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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204)화 (204/224)

204화

다음날, 백록을 호송하는 백 명의 사병은 신하성을 나서 북으로 향했다. 금하, 양악 그리고 양정만도 그를 수행하여 경성으로 돌아갔다.

육역은 성벽 위에 서서 백록의 대열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마지막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복과 잠수는 줄곧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열이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나도 육역이 움직이지 않자, 결국 참지 못한 잠수가 물었다.

“대공자, 그럼 우린 언제 경성으로 돌아갑니까?”

육역이 이때서야 돌아서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 둘은 우선 순우 아가씨를 모셔다 드리거라. 그 후에 너희는 먼저 경성으로 돌아가. 나는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대공자께서 하실 일이 남으셨으니, 잠수에게 순우 아가씨 모셔다 드리라 하고, 저는 남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일이 생기면 대공자께서도 시키시기 편하실 텐데요.”

잠복의 말에 잠수도 서둘러 말했다.

“내가 남을게. 형이 순우 아가씨 모셔다 드려.”

“너희 누구도 남을 필요는 없다.”

육역은 무슨 얘기든 하고 싶어 하는 잠복을 손을 들어 막았다.

“더는 말하지 말거라. 너희는 돌아가 여장을 준비해.”

잠복과 잠수는 차마 더 말하지 못한 채 지시를 받아 돌아섰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육역은 홀로 성벽에 남아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눈빛은 성문 앞의 공터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는 금하와 다시 만난 그 날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란으로 어수선한 세상, 그 짙은 밤빛 속을 날듯이 달려오던 그의 그녀…….

이젠 그도 인정해야 했다. 지금 이후로 모든 것은 마음 깊은 곳에 묻을 수밖에 없다고.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육역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결연히 돌아선 그는 성벽을 내려와 말을 끌고 성안의 감옥으로 향했다.

“이 두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육역은 제패를 보이고, 명단도 꺼내어 그중 두 사람의 이름을 짚었다.

이 명단의 필체는 서위의 것으로 육역은 5일 전 그에게 나문룡이 첩자였을 때 접촉했던 왜구의 명단을 받아냈다. 이 왜구들은 양절의 여러 감옥에 갇혀 일부는 이미 죽었고, 일부는 아직 살아 있었다.

육역은 나문룡이 왜구와 내통한 증거를 손에 쥐고자, 바로 이 사람들부터 먼저 확인을 시작했다.

옥졸이 육역이 말한 왜구 둘을 끌고 나왔다.

둘은 오랫동안 본모습을 숨긴 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고 있었다. 옥에 갇힌 처음에는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그들은 이리 오래 갇혀 있어도 아직 죽이지 않으니, 지금은 죽은 날 잡은 돼지는 끓는 물도 두려워 않는다고, 그들 또한 무엇도 겁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문룡이 너희와 오가던 상세한 과정을 말하거라.”

육역도 그들과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 종이 한 뭉치를 올려놓고 벼루에 물을 넣어 먹을 갈았다.

“대인, 일 년도 더 전의 일인데, 누가 자세히 기억합니까?”

죄인 하나가 축 늘어진 게으른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게다가 말한다고 우리를 풀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너는 나와 조건을 협상하고 싶은가?”

육역이 담담히 물었다.

“어찌 감히 조건 협상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입에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잖습니까? 그렇다면 어쨌든 우리에게도 하다못해 콩고물이라도 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범인은 눈치가 매우 빨라, 육역을 보자마자 그가 신하성 안의 관원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육역이 미미하게 눈썹을 추켜세우고 냉랭하게 웃었다.

“콩고물이라. 그걸 원한다니, 좋다!”

육역은 일어나 한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붓 빠는 그릇을 들었다.

“관직을 주는 건 어떠하냐?”

그는 종이를 범인의 얼굴에 붙이고, 곧바로 그릇의 물을 뿌렸다. 물기를 머금어 연해진 종이는 범인의 얼굴에 붙어 점점 더 그의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

육역은 손가락에 물을 묻혀 이미 젖은 종이 위로 가볍게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작디작은 한 방울의 물이었건만, 범인은 심한 가격이라도 당한 듯 물이 떨어질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손발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육역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눈썹을 세운 채 다른 범인을 돌아봤다.

“너도 해볼 테냐?”

“아니요, 말할게요,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범인이 연이어 말했다.

이때서야 가볍게 종이를 들어 올린 육역이 젖은 종이를 범인의 얼굴에서 떼어냈다.

그는 헉헉 숨을 헐떡거리며 놀람을 진정도 시키지 못한 채 육역을 바라봤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라도 차린 듯 육역이 뭐라 하기 전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도 말할게요. 전부 다 하겠습니다. 대인이 아시고 싶으신 건 제가 뭐든 말할게요.”

“내겐 너희가 원하는 콩고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전부 조옥에서 온 것이지. 정말 더 맛보지 않아도 되겠나?”

육역이 차갑게 말했다.

“됐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범인이 간청했다.

“말한다니까요. 제가 당장 말하겠습니다. 나문룡 그 자식은 아주 형편이 없어서 그 자식 일은 제가 다 기억하고 있어요!”

짧디짧은 수십일 사이, 육역은 양절의 18개 감옥을 돌았다.

그렇게 그는 탐문하고, 조사하고 수집해 나갔다. 나문룡과 왜구 사이에 오고 갔던 수많은 자료를.

* * *

백록이 경성에 들어 진상된 이후, 성상의 용안은 큰 기쁨이 흘러 넘쳤다.

