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19)화 (219/224)

외전 1화_초심 : 금하를 처음 만나다

육선문에 여포쾌가 있다는 얘기는 육역도 사실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금하를 처음 보았을 때까지 그것은 그다지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병부사무청이 소주방어지도를 잃어버리고 감히 말도 못한 채 며칠이나 그 사실을 숨겼다. 그리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긴급히 보고를 올렸다.

이때 사무청이 가장 큰 혐의를 둔 조혁은 이미 수일 째 실종되었으며, 그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마침 조혁은 아내 살인사건에도 연루가 되었고, 아마 육선문 쪽에는 설령 잡지는 못했어도 단서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여러모로 이 일은 매우 긴급한 건이다 보니, 육역이 직접 육선문으로 향했다.

* * *

육선문에 바로 도착했을 때, 마침 포쾌 둘이 한 쌍의 남녀를 압송하여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이미 조혁의 초상화를 보았으니, 그 남자를 보자마자 초상화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육역은 즉시 말에서 내렸다. 잠수는 말을 끌고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그는 잠복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패를 꺼내 보인 그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니, 사역이 그들을 기다릴 수 있는 곁채로 안내했다.

그런데 곁채에 도착하기도 전에, 육역은 벽면을 타고 들려오는 어렴풋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범인은 저와 대양이 죽을 똥을 싸며 며칠을 온갖 고생 하며 쫓았어요. 이제야 간신히 잡아 돌아와서 아직 형부로 넘기지도 못했는데, 포두님의 ‘데려간다’, 한 마디면 바로 데려갈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정말 좀 그런데요?”

맑고 듣기 좋은 여자의 목소리는 아마도 방금 조혁을 압송해 들어간 여포쾌일 터였다. 바로 뒤이어 그녀를 질책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참. 이 범인은 금의위가 원하는 사람이고, 고의로 일을 지체하는 자는 공모로 간주하는데, 너 감당할 수 있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부당합니다. 우리는 밑에서 사건 처리한다고 생고생하며 힘들여서 두 사람 겨우 잡아 돌아왔어요. 그런데 어떻게 포두님 입에서 공모라는 말이 나와요?”

그녀가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쯤은 어조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육역은 미간을 찡그렸다. 육선문에 자기만이 옳다고 떠드는 제멋대로인 자가 많아서 평소 금의위와도 종종 충돌한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개 여포쾌마저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울 줄은 생각도 못했다.

길을 안내하던 사역도 안쪽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상당히 어색해진 표정으로 마침 다리를 절룩이며 지나가는 노포쾌를 붙들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라오양, 들어가 저들한테 얼른 사람 데리고 오라고 말 좀 해 줘요. 경력 대인께서 직접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노포쾌는 두어 번 대답했을 뿐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절룩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육역을 향해 돌아선 사역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육 대인, 곁채로 가셔서 잠시 앉아 계시며 차라도 한 잔 하시죠.”

육역은 당연히 안쪽의 다툼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절름발이 노포쾌가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아 조혁과 그의 연인은 여포쾌와 달리 본분을 잘 알고 성심을 다하던 포쾌에게 끌려 나와 그에게 넘겨졌다.

육역은 그곳에 더는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에, 지체 없이 그들을 데리고 직접 조옥으로 돌아왔다.

* * *

그는 지금껏 고문에 관해선 몰두한 적이 없었다. 그건 결코 그의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육체가 극한에 이를 때 나오는 비명소리가 늘 그의 머릿속을 아프게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요치 않은 한 그는 북진무사에 머무르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머무는 것은 남진무사였다.

조혁은 불안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형실에 앉아 있었다. 주위의 얼룩덜룩 말라붙은 핏자국에 벌써 놀라 얼이 빠졌다.

“저, 저는 나쁜 짓 하지 않았어요. 왜 저를 여기 데려오신 겁니까?”

육역은 태사의에 기대앉아 시선을 들었다.

“넌 네가 왜 여기 있다고 생각하나?”

“모릅니다.”

조혁의 대답은 매우 빨랐다. 그리고 육역은 오히려 조급해하지 않았다.

