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07)화 (207/224)

207화

육역이 유대유가 경성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옥으로 서둘러 갈 때였다. 잠복과 잠수가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대공자, 어르신께서 돌아오시랍니다!”

잠복은 예의 있게 공수를 올렸다.

“나는 당장 급한 일을 해야 한다. 아버님은 잠시 후에 찾아뵙겠다. 너희는 비키거라!”

잠수는 비키려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육역이 탄 말의 고삐까지 단단히 잡아끌었다.

“대공자, 어르신께서 저희에게 공자를 꼭 모시고 돌아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육역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돌연 갈고리처럼 만든 식지와 중지로 잠수의 눈으로 직접 찔러 출수했다. 빠르고 세찬 기세에 잠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젖혀 피했다. 그러나 육역은 도중 초식을 바꿔 가볍게 말고삐를 낚아챘다.

“대공자!”

잠복이 다급히 말했다.

“어르신께서 연일 몸이 좋지 않으신 건 대공자도 아시잖습니까. 저희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함은 작은 일이겠으나, 어르신의 몸은 걱정을 이기지 못하실 겁니다. 급한 일이 있으시다 해도, 어르신을 뵌 후 다시 하십시오. 그땐 저희 두 사람도 절대 막지 않겠습니다.”

육역은 아버지의 건강에 생각이 미쳤다. 미간을 찡그린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 말머리를 돌려 집을 향해 나는 듯 달렸다.

* * *

육병은 정원에 나와 있었다.

“아버님, 찾으셨습니까?”

육병이 그를 흘끔 보고는 담담히 물었다.

“유대유가 경성에 도착했지?”

“예.”

“넌 내 말을 명심하거라. 유대유 안건은 네가 손댈 수 없다.”

육역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연유입니까?”

육병은 차 한 모금을 마시고서야 고개를 들어 아들을 바라봤다.

“나는 네가 유대유와 관계가 깊다는 걸 알고 있지. 너는 분명 그를 출옥시키려 할 거야. 그럼, 넌 그가 왜 갑자기, 영문도 알 수 없이 면직되고 조옥에 잡혀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연유는 이미 조사했습니다. 호종헌 때문에…….”

육역은 서슴지 않고 입을 열었으나, 이내 아버지의 표정에서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설마 다른 연유가 있습니까?”

안색이 무거워진 육병은 그의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엄세번이 유배를 간 후부터, 나는 사람을 보내 그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엄세번은 강서에 있으나, 계속해서 사람을 양절로 보냈지. 유대유가 누명을 쓴 것은 바로 엄세번이 너를 처리하기 위해 놓은 한 수였다. 네가 유대유를 보호하려 하면, 바로 누군가 튀어나와 변방의 장수가 성상 가까이의 신하와 결탁한다며 탄핵할 테지.”

육역은 순간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넌 알고 있어야 한다.”

육병이 말을 이었다.

“변장결교근신이라는 이 말! 변방의 장수가 군주의 가까운 신하와 교류한다는 이것은 성상의 큰 금기야. 그땐 아마 나도 널 지키지 못하게 될 게다.”

육역은 선 채로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엄세번의 의도가 이렇게까지 음험하여, 이런 올가미를 벌려놓고 그가 안으로 뛰어들길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침묵이 흐른 후, 육역이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역시 대책을 강구할 겁니다.”

“넌……, 넌 아직도 유대유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냐?”

육병의 어조에는 이미 화가 서렸다.

“네 명이 얼마나 질긴지 시험해 보려는 것이야?”

“아버님, 저는 유대유의 사람됨을 깊이 존경하고, 그가 조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은자도, 기댈 후원자도 없습니다. 조옥에 들어가 삼 일도 못 넘겨 사람 꼴이 아니게 되겠지요.”

육역의 음성은 깊게 가라앉았다.

“그건 그야, 네가 아니라! 명백히 이것이 올가미인 줄 알면서도 안으로 뛰어들 수는 없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안 돼. 나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육병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버님!”

“역아!”

육병은 한껏 미간을 찡그렸다.

“넌 일을 함에 지금껏 신중하고 분별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찌 이렇게 변하였더냐!”

육역은 시선을 내리깐 채 부친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고개를 들고 육병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아버님은 아직 심련을 기억하십니까?”

돌연 육병은 멍하니 굳었다.

육역의 목소리는 크지도 않았건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육병의 심장을 직접대고 두드리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까지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저는 이 몇 년간 아버님이 속으로는 줄곧 후회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어렸어도 아버님이 그분과 늘 함께 술을 드시고 말씀을 나누시는 걸 보았고, 그를 형제처럼 여김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지 말거라.”

육병은 돌아섰다. 육역에게만은 자신의 표정을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당시 심련이 화를 당했을 때, 육병은 그가 보안주로 유배되고, 마지막에는 누군가에게 죽을 때까지 끝끝내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엄가의 위세에 눌렸기 때문이었다.

육역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차마 어떤 말도 더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말대로 조용히 기다렸다.

