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문이 닫힌 후 잠시 뒤, 조용히 창문이 열렸다. 육역은 그곳으로 몸을 비껴 들어왔다.
금하가 내내 돌아오지 않아 그의 마음은 초조했다. 그녀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겨우 기다렸건만, 이렇게 크게 취해 돌아오다니…….
육역은 휘장을 젖히고, 희미한 달빛에 비친 금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음은 온갖 것이 복잡하게 뒤섞여 그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자신이 어찌해야 맞는 것일까?
어쩌면 그가 무엇을 하든 그녀에게는 전부 아픔이 되는 걸까?
* * *
사람들이 경계를 강화한 지 이틀이 지났다. 시종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봐선 동삼이 이미 바다로 돌아갔을 거라고, 아마 복수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자 다소 긴장이 풀렸다.
금하는 평소 성격이 좋은 편이긴 해도, 매우 오기가 있어 이 양일 육역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마주쳐도 시선조차 들지 않은 채 꼿꼿하게 지나치고,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육역은 그녀가 더는 술에 취해 돌아오지 않아 오히려 조금은 안심을 했다.
이날, 상관희가 금하에게 본인 대신 옷가게에 가서 옷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녀는 가진 은자 전부를 건네며 남자의 옷을 원한다고 말했다.
“남자의 옷이요?”
금하가 물었다.
“사가 오빠의 체격 정도로 사요?”
“아니요. 사서 아예 줄 거예요.”
상관희는 조용히 웃었다.
“아예는 오가는 동안 겨우 옷 두 벌로 옷을 갈아입더라고요. 게다가 몸에 잘 맞지도 않고요.”
아예가 입은 것은 잠수가 일전 마부로 분장했을 때의 옷이었다. 그 자신이 지금껏 얘기한 적이 없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로 바빴다. 그를 치료하는 것 외에는 누구도 그에게 새로운 옷을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금하는 아예의 체격을 떠올려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는 본인의 기호가 있어요? 어떤 색을 즐겨 입어요?”
“그건…….”
상관희는 잠시 생각했다.
“예전 방에 있을 때 그는 늘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어요.”
“알았어요.”
은자를 들고 별원을 나온 금하는 두 개의 길목을 지나서야 재봉점포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녀가 점포로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에게 세게 부딪쳐왔다. 동시에 허리춤에 묶어 둔 돈주머니의 끈이 예리한 칼에 잘렸고, 부딪친 놈은 그걸 들고 날쌔게 뛰었다.
“이봐!”
포쾌가 되어선 오히려 도둑에게 돈주머니를 도둑맞다니, 이건 실로 커다란 치욕이 아닌가. 극도로 화가 난 금하는 재빨리 움직여 그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 좀도둑의 경공이 뜻밖에도 매우 좋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신하성의 도로는 그녀에게 매우 익숙해진 상황인지라, 금하는 계속 쫓아갔고, 상대도 계속 도망갔다. 이리저리 꺾어 가던 도둑은 북쪽 성벽 아래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야, 얌전히 좀 있어. 나 따라 관에 가면, 도련님이 너 곤장 한 대로 봐줄게!”
금하가 그에게 고함을 질렀으나, 좀도둑은 그녀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성벽 위를 향해 소리쳤다.
“당주, 손님 왔어요!”
당주?!
동삼이 성벽을 올라가는 계단에 서 있었다. 금하는 자신이 그의 꾀에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뒤로 두 보 물러난 그녀는 재빠른 시선으로 주위를 훑어 도망갈 기회를 엿보려 했다.
주변에는 좀도둑과 동삼 외에 동서 양쪽에 각 한 명씩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쪽에 서 있는 이는 퇴로를 막고 있다. 상황을 보아선 그들 전부 동삼의 패거리였다.
“이년은 비록 아녀자지만, 계속 따라다니며 내 일을 망쳤어! 오늘 먼저 이년을 죽여 제물로 삼겠어!”
