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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89)화 (189/224)

189화

개숙은 매우 친밀하고 다정스럽게 그의 어깨를 감쌌지만, 양악은 이것이 지극히 부자연스러웠다.

“대양아, 너 알지. 나는 줄곧 너란 아이를 유달리 좋게 봤다. 사람이 성실 듬직하고, 밥도 또 맛있게 하잖니.”

개숙이 그를 끌어당겼다.

“쟤들보다 나은 게 한둘이 아니지…….”

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개숙이 말할 때 튄 침 한 방울이 어김없이 양악의 얼굴로 날아왔다.

양악은 어색하게 그에게서 벗어나 예의 있게 물었다.

“아저씨. 무슨 일 있으세요?”

“큰일은 아니고, 그게……, 네 아버지가 지금 양주에 계시냐?”

개숙이 물었다.

양악은 화제가 단번에 아버지 쪽으로 바뀔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이유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리가 안 좋으셔서, 양주 사가에 머무십니다.”

“너희가 이리 오래 나와 있는데, 네 아버지가 걱정하시겠다. 너희들은 말이다. 어른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해. 그저 밖에서 놀기만 하지 말고, 자주 편지도 써서 안부를 전해야지.”

개숙이 그의 표정을 흘끔거렸다.

“봐라. 나는 척 보면 알아. 너희는 이렇게 오래 나와 있으면서, 아버지께 편지 한 통 안 썼지?”

“……평소에도 자주 출장을 나와서요. 그래서 아버지는 비교적 마음을 놓으시죠. 일 도중에 편지 쓰는 습관은 없었어요.”

양악이 설명했다.

“그래서 내가 너희가 아직 어리고, 철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거다. 부모의 심경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말이지.”

개숙이 그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자녀가 먼 길을 떠나면, 부모의 마음은 늘 걱정이 가득하다는 걸 몰라? 지금 양절이 이리 혼란스럽고, 왜구가 온통 날뛰는 데, 넌 이리도 오래 나와 있잖니. 적어도 어른께 편지는 써서 안부는 전해야 하는 게지.”

양악이 생각해도 그의 말이 맞아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돌아가 안부 편지를 쓸게요.”

“그래야 맞는 얘기지.”

개숙은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잠시 후, 이어서 또 말했다.

“네 생각엔 금하에게 나 같은 아저씨가 생겼고, 또 심 부인이라는 이모가 생겼지. 기쁜 일 아니냐?”

“맞아요.”

양악은 개숙이 말을 이리저리 돌리자,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그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무슨 일 있으시면, 솔직히 말씀하실 수 없으세요? 빙빙 돌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다. 그럼 내가 솔직히 말하마.”

개숙이 잠시 망설였다.

“이런 속담이 있다. 한번 스승이 되면 평생 아버지와 같이 존경하고 모셔야 한다고. 네 아버지 양정만은 금하의 스승이지, 맞지? 그래서 그는 금하의 아버지와 같다, 또 맞지……?”

양악은 매우 힘겹게 노력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금하의 경사를 네가 아버지께 한 마디 해야 하지 않겠니?”

개숙이 유달리 간절하게 그를 바라봤다.

“무슨 경사요?”

양악의 머리는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너 이 녀석, 내가 방금 얘기하지 않았니. 걔가 나 같은 아저씨가 생겼고, 또 이모가 생겼잖아. 이게 경사가 아니고 무엇이냐! 너 설마 아버지께 일언반구 말 한마디 하나 하지 않으려는 거냐.”

개숙이 계속 차근차근 잘 타일러 가르쳤다.

양악은 이제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러죠. 제가 말씀드리면 되죠.”

개숙이 매우 만족하여 마지막 중요한 일을 설명해 줬다.

“심 부인을 언급할 때는 잘 기억해뒀다가 말해. 그녀가 복건 천주 사람이고, 친정의 성이 임이라고.”

“그것도 말해야 해요?”

“당연히 말해야지! 네가 명확히 말 안 하면, 네 아버지는 걔 아저씨는 어떤 사람인지, 걔 이모는 어떤 사람이지, 분명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될 게다. 그 사람의 내막을 알아야지. 네 아버지가 신경 쓰시게 해선 안 돼, 이해했니?”

“이해했습니다.”

양악이 대략 선후 관계를 정리했다.

“아저씨 말씀은 제가 아버지께 안부 편지를 써야 하고, 그런 후, 아버지께 금하가 아저씨, 이모가 생긴 걸 말씀드려야 하고, 또 심 부인 친정이 복건 천주부의 임가라고 말씀드려야 한다는 거잖아요, 맞죠?”

“맞다, 맞다. 바로 이거지.”

개숙이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이 녀석, 다 좋은데, 이 머리가 너무 느려. 이런 일에 한나절을 허비했어. 말하느라 이마에 온통 땀이 다 났다.”

자신도 듣느라 이마에 온통 땀이었다. 양악은 어쩔 수 없이 개숙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개숙이 이리저리 에둘러 말을 하니, 자신이야말로 충분히 괴로운 일이었다.

저녁이 되어, 양악은 금하를 부엌으로 불러 불을 때 달라 했다. 그 김에 오늘 개숙이 그에게 하라고 한 일을 그녀에게도 얘기해 주었다.

