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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211)화 (211/224)

211화

즉시 돌아선 엄세번은 눈썹을 찡그리며 알리러 온 사람을 노려보았다.

“어찌 죽을 수가 있더냐? 내가 일러뒀잖아. 먼저 고문하지 말라고, 어?”

“공자의 말씀을 정중히 따라 더는 고문하지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앞서 이미 너무 심하게 상하여 그가 버티질 못한 듯합니다.”

알리러 온 이가 조심스레 보고했다.

“쓸모없는 것들!”

엄세번은 대단히 성을 냈다.

남도행이 죽었어……?

돌연 금하의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녀와 남도행은 비록 몇 번의 짧은 인연뿐이었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훗, 죽었단 말이지?”

일전 남도행이 성상께 ‘오늘은 간신의 주사가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을 때부터, 엄세번은 이 도사가 결코 세상을 등지고 유유자적하던 은둔자가 아니라고 의심했었다.

만약 백록을 보냈던 일이 육역이 호종헌에게 귀띔을 해준 것이었다면, 이 도사와 육역은 반드시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가 남도행을 참혹한 형벌로 고문한 것은, 남도행에게 육역과의 이런 관계를 자백시키기 위함이었다. 이것만 알아낸다면, 육역은 군주를 기만한 죄를 짓게 되고, 그때는 육병이라도 아들을 구하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러나 한 가지 상황만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놀랍게도 남도행이 모든 혹형을 버틴 것이다. 선인의 뜻이라며 한 마디로 일축했으며, 자신은 결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며 그는 기어코 한 글자도 시인하지 않았다.

이런 일개 도사가 이렇게 완강하리라고는 엄세번이 죽었다 깨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애당초 엄가에 매우 유리한 정세였건만, 남도행이 어떤 자백도 하지 않고 죽어버린 지금, 국면은 즉시 반전이 되었다.

엄세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하를 바라보는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 * *

잠수는 자정 무렵 다급한 걸음으로 조옥을 나와 육부로 돌아왔다. 서재에서 아직 잠들지 않은 육역을 찾아 보고했다.

“대공자, 남도행이 죽었습니다.”

붓을 들고 있던 육역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이내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어찌 죽었더냐.”

“몸이 너무 심하게 상하여 버텨내질 못했습니다.”

잠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신은?”

육역은 스스로에게 냉정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건 그가 원래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으니까.

“시신은 제가 옮기지 않았습니다. 괜한 난처함을 피해, 내일 아침 고문한 사람이 와서 확실히 확인하고서야 제대로 내올 수 있습니다.”

잠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대공자도 아시다시피 그자들은 매우 다루기 힘든 놈들입니다.”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육역도 놀라 고개를 숙이고서야 자신도 모르는 새 들고 있던 붓대를 꺾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넌 조옥으로 돌아가. 내일 남도행을 고문하던 자들이 시신을 검사하러 오면, 넌 그들을 가둬라. 한 놈도 놓치지 마.”

꽉 쥔 육역의 손 관절이 주체할 수 없는 지독한 분노로 희끗희끗 드러났다. 그러나 목소리는 기이할 만큼 평온하게 들렸다.

잠수는 안절부절 불안해했다.

“그건……, 대공자, 그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들이 남도행의 몸에 했던 짓들을 그들에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이 해봐야겠다.”

* * *

날이 밝기 전, 육역은 남도행이 죽었다는 소식과 환관 셋이 번복한 진술 증언을 들고 육병을 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성상은 당연히 진노했다. 또한 남도행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라 하고, 살인자들을 엄벌에 처하라고 명을 내렸다.

다음날, 육병이 지시하여 어사 임윤이 엄세번을 탄핵하는 상소를 재차 올렸다. 아울러 엄세번이 지난 번 뇌주로 아예 가지 않았고, 집에 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더불어 전했다.