“네가 맞혀보아라. 이리하자. 넌 내게 10개의 질문을 할 수 있다. 그것으로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알아내 보거라.”

조혁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가 묻는 것입니까?”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벽을 사이에 둔 다른 쪽 형실에서 매우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조혁은 놀라 솜털마저 곤두섰고, 육역은 보일락 말락 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병무사무청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가 주저하며 물었다.

“맞다. 이걸로 첫 번째 질문은 끝났다.”

“사무청이 물건을 또 잃어버렸습니까?”

“맞다. 자, 이걸로 두 번째도 끝났다.”

조혁은 한참을 주저하고서야 이어 물을 수 있었다.

“잃어버린 건 무엇입니까?”

“소주 방어병력배치도. 세 번째 질문까지 했군.”

육역은 시종 최고의 인내심을 유지했다. 조혁은 겨우 세 개의 질문을 했을 뿐이었으나, 육역은 이미 소주 방어병력배치도의 실종이 그와 관련이 있으며, 자신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정확하게 찾은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무고한 이였다면, 무엇부터 질문해야할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조혁은 분명히 이 일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당신들은 이 일이 저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맞아. 이제 네 번째 질문까지 했군.”

육역이 빙긋 웃었다.

“네 번의 질문만으로 넌 벌써 네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아차렸어. 지금은 내가 네게 물어봐야 할 차례다. 소주 방어병력배치도는 지금 어디에 있지?”

조혁은 놀라 당황했다.

“저, 저는 모릅니다. 이 일은 저와 무관합니다. 당신들이 사람 잘못 찾으셨어요.”

또다시 고통이 극에 달한 참혹한 울부짖음이 얇은 벽을 뚫고 고막을 계속 찔러 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육역이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형구는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번거롭고 싶지 않아. 너도 내게 강요는 마라.”

조혁의 표정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입으로는 간헐적으로 계속하여 중얼거렸다.

“저는 몰라요. 정말……, 정말 모릅니다.”

육역이 잠복을 바라봤다. 그 뜻을 알아들은 잠복이 조혁을 끌어다 피범벅이 된 걸상 위에 눌러 앉혔다. 그때 이미 육역은 형실을 나선 후였다.

* * *

그리고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잠복이 나와 보고 했다.

“그가 이미 팔았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도 사 간 사람의 신분을 모른답니다. 접선하던 그날 밤, 그 사람은 야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는 도사로 분장하여 그와 연락했다고 합니다.”

“거처는?”

“그는 모른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가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잠복이 계속 보고했다.

“하지만 계속 심문하라 일러두었습니다.”

“팔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육역이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하자. 너는 사람을 국경 밖 외인으로 분장시켜 풍문을 뿌려라. 지도를 비싼 값으로 사고 싶다고 말해서 사람을 끌어내는 것이지.”

“알겠습니다.”

잠복이 빠르게 자리를 떴다.

형실 안에서 조혁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육역은 미간을 찡그린 채 조옥을 나섰다.

* * *

황혼 무렵이 되어 잠수가 급히 와 보고했다.

이미 누군가 말을 전해 오기를, 먼저 은자를 받고 방어도를 주겠다면서 부른 가격은 오백 냥이라 하였다. 상대는 은자를 술시(*저녁 7-9시.)에 토지묘 안에 넣어달라고 요구했고, 그런 후 신풍교 어귀에서 기다리면 방어도를 전해 줄 이가 있을 거라고 했다.

“오백 냥이라. 더도 덜도 안 한 딱 그 가격이군.”

육역이 냉랭하게 흥 소리를 냈다.

