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97)화 (197/224)

197화

양악이 급하게 막았다.

“두 근 먼저하고, 모자라면 더 할게요.”

“좋습니다. 손님, 그럼 안주는 무얼로 할까요?”

점원이 친절하게 말하자, 금하는 벽에 붙은 요리판을 훑어보고 결단력 있게 소리쳤다.

“요리도 싼 거로! 하지만 고기도, 채소도 있어야 하지. 돼요?”

“되죠.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비싸지 않되 맛은 좋다는 걸 장담합니다.”

점원이 웃어 보였다.

“입 심심치 않게 먼저 땅콩 접시 올려 드릴게요. 요리는 잠시 후에 내오겠습니다.”

매우 만족한 금하가 점원을 격찬했다.

“사람의 좋고 싫음을 빈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신분의 높고 낮음도 보지 않으니, 점원 오빠는 앞으로 분명 큰일을 이루고,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말씀 기꺼이 받겠습니다!”

잠시 후 땅콩과 씨앗 종류가 나왔다. 금하는 단지를 열어 술을 따랐는데, 곡주를 마시는 것이라 잔 대신 사발을 썼다. 순우민은 사발 가득한 눈앞의 술을 보고는 조금 얼떨떨해졌다.

“자, 오늘은 기왕 내가 내는 것이니, 내가 먼저 깨끗이 비우겠어.”

사발을 든 금하가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하여, 그릇을 내렸을 때는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양악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그녀가 계속 술 따르는 것을 제지했다. 그가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

“너 왜 그래? 술도 이렇게 급하게 마신 적 없잖아. 음식도 아직 안 나왔어.”

사소도 말했다.

“그러게. 급히 마신 술은 빨리 취한다.”

금하는 양악의 손을 밀어내고 계속 술을 따랐다.

“오라버니,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이 도련님은 태어났을 때부터 취할 만큼 마셔본 적이 없어!”

사소도 그녀와 실랑이하지 않고 물었을 뿐이었다.

“말해 봐. 너 오늘 한턱내는 거, 대체 무슨 일이야? 좋은 일이 있으면 우리가 함께 기뻐해 주게 말해도 되잖아. 참, 육 대인은 왜 안 불렀냐?”

금하의 몸이 순간 굳어 술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 계속 술을 따랐다.

“난 한턱내고 싶은 사람한테만 내.”

이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속으로는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분명 둘이 다툰 거구나.

양악이 세 사람 중 금하를 가장 잘 알았다. 가족과 같은 그가 바로 대놓고 물었다.

“너 육 대인과 어떻게 된 건데?”

금하는 순간 짜증이 일었다.

“대인 얘기는 안 하면 안 돼?”

그녀가 이럴수록 사소는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왜 그러냐. 며칠 전에는 네가 부끄러움도 없이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둘이 껴안은 것도 봤다. 지금은 왜 또 이래?”

“헛소리 마요.”

금하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양악은 그걸 보고 사소가 함부로 말하는 것을 급히 막았다.

하지만 사소는 하필 눈치가 정말 없는 사람이었으니, 그는 대양에게 계속 그 얘기를 들려줬다.

“정말이야. 넌 못 봤지. 바로 성문 밖이었는데, 날도 아직 안 어두웠어. 아마 이 계집애는 남들이 안 볼 거로 생각했을 거야…….”

“사 오라버니!”

순우민조차도 참지 못해 그의 말을 막고, 잇따라 고개를 저으며 금하를 보라고 눈짓했다. 사소는 이때서야 뒤늦게 깨달아 주춤주춤 시선을 돌렸다.

금하는 제 자리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볼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린 눈물이 마침 그녀가 들고 있던 술 사발 안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사소는 아가씨가 우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으니, 이 상황에 어찌해야 좋을 지 알 수 없어 마음만 초조해졌다.

“내가 말 잘못했어. 실수였어. 야, 울지 마라! 이 눈물이 얼마나 쓴지 아냐, 술에 이렇게 뚝뚝 떨어지니까, 술도 전부 써졌잖아.”

금하는 남 앞에서 거의 울지 않는다. 그 사실을 양악은 알고 있었고, 지금 그녀의 마음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금하야, 솔직히 얘기해. 육 대인이 너 힘들게 했어?”

“아니야!”

금하는 소매로 대충대충 눈물을 닦았다.

“대인은 날 힘들게 한 적 없어. 총포두에게 나를 포두로 승진시키라는 편지를 써주신다고도 하셨는데, 내가 거절했어.”

“포두로 오르는 건 좋은 일이잖아. 넌 왜 거절했어?”

양악은 의아해 했으나, 사소는 하찮게 보았다.

“내 생각엔 공문 안에서 포두 노릇 하는 것과 포쾌 노릇 하는 건 별 차이가 없어. 똑같이 답답해. 안 돼도 그만이야.”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포두가 될 수 있는데, 왜 그의 위세를 빌려야 해.”

금하는 매서운 기세로 술을 벌컥 마시고 입술을 훔쳤다.

“도련님은 생각 없어!”

“말 잘 했다! 기개가 있어!”

사소도 잔을 들었다. 금하와 시원스레 잔을 부딪치고 꿀꺽꿀꺽 단번에 마셔버렸다.

“패기가 또 무슨 소용이야.”

양악은 금하가 승부욕을 부린다고 생각할 뿐이라 계속 고개를 저었다.

