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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208)화 (208/224)

208화

육병이 북진무사를 통솔한다고는 하지만, 북진무사 전체가 그의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엄당의 세력은 강대했고, 조옥에도 적지 않은 엄가의 앞잡이가 포진해있었다.

엄숭은 이번에야말로 눈엣가시 같던 남도행을 처리하고자, 그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렇기에 조옥에 들어가자마자, 남도행은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반나절이 되기도 전, 그는 죽음 직전에 이를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 사이, 육역은 형실이 있는 곳을 두 번 지나쳤다. 안을 보지는 못했으나, 형실 안의 채찍질 소리, 인두가 불 위에서 달궈지는 소리, 사람이 극한의 순간에 헐떡이는 소리 등 모든 소리는 예리한 바늘처럼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남도행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그의 몸에 가해지는 혹형도 더욱 더 잔인하고 가혹해졌다.

육역의 태도는 평소처럼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단단히 닫은 후에야 전신에서 단번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깊은 밤, 복도를 천천히 거닐던 육병이 시선을 들어 조금 멀리 떨어진 육역의 방을 흘끔 보았다. 은은하게 불 켜진 아들의 방을 보며 육병은 또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간 그가 육역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버님, 밤이 이리 늦었는데,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문을 연 육역이 그를 급히 안으로 들였다. 들어가 자리를 잡아 앉은 육병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넌 여전히 남도행 구할 생각을 하고 있지?”

육역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일의 가장 최선은 남도행이 조옥에서 죽도록 그냥 두는 것이고, 이렇게 되어야 엄숭 또한 남도행을 잃은 성상의 신임을 철저히 잃게 된다는 것을 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겠지.”

육병의 어조는 담담했다.

“……네 마음이 독하지 못할 뿐.”

육역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이미 많은 증거를 모았습니다. 엄세번이 나문룡 등의 왜구와 내통한 걸 증명할 수 있고, 엄가를 무너뜨릴 기회가 있습니다. 남도행 그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육병이 냉소했다.

“넌 추응룡 탄핵 건을 생각해 보아라. 마지막엔 겨우 순은 팔백 냥 횡령으로 결정 났어! 성상이 엄가에 정이 남아 있는 한, 아무리 큰 죄명이라도 일에는 아무 쓸모가 되질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성상이 엄숭에 대해 철저히 실망케 하는 것이야.”

허공을 바라보던 육역이 길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엄숭이 매수한 그 환관들은 제가 이미 잠복을 통해 진술을 번복토록 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엄당의 세력이 마음에 걸려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급하지 않다. 먼저 사람을 밀착 감시하고, 남도행이 죽은 후, 다시 그들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해. 그때는 성상의 후회도 소용이 없지. 의심할 바 없이 엄숭에게 한층 더 분노하게 될 게다.”

육병이 말했다.

“아버님, 제가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환관이 진술을 번복한다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가 죽고, 안 죽고. 그에 따른 성상의 엄숭에 대한 분노는 그 깊이가 달라.”

육병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일이 이미 이 지경까지 온 이상, 너는 절대 한순간도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 돼!”

육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부친을 바라보았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육역은 다시 조옥으로 갔다. 남도행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육역은 간수를 트집 잡아 그 자리를 뜨게 하고, 남도행에게 통증을 억제시키는 약을 먹였다.

“난 자넬 구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어. 꼭 버텨야 해.”

육역이 남도행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남도행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미 말을 하는 것조차 너무도 힘들어 했다.

“죽게 두십시오……. 여기서, 이래야만 엄숭이……, 철저히 성상의 신임을……, 잃게 됩니다.”

그도 진즉 이걸 생각하고 있었다니.

육역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 꼼짝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도행이 그를 향해 희미하게 웃으며 어렵사리 입술을 달싹거렸다.

“우리……, 시작하면서……, 다 얘기 잘 해 두었던 겁니다. 부차적인 것을 버려 중요한 것을 지키기로. 나는……,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바깥에서 사람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했다. 육역은 남도행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급히 형실을 나왔다.

형실 안에선 새로운 종류의 혹독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남도행의 형실과 벽을 두고 앉아 육역은 조옥의 기록을 살펴보는 척하였다.

그의 청력으로는 남도행이 혼절할 때까지 흘리던 신음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물을 맞고 깨어난 후 다시 고문이 시작되고, 마지막으로 철저히 혼절하여 옥으로 되 끌려가는 순간까지의 그 처절하고 지독한 고통을 육역은 모조리 듣고 있었다.

* * *

육선문에 있던 금하 역시 남도행의 일을 들었다.

그녀는 남도행과 육역 사이의 속사정까지는 모른다. 남도행이 성상에게 올린 말과 사정을 들었을 뿐이건만, 그가 신선의 말을 빙자한 것과 상관없이 금하는 그런 말을 성상에게 할 수 있던 남도행의 의기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그가 조옥에 갇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큰 고통을 겪을 그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탄식이 흘렀지만, 그녀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깊은 밤까지 원익은 뜰에서 머리를 흔들흔들 대며 논어를 암송하고 있었다.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진, 거기소이중성공지라…….”

为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众星拱之,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 자리에 있고, 뭇별이 그를 따르는 것과 같다.

(- 논어, 위정편)

맷돌을 깨끗이 씻어둔 금하는 바가지로 물을 떠 뜰을 돌아다니는 원익의 발치에 뿌렸다.

“들어가서 자.”

그러나 원익은 가려하지 않았다.

“더워서 안에선 잘 수가 없어요. 누나, 다음번 봉급 타면 우리 대나무 침상 사요. 그럼 뜰에 놓고 잘 수 있어요. 시원하고, 편안하고, 어때요?”