그는 즉시 돌을 상자에 담아 다리의 교동(*교각 아래 아치형으로 된 공간.)에 놓으라 한 후 부근에 매복하여 단단히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야시장이 흥청거릴 때가 되어 삼선을 박아 넣은 도포에 휘날리는 건을 쓰고, 손에는 황금으로 제련한 동령저를 든 점쟁이가 토지묘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토지묘는 매우 작았다. 사람 반만 한 높이일 뿐이라 점쟁이는 주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손을 뻗어 더듬었다. 원래 주위에 매복해 있던 금의위가 점찍고 있던 것이 바로 그였으니, 그들은 붙잡기 위해 바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문약해 보이는 외모의 점쟁이는 예상과 달리 무공이 뛰어났다. 즉시 두 사람을 때려눕힌 그는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성의 야시장은 매우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데다 사람들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점쟁이는 바로 그 꽉 찬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으니, 옆쪽 주루에서 대기하던 육역도 보고를 듣고 급하게 거리로 나왔지만 이미 그의 흔적은 사라진 후였다. 때문에 그들은 제각기 흩어져 큰길을 따라 수색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줄곧 신풍교 어귀까지 점쟁이를 쫓던 육역은 돌연 시끌벅적한 소리에 섞인 방울 추 소리를 구별해냈다. 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과연 표표건이 인파 안에 살그머니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육역은 기척을 죽이고 따라붙었다. 상대방의 어깨 쪽 옷에는 찢어진 곳이 있었고, 목덜미에 피 묻은 생채기가 분명히 보였다. 분명 방금 누군가와 싸운 흔적이었다.

그런데 점쟁이는 매우 기민했다. 육역은 비어복을 입지도 않았건만, 그가 다가서자마자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리고 앞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역이 따라붙는 것을 본 점쟁이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옷소매에 숨겼던 비수를 꺼내 육역을 향해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찾던 이가 이자라는 것은 이제 의심할 것도 없이 확실해졌다. 그와 얽히기 귀찮아진 육역이 한 발로 그를 차 날려버렸다.

이 발차기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무와 사발 접시의 깨지는 소리가 섞인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을 뿐이었다.

아마 작은 매대 같은 것이 넘어갔으리라. 육역이 앞으로 헤치고 나간 순간, 점쟁이는 어떤 아가씨를 향해 비수를 휘둘렀다. 다행히 그녀는 빠르게 피하여 옷소매 반쪽이 잘렸을 뿐이었다.

육역은 다시 무고한 이를 다치게 할까 염려가 되어 곧바로 점쟁이의 가슴 중앙을 날려 찼다. 그대로 쓰러진 점쟁이는 선혈을 토하며 두 손으로 지탱하려 안간힘을 썼다.

“말해! 비밀문서는 어디에 숨겼지?”

육역이 한 발로 비수를 든 점쟁이의 손목을 밟았다. 점점 힘을 주자, 그는 더는 잡고 있을 수 없어 비수를 놓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완강했다.

“모른다.”

육역이 다시 힘을 가했다. 점쟁이의 손목뼈가 그의 발아래서 투둑 소리를 냈다.

“나는……, 정말……, 몰라!”

점쟁이의 목소리는 처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진정 돈이라면 목숨도 내건다 했던가. 육역의 눈빛에 날카로운 한기가 스쳤다. 오백 냥 은자면 팔 수 있는 정보인데, 지금은 차라리 손을 못 쓰게 만들지언정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니.

육역이 그를 불쾌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와중, 돌연 옆에서 누군가 끼어들었다.

“이 점쟁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심문이 필요하면, 마땅히…….”

“관부의 사건 수사다. 무관한 자는 비켜!”

사건 조사 시, 가장 나쁜 상황이 쓸데없는 사람들의 참견이었다. 육역은 허리춤에 묶어 둔 금의위 요패를 꺼내어 제삼자는 물러나라는 뜻을 드러냈다.

금의위 요패를 보자, 과연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땅에 엎어졌던 점쟁이는 금 자가 새겨진 요패를 보고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잠수가 부하 몇을 데리고 급히 다가와 그에게 보고했다.

“육 대인, 조혁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고문을 할 때, 부하가 정도 조절을 제대로 못했으리라.

육역이 속으로 한숨을 삼키는 이때, 하필 또 조금 전 쓸데없이 끼어들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목소리에는 흐느낌도 섞였다.

“관원 나리들. 아무리 사건 처리를 위해서라 해도, 제 매대를 망가뜨릴 순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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