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87)화 (187/224)

187화

금하는 원래 목소리가 듣기 좋게 맑았고, 말솜씨 또한 매우 뛰어나다. 그동안 일어난 일을 매우 생동감 있게 말해서 다관의 공연보다 더욱 흥미진진함이 있었다.

육역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녀가 이렇게 많은 위험을 겪은 것에 놀라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너희와 함께 신하성으로 왔을 거다.”

“이제 다 괜찮아요. 그런데 대인은요? 잠항을 계속 함락시키지 못해 성상께서 성지를 내려 유 장군을 파면시키셨다고 들었어요.”

금하가 시무룩해져 말을 잠시 멈췄다.

“뒤에서 함부로 떠드는 사람들도 있어요. 유 장군이 면직당한 게 대인이 성상께 그의 나쁜 행태를 고했기 때문이라고요.”

다른 이들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육역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잠항은 이미 대승을 거두었고, 성상께선 곧 유 장군의 직무를 회복시키실 거야.”

“잠항에서 크게 이겼어요? 진짜 잘 됐어요!”

무언가 생각이 난 금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왕직은 그가 죽은 후, 양절은 분명 10년간 대혼란이 올 거라고 말했는데, 조금도 틀린 것 같지 않아요. 지금은 원래 그의 수하였던 왜구들이 와해되어 10여 개로 나뉘었어요. 그 나뉜 세력마저도 연해 각처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죠. 그 나루터의 난민은……, 전 살면서 그런 장면은 본 적이 없었어요. 양절은 끓고 있는 죽처럼 어지럽고, 이럴 때 만약 양절 총독이 교체되면, 아마 혼란에 혼란을 더하겠죠?”

육역이 한숨을 쉬었다.

“그뿐만 아니야. 호종헌 아래에 있는 유대유, 척계광 같은 장군들은 모두 오래도록 왜구와 싸운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지. 만약 호종헌이 교체되면, 이 장군들도 교체되어 이동될 것이다.”

“왜 그런 거죠?”

금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천자가 바뀌면 신하도 모두 바뀐다고 했다. 하물며 양절 총독일 뿐이야. 호종헌에게 중용된 이들은 분명 다음 양절 총독을 맡은 이가 꺼리게 되겠지. 이 장군들은 조정에 탄탄한 후원자가 있어야만, 직위를 보전해 계속 양절에 남아 공훈을 세우고 업적을 쌓을 수 있다.”

육역은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엄세번이 왜 그가 분명 호종헌을 도울 거라고 했는지를.

호종헌을 지켜냈기에 그 수하인 항왜의 장군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장군들을 지켜냈기에 양절은 왜구의 침범을 막아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조정은 엄세번의 지휘 아래 호종헌을 탄핵하라는 상주서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랐다. 게다가 양절의 왜란은 점점 더 위력이 거세지고 있으니 호종헌의 처리는 성상의 생각 하나에 달려 있었다.

설령 육역이 호종헌의 변명을 위해 상주서를 올린다고 해도, 이 물밀듯 밀려든 탄핵의 상주서를 이기지 못해 아마 이 위기를 만회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또한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호종헌을 위해 변명하려 한다면, 그건 바로 엄세번에게 빌미를 잡히는 것이다.

이런 판세에 어찌 대응해야 할까?

육역은 더욱 깊이 미간을 찡그렸다.

두 손으로 턱을 괸 금하 역시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근심하고 있었다.

“성상께서 만약 엄숭을 중시하는 것처럼, 호종헌도 마찬가지로 중시한다면, 누가 어떤 말을 해도 호종헌을 파직하긴 힘드실 텐데요.”

이 말에 육역은 살짝 정신이 멍해졌다.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다시 한번 말해 봐라.”

금하는 자신의 말 어디에 유용한 곳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요구를 따라 반복하여 말했다.

“성상께서 호종헌도 엄숭을 아끼시는 것처럼 아끼시면 좋을 텐데요. 그럼 어찌 그의 직위를 거두시겠어요. 이렇게 말했어요.”

“맞다! 바로 그 말이야.”

육역은 기뻐했지만, 금하는 영문을 알지 못했다.

“이 말도 그냥 말해 본 것뿐이라 쓸모는 없을 텐데요.”

육역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니다. 네 말이 매우 옳은 말이지. 성상의 호종헌에 대한 호감이 배가되기만 하면, 탄핵하라는 말이 아무리 많다 해도, 호종헌의 양절 총독 지위는 흔들리지 않겠지.”

오랫동안 육역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엄세번은 그의 적이었다. 그러나 엄세번은 모략이 가장 뛰어난 이라 그가 설계하는 일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바둑판같아, 언제나 그는 행동을 신중히 하고 매사 섣부른 행동을 삼가고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금하가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는 오히려 그를 일깨워서 이 일에 있어 그는 엄세번이 대체 얼마나 많은 수를 감추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이는 높디높은 곳에 있는 성상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조정의 비애였으니, 성상의 개인적 애호가 분명 명의 조정을 좌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엄세번이 만든 이 바둑판에서 그는 내려올 수 없었다. 바둑판의 짙은 안개를 헤치고,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이를 직접 손에 넣은 것만이 최고의 승리 방법이리라.

그러나 금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성상께서는 경성에 계시고 호종헌은 양절에 있어요. 보려 해도 보지 못하고, 조정에는 대다수가 그를 탄핵하는 사람들뿐이고요. 대인은 어떻게 성상의 그에 대한 호감을 증가시키시려고요?”

육역이 빙긋 웃었다.

“성상께서도 사람일 뿐이니,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것이 있지. 하물며 그에게서 뭔가를 얻는 것은 엄세번을 상대하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수월한 편이다.”

“방법이 있어요?”