“넌 척 부인 하는 거 배우지 마. 아가씨가 승부욕이 너무 강하다고 좋은 건 아니다. 너 이 일 때문에 육 대인에게 화낸 거야?”

금하는 고개를 저었다. 더는 솔직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 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대인과는 지나치게 엮이고 싶지 않아.”

양악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넌 예전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불현듯 통렬히 깨달았다. 됐냐.”

금하는 조금 화가 난 얼굴로 양악을 바라봤다.

“오늘 도련님이 한턱내는데, 넌 통쾌하게 술 좀 마실 수 없어? 잔소리하지 마.”

양악은 더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마침 점원이 요리를 내와서 바로 식사가 시작됐다.

이 자리는 등불을 켤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소와 금하는 여러 차례 잔을 부딪쳤고, 마시기에 네 근 술은 부족하여 나중에 다시 또 네 근을 시켰다. 옆에서 지켜보던 순우민은 어리둥절해졌다.

“원 낭자 이렇게 마시면, 괜찮을까요?”

그녀가 작은 소리로 양악에게 물었다. 하지만 양악도 금하에게는 무슨 수를 쓸 수도 없었다.

“쟤 심경이 지금 좋지 않아요. 맡겨둬야죠. 어쨌든 제가 여기 있으니, 이따가 업고 돌아가면 돼요.”

힘들여 술 몇 단지를 비운 금하는 다시 사람을 부르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악이 막았다.

“금하야, 오늘은 여기까지 해. 우리 내일 다시 마셔.”

“좋아! 내일 다시 마셔. 네가 말한 거니, 잊지 마!”

금하는 사소의 어깨를 힘껏 두드렸다.

“들었죠, 내일 다시 마셔요!”

사소도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좋다. 내일은 내가 낼게!”

계산을 하고 나온 금하는 몸과 함께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양악이 비틀거리는 그녀를 급하게 잡았다.

“술도 약한 게.”

평소 독한 술에 습관이 되어 있는 사소는 미주를 마시니 오히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양악은 금하를 업었다. 일행이 함께 돌아가다가 반을 채 못 갔는데, 잠수가 그들을 보고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초조하고 급해 보였다.

“너희 왜 여기 있냐. 내가 한참 찾았다.”

“왜요. 우린 술도 마시면 안 됩니까?”

사소가 눈썹을 세우고 말했다.

잠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양악 등에 업힌 금하를 보았다.

“원 낭자는 왜 이럽니까?”

“취했어. 자긴 태어날 때부터 취하도록 마셔본 적이 없다고 말이나 말지. 내일 내가 얘 어떻게 비웃을지나 보라고.”

그러나 잠수는 금하가 아마 술의 힘으로 근심을 달래려 했을 거라며 내심으로 짐작했다. 저도 모르게 그녀를 계속 흘끔거렸다.

“우리 급하게 찾았잖아요. 무슨 일 있어요?”

양악이 물었다.

“맞다!”

잠수가 재빨리 원래 찾으려 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척 부인이 사람을 보내 동삼이 탈옥한 걸 알려 왔어. 왜구는 보복심이 강하다고, 우리들도 조심하라 하셨어. 골칫거리가 우릴 찾아올지 몰라.”

“잘 가둬둔 거 아닙니까? 어떻게 탈옥을 하게 합니까?”

양악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동삼이 관아의 대옥에 갇혀 있었는데, 한패가 옥졸을 살해하고 그를 구해갔어.”

사소는 벌컥 화를 냈다.

“내가 그놈을 죽여야 한다고, 후환을 남기게 될 거라고 진즉 말했었는데.”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바로 사형이요!”

잠수가 말했다.

“당초 어부로 변장해서 그를 오래 속였잖아요. 그는 분명 사형한테 마음에 원한을 품고 있을 겁니다.”

사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본좌는 그 자식 안 두려워. 오면 딱 좋네. 그 자식 배에서 그리 오래 답답하게 숨죽여 있었는데, 그놈한테 본좌의 참 능력을 보여주게 됐어.”

“아무리 훌륭한 명검과 창으로 덤빈다 해도 사형은 당연히 두려워하지 않겠죠. 하지만 그들은 암기를 써서 사람을 상하게 하고, 막으려야 막을 수 없게 하니 두려운 거요.”

잠수가 말했다.

“대공자께서 이미 나와 형한테 야간 경비를 서라 하셨어. 너희도 밤에는 경계 잘하고, 창과 문은 잘 잠그고, 무기도 몸에서 떼어놓지 마.”

다들 그러겠다고 하고 함께 별원으로 돌아갔다.

금하는 양악의 등에서 이미 잠이 들었다. 심 부인은 그녀의 몸에서 온통 술 냄새가 나고 있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금하를 방으로 부축해 들여오고, 순우민은 금하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상에 눕혔다.

“다른 사람한테는 화를 내면서, 본인은 술 마시니 이런 꼴이야. 정말 못났다니까!”

심 부인은 금하가 깊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쓸었다.

순우민이 물었다.

“원 낭자는 육 오라버니와 다퉜어요?”

“함께 나갔었잖아요. 얘가 거기서도 얘기 안 했어요?”

심 부인의 말에 순우민이 고개를 저었다.

“안 했어요.”

심 부인은 금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는 그리 상처를 받아도 그의 흉은 일절 보지 않으려 하네.”

그녀는 금하의 이불을 다시 잘 덮어 주고, 뒷정리를 한 후 순우민과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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