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육병은 이미 금의위에게 모든 방을 철저히 수색하라 명했다. 그러나 심가의 옛집은 크지 않아 잠깐 사이 수색은 끝났건만, 금하는 찾지 못했다. 시녀를 추궁해도 고개를 젓거나 울기만 할 뿐 물음에 대한 결과는 전혀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육역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다시 한 번 수색했다. 하지만 여전히 금하는 찾지 못했다
금하는 여기 없어!
……엄세번이 나를 갖고 논 거야?
육역의 심장이 덜컥 아래로 내려앉았다. 온몸이 끝도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그는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 * *
육역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형부의 감옥으로 되돌아왔다. 엄세번의 감방 밖에 선 것이다.
변기통에 용변을 보던 엄세번이 바지를 천천히 끌어올리며 육역을 바라보았다. 그는 할 수 있는 최고의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때? 사람은 찾았나?”
“넌 날 속였어. 그녀는 처음부터 심가에 없었다.”
“말이란 진실되게 해야 하는 법이지. 분명 네가 먼저 나를 속인 것이다.”
엄세번이 탁자 위 쌓인 종이를 입을 삐죽여 가리켰다. 내키는 대로 두어 장을 집어 손을 문지르고는 바닥에 툭 던져 버렸다.
“이게 내가 원하던 물건이냐? 전혀 아니야. 넌 내게 잔꾀를 쓰고 있어.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는 그래도 너보다 꽤 진실하거든.”
“그녀는 대체 어디 있어!”
육역은 포효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이미 인내는 모조리 사라졌다. 창살을 쥐고 있는 그의 손에는 가눌 수 없는 거센 힘이 들어가 그가 흔들 때마다 철창 전부가 함께 진동했다.
그런데 육역이 화를 낼수록 엄세번은 더욱 즐겁고 유쾌해졌다.
“이미 등을 켤 시간이군.”
엄세번은 머리를 갸웃 기울여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매우 좋아 육역에게 인심 쓰듯 말했다.
“나는 네가 초조한 걸 알지. 조금 더 있다가 해시(*밤 9시부터 11시까지.)가 지나면, 넌 더는 초조해할 필요가 없어. 찾는다 해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쿵!
육역이 철창살을 거듭 내리쳤다. 온 철창이 웅웅 소리를 내며 울렸다.
“내게 빌어 봐.”
엄세번이 유유자적하니 태사의로 걸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빌어봐라. 어쩌면 내 마음이 약해져서, 어린 아가씨에게 살길 정도는 열어 줄 수도 있지.”
육역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 같았다.
엄세번도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치켜든 그의 발이 허공에서 건들건들 거렸다.
“좋아. 부탁해. 금하의 행방을 말해 줘.”
육역은 고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엄세번은 여전히 느릿하게 발을 흔들었다.
“부탁하는 자는 부탁하는 자의 태도를 갖춰야 하지. 이런 것까지 내가 네게 가르쳐 줄 필요는 없잖아.”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육역이 장포를 들어 올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흠흠.”
엄세번이 일부러 두어 번 기침소리를 냈다.
“다리 하나로는 그다지 성의가 없다?”
육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금하.
어금니를 악 문 그의 볼 근육이 실룩거렸다. 꽉 쥔 주먹 위로 희끗하게 관절이 드러났다.
육역이 바로 다른 쪽 다리도 꿇으려 할 때였다. 돌연 감옥의 통로 저쪽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 무릎 꿇지 마십시오!”
양정만이 절뚝거리며 소리가 들린 쪽에서 걸어와 육역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엄숭의 집 문 앞에 무릎을 꿇었던 이가 있었지요. 피가 흘러 땅을 가득 적실 때까지 밤낮으로 머리를 찧으며 고두를 하였으나, 엄숭 부자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인이 이렇게 꿇는다 해서 그가 금하의 행방을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금하의 아버지, 하언의 아들인 하장청의 이야기였다. 육역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엄세번이 양정만을 흘겨보았다.
“늙은이. 이렇게 내 흥을 깨면 좋지 않을 텐데?”
양정만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육역에게 말했을 뿐이었다.
“가시죠!”
“양 선배님, 금하가…….”
“저는 제 추종술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양정만이 그를 끌고 가며 말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지 마십시오. 저자는 애초에 대인께 알려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뒤에서 엄세번의 냉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은 구구절절 사실이야. 능력이 없는 너희가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 * *
다시 심련의 옛집으로 돌아왔다. 양정만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차근차근 세심하게 남은 흔적 전부를 살펴보았다.
엄세번 이 자는 자만심이 극에 달해 있다. 스스로 자신의 말이 구구절절 사실이라 말한 이상, 금하는 이 집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숨겼을까?
이 집은 엄세번이 비밀리에 수리한 곳이었다. 건물 주변의 땅에는 전부 견고하고 단단하기가 비할 데 없는 옥석이 깔려서 흔적이 남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러니 아무리 양정만일지라도 집에서만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금하는 분명 여기서 못이 박혀서…….”
양정만은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혈흔을 가리키다가 기어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지만 육역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후, 누군가 들고 나갔을 겁니다. 문턱 위에 새롭게 난 긁힌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앞으로 가면……, 옥석은 너무 견고하여 쓸 만한 단서가 남질 않았습니다.”
양정만 역시 미간을 단단히 찡그렸다.