이에 성상은 크게 노하였다. 엄세번의 일은 다시 거론하지 말라 했던 예전 자신의 분부를 완전히 잊고는 엄세번을 다시 체포하여 재판에 넘겨 조사하고 처벌하라고 엄히 명을 내렸다.

일은 이 상황까지 이르렀고, 엄세번은 재차 수감이 되었다. 성상은 엄숭에 대한 신임을 잃은 것에 점차 혐오까지 더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엄세번의 죄명은 단지 유배지에서 도망한 것일 뿐, 그를 사지로 보내기에는 부족하여, 모든 것은 여전히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 육역은 이미 형부의 감옥에 도착해 있었다. 금의위 제패를 본 옥졸이 그를 감옥으로 들여보냈다.

이번은 엄세번의 재수감으로. 첫 번째의 영광이란 더는 존재치 않았다. 성상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예전 엄당의 일원들도 정계에서 잇따라 물러났으니, 그 또한 감히 다시 이전처럼 기고만장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엄세번은 규정대로 형부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런데도 일말의 특별대우는 있어 그는 햇빛이 비치는 감방을 혼자 차지하여 다른 이와 부대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감방은 꾸민 것도 제법 잘되어 있어 의자와 탁자, 걸상 등 있어야 할 것은 다 갖추어졌다. 침상 위에 깔린 깔개마저도 비단이었다.

엄세번은 태사의에 비스듬히 앉아 일광을 쬐고 있었다. 그의 표정과 태도는 한껏 여유롭고 한가로웠다.

“저들이 말하더군요. 당신이 날 찾는다고.”

육역이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맞아!”

엄세번이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춘부장의 몸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내가 출입이 불편하여 댁으로 찾아뵐 수도 없으니,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육역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쪽은 마음 쓰지 마시지요.”

엄세번은 능글맞게 웃고 있지만, 눈빛으로 육역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날, 자네가 말했지. 여름 날씨에 가을 날씨 같은 스산한 기운이 많으니, 내게 많이 조심하라 했는데 춘부장 건강이 그리되실 줄이야 생각했겠나.”

“엄 공자의 말을 들으니 참으로 우습군요. 설마 자신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육역의 어조는 차가웠다.

태연자약하게 일어선 엄세번이 감옥의 창살 앞까지 천천히 걸어와 여유롭게 말했다.

“자넨 남도행의 목숨 하나를 이용해서야 나를 여기로 들여보냈지. 내가 죽는 걸 볼 때까지, 자넨 끝끝내 단념하지 않겠지?”

남도행을 떠올린 육역의 심장은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내 아버진 눈치 채지 못하시고, 남도행이 여전히 서계의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셔서 온 힘을 다해 그의 배후가 서계임을 자백시키려 하셨지. 하지만 난 이미 생각하고 있었어. 남도행은 네 사람이야. 백록을 보낸 것도 네 생각이었고.”

육역은 그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은 두려울 때, 말도 많아집니다. 당신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이 없군요.”

엄세번은 원래 무언가 하려던 말을 참고, 대신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천천히 꺼내어 육역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육역은 그 물건을 자세히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다. 그가 바로 물었다.

“어디서 그 물건을 손에 넣었지?”

엄세번이 손에 들고 있는 건 그와 금하가 나눠 가졌던 그 인연석이었다.

“오, 그래. 이거야.”

육역의 반응은 엄세번의 마음에 꼭 들었다.

“과연 자네는 이 어린 여자에게 매우 신경을 쓰는군. 갖고 있는 작은 물건까지도 이렇게 잘 알 정도고, 게다가 이리도 긴장하니 말이야.”

“……금하를 어떻게 한 겁니까?”

육역의 목소리에 은은한 한기가 서렸다.

하지만 엄세번은 대답 없이 다시 태사의로 돌아가 앉았다. 눈썹을 슬쩍 치켜 올린 채 그에게 물었다.

“양주성에서 자네 이미 ‘애별리’를 보았을 거야?”