“아저씨가 네게 아버지께 특별히 편지를 쓰라 했다고? 게다가 복건 천주 임가를 언급하라 하셨고…….”

부지깽이를 든 금하는 건성으로 아궁이 안을 휘저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지난번 이모가 경성에 옛 친구가 있는데, 대장 이름과 비슷하다 하셨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분들도 대장이 그 옛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알아보고자 네게 편지를 쓰라 하신 거다. 이건 오히려 우리가 하고자 하던 것과 같아진 거네!”

“난 그게 이해되지 않아. 분명 매우 간단한 일인데, 그분은 왜 그리 힘들게 돌려 말하셔야 했을까.”

양악은 이해할 수 없었다.

“너 잊지 마. 심 부인은 엄청난 변을 겪으신 분이고, 줄곧 다른 이가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는 걸 꺼려 왔어.”

금하가 말했다.

“우리 아저씨는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에다 절도 한다고, 매사 그녀에 관한 일이라면, 분명 조심하실 거야.”

“그럼 내가 편지를 쓸게. 참, 상관 당주 일은 얘기할까?”

“상처가 다 나았다고 한마디만 해. 내가 보기에 이미 조금씩은 움직일 수 있어. 며칠 더 지나면, 말끔해 질 거야……. 참, 오골계 다 삶아진 거야?”

“다 됐어. 이 닭은 너무 오래 끓이면 안 돼. 아니면 고기가 전부 흐물흐물해져.”

금하는 불도 더 때지 않고, 튕기듯 일어나 계탕을 담았다.

“내가 먼저 한 그릇 담아 육 대인께 가져다드릴게.”

“네가 불 안 때면, 여긴 어떡하냐?”

“바로 사가 오빠 불러줄게. 그 사람 지금 너무너무 한가해.”

잘 담은 계탕을 쟁반에 놓은 금하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금하 어르신!”

양악의 부름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봤다.

“왜?”

“자중 좀 해라, 어?”

양악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가씨다.”

“알았어. 최대한 해 볼게!”

* * *

계탕을 들고 육역의 방으로 간 금하는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그를 불렀다.

“얼른 와서 계탕 드세요. 안에 황기와 삼을 넣었는데, 기를 보충하고, 독을 제거하고, 새살을 돋게 한데요. 상처 아무는 데도 더할 나위 없이 좋대요.”

육역이 일어나며 웃었다.

“네가 끓였어?”

“전 양악이 끓이는 걸 보고 있었죠.”

금하는 헤헤 웃으며 계탕을 그의 앞에 놓았다.

“천천히 드세요. 뜨거우니 조심하시고요.”

육역은 마시는 것을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탕을 숟가락으로 천천히 한 번 한 번 휘저으면서도 말없이 금하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금하는 그가 바라보는 것에 영문을 몰라 했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제 얼굴 더러워요? 방금 부엌에서 대양을 도와 불을 피웠거든요. 검댕 묻었죠?”

“닦아 줄게.”

육역이 소매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닦았다. 그녀를 아프게 할까 염려라도 하는 듯, 지극한 그리움이라도 담은 듯 상당히 가볍고 부드러운 손길로 한 번씩, 한 번씩 천천히 닦아냈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금하가 그의 손을 누르고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애써 웃은 육역은 손을 빼내어 이제는 반대로 그녀의 손을 제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연이어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내가 잠항에 있을 때 꾸었던 꿈속에서 너를 봤다.”

그가 꿈속에서 나를 봐?

금하는 매우 흥미가 생겨서 기쁜 얼굴로 물었다.

“꿈속에서 제가 뭘 하고 있었어요?”

육역은 탁자 높이와 나란하게 손을 올려 비교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넌 이만큼 컸고, 머리를 두 갈래머리로 묶었어. 대로에서 깡충깡충 뛰며 날 데리고 가고 있었다.”

“그러고는요?”

금하가 그에게 빨리 말해 보라 재촉했다.

“넌 어느 집 문 앞까지 걸어왔지. 문 앞에는 입에 석주를 문 두 마리 돌사자가 앉아 있었고, 네가 거기로 기어올라서는 손으로 그 구슬을 가지고 놀았어. 노는 게 매우 활기차더군.”

금하가 크게 웃었다.

“이 일은 제가 한번 말했잖아요. 기억하고 있었군요. 저 어릴 때 어떻게 생겼어요? 사랑받게 생겼어요? 유달리 귀염성 있었죠?”

“지금과 거의 같아. 매우 귀염성이 있었지.”

육역이 희미하게 웃었다.

“제 생각도 그래요.”

금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그녀를 보고 있으니, 육역은 저도 모르게 양주성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그녀는 뚱뚱한 고양이를 안은 채 매우 억울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대인 저는 정말 불쌍하지 않으세요?

그때는 결코 마음에 두지도 않던 그 말.

오늘은 다시 생각나 육역은 유달리 추억에 젖었다.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어찌 아끼는 것으로만 그칠까. 사랑한다는 말조차, 가슴 아프게 사모하고 있다는 말조차도 부족한 것을.

“계탕 드세요. 식으면 안 좋아요.”

금하가 그를 재촉하는데, 돌연 먼 곳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왜구가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금하는 온몸이 긴장했다.

“왜?”

“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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