육선문에서 조혁을 압송할 때, 사람을 내주려 하지 않던 그 여포쾌였다.

어쩐지 금의위에 상당히 불만이 있더라니.

그런데 이 두간 매대는 저 여포쾌와 또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육역이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흘끔 보았다.

이때서야 그는 그녀가 매우 청순하고 예쁜 생김새에 눈빛이 매우 생동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생각해오던 여포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육역이 이리 슬쩍 보고 있는데, 그녀는 즉시 그를 향해 간절히 말했다.

“관원 나리, 제 이 말린 간두부가 사실 그렇게 비싸지가 않아요. 제게 은자 두 냥만 주시면 충분합니다.”

잠수가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 모두 죽었습니다. 게다가 지도도 찾지 못했고요. 도독 쪽은…….”

육역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하필 그녀가 때맞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분명히 들렸다.

“흠흠, 여러 관원 나리, 여러분은 아무리 그래도 은자 조금쯤은 물어주셔야 해요!”

이때는 육역뿐 아니라 다른 금의위 몇몇도 그 소리를 들어 어떤 이가 감히 이때 요란하게 떠들고 있는지 보려고 모두 고개를 돌렸다.

육역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데다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나와 그들에게 바닥 가득한 두간을 보라고 손짓까지 했다.

“은자 두 냥이면 됩니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를 본 육역은 그녀가 분명 더 받아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은자 두 냥이 그에게 많다 할 순 없으나, 이런 푼돈까지도 속이면서까지 더 받아내려 하다니, 이 육선문의 포쾌도 궁하니 의외의 행동을 하고 있다.

“죽고 싶어! 빨리 안 꺼져!”

잠수가 그녀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늦게 와서 이 두간 매대가 어찌 망가졌는지 몰랐다.

그러나 전혀 기죽지 않은 그녀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은자를 배상하면 가요. 그렇지 않으면 전 우리 엄마한테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요.”

“너…….”

잠수는 원래도 공무로 머리가 아팠는데 지금은 이런 찰거머리 아줌마를 만났나 싶어 짜증이 났다. 그는 한판 겁을 주려고 그녀를 때리는 자세를 취했다.

손을 들어 제지한 육역은 더는 참지 못하고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은자를 주고 쫓아버려.”

잠수는 할 수 없이 은자 두 냥을 꺼내 그 아가씨에게 줘야만 했다.

매우 기뻐하며 은자를 받은 그녀는 더는 성가시게 굴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나는 것이 참으로 시원스러워 보였다.

그녀가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면으로 분명히 드러나 육역이 육선문을 얕보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 고개 돌려 그를 바라봤다.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 관원 나리들이 무얼 찾으시는지는 몰라요. 다만 그 사람 소매에 푸른 이끼의 흔적이 있고, 신발은 반쯤 젖었죠. 그가 여기 있기 전에 하천에 매우 가까운 곳을 지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어요. 다리 아래 교동 같은 곳이요.”

육역이 그녀를 주시했다. 그런 후 한쪽 무릎을 꿇고 확인하니, 과연 점쟁이의 좌우 옷소매에는 이끼에 스쳤던 흔적이 남았다.

“그곳이 조금 높은 곳이라 까치발을 들고 일어섰겠죠. 왼손으로 벽을 짚은 채, 오른손으로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곳.”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제 추측대로라면, 그의 왼손 손톱 밑에는 푸른 이끼 찌꺼기가 남아 있을 겁니다.”

육역은 다시 시신의 왼손을 들어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중지의 손톱에서 초록 부스러기들을 확인할 수 있어, 그는 어떤 생각에 잠긴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다 끝낸 그녀는 키가 큰 이와 함께 자리를 떠버렸다.

그 여포쾌의 관찰력이 이렇게 예리할 줄은 육역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몸을 일으킨 그가 부하들에게 분부했다.

“너희는 바로 부근의 모든 다리를 수색하거라. 위아래로 전부 수색해. 특히 다리 아래의 어두운 곳, 교동의 틈 등을 놓치지 마.”

잠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인, 그저 두간 파는 여자일 뿐인데요. 그 여자 하는 말이 어찌 진짜일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육선문의 포쾌다.”

육역이 재촉했다.

“빨리 가거라!”

잠수는 두간 파는 처녀가 어떻게 육선문의 포쾌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자신에게서 은자 두 냥을 갈취해 가는지는 이해할 수 없으나, 대공자의 말은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사람을 데리고 가 철저한 수색을 시작했다.

반 시진 후, 방수포로 안이 둘둘 싸인 소주 방어병력배치도가 어느 교각의 오목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한바탕 괜한 헛소동인 셈이었다.

* * *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수일 후 강남으로 가는 배 위에서였다.

육역은 이번 강남행의 수행 포두가 양정만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 여포쾌의 이름은 원금하였고, 바로 양정만의 제자였다.

그리고 그 밤 그녀 옆에 있던 키가 큰 이는 양정만의 아들 양악으로, 그들 둘은 어릴 때부터 함께 컸고 잇따라 포쾌가 되었다.

