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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205)화 (205/224)

205화

육역이 부친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가위를 들고 동백꽃 가지치기를 하는 육병은 온 마음을 전부 몰두한 모습이 마치 산속에 은거한 선비 같았다. 지금 모습으로만 보면, 소문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금의위 최고지휘사의 위엄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아버님, 돌아왔습니다.”

육역이 조용하게 입을 열자, 육병이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다시 가지치기를 시작한 그가 물었다.

“어찌 돌아오는 것이 이리 늦었느냐? 올해는 이 이어주(*동백꽃 품종.)가 오히려 열심히 분발하여 열여덟 송이나 되는 꽃을 피웠다. 너는 한 송이도 보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육역은 가볍게 놀랐다. 이 이어주는 천 리나 아득히 먼 곳인 대리에서 옮겨 심은 것으로 북방의 기후와 잘 맞지 않아 옮겨 온 이후로 3, 4년 동안 전혀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것이 올해 필거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마지막 남은 잔가지를 자른 육병이 이를 옆에 있던 가복에게 건네고, 손을 흔들어 물러나라 명했다.

“아버님, 건강이 안 좋으신 겁니까? 의원이 보았는지요?”

육역이 뜨거운 차를 따라 공손하게 건넸다.

“밤에도 잠을 잘 못 이루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육병은 이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별일 아니다. 백록을 보내온 건 잘했다. 호종헌이 관직을 몇 년은 유지할 수 있겠지. 네가 그에게 의견을 보탰지?”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는 전혀 숨기지 못하겠습니다.”

육병은 깊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마치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시선을 내리고 차를 음미했다.

“참, 추응룡이 엄세번을 탄핵한 안건은 어찌 이렇게 갑작스러울까요? 그의 뒤에서 사주한 이가 누구입니까?”

육병은 금의위의 우두머리였고, 경성 안의 아주 대수롭지 않은 변화나 사고도 그의 이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이런 큰일을 놓칠 리는 없었다.

“넌 지난번 널 탄핵한 급사중에 대한 것이나, 그의 배후에서 사주한 이가 누구인지는 어찌 물어보려 하지 않느냐?”

육역은 대답하지 않았고, 육병이 다시 말했다.

“넌 진작 누구인지 알고 있었구나, 맞지? 그가 감히 내 머리까지 올라 나를 얕보고, 네게 칼을 겨눈 이상, 내가 이렇게 손을 쓴다 해도 비난할 수는 없다.”

육역은 놀라 시선을 들었다.

……정말 아버지가 하셨다고?

그는 지금껏 추응룡을 사주한 이가 아버지일 거라고는 결코 한순간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님.”

육역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엄가는 세력이 강대하고 배경이 든든하여 단번에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 그가 반격한다면, 그땐 우리도 분명 어디든 한 입 물리게 될 겁니다.”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육병은 몇 번이고 연이어 터지는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머리는 흔들흔들 어지러웠고, 몸도 따라 흔들거렸다.

급히 다가온 육역이 그를 부축했다. 육병은 그를 붙든 아들의 손을 몇 번 토닥거렸다.

“걱정 말거라. 내가 있는 한 그들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않을 게다……. 조금 쉬고 싶구나. 너 먼저 가 보거라.”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육역은 더 이상 조정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로 아버지를 방해할 수 없었기에 조용히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경성 육선문.

“무슨 일이야? 뭔데 사람을 전부 불러들여요?”

금하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건물 가득 모여 바쁘게 일하고 있는 포쾌들을 바라보았다.

“거리 순찰 안 해요?”

“잔소리 그만하고 얼른 일이나 해! 저 병풍 위에 먼지 남아 있을 거다. 네가 얼른 가서 좀 닦아.”

포쾌 하나가 그녀의 손에 걸레를 쥐여 주며 재촉했다.

“위쪽에서 말씀하셨다. 유시(*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전에 반드시 전부 깨끗하게 닦아 둬야 한다고. 아이고, 정원도 있네. 정원도 청소해야 해. 서둘러, 얼른…….”

“이게 새해맞이도 아니고, 멀쩡하게 깨끗한데 무슨 청소를 해요? 이렇게 한가할 시간 있으면, 이 도련님은 도둑 몇 더 잡을 겁니다.”

금하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위에서 말했다. 이따가 엄 공자가 오니까, 서둘러 깨끗이 청소해 놓으란다. 엄 공자가 유달리 깨끗한 걸 좋아 하신다고…….”

“잠깐!”

금하가 놀라 상대의 말을 끊었다.

“어느 엄 공자요?”

“어느 엄 공자가 또 있나? 엄세번이지!”

“성상께서 그를 체포해 수감하라고 성지 내리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된 거에요?”

금하는 더욱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무슨 체포고 수감이야. 도리어 사람을 모셔오는 거고, 제발 저희 쪽에 머물러 주십사 간청하는 거지. 형부 구 상서가 직접 영접하고, 경성에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모셔서 좋은 술과 요리로 대접까지 했단다. 오늘 듣기로는 엄 공자가 제의했대. 그래도 어디까지나 성상의 뜻이 있으신데, 아무래도 감옥에서 지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이게 참, 그래서 위에선 우리에게 서둘러 정원을 청소하라고 지시하신 거다."

“……이것도 하옥이라 해요? 이게 무슨 하옥이야!”

금하는 벌컥 크게 화를 냈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그녀를 양악이 옆으로 끌어당겼다.

