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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95)화 (195/224)

195화

백록을 안전하게 경성으로 보내기 위해, 호종헌은 백 명에 가까운 관병으로 호송하게 하고, 백록의 건강까지 고려하게 했다. 또한 가는 도중 생길 수도 있는 불의의 사고를 막고자, 출발은 삼 일 후로 정하고, 남도행 이외의 불필요한 이들은 백록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남은 날이 많지 않았다. 백록과 최대한 친해질 수 있도록 남도행은 내내 백록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도독, 소관의 아래로 육선문에서 차출되었던 포쾌 두 명이 더 있습니다. 저는 마침 그들을 경성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백록과 함께 동행할 수 있을지요?”

육역은 호종헌에게 이리 청하기 전, 금하를 먼저 경성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노상에서 왜구와 만날까 하는 염려에 생각만 하던 차였다. 이번 백록 건은 백 명 가까운 관병이 호송하게 되니, 그녀에게 함께 가라 하는 것이야말로 적절한 조치였다.

그리고 호종헌은 두말 않고 허락했다.

“육선문 포쾌의 동행까지 있다는 건 저 백록에게는 훨씬 좋은 일이지. 매우 좋네.”

백록을 얻었고, 이 상서로운 동물을 진상하게 되고 거기다 서위의 <진백록표> 문장까지 더했다. 아마 성상의 용안은 기쁨으로 넘치리라.

호종헌의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서위, 척계광, 육역까지 그야말로 그의 마음에 꼭 든 이들이었다. 그는 즉시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 하여 그들과 한바탕 마음껏 술을 마시고자 했다.

이 술자리는 등을 켤 무렵부터 시작되어 달이 중천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육역은 원래 마음에 시름이 있었으나, 권주가 오면 거절하지는 않았다. 한 잔, 한 잔 주는 대로 전부 마셨고, 자리가 파한 후 돌아가는 길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리하여 척 장군이 가마를 보내고 사람을 딸려 육역을 돌려보냈다.

금하는 별원의 뜰에서 그를 오래도록 기다리며 줄곧 바깥 거리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귀를 세웠다. 그러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근위병이 가마에서 나온 육역을 부축하고 있었고, 주위는 짙은 술 냄새가 가득 풍겼다.

“육 대인, 술 드셨어요?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는데, 어떻게 술을 드세요.”

초조하게 말한 그녀가 나서서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

“필요 없다.”

육역은 그녀에게 더없이 냉랭했다.

그때 잠복과 잠수가 날듯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그들도 대공자가 이렇게 곤드레만드레 취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대인 술 취하셨죠? 그분 상처 덧나지 않도록 조심해요!”

금하의 말이 들리지 않을 리 없다.

정말로 취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을 텐데. 육역은 드러내지 못한 쓴웃음을 지었다.

염려가 가득 담긴 금하의 눈빛이 그에게 닿았을 때, 심장의 뒤틀리는 통증이 한바탕 그를 숨도 못 쉴 만큼 휩쓸었다.

대체 어찌해야 네가 나를 바닥까지 혐오하게 할 수 있을까.

“대공자, 대공자…….”

잠복이 그를 부축하여 들여가는데, 육역이 문득 멈췄다.

“너.”

그가 손을 들어 금하를 가리켰다.

“그리고 대양은 삼 일 후 호 도독의 호위대를 따라 경성으로 돌아간다.”

금하는 일순 멍해졌다.

“경성으로 돌아가요?”

“맞다.”

“왜 가야 하죠?”

“여기선 너희가 이미 쓸모가 없다. 더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

육역이 말했다.

“쓸모가 없어요?”

금하의 화가 마침내 폭발했다.

“솔직히 말하세요. 내가 쓸모없는 건가요, 아니면 이젠 내가 보기 싫은 건가요? 도대체 왜 가라고 하는 거예요?”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육역이 입을 열었다.

“차이가 있나?”

앞뜰의 인기척을 듣고 나왔던 개숙이 미간을 찡그린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매도 가늘어졌다.

“차이…….”

금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소매 안에서 맹렬한 힘으로 말아 쥔 손은 손가락 마디마다 흰빛이 드러났다.

그때, 갑작스럽게 금하가 앞으로 뛰어가 그의 복부에 일장을 날렸다. 둔중한 아픔이 밀려와 육역은 즉시 허리를 굽혔다.

“대공자…….”

“대공자!”

잠복과 잠수는 모두 육역에게 정이 두터운 이들이건만, 결코 누구도 금하를 나무라지 않았다.

금하는 속에서 울컥울컥 화가 치밀었다. 원래는 한 대 더 때려주고 싶었건만, 육역이 매우 아파하는 것을 보고는 그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가라면 가는 거지! 이 도련님이 무슨 내 주제를 잘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닌데! 당신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한 대 맞고, 그녀의 울분에 찬 말을 듣고.

육역의 입가에 가는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에게 보일 수 없어 그는 계속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다.

