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육역의 상처는 아직 다 낫지 않았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약을 달인 금하는 잘 달인 약을 받쳐 들고 그에게 가져갔다.
“육 대인, 약이 다 되었어요.”
그녀는 육역이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문밖에 서서 상황을 가늠하며 그를 한 번 불렀다.
안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조금 기다리던 그녀가 다시 부르려고 할 때, 육역이 안에서 문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분명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가 생겼으리라. 금하는 자신이 물어도 될지 몰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게…, 이건 약…, 제가….”
육역은 문 입구에 서서 표정 없는 얼굴로 약사발을 받아들었다. 잠시 사이를 둔 그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으나 기어이 무슨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문을 닫았다.
이렇게 닫힌 문밖에서 금하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문을 두드려 똑똑히 묻고 싶었건만, 한참을 망설이고도 결국은 하지 못했다. 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린 그녀는 돌아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방 안의 육역은 문에 등을 기댄 채 그녀가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 * *
금하는 의기소침하여 축 쳐져 걷고 있었다. 잠수는 그녀의 손에 아직 쟁반이 들린 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망설였지만, 기어이 그녀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서리 맞은 감처럼 축 쳐져서.”
“아니에요.”
금하가 육역의 방 쪽을 입술로 가리켰다.
“한가하면, 그 댁 대공자 걱정 좀 나눠 해요.”
“대공자가 왜?”
“누가 알아요. 아마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가 너무 많아서겠죠. 좋은 기색이 안 보이네요.”
풀이 죽은 금하가 말했다.
“배에 있던 그때보다 더 무서워.”
잠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방금 대공자 방에서 나왔어. 그분……, 평소랑 같은데.”
미간을 찡그린 금하는 그에게 계속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당신 남자들이 느리고 무디다고 하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대인 따라다닌 것도 헛된 거죠. 이것도 알아보지 못하고. 에이…….”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는 잠수를 남기고 한숨을 내쉬며 멀어졌다.
* * *
육역이 창문턱에 남긴 신호를 보았던 남도행은 밤이 이슥하여 인적이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육역의 방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내일 아침 일찍, 자네는 척 장군부 부근에서 나를 기다리게. 그런 후 나와 함께 들어가는 거야. 거기 백록 한 마리가 있어. 나는 호종헌에게 이 사슴을 성상께 헌상하라 할 생각이지. 그리고 자네가 바로 이 백록의 주인이라 할 것이야.”
육역의 말에 남도행은 순간 멈칫했다.
“제게 궁에 들어가 사슴을 키우라는 것입니까?”
“성상은 도술에 매료되어 전심으로 도가의 학문을 수련하고 계시지. 이 백록은 상서로운 동물이야. 자네가 산에서 수행할 때 만났다고 하면…….”
육역이 그를 흘끔 봤다.
“나머지 부분은 자네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요컨대, 성상께서 백록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가 바로 자네를 얼마나 신임하시느냐가 될 걸세. 그 분이 자네를 믿으면 믿을수록 자네에게는 기회가 많아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건 이 사슴이지요. 그것이 저를 낯설어하면 어떡합니까?”
남도행이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이미 척 장군에게 다른 이가 백록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하라고 얘기해 놨어. 우선 며칠을 굶긴 후, 자네가 가서 먹이를 주는 거야.”
육역이 말했다.
“자네 외에는 누구도 먹이를 주지 못하게 했으니, 시간이 지나면, 백록은 자연히 자네 한 사람만 알게 되지. 기억하게. 궁에 가서도 이렇게 해서, 이 백록이 자네가 주는 것만 먹는다는 것을 성상께 믿으시게 하는 거지.”
남도행이 헤헤 웃었다.
“매우 좋은 방도로군요. 따라다니는 백록도 있으니, 제 몸의 선기가 출중해 보이지 않습니까?”
육역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곧 그의 장난에 입을 맞추는 대신, 정색하여 말했다.
“자네가 궁으로 들어가면, 자네와 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것이야. 많은 일을 자네 혼자 짐작하여 처리해야 하네.”
남도행의 웃는 얼굴은 눈부시게 빛이 났다.
“저는 이날만을 계속 기다려왔습니다. 파죽지세로 쳐들어가 일당백 할 수 있기를요.”
육역은 더는 말없이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 * *
다음날, 육역은 남도행을 척부로 끌어들여 척 장군과 얘기를 나누게 조치를 해 놨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준마를 탄 호종헌과 서위가 서둘러 신하성에 도착했다.
호종헌의 마음은 백록에게 가 있어 그는 척계광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먼저 백록을 보러 갔다. 그것은 과연 온몸이 설백으로 잡털 한 올조차 없었다. 그는 기쁨이 일시에 극에 달해 즉시 백록을 바치는 상주문을 쓰러 안으로 들어갔다.
“도독, 이 상주문은 도독께서 쓰실 수 없습니다.”
육역이 그를 막자, 호종헌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아우님, 뭘 인제 와서 이러나. 경성 안에 나를 탄핵하는 상주문이 산을 이루는데, 나는 저것에 기대어 생명을 구한다고 하고 있다네.”
육역이 희미하게 웃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도독께서는 이 상주문을 쓰실 수 없으십니다. 이 백록은 아무래도 축생일 뿐이고, 성상께서 그것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게 하려면,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창작한 훌륭한 작품이 함께여야 하지요.”
이 말에 호종헌은 문득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맞다, 맞어! 내가 정말 급하여 혼미해졌어. 청등거사가 여기 있는데, 어디 내가 글을 쓸 필요가 있나.”
청등거사는 바로 서위의 호이다. 당장 호종헌은 그를 위해 직접 먹을 갈았고, 서위도 사양치 않고 붓을 들고는 잠시 침음했다.
그렇게 초 반 개가 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진백록표进白鹿表’ 한 편이 완성되었다.
호종헌이 가져다 천천히 읽어 내렸다.
“……밝음에 통달한 군주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말을 하지 않아도 사계는 적절히 움직이고, 자연의 순리에 맡겨 천하를 다스리면, 덕이 복희씨를 앞지를 수 있고, 하늘과 땅만큼 장수할 수 있으며…….”
서위는 훌륭한 명성을 얻은 몸으로 병법, 서법, 회화, 시문 모두 매우 뛰어난 이였다. 그래서 육역의 아버지조차도 그를 불러 막료로 삼으려 했는데, 그는 완곡히 거절하고 양절에 남기를 원했다.
육역이 ‘진백록표’를 다 들으니, 문장의 화려함과 정교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비굴하게 굽신거리고, 고심하며 비위를 맞췄구나, 하는 느낌이 가상하게도 한 글자, 한 구절마다 가득 스며 있었다. 서위의 대쪽 같은 성격에 조금도 자신의 절개와는 상관없는 이런 문장을 쓰라 하니 얼마나 울분을 느꼈겠는가.
“도독, 이 문장을 쓸 수 있겠습니까?”
서위가 물었다.
종이를 내려놓은 호종헌은 무슨 말도 하지 않고 서위를 향해 허리를 깊이 굽혀 절을 했다. 놀란 서위가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
“도독, 이러시면 안 되십니다.”
“아니야. 자네가 꼭 받아야 해! 이건 나 호종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양절의 백성을 위해 서기도 해.”
호종헌은 무예를 익힌 이로 서위가 결코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호종헌은 기어이 깊은 절을 하고 서야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