“쉿! 함부로 말하지 마!”

그는 금하를 작은 곁방으로 끌고 들어가 충고했다.

“네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거 알아. 넌 먼저 집에 가!”

“안 가! 나는 성지를 받들어 체포된 범인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

화가 난 금하의 가슴이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는 차고 있던 박도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대리시, 형부, 도찰원을 막론하고, 온 조정의 문무백관 전부가 저자를 그대로 놔두잖아! 우리가 어디가 포쾌고, 무슨 도적을 잡아!”

양악은 초조해했다.

“그만, 도련님아. 너 화 잔뜩 난 거 알아.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내 말 한마디만 들어. 집에 돌아가 며칠 쉬어…….”

그가 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 밖에서 갑자기 한 바탕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동우의 목소리가 가장 선명하고도 우렁찼다.

“똑바로 서, 똑바로 서, 다들 똑바로 선다! 엄 공자가 곧 도착하시니, 서둘러 모두 똑바로 서라!”

금하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양악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어서 당장 달려 나가 그를 두 발로 걷어차지 못하는 것이 지금만큼은 지독하게도 한스러웠다.

“네가 지금 가는 건 늦은 것 같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움직이지 마! 여차하면 너 묶어 둘 거야!”

양악이 그녀에게 경고했다.

“지금은 감정적으로 일 처리할 때가 아니야!”

금하는 매우 화가 난 모습으로 걸상을 끌어당겨 앉았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그녀도 자신은 지위도 낮고 힘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일을 망치게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어느 순간, 바깥은 온통 깊은 정적이 휩쓸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밖에서는 분주한 발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형부 구 상서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엄 공자, 보십시오. 역시 여기도 체통에는 맞지 않지요. 제 생각엔 누추해도 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지내시는 것이 낫습니다.”

금하는 일어서 양악과 창문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수많은 관원이 모여들었고, 그 사이에 엄세번이 가볍게 쥘부채를 흔들며 서 있었다. 그는 육선문으로 들어와 앞뜰에 서서 고개 들어 은행나무를 바라보았다.

때는 성하의 시기.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해진 은행나무 아래는 청량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다. 이따금 나뭇잎 몇 개가 떨어져 내릴 때도 있었다.

그때 마침 노란 나뭇잎 하나가 엄세번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슬쩍 집어 자세히 바라보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 황색 잎이 떨어지는군. 이런 여름 날씨에 가을 날씨 같은 스산한 기운이 있어. 육선문은 육선문이군. 과연 다른 곳과는 달라.”

총포두가 구 상서 옆으로 다가가 몇 마디 귀엣말을 전했다. 그러자 구 상서는 재빨리 웃으며 엄세번의 눈치를 보았다.

“곧 식사 시간이 됩니다. 이 옆에 있는 만향루의 요리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먼저 식사부터 하심이 어떻습니까?”

엄세번이 손을 내저었다.

“나는 이 정원이 매우 좋은 것 같아요. 식탁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여기서 밥을 먹읍시다.”

“여기서요?”

구 상서의 얼굴이 난감해졌다.

“하지만 여긴 육선문의 앞뜰입니다. 이곳은……, 외부인의 왕래가 빈번하지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병풍을 세우면 될 것을.”

엄세번은 무엇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옆쪽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육선문의 포쾌들을 입술을 삐죽여 가리키며 웃었다.

“이게 천연의 병풍이 아니겠습니까.”

포쾌들로 병풍을 친다니. 총포두의 안색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일찍이 엄세번이 미녀들로 살병풍을 쳤다고 들은 적이 있었으나, 그거야 그 집안의 사적인 일이니 상관없었다.

육선문의 포쾌는 이유를 불문하고 조정을 위해 법과 규율을 지키고 있는데, 그들로 살병풍을 친다니, 실로 이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하지만 구 상서는 총 포두의 안색은 상관치 않고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 엄 공자는 생각이 뛰어나시군요. 자자, 너희 얼른 와서 둘러서 봐라. 엄 공자, 이들이 제대로 준비할 때까지 우리는 우선 안에서 차를 드시죠. 그 후에 밥을 드시면 될 듯합니다.”

엄세번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쥘부채를 펄럭이며 구 상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곁방 안, 금하는 증오로 이가 부서져 나갈 것 같았다. 곁에 있던 양악의 양미간도 깊게 일그러졌다.

바로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비단보가 깔렸다. 상에 올라갈 술과 요리는 만향루에서 가져왔다.

엄세번은 느린 걸음으로 살병풍이 된 포쾌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퍼뜩 무언가 생각난 듯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내 기억으로 말이야. 육선문에 여포쾌가 있던 것 같은데. 왜 여기엔 안 보이나?”

날 기억하고 있어!

곁방 안의 금하는 분노가 치민 얼굴로 창틈에 더욱 눈을 가까이 댔다.

밖에서는 엄세번에게 대답하려는 동우를 총포두가 눈빛으로 막고 있었다.

“여포쾌가 있긴 합니다만, 오늘은 일찍 교외로 사건 처리를 하러 갔습니다. 밤에도 잠복근무해야 해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총포두는 원래 엄세번의 호색을 알고 있었다. 금하는 어쨌든 그가 데리고 있는 부하였으니, 그는 당연히 그녀를 막아줘야 했다.

엄세번이 총포두를 흘끔 보았으나, 총포두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결코 물러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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