육역의 눈앞이 한순간 까맣게 어두워졌다.

“당신……, 그녀를 죽였어?!”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을 뿐이었다. 금하가 어쩌면 이미 참혹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육역은 온몸에 돌연 미친 듯한 한기가 밀려들었다.

엄세번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멈추게 하고는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얌전히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끼어들지 마. 아니면 그 여자는 진짜로 죽을 거다.”

육역은 옷소매 안의 손을 꽉 쥐었다. 머릿속에서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바로 이래야지. 아주 좋아.”

엄세번은 흐뭇하게 웃었다.

“넌 내가 왜 ‘애별리’를 특별히 좋아하는지 아나? 그건 너희 조옥 안의 그 거칠고 야만스러운 물건과 다르기 때문이지. 바로 이렇게 가볍게 안아주는 것과 같지…….”

그의 입술 꼬리가 위로 휘었다. 육역을 바라보며 손을 내민 그는 포옹하는 자세를 취했다.

“긴 대못은 급소를 피해 천천히 사람 몸을 쑤셔 들어가. 피는 소리도 없이 아래로 흘러내려서 발등 위로 넘쳐흘러……, 대못의 길이를 조절함에 따라 사람은 바로 죽지 않고, 그저 천천히 피가 말라가길 기다려야지. 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많이 흐를 거고, 사람은 점점 더 추위를 느끼게 돼. 추워질수록 점점 더 껴안아서 따뜻해지고 싶고…….”

엄세번은 감탄했다.

“애별리(*애별리고, 불가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라는 이 이름이 실로 적절하단 말이지.”

“넌, 대체, 그녀를 어떻게 한 거야!”

육역은 이를 으득 물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잇새로 겨우 토해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엄세번은 딴청을 피우며 눈썹을 세웠다.

“양절을 떠나기 전, 넌 나문룡이 왜구와 내통한 증거를 모았어. 그건 나를 사지로 몰고 싶어서겠지? 나는 지금 네게 기회를 주겠다. 네가 수집한 증거 모두를 내놓으면, 바로 그 어린 아가씨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지.”

육역은 엄세번을 단단히 노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뜩거렸다.

“네가 이렇게 날 봐도 소용없어. 어린 아가씨가 지금쯤 추워서 연신 부들부들 떨고 있을 걸 생각해 보라고.”

육역은 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뒤에서는 엄세번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 * *

말을 질주해 집으로 돌아온 육역은 육병에게 상황을 설명할 틈조차 없었다. 그는 그 길로 자신의 방으로 가 나문룡이 왜구와 내통한 그 증거들을 가지고 나오려 했다.

돌아오는 도중, 그 또한 가짜 증거로 엄세번을 속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엄세번은 대단히 똑똑한 이였고, 만일 그에게 역으로 간파당하면, 그땐 금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죽게 될 것이다.

육역은 서랍을 열어 우선 안에 든 서적을 전부 꺼냈다. 그런 후 가볍게 기관을 누르니 숨어있던 서랍의 은밀한 공간이 열렸다.

그러나 그 공간은 텅 비어 아무 것도 없었다. 육역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 진술서들은 그가 잘 놓아둔 대로 내내 여기 있었다. 그런데 어찌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어제저녁에도 그가 꺼내어 정리를 했건만.

“누구 없느냐! 여봐라!”

육역이 다급한 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가복이 종종걸음을 치며 뛰어 왔다.

“오늘 누가 내 방에 들어왔지? 빨리 말해라!”

육역이 노기를 누르지 못하고 거칠게 물었다.

가복 또한 지금껏 대공자가 이리도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매우 두려워하며 답했다.

“대공자께 아룁니다. 늘 청소하던 사람 외에 어르신께서 들어오셨을 뿐입니다.”

……아버지!

육역은 넋이 빠졌다.

“아버진 어디 계시더냐?”

“어르신은 방에 계십니다.”

가복이 말을 하자마자, 육역은 급하게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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