그날 그의 승선은 매우 일렀다. 반 시진이 지나서야 대리시의 유상좌와 양정만 등이 배에 올랐다.

원래 육역은 우선 유 상좌를 만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선실 입구에 도착한 순간, 뱃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원금하와 양악을 맞닥뜨렸다. 그들은 한창 강의 야생오리를 칭찬하고 있었다.

육역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는 양악이 유포지에 싼 것을 그녀에게 주는 것을 보았고, 그녀가 두 달 치 월봉을 가불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뜻밖이다.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했다니…….

그녀는 대체 얼마나 돈이 없다는 말인가?

지나가던 사공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육역을 바라봤다. 그가 왜 여기 서서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잠시 그곳에 있던 육역은 선실로 돌아가 이번에는 다완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천천히 갑판을 거닐며 차를 마시고, 경치를 감상하는 척했다.

저쪽의 두 사람은 그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한담 중이었다. 지금은 그녀가 동생의 선생님 댁으로 시집가는 얘기가 나왔고, 시집을 가게 되면 동생의 매년 사례금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가 한창이었다.

한담을 듣는 것도 의외로 재미가 있군.

그러나 육역은 뱃사공이 왔다 갔다 하는 탓에 제대로 웃을 수도 없었다. 그저 고개 숙여 차를 마시는 척 할뿐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무심히 돌아선 그녀가 육역도 갑판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분명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곁눈질로 보았음에도, 육역은 여전히 보지 못한 척했다. 그는 찻잔을 들고 여유롭게 강의 풍경을 바라보았으며, 또한 그들이 자신에게 인사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앞으로 나온 이는 역시 그녀가 아니라 양악이었다.

“육선문의 양악, 육 대인을 뵙습니다.”

그 후에야 그녀가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 마지못한 기색이 가득한 어조였다.

“육선문의 원금하, 육 대인을 뵙습니다.”

그가 시선을 들었다.

하늘거리며 오르는 차향과 자욱한 물안개 사이로 그녀가 보였다. 그 밤과 달리 지금의 그녀는 포쾌의 청의 위에 붉은색 덧저고리를 단정하게 입었다. 머리에는 과피모도 쓰고 있으니, 얼핏 보기에는 마치 수려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음…….”

그가 담담하게 물었다.

“양정만 포두는 어디에 계신가?”

“저희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셔서 선내에서 쉬고 계십니다.”

양악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육역은 손을 살짝 들어 그를 안내하라는 뜻으로 선실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며 들고 있던 찻잔은 일부러 옆으로 건네 금하가 받게 했다.

그는 그녀가 금의위를 우습게 보는 것을 알고 있었고, 기어코 그녀의 기세를 꺾고 싶었다. 사실 이건 그녀에게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 후, 그와 양정만 간의 대화는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양정만은 비록 시종일관 엄정히 예의를 차렸고,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말이나 행동은 거리감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 마음속에 무언가 응어리가 있어 보였다.

그 밤, 왕방흥이 호송하던 생신선물을 도둑맞았다.

육역은 원래 양정만이 대체 어떤 능력이 얼마나 있나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눈 질환을 핑계로 원금하와 양악만 배에 올라 조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신풍교의 그날 밤 몇 마디 말 정도로는 제대로 알 수 없던 원금하의 치밀한 조사 능력을 기어이 다시 볼 수 있었다.

배에 남은 냄새, 그리고 바닥의 촛농, 벽 위의 아주 작은 생채기에서 그녀는 비록 직접 보지 않았어도 상자의 재질과 크기를 알아낼 수 있었다.

다만 그녀는 도둑이 결국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마지막에 양악에게 말이 막혀 어물어물거리며 적당히 넘겼다.

육역은 그들 두 사람이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음을 짐작했다. 그러나 직접 추궁한다면, 아마 그 둘은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을 것이다.

참선으로 돌아온 후, 그는 두 사람이 양정만의 선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침음하며 생각을 하고는 우선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다.

오래지 않아 원금하와 양악이 '네, 네' 하며 양정만의 선실에서 나왔다. 하품하며 선실로 돌아가려던 양악과 달리 원금하가 그를 끌어당겼다.

“왜 또 그래?”

“쉿……. 나, 물에 들어가 보고 싶어!”

육역은 이 말에 미미하게 눈썹을 세웠다.

물에 들어가? 설마 생신선물이 물속에 있다는 말이야?

양악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우린 끼어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어.”

양정만이 그들에게 끼어들지 말라 했다고? 왜?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

혹 그는 구경仇鸾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의 생신선물은 결코 찾아주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아니면 설마 양정만은 내 앞에서 재능을 드러내길 원치 않고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건가?

무엇이 되었든 육역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양악과 원금하는 반나절을 속닥거려도 의견이 맞지 않는 듯 결국 그녀가 돌아서 자리를 떴다. 그러나 양악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쫓아갔다.

육역은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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