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00)화 (200/224)

200화

금하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우리 엄마는 자매 두 분이 있으시지만, 제가 얼굴을 다 알아요. 설마 어릴 때 헤어지셨어요?”

“바보. 내가 말하는 건 네 양부모가 아니라, 네 친부모란다. 네 친어머니는 내 친언니이고, 어릴 때 우리와 헤어진 건 너야.”

금하는 한참의 시간을 허비하고서야 심 부인이 한 말이 귀에 들어왔다.

“대장, 진짜예요? 대장도 이 일 알고 계셨어요?”

양정만의 마음 깊이 여러 해나 숨겨왔던 일은 이렇게 기어이 오늘에 이르렀다. 어찌 금하는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우연이라도 심 부인을 만나게 된 것일까.

양정만은 겨우 고개를 끄덕여 모든 것을 인정했다.

“그해, 네 어머니가 너를 내게 부탁했었다.”

금하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절 입양한 건 대장이 아니셨잖아요?”

“양 오라버니, 그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가요. 오라버니는 왜 조옥에 갇히셔야 했어요?”

심 부인의 물음에 양정만은 길게 탄식했다. 그는 이제야 그해의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 *

10년 전, 그때 양정만은 금의위였고, 금의위 경력 심련과 함께 육병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양정만도 혈기가 넘쳤고, 기개가 늠름했으며, 웅대한 포부와 뜻이 있었다. 아울러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항상 분발하고 온갖 노력까지 다 하며 육병의 자리까지는 가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조정에서 한 자리는 차지하고 싶어 했다.

양정만은 심련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심련은 원래 현령이었고, 일을 함에 청렴결백하고 상당한 치적도 쌓았다. 그러나 한 번도 아첨을 해 본 적이 없고 천성마저 강직하니, 매번 술을 마시고는 윗사람과 그 강직함 때문에 다툼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금의위로 강등되었던 것이다.

육병은 심련의 대쪽 같은 성격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해 그를 상당히 총애했다. 심련 또한 비록 좌천은 되었지만, 성정은 변하지 않아 그는 매번 나라의 큰일이 생길 때마다 울분을 토로하며 상심하였다.

하지만 양정만의 경우는 심련이 지나치게 고지식하다고 생각하였을 뿐, 두 사람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후에 가서 일이 생겼다.

양정만은 하언을 좋아하지 않았고, 하장청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가에 변고가 발생하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가 마음을 주었던 그녀가 지금은 하 부인이기 때문이었다.

엄숭의 조작 하에 하언을 무너뜨리려는 흉맹한 기세는 거듭 징후가 보였다. 양정만은 남경 출장을 구실 삼아 그곳으로 내려가 하장청 부부를 은밀히 만났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양정만은 그들에게 충고하고, 그때 처음으로 금하를 만났다. 그리고 당시 하장청은 말했었다.

‘집안이 망하면 누구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감수한다 해도, 딸아이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양정만은 하장청의 유일한 미련을 차마 외면치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계획 하나를 세웠다.

원소절 밤에 그들이 아이를 데리고 등불구경을 간 후, 누군가에게 아이를 유괴하라 한다. 잠시 그 사람에게 맡아 두라 하고는 밖에는 아이는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만약 훗날 변고가 생기면, 양정만이 아이를 몰래 하 부인의 동생에게 맡기기로 했고, 만약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아이를 되찾았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이 계획은 원래 매우 주도면밀하게 세워졌다. 하지만 오히려 경성에서 일이 발생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엄숭이 하언에게 몰래 그를 칠 기밀을 알린 자가 있다는 풍설을 들은 것으로, 그때 또 누군가 양정만이 하장청을 만났다고 그에게 말을 전했다.

당장 엄숭은 하언에게 몰래 기밀을 누설한 자가 양정만이라고 의심하였다. 즉시 그를 조옥에 잡아넣었고, 엄한 형벌로 고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정만은 엄숭이 증거가 없다는 걸 알기에 끝까지 이를 악물고 부인했다.

그런데 이때 심련이 나섰다. 육병에게 자신이 하언에게 소식을 알렸다고 솔직히 말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엄숭의 열 가지 죄목에 대한 탄핵까지 들고 나왔다.

그는 육병의 만류를 듣지 않았고, 엄당이 국사를 제멋대로 한다는 사실을 일일이 열거하며 의연히 상소를 올렸다.

‘엄숭은 반대파를 제거하고, 청탁을 받은 사람들을 요지에 배치하고, 군량을 횡령하여 전쟁 준비는 해이해지고, 동남은 왜적이 창궐케 하고, 북방의 알탄이 수도까지 침범케 하였다. 이에 민심의 기강이 흐트러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공명정대하게 법 집행을 요구한다.’

심련은 이 행동으로 곤장 수십 대를 맞고, 일반 백성으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양정만은 부러진 다리를 끌고 조옥을 나왔으며, 당시 총애한 부하를 지키지 못한 육병은 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의 관직을 복직시키려 하였으나, 양정만에게 완곡히 거절당했다.

이때 하언은 이미 구경의 탄핵으로 참수당하여 하가는 재산을 몰수당했고, 심가도 재산을 몰수당했다. 이전 아이를 유괴한 사람은 이에 연루될까 두려운 마음에 데리고 있던 아이를 진짜 인신매매범에게 팔아넘겼다. 은밀히 찾게 된 양정만은 마지막에서야 이 아이가 원 씨 부부에게 입양된 것을 알게 된다.