“있을 거다.”

* * *

육역이 몇 번이나 재촉하고서야 금하는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나간 후에야 잠수가 들어와 항주를 떠난 후의 일을 육역에게 보고했다. 그의 말도 금하가 한 말과 대략 비슷했다.

“소관이 은량을 잃어버리고, 순우 아가씨도 잘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대공자께서 벌을 내려주십시오.”

잠수가 무릎을 꿇고 육역에게 죄를 청했다.

“양절 도처가 모두 왜란이니, 널 탓할 수 없다. 그러나 나루터에서 아가씨들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지 않고, 지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확실히 너의 잘못이다.”

잠수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저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소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시에는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역이 담담히 말했다.

“되었다. 이 일은 내게도 책임이 있어. 너희 몇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고, 오히려 양악이 진중함이 있지. 하지만 너도 그의 권고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일은 우선 교훈으로 삼고 그만 일어나거라.”

잠수가 그제야 일어서 문을 나섰다. 그러다 문 앞에서 약사발을 들고 온 심 부인을 마주쳤다. 그가 약 사발을 받아 들고 들어가려 했지만, 심 부인은 오히려 거절했다.

“맥도 짚어야 하니, 내가 할게요.”

잠수는 의심 없이 예의 있게 물러났다.

심 부인이 약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육역이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제가 무능하여 선배님께 다시 폐를 끼쳤습니다.”

그에게 앉으라는 눈짓은 한 심 부인이 그에게 약을 건네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번은 육 오라버니의 얼굴을 봐서였고, 이번은 금하의 얼굴을 봐서 한 것이죠. 고마워하려면, 그들에게 해요. 내게는 감사할 필요 없어요.”

시선을 내리깔고 웃던 육역은 잠시 후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선배께서는 아예의 상처는 왜 치료하셨는지요? 또한 금하의 얼굴을 보아서입니까?”

“사람이 목석이 아니니 누가 감정이 없겠어요? 그 아이가 기왕 나를 이모라고 부르고 있으니,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 조금 더 잘해줄 뿐입니다.”

심 부인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

“육 대인, 이번에 부상을 입고도 서둘러 온 것은 그 아이의 안위를 염려해서였던 거죠?”

어려서부터 내성적 성격으로 자란 육역은 금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결코 이런 속을 드러내 본 적은 없다. 바로 그는 스리슬쩍 간단히 넘어가 웃어 보였다.

“척 장군이 병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신하성의 병력은 비었고 성 안의 백성은 저항할 힘이 없었으니 확실히 마음이 놓이지 않긴 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으려 한다. 그 모습에 오히려 심 부인도 고민하지 않았다. 평상시 한담을 하듯 직설적으로 말했다.

“내 생각엔 금하가 대인을 매우 마음에 둔 것 같던데요. 그래서 한 마디 물어는 봐야겠습니다. 그 아이 신분으로 육가에 시집간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요?”

육역은 심 부인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을 거라고는 오히려 생각지 못했다. 그가 웃으며 반문했다.

“선배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 아이를 아내로 맞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요?”

심 부인이 이어 물었다.

육역은 살짝 멈칫했으나 계속 웃어 보였다.

“금하의 그 말이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군요. 항주에 있을 때, 금하는 이미 제게 얘기를 했었죠. 선배님께서 그녀를 친어머니보다 더 마음을 쓰신다고요. 흠, 이제는 혼인도 그녀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군요.”

심 부인이 비록 육역보다 나이는 많아도, 일을 스리슬쩍 넘기는 면에서는 오랫동안 관료사회에 있던 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육역은 이쪽으로 능했다.

미미하게 눈썹을 찡그린 심 부인이 다시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오히려 육역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참, 선배께서 유대유라는 성함의 장군을 들어보셨는지요?”

이 말에 심 부인은 순간 굳었다.

유대유는 복건 천주인으로 천주에서도 유명세가 있는 쪽이었다. 만약 그녀가 모른다고 하면, 너무 거짓임이 드러날 것이고, 만약 안다고 하면 또 아마도…….

“알거나 모르거나, 무척 단순한 질문인데 선배님께서는 오래 생각을 하시는 군요. 역시 굉장히 신중하십니다.”

“대략 들어본 것 같군요. 다만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어요.”

“유 장군은 이양흠의 문하였습니다. 제가 듣기론 이양흠은 제자 둘을 거두었지요. 유장군 외에 다른 한 명이 그의 마지막 제자입니다.”

육역은 그녀의 표정을 계속 주의 깊게 살폈다.

“듣기로 이 사람이 임가의 먼 친척이라더군요. 아마 선배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심 부인은 전혀 동요 없는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우리 임가도 영천에서는 호령 꽤나 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친척이라 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게다가 어떤 먼 친척은 어쩌다 연을 닿은 일가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제가 어찌 모든 이를 알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육역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무언가를 감추려 한다는 것을 오히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선배님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한 마디 묻지 않으셨는데, 어찌 모르신다 말씀하십니까.”

육역이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는 성이 양, 외자 이름인 립을 씁니다. 듣기론 후에 경성으로 가서 이름도 개명했다고 하죠.”

육역은 그녀를 주시했고, 목소리는 느릿했다.

“선배님 잘 생각해 보시죠. 이 사람이 생각나십니까?”

심 부인의 대답은 매우 빨랐다.

“생각나지 않아요.”

육역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찾고자 하는 눈빛을 숨기지도 않은 채 한참을 바라보다가 겨우 눈빛을 거두고 가볍게 웃었다.

“저는 생각이 났습니다. 항주에 있을 때, 금하가 얘기했었지요. 선배님께서 양정만이라는 이 이름자가 매우 익숙하다고 하셨다고. 마치 옛 친구의 이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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