동삼은 쓸데없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금하는 이번 외출에 무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해도 다행히 신발 속에는 늘 비수가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음에 그녀는 비수를 뽑았고, 우선 퇴로를 막고 있는 놈에게 던졌다.
그자는 손에 동양도를 들고 있었다. 그는 비수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칼도 뽑지 않았다. 단지 칼집으로 막아 ‘당’ 소리가 들렸을 뿐이었다. 비수는 바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
그 사람이 이번엔 오히려 금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동시에 동서 양쪽에 있던 자들도 금하를 향해 왔다.
지금 그녀에게는 퇴로가 없었다. 손에는 작은 무기조차 없었기에, 그저 막무가내로 달려들어야 할 판이었다.
“동삼, 네 아내와 아이는 데리고 나왔냐?”
금하는 머리를 바짝 들고 동삼에게 소리치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금하의 생각대로 동삼의 눈빛이 복잡해 졌다. 금하의 이 말이 정말 그의 심장 쪽을 찌른 것이다.
남자 감옥과 여자 감옥은 함께 있지 않아, 이번 탈옥에 그는 아내와 아이를 구할 수 없었다.
젠장.
그가 계단 아래로 두 보 내려가자, 그 순간 비틀거리는 그의 걸음 모양이 금하의 눈에 딱 들어왔다.
동삼 저 자식 다쳤구나.
아마도 옥에서 다쳤으리라. 그가 부상을 입은 이상, 그를 돌파구로 삼는 것이 제일 적합했다.
금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 엮어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이틀 전에 마침 네 아내를 만났어. 그녀와 뭔가 얘기를 했는데, 너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올라가 얘기해 줄게.”
동삼은 특별히 반대하는 기색이 없었다. 금하는 성벽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슬쩍 떠보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나머지 3명의 왜구가 그녀의 퇴로를 단단히 막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네 부인이 너를 매우 근심하고 있어. 아이는 건강이 아주 좋고…….”
동삼과의 거리는 이미 1장도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든 금하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데 너 혼자 가버리고 그들 둘은 거기 내버려 두다니, 너무 성실하지 못하다, 야.”
이 말에 동삼의 표정이 다소 우울해졌다.
“정말 네 부인은 너한테 아무 말 하지 않았구나.”
금하는 계속 말을 꾸미며 눈빛으로는 동삼의 다친 다리를 은밀히 관찰했다. 발은 옆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고, 다리 근육은 팽팽해져 힘을 쓸 준비를 했다.
“너 혼자 탈옥해서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도, 네 부인은 널 한마디도 원망하지 않더라…….”
마지막 한 마디가 끝나기 전, 금하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공중에서의 연이은 발길질은 전부 동삼의 다친 다리에 맞았다.
동삼은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옆으로 몸을 피했다. 몸을 벽에 기댄 채 손에는 몸을 보호할 긴 비수를 뽑아 들었다.
이때 나머지 왜구 셋도 상황을 보고 빠르게 내달렸다.
일단 퇴로는 막혔다. 동삼도 감당할 수 없던 금하는 성벽 위를 향해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화가 극에 달해 길길이 뛰던 동삼은 나머지 왜구 셋에게 뒤쫓으라 명령을 내렸다.
성벽 위를 질주하는 금하의 뒤를 왜구 셋이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그들 중 금하를 데려온 좀도둑의 경공이 가장 빨랐다.
그녀는 몇 번이고 돌아보며 속으로는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젠장, 여기서 죽는 구나!
앞쪽으로 더는 갈 곳도 없는데, 이러다가는 여기서 잡히게 되겠지.
바닥에는 왜구를 막고 성을 지킬 때 쓰던 쇠사슬이 놓여있었다. 왜구의 철군 후, 임시로 놓아둔 것일 터.