속사정을 알 수 없는 잠복은 육역이 매우 아플 거라는 생각에 재빨리 육역을 업고서 방으로 돌아갔다. 잠수도 급히 따라갔는데, 씩씩거리며 잠시 망설이던 금하 역시 결국은 발을 동동 구르다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육역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어서, 그녀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잠복과 잠수가 나왔다.

“대인은 괜찮아요?”

금하가 물었다.

“괜찮아.”

잠수가 그녀를 흘끔 보았다.

“대공자 하신 말씀은 마음에 두지 마라. 술 취하셨다.”

금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에도 술 취하면 이러셨어요? 술버릇이 너무 형편없어.”

잠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지금껏 저분이 취한 걸 본 적이 없어. 술 취하면, 알아서 누우러 가시는 분이었어. 여지껏 오늘처럼 이런 적은 없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금하는 안쪽을 향해 입술을 삐죽였다.

“지금은 괜찮아요?”

“잠드셨어.”

잠복이 말했다.

“너 걱정되면, 들어가서 봐. 하지만 다시 때리지는 마.”

잠복은 말을 끝낸 후 잠수를 끌고 자리를 떴다.

잠시 주저하던 금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침상으로 다가갔다. 육역의 호흡이 평온해진 것을 보니, 그는 역시 잠이 들었다.

그의 이마를 만져보던 금하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그의 미간에 닿았다.

“대인…….”

금하의 손끝이 저도 모르는 사이 그의 눈썹을 세심히 덧그렸다.

“방금 말한 거 모두 진심이에요? 정말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해요?”

금하의 희미한 목소리는 마치 혼잣말을 하는 듯했다.

당연히 육역에게서 답은 얻을 수 없었고, 그녀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조용히 한숨을 쉰 금하는 그의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 침상의 휘장도 내리고, 등을 끄고는 돌아서 방을 나섰다.

휘장 안, 육역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둠 속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듯했다.

* * *

심 부인의 방 안, 개숙은 자신이 보고 온 일을 한바탕 털어놓는 중이다. 그는 연신 쯧쯧 혀를 찼다.

“내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착한 줄 알았던 손자 놈이 안면 바꾸는 게 세상이 바뀌는 것 같더라니까. 어제는 내 조카딸을 보물로 삼더니, 오늘은 걔를 잡초로 봐. 남자의 마음이란 게 바다 밑에서 바늘을 잡는 것처럼 알 수가 없다지만 말이야!”

심 부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몹시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앉아 있지도 못한 채 방안을 서성거렸다.

“그가 분명 금하의 신분을 알아낸 거예요. 그래서 걔한테 이러는 거예요! 나는 진작 그의 능력이라면 조만간 이 일이 밝혀질 걸 알았어요. 단지 이렇게 빠를 줄 생각 못했을 뿐이죠!”

“그럴 리가 없어. 생각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금하는 그가 요즘 신경 써야 할 일이 유난히 많다고 말했다고. 어쩌면 속의 화를 저 계집애한테 풀었을 수도 있지.”

“아니요. 육역은 매우 내향적이라 감정 같은 건 사람들 앞에 쉽게 드러내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화풀이할 사람을 찾겠어요.”

심 부인은 무언가 생각이 난 것처럼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개숙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육병과 엄숭은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 하가는 이미 전부 무너졌고, 저 아이 하나 남았어요. 혹시 육역이 엄가 대신 화근을 철저히 없애려 하는 건 아닐까요? 엄가 비위를 맞추려고요?”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 보기에 그럴 사람이 아니야.”

심 부인은 다소 마음이 급해졌다.

“그가 당신 일가라고 대신 변명해 주지 마요! 만일 금하에게 사고가 생기면, 내가 어떻게 언니를 볼 낯이 서요.”

“조급해하지 마.”

개숙은 그녀에게 얘기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심 부인이 입술을 깨물고 생각하다가 잠시 후 결연히 말했다.

“나는 금하를 데리고 떠나야겠어요!”

“어디로 가려고?”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금의위가 찾지 못한다면, 바다라도 나갈 거예요.”

“기다려봐, 기다려.”

개숙이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위로했다.

“당신이 어디로 가든 나는 다 따라갈 수 있어. 하지만 금하 저 계집애가 당신을 꼭 따라 갈 거라고 할 순 없잖아.”

그래도 심 부인의 표정은 결연했다.

“저 아이가 분별없는 아이도 아니고, 내가 진상을 말하기만 하면 분명 날 따라갈 거예요.”

“그건 확실히 말할 수는 없어. 쟤가 진상을 알자마자 엄숭을 죽여 복수하겠다고 난리가 나면 어떡해? 자네 잊었나. 자네 그때 엄세번을 암살하러 가려 했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었어.”

개숙이 급하게 말했다.

“이 일은 자네가 먼저 조급해하지 마. 육역이 말한 의미를 알아보고 다시 말하자고. 만일 그가 아무 것도 알아내지 않았다면, 자넨 지레짐작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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