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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91)화 (191/224)

191화

그는 잠시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다가 잠복에게 눈짓을 했다. 다시 고개를 젓고서야 이어서 물었다.

“그 범인이 누구더냐?”

잠복은 그의 의중을 알아들었다. 밖에서 누군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말했다.

“단지 시정의 무리일 뿐이었습니다. 조옥에 들어가기 전 양정만과 왕래가 잦았답니다. 그가 산적과 결탁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엿듣는 이가 있는 이상, 잠복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양 포두는 확실히 억울한 누명을 썼구나. 이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귀경길, 아버님 건강은 어떠하시더냐?”

“어르신 건강은 매우 좋으십니다. 활기도 넘치셨고요. 둘째 도련님께서는 얼른 돌아오시랍니다. 아니면 하루 세끼 욕설을 그분 혼자 다 드신다고요.”

잠복은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그러나 대체 누가 밖에 있는지 몰라 두 눈은 문밖을 단단히 주시했다.

“내가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아 확실히 그 아일 난처하게 했다. 자, 우리 차를 마시며 천천히 얘기해 보자……. 참, 찻물이 식었을 게다. 네가 다시 가서 차호에 뜨거운 물을 채워 오너라.”

그러며 그는 문 입구를 향해 눈짓했다. 잠복도 그 뜻을 알아듣고, 차호를 들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바깥의 금하는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재빨리 벽 모퉁이로 숨었다. 문을 밀고 나온 잠복이 높은 소리로 잠수를 불러 뜨거운 찻물을 다시 가져오라고 했고, 잠수에게 들킬까 염려가 된 금하도 다시 도청하기에는 좋지 않아 겸연쩍게 돌아서야 했다.

“대공자께선 누가 밖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잠복의 물음에 육역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네게 조사하라 한 이 일을 넌 금하나 다른 사람에게 절대 새나가지 않게 하거라. 잠수는 네 신중함만 못하니, 설령 그라도 너는 얘기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 범인이 누구였나?”

육역이 다시 물었다.

“이 일의 이상한 부분이 여기입니다. 그 범인은 원래 산적으로, 아마도 먹고 살 일을 찾아 경성에 왔을,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이입니다. 그런데 그가 대리시 좌소경 동동의 부인과 아들을 붙잡아 몸값을 요구한 후에 죽인 겁니다. 양정만이 그를 잡아 조옥에 넣었구요. 후에 이 사람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게 실종되었습니다. 죄명은 양정만이 뒤집어썼는데, 그 후에 또 그는 억울하다며 풀려났습니다. 헛되이 다리 하나가 부러졌고요. 이 모든 일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잠복이 잠시 멈추고는 신중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가장 기이한 것은 그때 양정만과 심련 모두 어르신께 중용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 신임하던 둘에게 문제가 생겼는데도 왜인지 모르게 어르신은 두 사람 모두 조금도 도와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육역의 마음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그때 이미 금의위 최고 지휘사였고, 조정에서 그가 어렵게 대할 수 있는 이는 엄숭 뿐이었다. 설마 양정만이 조옥에 들어간 이 일이 엄숭과 관련이 있나?

“남경의 일은 어찌 조사했더냐?”

그가 이어서 물었다.

“하장청 일가는 그해 멸문당해 남은 이가 지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인척 관계가 있다면 전부 피하지 못하여 저는 하가에서 옷을 빨던 할멈 하나만 찾았습니다. 그 노인의 말로는 하가는 그해 정말 불운하였던 것이 하장청에게 딸이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의 원소절에 화등을 보다가 잃어버렸답니다.”

육역의 안색이 돌연 굳었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물었다.

“원소절?”

“네. 그 할망구 말로는 원소절 밤에 딸을 잃어버렸다죠. 다들 인신매매범이 유괴했다고 추측했다는 겁니다. 하가는 매우 오랫동안 찾았는데도 찾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 씨 부부는 많은 계집종과 하인들을 면천시켜 돌려보내 줬답니다.”

“그 아이가 몇 살이었더냐?”

육역의 목소리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잃어버릴 때는 6, 7세가량이었고,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17, 8세는 되었을 겁니다.”

잠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인신매매범에게 유괴된 것도 사실 나쁜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이나마 건질 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그해 그 아이가 하가에 있었다면, 아마도 이미 죽었겠지요.”

육역은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이 완전히 나가 멍해 있을 뿐이었다.

“대공자, 대공자…….”

잠복이 그를 두어 번 불렀다. 그의 안색도 몹시 무거웠다.

“그리고 제가 경성에 갔을 때, 어르신께서 대공자께 전하라 하신 말씀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조정에는 이미 공자께서 뇌물을 받고 간당을 감싸고 있다며 탄핵한 이가 있으니, 일을 함에 조심하시라 하셨습니다.”

“성상께서 탄핵 상주서를 보셨다더냐? 어찌 말씀하셨다지?”

“성상께서는 거들떠보지 않으시고, 상주서를 한쪽에 내버려 두셨답니다. 그러나 어르신을 불러 몇 마디 물어보셨다죠.”

잠복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상주서를 올린 사람은 그저 바둑돌일 뿐이고, 그 돌을 부리는 이가 지금 모종의 일을 하기 전 미리 속내를 떠보고 있는 것이다. 성상께서 상주서를 올린 사람을 처벌치 않는 것으로 육가에 대한 성상의 태도를 알 수 있지.’

육병의 말을 전한 잠복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육역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나도 짐작되는 바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육역이 예상한 대로였고, 성상과 우정이 있는 이는 그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그러니 성상은 그에 대해서는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엄세번이 육가를 다루려 한다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이는 바로 그, 육역이었다.