이제 황혼은 더욱 짙어졌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다는 뜻. 육역은 이따금씩 밀려오는 두려움에 떨며 극한의 힘을 모아 정신을 집중했다.
분명 엄세번이 말한 것 중에 정보가 있을 거야.
육역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그가 말한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훑었다.
애별리.
여섯 개의 대못.
피는 느리게 흘러나온다.
이틀을 못 견디고 사람은 죽을 것이다.
그녀의 작은 몸으로는 오늘 밤을 버티지 못 한다.
해시가 지나면, 찾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잠깐!
문득 육역은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개숙은 엄세번이 금하를 오늘 아침에 데려갔다고 말했다. 말인즉 그녀를 아침에 애별리에 못 박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 더 빠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적어도 내일까지는 버텨야 했다. 엄세번은 왜 그녀가 해시까지 버티지 못할 거라 말했을까?
육역은 두 손으로 옥석으로 된 난간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고통은 극에 달하여 저도 모르게 미간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당장 그 원인을 생각해 낼 수 없음이 미칠 것같이 원망스러웠다.
대못은 결코 급소를 찌르고 들어가지 않아.
사람은 출혈이 과해서 죽는 것이야.
해시 전, 해시……, 그럼, 금하의 혈류가 더 빠르게 돌기 때문인가?
그자는 그녀의 혈류를 어떻게 더 빠르게 돌게 했지?
육역은 무심코 고개를 숙였다. 난간 밑으로 흐르는 물에는 달빛이 비쳐 반사된 빛이 반짝거렸다.
……물!
물이었어!
그는 돌연 모든 것을 깨달았다.
상처가 물에 잠겨 있으면, 피는 더 빨리 흐르게 돼. 엄세번은 금하를 분명 물에 담가둔 거야!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육역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방으로 물보라가 튀고, 사람들도 놀라 작은 소란이 일었다.
“역아, 뭘 하는 것이냐?!”
기겁할 만큼 놀란 육병이 물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금하는 물속에 있습니다! 알아냈어요! 물속에 있어요!”
물 안의 육역은 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사람들이 잇따라 등롱을 들어 수면을 비췄다. 수영을 잘하는 금의위 몇 명도 물로 뛰어들어 찾기 시작했다. 연못은 크지 않았으나, 가산과 다리가 있는 오밀조밀한 구조였고, 육역은 물속으로 잠수하여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수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다리 아래의 어둡고 우묵하게 팬 곳에서 나무 인형 위에 못이 박힌 금하를 찾았다.
금하를 발견한 순간, 육역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여 물속임에도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머리만 가까스로 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호흡은 지장이 없었으나, 목 아래로는 전부 물속에 잠겼다. 육역은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숨결은 약했고, 온몸은 얼음처럼 차디찼다.
“여기!”
사람 인형은 몹시도 무거웠다. 육역도 차마 그녀에게 박힌 대못을 단번에 뽑아 낼 수가 없었다.
“함께 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미 생각이 정지된 육역 대신 누군가 외쳤다.
“첨사 대인!”
누군가 그를 붙들고 흔들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여기서 계속 이럴 수는 없는 일.
육역은 사람들과 힘을 합해 사람 인형 위의 금하를 기슭으로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금하야.”
육역은 힘겹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금하의 몸은 얼음처럼 지극히 차가웠고, 입술은 핏기 한 점 없이 허옇게 바랬다. 육역은 손을 대고 그녀의 맥박을 재려 했으나, 긴장과 그보다 더한 알 수 없는 공포로 그의 손은 말도 안 될 만큼 떨고 있었다.
“내가 하마.”
옆에 있던 육병이 나서서 직접 금하의 맥을 짚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육역은 가까스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에게도 단번에 피가 도는 듯, 눈으로 뜨거운 것이 왈칵 몰렸다.
그때, 심 부인이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왔다. 금하의 모습을 보고는 그녀 또한 심장의 고통을 이길 수 없었다.
“네가 왜…….”
가까스로 눈물을 억누른 심 부인이 금하의 상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숨이 너무 약해서 대못을 뽑게 되면, 버티지 못할 겁니다. 우선은 산삼 끓인 탕을 복용시켜서 목숨을 이어야 해요. 그 이후에나 못을 뽑을 수 있어요.”
육역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급히 명하여 산삼탕을 준비케 했다.
연이어 심 부인은 산삼탕을 하룻밤을 정성들여 끓여서 금하의 입에 천천히 흘려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숨결이 조금 돌아온 후에야 금하의 몸에 박힌 대못 여섯 개를 하나하나 뽑기 시작했다.
하나씩 뽑을 때마다 피는 한꺼번에 솟구쳤고, 금하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지켜보는 육역에겐 모든 것이 고통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이 순간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지독히도 두렵게 했다.
마침내 심 부인은 금하의 대못을 다 뽑고, 상처에 약도 잘 발랐다. 후처치까지 끝낸 그녀의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육역은 금하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녀의 침상을 지켰다. 눈빛은 그녀의 얼굴 위에 고정되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널 보지 못하고 살아도 나는 괜찮아. 네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문밖에선 육병이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정만 또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은 수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두 아이의 운명이 실로 기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화도 결국은 지나간 것인가. 개숙이 살았고, 금하도 살아 있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 심 부인은 이 현실에 깊이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육병을 만났건만, 그녀의 마음에는 더는 복수의 집념도 남질 않았고, 그저 지극히 평온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