한차례 불어온 바람이 바닥에 떨어진 잎들을 말아 올렸다. 그리고 육병은 끝내 침묵을 지켰다.

육역이 하필 지금 심련의 얘기를 꺼낸 의도는 그도 알고 있다.

당시 그가 엄가의 부당함을 외면하고 심련을 구하지 않았던 그 일은 그의 일생의 한스러운 일로 남았다. 그리고 지금 육역이 유대유를 보호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버지와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다는 육역의 의지와 같은 것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육병은 천천히 돌아섰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하겠다. 이제 넌 더 이상 개입하지 말거라.”

“아버님.”

“왜. 이젠 나도 못 믿겠더냐?”

육병이 손을 들어 아들의 말을 제지했다.

“유대유를 보호해야 하면서도 엄세번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게 하려면, 두 가지 모두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일은 서두를 수 없다.”

“그럼 전 우선 조옥에 가서 유 장군이 시달림 당하지 않도록 적절히 손을 좀 쓰겠습니다.”

조옥은 들어가자마자, 초면례로 곤장 30대를 때린다. 만약 먼저 뇌물이라도 써서 구슬려 놓으면, 곤장은 보여주기 식으로 약간의 외상을 입힐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뇌물이라도 쓰는 이가 없다면, 이 초면례 삼십 장만으로도 사람은 초주검이 될 수 있었다.

“넌 낄 필요 없다. 내가 분부를 해 놓으마. 그가 노상에서 풍한열에 걸렸다고 말해 우선 처음은 기록만 해 두라 하겠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육병이 직접 유대유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육역은 마음으로 깊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 * *

황궁 안의 남도행도 유대유의 일을 전해 들었다.

그는 육역과 잠항에서 왜구에 대항하여 싸웠고, 유대유의 인품 또한 매우 존경해 왔다.

이 일을 전해들은 그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즉시 기회를 보아 육역과 은밀히 연락을 하고서야 엄세번이 꾸민 흉계라는 사실을 알았다.

비록 육역 또한 유대유를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하나, 남도행은 엄세번이 보통 이상으로 음험한 자임을 알고 있다. 이번 계략이 성공치 않으면, 그는 반드시 다시 또 계략을 꾸밀 것이다. 가능한 빠르게 엄세번을 쓰러뜨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아마 그 다음은 육역이 위험할지 모른다.

어떤 수라도 마련하려는 남도행의 마음 또한 하루하루 초조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성상이 남도행에게 점을 치라 하며 선인에게 물었다.

“왜 천하는 태평해지지 않습니까?”

성상의 말을 듣는 순간, 남도행은 드디어 기회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즉시 선인의 말을 빌려 답했다.

[어질고 덕망 높은 신하는 쓰지 않고, 간신이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성상께서 또 물었다.

“누가 현명한 신하이고, 누가 간신입니까?”

남도행은 드러나지 않게 머뭇거렸다. 자신이 지나치게 티가 나도록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는 육가를 완전히 배제한 채 술술 답을 써 내려갔다.

[현신은 서계, 양박 같은 이고, 간신은 엄숭 부자 같은 이라 합니다.]

성상이 ‘선인’이 써내었다는 답변을 보고 미간을 희미하게 찡그렸다. 돌연 고개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도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성상이 선인으로 모시는 남도행의 눈은 지극히 맑고 매우 평정했으며, 가부좌한 모습 또한 평소와 같았다.

물론 남도행이 틈을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는 성상의 성격이 매우 의심이 많은 데다, 자질은 총명해서 도사 외의 어떤 이도 거의 믿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한참 후, 성상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상제께서는 왜 간신에게 하늘의 벌을 내리지 않습니까?”

이 질문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조금이라도 답이 엇나가면, 엄가를 흔들지 못할 뿐 아니라, 남도행 자신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남도행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붓을 들어 답했다.

“상제께서 그를 벌한다면, 본래 집행을 해야 하는 이가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워 할 것이요. 그러니 하늘이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은 성상께서 알아서 판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상의 용안은 남도행이 올린 이 몇 글자를 본 후 기쁨이 넘쳐흘렀다.

당연하게도 이 일은 아주 빠르게 엄숭의 귀로 들어갔다. 동시에 육역의 귀에도 전해져, 그는 극도로 초조해졌다.

남도행 자네가 나와 상의도 없이 이리 일을 벌일 줄이야.

하지만 상황을 알아본 육역 또한 남도행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도행은 육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서계와 양박을 거론하여 엄당의 시선을 고의로 그쪽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엄숭의 반격은 지독히도 신속했다.

그는 남도행이 점을 칠 때 시중들던 환관 몇을 번개처럼 빠르게 매수하여, 이 환관들에게 남도행이 점괘를 미리 조작하였다는 모함을 하게 했다. 그 길로 엄숭은 남도행을 형부의 대옥으로 잡아들였고, 또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후 남도행은 오래지 않아 조옥에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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