주의해 보지 않던 금하가 사슬에 걸려 넘어진 순간, 그녀는 가장 앞으로 달려오던 좀도둑에게 그대로 눌렸다.
“당주, 이년 어떻게 처리할까요? 토막 낼까요?”
그 놈이 고개를 돌려 동삼에게 물었다. 절뚝거리며 다가온 동삼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금하를 내려다보았다.
“줄로 목을 졸라 성벽에 매달아. 성안 사람들 전부 우리와 대적한 최후를 보게 해!”
금하는 이때도 매우 냉정하게 동삼을 나무랐다.
“동삼, 너 잘 좀 생각해 봐! 네 처와 아이가 아직 감옥에 있어. 네가 오늘 나를 성벽에 매달면, 내일은 아마 그들 둘이 성벽에 매달리겠지.”
동삼이 생각해도 일리가 있었다.
“저년 죽여서 직접 성벽 밖으로 던져 버려!”
“이봐! 너 다시 생각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금하는 마음이 급해져 연달아 제의했다.
“내가 있으면, 넌 아마 아내와 아이를 나와 바꿀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말을 동삼은 그다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말은 상당히 유혹적이기도 했다. 한순간 생각을 정할 수 없어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로 이 순간, 돌연 성벽 옆쪽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나타난 이는 동삼에게 나는 듯 발차기를 날렸고, 그의 등 복판을 때렸다. 맞고 나가떨어진 동삼은 다른 왜구에게 부딪쳐 함께 팽개쳐졌다.
이 사람은 바로 육역이었다.
그는 금하의 외출을 미리 알고 있었다. 마음을 놓을 수 없던 육역은 금하가 눈치챌까 멀리서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돌연 도둑을 쫓게 되자, 그 또한 급하게 뒤를 쫓았다.
하지만 신하성의 골목은 매우 많고 교차로도 복잡하여,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육역은 금하의 종적을 놓쳤다.
어쩔 수 없이 사방을 찾던 그가 마지막으로 용마루로 뛰어올랐고, 금하가 성벽 위를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뒤로 누군가 쫓고 있어서 육역 또한 즉시 이곳으로 달렸다.
금하는 육역을 보고 있었다. 비록 왜구에게 제압당했지만, 그를 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이미 털끝만큼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유 같은 건 그녀도 몰랐다.
“그 여자 놔주면, 내가 너희에게 삼 초의 기회를 주지.”
왜구를 향한 육역의 얼굴은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뭐해! 빨리 공격해!”
금하에게 차여 움직이지도 못하건만 동삼은 바닥에 엎드려 남은 분노를 길길이 발산했다. 하지만 왜구 셋은 일단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들은 비록 육역을 모르나, 그가 고수에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금하를 제압하고 있는 좀도둑을 제외한 동양인 왜구 둘이 긴 칼을 빼 들고 나란히 육역에게 돌진했다.
금하는 육역의 어깨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과 달리 그는 몸을 비틀어 민첩하게 상대를 피했다. 날아온 칼을 막고, 연이어 육역은 왜구의 겨드랑이에 일장을 날렸다.
이 충격으로 팔 전체가 마비된 왜구는 그에게 동양도를 뺏겼다. 하얀 칼날이 지나간 곳에는 선혈이 솟구치고, 왜구는 이미 목숨을 잃었다.
지켜보던 좀도둑은 자신이 육역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도망갈 기회만 보고 있었다. 그는 잡고 있던 금하를 세차게 잡아끌었다.
“야, 이 자식아, 안 놔!”
“닥쳐!”
좀도둑은 육역이 다른 한 명의 왜구와 싸우는 틈을 타 돌연 성벽의 무너진 곳으로 그녀를 밀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녀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온몸이 허공에 떴다. 가까스로 성벽을 붙든 금하는 손가락으로 벽돌 틈을 파고들어 버티고 있었다.
대인……!
육역과 시선이 마주쳤다. 금하는 이를 악물고 손끝에 힘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