호종헌은 이 성과로 성상에게 큰 아낌을 받았고, 양절 총독이라는 직위는 매우 오랫동안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육역도 호종헌에게 연루될까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금하가 집을 떠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떠날 때는 아직 초봄이었는데, 돌아오니 이미 초여름이었다. 외곽에서 성안에 이르기까지 곳곳에는 석류꽃, 철쭉, 목련화, 금은화 등의 꽃이 오색찬란하게 만발하여 흐드러졌다.

그러나 그 사이를 걷는 금하의 마음은 꽃과 비교되어 한층 생기 없고 풀이 죽었다.

“엄마, 저 돌아왔어요.”

대문을 연 금하가 뜰 가운데서 맷돌질을 하고 있던 원진 씨를 향해 말했다.

돌아 본 원진 씨가 맷돌을 놓고 다가왔다. 금하의 팔을 잡아끌어 우선 아래위 앞뒤로 살펴보고는 물었다.

“다치지 않았니? 사고 치진 않았어? 봉급 삭감되진 않았어?”

금하는 고개를 저었다.

“전부 아니요.”

“머리는 왜 그래?”

“조심하지 않다가 부딪쳤어요. 괜찮아요.”

이제서야 마음을 놓은 원진 씨가 바로 이어 퉁명스러운 어조로 꾸짖었다.

“넌 여기 집이 있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돌아올 줄은 아는 구나! 한 번 나가더니 두 달이 넘게…….”

“공무수행 중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금하는 육선문에서 이제 막 받아 온 월봉을 꺼내 원진 씨의 손에 건넸다. 노기를 달래려는 그녀의 생각은 적중하여, 은자를 받은 원진 씨는 기분이 다소 평온해졌다. 그러나 즉시 다른 일 하나가 떠올랐다.

“맞다, 네가 돌아왔으니, 역가의 혼사를 얼른 서둘러야겠다.”

“엄마, 역가의 혼사는 미루세요. 전 포두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이년 가량은 남의 집에 시집가 아이를 낳아줄 생각이나 여유 같은 건 없어요.”

금하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핑계를 꺼냈다.

“포두로 올라가면, 매월 은자 4량을 받아요.”

“안 돼. 더는 미룰 수 없다.”

은자 얘길 들었으면서도 원진 씨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역가 이런 집안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아. 난 역가 셋째가 널 마음에 깊이 두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

“엄마!”

금하는 다소 무거운 어조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원진 씨는 한순간 어리둥절해 했다.

“왜 그래?”

이건 그녀의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순간 깨달은 금하는 멈칫하다가 다시 원진씨에게 말했다.

“어쨌든……, 제가 포두가 되기 전에는 혼인 같은 건 고민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도 괜히 그 일로 바쁘지 마세요.”

그런 후 금하는 급하게 안으로 훌쩍 들어갔다.

“너 이 녀석……, 혼인은 대사야. 네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할 수가 없어!”

원진 씨는 화가 가득 난 채로 돌아가 맷돌질을 시작했다. 두어 번 갈고 나서 집안을 향해 다시 소리를 높였다.

“부뚜막에 계란탕 쪄 놓았다. 얼른 가서 먹어.”

그리고 금하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동생 주세요. 안 먹어요.”

“너 먹으라고 한 거니, 네가 먹어야지! 얼굴이 완전 반쪽이 됐어.”

원진 씨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이어져 갔다.

“‘포두가 되기 전에는 혼인 같은 건 고민하지 않을 거라고?’ 지금도 이렇게 제멋대로인데, 나중에 포두가 되면, 얼마나 심각할 거야. 그래도 시집은 가야지……. 갈아입고 세탁할 옷은 물에 담가두어. 내가 이 콩 다 갈고 빨아 줄 테니까.”

방 안에 있던 금하는 갈아입은 옷을 한쪽에 두었다. 들고 있던 인연석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다시 품 안에 넣었다.

* * *

양절의 일을 끝낸 육역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경성에 도착하기도 전, 큰일 하나가 들려왔는데 추응룡이 상주서를 올려 엄세번을 탄핵했다는 것으로 이 상소문의 내용은 그야말로 서슬이 퍼랬다.

‘공부시랑 엄세번은 부친의 권력을 믿고, 이익을 독점함에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엄숭은 신하 된 자가 군주의 권력을 훔치고, 엄세번은 자식으로서 다시 아버지의 권력을 훔쳤습니다. 엄 부자의 연고지는 원주로, 그들은 그곳에 광활한 논밭과 남경에 아름다운 집을 마련하였고……. 신은 엄세번을 참해 목을 저잣거리에 매달 것을 청하오니, 그로써 신하들의 흉포함과 불충의 경계로 삼으십시오! 만일 신이 한 말이 조금이라도 틀리다면, 기꺼이 엎드려 죽음이라도 받겠나이다.’

이 상소는 목숨을 전부 건 것이었다. 그예 성상은 진노했고, 성지를 내려 엄세번을 검거하여 수감시켰다.

그러나 육역은 이 일을 듣고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걱정을 더했다.

추응룡이 아무 연유도 없이 지금 돌연 엄세번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릴 이유는 없었으니, 그의 뒤에는 분명 누군가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구이든 칼은 이미 뽑았으나, 엄세번을 즉시 사지로 보낼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온 육역은 잠복으로부터 아버지가 정원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정원으로 갔다. 화초와 나무 사이 먼빛으로 집에서 늘상 입으시는 검은색 외투를 입고 계신 아버지가 어른거려 육역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5월 말이 다 되었다. 아버지가 아직도 외투를 입고 계시다는 것은 정말 건강이 크게 좋지 않으시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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