원진 씨가 방에서 나왔다. 옷 두 벌을 든 그녀가 원익에게 쉿 하며 말했다.

“조용히 해라. 네 아버지 방금 잠드셨다.”

“엄마, 옷은 제가 빨게요.”

금하가 손을 내밀어 받으려 했으나 원진 씨가 괜찮다며 비켜섰다.

“됐어. 넌 물이나 길어주면 돼.”

그 사이 원익은 마지못해 투덜투덜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빨래를 시키진 않았으나, 금하도 모친 옆에서 내일 쓸 콩을 씻어 물에 담그느라 바쁘게 일손을 움직였다.

빨래를 하던 원진씨는 뜰에 아무도 없는 기회를 틈타 무심한 척 슬쩍 물었다.

“금하야, 너 요즘 무슨 일 있니? 남쪽에서 돌아온 후부터 이상하구나. 온종일 넋을 놓고 있어.”

금하는 물에 담근 콩을 비벼 씻고 있을 뿐 고개도 들지 않았다.

“어디가요……. 괜찮은데요. 저 매우 좋아요.”

“한 달이 넘도록 도둑 하나 잡지도 못했잖아. 그런데도 뭐가 난 매우 좋다야?”

원진 씨는 금하를 뚫어질 듯 바라봤다.

“정말 좋은 혼담인 역가네도 마다하고…….”

“……엄마는 처음 어떻게 아버지한테 시집오셨어요?”

금하는 눈치껏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원진 씨는 옷 위의 기름때를 들여다보며 애써 문지르고 있었다.

“부모의 명과 중매인의 말로 결정되는 것이지. 아니면 어떻게 시집을 갈 수 있겠니.”

“시집가기 전에 아버지를 알고 계셨어요?”

“알고 있었다.”

원진 씨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내 솔직히 얘기하마. 당시에 우리 집에 혼담을 넣은 집이 몇 집이 더 있었단다. 그래도 네 아버지가 가장 성실했어.”

“엄마는 아버지 성실한 게 마음에 드셨어요?”

금하는 신기해했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한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 네 외조모가 마음에 들어 하셨어. 네 외조모는 내 성격으로는 성실한 이를 찾아야 오래 살 수 있다 하셨단다.”

원진 씨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 사람이 성실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만약 그가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한다면, 왠지 부인에게 잡혀 살 것 같더구나.”

금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진 엄마와 함께 계서도 많이 잡혀 사셨는데요.”

“망할 계집애. 내가 언제 네 아버지 잡고 살았더냐.”

원진 씨가 웃으며 욕했다. 옷을 다 빤 그녀가 금하에게 당부했다.

“대문 잠그고, 너도 얼른 자러 가.”

바람이 불어온다. 스친 바람에 문 앞 대추나무는 싸아 하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대문을 열었던 금하는 짙은 어둠 속을 뚫어질 듯 바라봤다. 대추나무 아래 누군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달도 구름에 숨은 밤, 그녀의 느낌은 확실하지 않았다.

“누구……, 있어요?”

대답은 없었다. 달이 구름을 벗어나길 기다려 다시 집중해 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나무의 흔들림을 잘못 본 것 같았다.

실망 비슷한 한숨을 내쉰 그녀는 돌아서 대문을 잠갔다.

* * *

그날 금하가 거리 순찰을 끝내고 근무 교대를 위해 돌아갈 준비를 하던 때였다. 누군가 갑작스레 그녀의 팔을 덥석 붙들었다.

“아저씨!”

개숙을 본 금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헤어질 땐 분명 멀쩡했건만, 지금의 그는 눈에 띄게 달랐다. 옷은 남루했고, 바짝 야위어 반쪽이 된 얼굴에는 수염이 거칠게 돋았다. 가슴엔 둘둘 싸맨 천까지 설핏 보일 정도였다.

경성이 비록 거지천지라지만, 아마도 개숙이 거지 중의 가장 상거지일 터였다.

적당한 인사말도 없이 개숙은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니가 잡혀갔어!”

“누구요?”

금하는 본능적으로 물었지만, 묻는 동시에 알아차렸다. 개숙이 심 부인 외에 이리도 초조해할 사람이 또 누가 있던가.

“우리 이모요?”

개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모를 잡아간 놈들이 경성 쪽으로 향해 온 것은 알지만, 그자들의 무공은 평범치 않고, 나는 추종술을 배운 적이 없어서 종적을 놓쳤다. 그래서 아직 그니를 찾지 못했단다.”

“잠깐만요. 누가 우리 이모를 잡아갔어요? 금의위가요?”

금하가 추궁했지만, 개숙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 그자들은 검은 옷을 입었고, 아주 꽁꽁 싸매고 있어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누가 그런 일을……. 대체 어디로 데려간 걸까요!”

개숙은 눈언저리가 푸르스름하고, 입술은 모두 갈라졌다. 뒤를 쫓아 경성으로 올라오는 동안, 그는 초조해하며 사람을 찾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것이다. 금하는 개숙을 데리고 길가의 차관으로 들어가 앉았다.

“아저씨 차 먼저 드시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내가 무슨 차 마실 마음이나 있겠니…….”

심 부인을 잃어버린 후부터 개숙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 당황하고 애간장만 태우고 있었다.

“아저씨, 일단 앉으세요.”

금하는 포쾌로서의 침착함이 있었다.

“저는 포쾌에, 추종술이 특기예요. 제가 찾을 테니, 아저씨는 우선 냉정을 찾으시고, 전후 사정 전부를 말씀해 주세요. 상세할수록 좋아요. 우리 이모를 찾는 건 아저씨가 얼마나 기억하는지에 달려 있어요.”

개숙을 긴 걸상에 걸터앉힌 금하는 그의 마음부터 진정시켰다. 그 또한 금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일 전부를 상세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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