잠복이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대공자, 제가 보기에 어르신의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이런 날씨에 솜저고리를 입고 계셨습니다. 둘째 도련님께서 몰래 제게 말씀하시길, 어르신께서 밤새 잠을 못 이루신 지 한참이시랍니다. 어르신께서 한밤중에 뜰에 홀로 앉아 넋이 나간 것을 자주 보신답니다.”

육역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일이 끝나면, 우리는 바로 귀경한다.”

잠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인사를 고하고 물러나니, 방안에는 육역 홀로 남았다.

그는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은 무섭게 밀려온 파도가 심장의 바닥을 때리며 부서지는 것 같았다……. 심 부인이 금하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양정만과 임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그는 이미 금하와 임가 혹은 하가의 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가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들은 잠복의 보고는 그 의심에 쐐기를 박았다.

하장청이 그해 딸을 잃어버린 것은 아마도 그들이 딸아이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쓴 고육책일지 모른다. 고의로 누군가에게 아이를 데려가라 하고는 거짓으로 잃어버렸다고 한 것이다. 그 후 아이는 몰래 양정만에게 맡겼을 터였다.

금하는 원 씨 부부가 입양한 아이였다. 같은 5, 6세 때 입양되어 하가 딸아이의 실종과 딱 들어맞았다.

육역은 지독한 고통에 눈을 꾹 감았다. 지금까지 그는 요행을 바랐는지 모른다. 금하는 하가가 아니라 임가와 인연이 있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가 알게 된 모든 정보는 그가 가장 대면하길 원치 않던 그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육역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지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깊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 평정을 되찾은 그가 말했다.

“들어 와.”

문이 열리고, 머리부터 내밀어 상황을 살피던 금하가 그에게 먼저 활짝 웃어 보이고는 성큼 걸음으로 다가왔다.

“잠복과 얘기하셨어요? 경성에 무슨 나쁜 소식이 있어요? 그가 들어올 때 안색이 안 좋아 보였거든요.”

“별일 아니야. 모두 사소해.”

육역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물어볼 게 있다.”

금하는 육역의 손을 잡고 그의 옆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무슨 일이요?”

그러나 육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살피고 손등 위의 옅은 흉터를 어루만졌다.

“여긴 어쩌다 다쳤어?”

금하가 흘끔 보고는 웃었다.

“폭죽에 데었어요. 어릴 때, 우리 살던 그 거리에서 비단 팔던 왕가네가 가장 부자였어요. 새해맞이 할 때면 아이에게 불꽃놀이 폭죽도 사줄 수 있었죠. 전 그때 아직 어렸고, 집에는 그걸 살 돈이 없었고요.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는 걸 보면 부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 힘껏 앞으로 나가 끼어들었죠. 그들은 내가 걸리적거린다며 싫어했고, 바로 내 옆에서 폭죽에 불을 붙인 거예요. 손도 데고, 입고 있던 솜옷에도 구멍 몇 개 뚫렸죠. 집에 돌아가니 엄마가 약을 잘 발라주셨어요. 그 후에 한바탕 맞았지만요.”

어느 새 육역의 눈에는 흐릿한 물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금하에게 들킬까 두려워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고개를 돌렸다.

“어릴 때 고생을 매우 많이 했구나.”

그가 물었다.

그의 품에 폭 안긴 금하는 매우 편안함을 느끼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것 같진 않아요.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엄마는 말씀이 제가 두어 번 맞으면 바로 지붕으로 도망갔대요. 엄마는 또 제가 떨어질까 겁이 나서 좋은 말로 달랠 수밖에 없었고, 놀라서 얼굴은 하얗게 질리셨죠.”

옛일을 생각하던 그녀는 그의 품속에서 쿡쿡대며 계속 웃었다.

“네 부모님은 네게 매우 잘해 주셨군.”

육역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그거야 당연하죠!”

금하는 그의 허리에 두 팔을 두르고 그를 꼭 껴안았다.

“그래서 저는 하루 빨리 포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은자를 조금 더 벌 수 있거든요. 우리 엄마는 유달리 은자를 좋아하세요.”

육역은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다시 물었다.

“시장 안에 그분들을 괴롭히는 이가 있었나?”

“전에는 있었어요. 매대 자리를 뺏겼을 때, 누군가 우리 아버지를 때려서 자리보전하고 약 몇 첩 드셔야 했죠. 그때 저는 무공이라 할 것도 전혀 없어서 어머니가 약 짓는 틈을 타 칼 들고 뛰어나왔어요. 머릿속은 온통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아버지 복수하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다행히 도중에 대장이 막으셨고, 한바탕 훈계를 들었어요.”

금하는 하하 하며 멋쩍게 웃었다.

육역은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였다.

“바보 꼬맹이. 원수를 갚는다 해도, 네 모든 걸 걸지는 마.”

금하는 그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껴안고 있던 그에게서 조금 벗어나 유심히 안색을 살폈다.

아.

살짝 놀란 것은 그의 눈가에 물기가 서려서였다. 금하는 그가 이 정도까지 슬퍼할 줄은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얘기 안 했어요. 이건 모두 어릴 때 얘기예요. 슬퍼할 필요 없는데…….”

육역은 그녀의 목덜미에 다시 머리를 묻었다. 마음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지만, 무슨 말도 그녀에게 할 수 없어 그녀를 더욱 꼭 안아줬을 뿐이었다.

그리고 금하는 육역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계속 그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알잖아요. 전 금갑신인이 보호하셔서 재난을 만나면 상서로워지고, 화를 만나면 복이 돼요. 제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에요. 내 모든 거 걸지 않으니, 걱정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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