대로 위에서 작디작은 금하를 보았던 그날, 양정만은 심장에 얹혔던 큰 돌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었고, 눈에는 물기가 축축이 서렸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 그는 원가가 사는 거리로 이사했다. 줄곧 그녀를 지켜보았고, 무공을 가르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 * *

이 구구절절 길고 긴 얘기를 다 들었건만, 금하는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사람 집에 일어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한참이나 멍하니 있던 그녀가 주저하며 물었다.

“대장 말씀하신 그……, 그 하가의 아이가 저예요?”

양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보신 건 아니고요?”

금하는 그다지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며 여전히 믿지 않았다.

“제 조부가 전 재상이시라고요? 보세요. 제 어디가 재상가 출신 사람 같아요?”

“이 녀석아!”

심 부인이 그녀의 손을 잡고 이마에 있는 작은 흉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니?”

금하도 슬쩍 쓰다듬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요. 저는 늘 누군가와 싸웠는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생긴 흉터는 많아요.”

“언니가 넌 어릴 때부터 개구쟁이였다고 말했어. 이건 화분 가장자리에 부딪혀서 난 상처야.”

심 부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게다가 네 얼굴은, 특히 웃는 얼굴이 언니와 아주 똑 닮았어.”

양정만이 금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해 나는 하가에서 널 보았으니, 당연히 널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정말 저군요.”

금하에게 이 일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두렵고 놀랄 일이 아닌가.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 다시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고서야 시선을 들어 양악을 바라봤다.

“대양, 너도 알고 있었어?”

양악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나도 지금 알았어.”

“그렇구나.”

갑자기 더해진 하언의 손녀라는 신분. 그녀는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은 자신이 어찌 처신해야 할지도 몰랐다. 눈썹을 찡그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가 양정만에게 물었다.

“엄숭이 하언을 죽였고, 그분은 제 조부시죠. 그러니까 엄숭은 제 원수가 된 셈이죠?”

양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도 그런 원수가 있었군요.”

금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라니. 그녀에겐 거의 남지 않은 기억에 친부모에 대한 기억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이 피맺힌 원한이란, 마치 남의 집 사정처럼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이었다.

“하언의 사건은 하언 일가뿐 아니라, 네 외조부 일가도 연루되었단다.”

심 부인도 얘기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 임가는 영천부에서 대대로 의원을 하며 매우 명성을 얻고 있었단다. 마음 아프게도 하룻밤 새 재산은 모조리 몰수당하고, 죽고, 흩어지고, 하……, 네 외조부가 살아 계셨다면, 분명 널 매우 좋아하셨겠지.”

“그래요?”

금하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외조부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요? 어떻게 생기셨어요? 아름다우셨어요?”

금하는 얼굴도 보지 못한 이 가족에 대해 확실히 궁금한 것이 많아 심 부인에게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모친, 외조부, 외조모부터 집안의 모습이며, 그분들이 한가할 때 읽는 책, 함께 즐기던 놀이에 이르기까지, 심 부인은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 전부를 참을성 있게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옆에서 듣던 양정만은 예전의 일들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한없이 탄식하였다.

심 부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얘기를 들을수록 금하의 머릿속에는 가족들의 모습이 천천히 제 모습을 찾고 있었고, 그들이 찌푸렸다가 웃었다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서서히 생동감을 찾아갔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네 외조부께서 의관에 오는 이들 모두 무료로 진료하고 약을 주라 하셨지. 만약 부근 마을에 지독한 일을 겪어 다친 이가 있으면, 그분은 약을 가지고 달려 가셨단다.”

금하는 넋을 잃고 듣다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외조부께서 이리도 본인의 재물로 의로운 일을 하시고 진정한 호한이실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금하와 심 부인은 이날 밤 함께 잠이 들었다. 금하는 심 부인이 해주는 집안의 여러 가지 일을 한밤중까지 들었고, 견딜 수 없이 피곤해져서야 잠들 수 있었다.

* * *

다음날 일찍 일어난 금하는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그들은 내일 백록을 따라 귀성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장도 오셨으니, 혹 귀성을 조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던 금하는 급히 육역을 찾아 달려갔다.

방문을 한참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문을 여는 이도 없었다. 그녀는 문을 밀어보려다가 처음부터 방문이 잠기지 않았던 것을 알아차렸다.

육역은 처음부터 방 안에 없었다. 이불은 단정히 개어 쌓여 있고, 그녀가 손으로 짚어 보니 침상의 깔개도 차가웠다. 육역이 일찍 일어나 나간 것이 아니라 분명 그 밤 돌아오지 않았으리라.

어디 가신 거야?

의아해 하던 금하의 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 돌려 바라보니 육역이 바로 입구에 서 있었다. 피로에 지친 표정을 감출 수도 없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인…….”

금하는 다가가 그의 표정을 세심히 살폈다.

“왜 그러세요? 어젯밤 어디 가셨어요?”

육역은 금하가 이미 모든 진상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안색은 평소와 같고, 이렇게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아직 내막을 알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육역은 그녀를 보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동안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육역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은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금하는 조금 울컥해 물었다.

“또 저 무시하려고요?”

육역은 고개를 저으며 어렵게 입을 열어 물었다.

“어젯밤, 심 부인과 계속 무슨 얘기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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